예수의 언행은 처음부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복음서들에서는 그의 공생애 시작부터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거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정결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를 비난했다.
그 외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느냐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고, 그리고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했다. 사두개인들까지 나서서 부활 후에 일어날 일을 놓고 그를 시험했다.
예수가 중풍병자를 고치면서 “네 죄 사람을 받았다”고 말하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를 신성모독자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과 같다고 말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가르칠 때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나서서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그를 질책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칠 때부터 범법자 예수를 죽일 모의를 했다. 그리고 그를 신성모독자라고 간주하고 돌로 치려고 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비판하는 예수를 죽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잡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고 갔고, 가야바는 그를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다.
여기서는 이렇게 심각하고 많은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갈등 가운데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정결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비난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공관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와 그의 일행이 세리의 집에 가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레위로, 마태복음에는 마태로 나옴)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는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따졌다(마 9:10; 막 2:15-16; 눅 5:29-30).
그리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식사하는 것을 보고 예수에게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부정한 손으로 밥을 먹느냐고 시비했다(막 7:5; 마 15:1-2). 누가복음에서는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초대하였는데, 그 바리새인이 예수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고 완곡하게 기록되어 있다(11: 37-38).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 없는 예수의 정결법 위반 사건이 두 가지 더 나온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께 나아오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가 죄인들을 영접할 뿐 아니라 그들과 식사한다고 “수군거렸다”(15:1-2). 그리고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을 보고 뭇사람이 예수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간다고 “수군거렸다”(19:7).
정리하면, 예수와 바리새인들이 여러 가지 문제로 대립했는데, 정결법에 관해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와 제자들을 직접 비난한 사건들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단 두 번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모두 네 번 나오지만, 세 번은 비난이 아니고 “이상히” 여겼다거나 “수군거렸다”는 정도의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정결법에 관한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정경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일도 없기 때문에,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에서 정결법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커스 보그는 『미팅 지저스: 역사적 예수와 현대인의 신앙』에서 정결법 문제를 중시하고 있다. 그는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이 정결법을 통해서 차이와 차별을 조장했지만, 예수는 정결법을 비판함으로써 평등과 사랑이 실현되는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려 했다고 말한다.
보그는 예수께서 당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선포하신 복음의 중심에 유대교의 정결 제도를 타파하려는 자비의 비전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이 자비의 비전을 “하나님 모방”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가 정결 제도의 타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보그는 예수가 정결의 정치를 자비의 정치로 대신했다고 주장한다.
* * * * * * * * * *
예수의 메시지와 활동에서 우리는 대안적 사회, 즉 정결의 윤리와 정치가 아니라 자비의 윤리와 정치에 의해 형성된 비전을 본다. 예수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모방은 출발부터 도전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워야 한다”는 기록과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삶을 언급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예수는 의도적으로 거룩을 강조하는 정결의 핵심 가치를 자비로 대체했다. 거룩보다는 자비를 하나님의 주된 성질로 보았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공동체의 윤리는 바로 자비여야 한다고 믿었다.
예수가 정결을 이야기한 것은 내적인 측면에서지, 외적인 측면에서가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막 7: 15-16). 정결을 내적인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외적인 경계선에 의해서 성립되어진 정결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엎자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정결 제도에 대한 그런 도전을 예수의 가르침에서뿐 아니라 그의 활동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치료 행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가 살았던 사회의 정결 경계선들을 산산이 부수어버린다. 그는 정결법에서 금기시하는 나병 환자와 혈루증에 걸린 여자를 만졌다. 그는 불결한 짐승들로 여겨졌던 돼지 떼 가까이서 살던 귀신 ‘군단’에 사로잡힌 사람이 거처하는 무덤까지도 다녀갔다.
그의 가장 특징적인 활동의 하나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식탁 모임이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예수가 살던 1세기의 팔레스타인에서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사를 둘러싼 규칙들은 정결 제도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무엇을 먹으면 안 되고,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며, 누구와 같이 식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규칙이 하나하나 정해져 있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부정하다고 판단되는 사람과 같이 식사하지 않았으며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외 계층 사람과 식사하지 않았다. 식사란 당시 사회 제도의 축도였기 때문에 예수의 개방 식탁 친교는 도덕적이며 대안적 사회 비전의 구현이었다. 그러므로 소외 계층을 포함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자주 식사한 예수의 식사 행습은 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행한 ‘개방 친교’는 정결법 옹호자들인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예수를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금식하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는 자라고 비난했다. 그가 가까이한 세리들은 불가촉천민 중에서도 최악에 속했으며, 죄인들이란 정결법에서 정결치 못한 사람들, 즉 더러운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예수의 개방 식탁 친교는 정결 제도에 대한 도전이었다. 예수의 식사 행습은 포용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그의 대안적 비전을 나타냈다. 유대인들의 정결 윤리는 폐쇄적 친교였던 반면, 자비의 윤리는 포용적 식탁 친교에서 나타난다.
예수의 식탁 친교가 구현하는 포용적 비전은 예수 운동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그의 식탁 친교의 대상자들은 여자들, 불가촉천민들, 가난한 자들, 병자들과 불구자들, 극빈자들과 함께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의 비전에 이끌린 자들을 포함한다.
평등의 자세를, 최소한 하나의 이상으로서라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러한 포용성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정결 제도에 의해 지배받는 사회에서 예수가 일으킨 운동의 포용적 접근은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적 사회 비전을 의미했다.
우리는 그 대안적 비전의 의미를 여자의 역할을 살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1세기 지중해 지역의 어느 문화나 마찬가지로 유대 사회는 남성중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그 당시 여자들은 남자들이 갖는 권리들을 거의 갖지 못했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증인이 되거나 이혼을 발의할 권리가 없었다. 그들은 토라(유대 율법서)를 배울 권리도 없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수 운동에서 여자들의 역할은 놀라운 것이다. 예수는 남자들만 모인 자리에 나타나 베일로 가리지도 않고 풀어 헤친 머리로 예수의 발을 닦아준 여인을 칭찬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 접대를 받는 중 마리아가 남자들과 함께 예수의 말씀은 배우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예수와 함께 다닌 무리들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그 현장에 있을 정도로 아주 신실한 추종자들이었다. 더욱이 여자들이 그리스도 부활 이후의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뚜렷한 증거까지도 있다.
요약하면, 예수의 메시지와 활동의 중심에 자리한 ‘하나님 모방’에는 경계선을 타파하는 비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라는 대명제이다.
정결은 분리하고 제외시키는 반면, 자비는 연합하고 포용한다. 예수에게 있어서 자비란 근본적인 사회·정치적인 명제를 지녔었다. 그의 가르침이나 그가 일으킨 운동에서, 정결 제도는 타파되고 대안적 사회 비전이 제창되었다. 정결의 정치를 자비의 정치가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