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열왕기상 14장 1~6절 제목: 변장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라
[서론]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내 필요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절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면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인물 중 하나는 바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죄’라고 말하며 가장 경계해야 할 신앙의 반면교사로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과 말씀을 통해 여로보암의 신앙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우리 안에 숨겨진 여로보암의 모습을 벗어버리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여로보암의 죄: 하나님을 '이용'하는 편의주의 신앙
여로보암은 솔로몬 사후 나라가 분열될 때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권을 얻은 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러 남쪽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가 마음이 돌아서 자신을 배신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술책을 씁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너희의 신이다.”
그는 자기 편한 대로 성전을 짓고,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며, 절기를 조작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진짜 죄는 하나님을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목적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과 종교를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내가 듣고 싶은 축복, 사랑, 구원의 말씀만 골라 먹는 ‘체리피킹(Cherry-picking)’ 신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룩과 순종, 절제와 헌신의 의무는 철저히 거부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혜택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거룩하심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편인 척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고, 목적을 이루고 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립니다. 이는 솔직한 무신론보다 하나님을 더 욕보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조작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죄를 지어도 벌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삶을 바꾸지 않은 채 구원만 받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구원과 축복은 받아들이면서,
거룩함과 순종을 요구하는 도덕적 가르침은 "너무 편협하다"며 버리는 태도를 지적합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이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
[본론 2] 위기 때 드러나는 자기기만과 얕은 꾀
여로보암은 겉으로는 금송아지를 세우고 평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비야가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때 여로보암의 본심이 드러납니다.
아들이 병들자, 그는 자신이 만든 벧엘의 금송아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그 모조품 신당이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아들이 병드는 등 위기가 찾아올 때만 하나님과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즉, 하나님과 종교를 '오직 자기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도구'로 여겼습니다.
그는 진짜 하나님의 능력과 선지자인 아히야를 기억해 냈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평안을 위해 정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양심을 억누르고 온가지 핑계를 대며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삶의 비극이나 위기(아들의 병, 인생의 풍랑)가 찾아오면 그동안 자신이 거짓된 평안 속에 살았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얕은 잔꾀를 냅니다.
자신의 왕비, 즉 아내를 가난한 여인으로 변장시켜 눈이 어두워진 늙은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냅니다. 신분을 속여서 자기가 듣고 싶은 답(도움)만 얻어오려는 어리석은 계산이었습니다.
신분을 속여 원하는 답(도움)만 얻어오려는 꾀였으나, 이는 미래를 예언하는 선지자가 변장 따위에 속을 것이라 생각한 매우 어리석은 착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파악하시는 하나님
선지자는 앞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여로보암의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만 듣고 그녀의 정체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알아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
평소에는 자기 뜻대로 살다가 위기가 올 때만 거룩한 척 하나님을 찾아가면 그분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숨김이나 변장도 통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 눈앞에 숨김없이 다 드러납니다.
[본론 3] 모든 것을 파악하시는 하나님
여로보암은 선지자의 눈이 어둡다는 점을 이용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아히야 선지자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여로보암의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왕상 14:6)
선지자가 정체를 맞출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련된 교양과 거룩한 옷으로 변장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숨은 의도가 숨김없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나온 ‘선물’이나 ‘변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중심’을 보십니다.
[결론] 변장을 벗고 진정한 순종의 자리로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 때에만 찾고 버리는 '도구'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사랑과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인격적인 아버지이십니다.
더 이상 나의 유익과 편의를 위해 신앙을 조작하는 여로보암의 길에 서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얕은 꾀와 거짓된 변장의 옷을 벗어버리십시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겸손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릎 꿇기를 원합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고 거룩함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진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