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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꿈
황 석 영
그때에 나는 낙원탕의 시다바리로 있었지. 누가 보더라도 누워 있는 살찐 녀석이랑 때를 밀고 있는 나는 묘하게 대조가 됐을걸. 녀석은 살아서 눈도 껌벅이고 코도 찡그리고 하지만, 내 쪽은 살아 있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계로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테니깐 말야. 내 희망은 일찍이 레슬러였지. 내 별명은 몸집이 우람하다고 모두들 꺽새라고 부르지. 내 키는 백팔십에 가슴둘레는 일미터가 넘고 삼두박근이 고릴라 같다구. 균형이 꽉 잡힌 늘씬한 사나이야 얼굴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구수하고 씩씩하게 생겼거든 검고 짙은 일자의 눈썹에 날이 선 콧날에다 입술은 총 두툼하고 눈이 시원스레 커다랗지. 남들이 보두들 저 유명한 검둥이 권투선수인 클레이를 닮았다구 그러더군. 내야 그전엔 뭘 알았었나. 토회지 와서 촌때를 많이 벗고 교제를 넓히는 중에 지금은 정말 유식해졌지. 가만있자, 그렇지만 어딘가 억울한 느낌은 드는군 그래. 내가 뭘 잃어버린 건 없나 하는 의심도 든단 말야.
서리놀음에 밤을 새우던 일, 쥐불 놓던 일, 골짜기에 눈이 덮이면 토끼 사냥하러 다니던 일, 아니 그건 소싯적에 한참 팔자가 좋았던 때의 얘기지. 우리 집안이 폭삭 망해버린 것은 그놈의 낙지 때문이었어. 아버지는 바다의 사나이였다 그 말씀야. 사형제의 셋째인데 위로 둘이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가 먼바다에서 죽고, 끝엣삼촌은 대를 이어야 한다며 운전사가 되어서 아버지가 선대의 가업을 물려받은 셈이었지. 그 양반은 나보다두 억세구 덩치가 커서 모두들 햇말 장사라구 불렀지. 전설 같은 얘기지만 철도 레일을 한손으로 서너 번씩 꼬늘 수가 있었다니까. 좌우간에 그분은 천성으로 타고난 뱃놈이었어. 배를 부린 지 십년 만에 세 척으로 가산을 늘려놓았단 말야. 지금도 그 양반을 생각하면 바닷바람에 생긴 마른버짐이 희끗거리는 거친 얼굴과, 팔뚝에 솟은 동아줄 같은 핏줄, 그리고 컬컬하게 쉰 음성이 떠오르는군. 우리 할아버지는 한술 더 떴다는 거야. 역시 그분도 젊을 적에 바다에서 죽었지. 그 양반은 일찍이 멧돼지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지 아마. 햇말 너머에 묘심사라는 절이 있는데 맡야, 칠성각의 네 기둥 중에서 하나가 새 것이지. 그 빠진 기둥 자리가 우리 할아버
지 기운 자랑의 흔적이라더군. 나는 참으로 힘에 있어서는 역사와 전통이 뚜렷한 가문에서 태어났단 말이야. 아버지가 바다에서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온 게 내가 소학교를 마치던 해였지. 먼 대처의 항구에다 고기를 부리고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났다는군. 일주일을 바다 위에서 혼자 살아 떠돌았대. 구조되자마자 낙지를 안주로 해서 막소주를 한말이나 마셨대니, 그 뱃속이 온전하겠냐 말야. 우리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비틀어진 수수깡 꼬락서니가 되어 누워 지냈었지. 그이는 돌아가기 전날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더니 웃통을 벗더래. 어머니가 말릴 수도 없었다더군. 벌거벗은 아버지는 햇말 동구 앞에 쌓아올린 바람막이 돌담가로 달려갔지. 동네 사람들도 좋은 구경 났다고 하얗게 모였는데, 아버지가 담벼락에 찰싹 붙어서 힘을 쓰기 시작했지. 등에 가죽 같은 근육이 솟고 장딴지는 부풀었으며 얼굴은 푸르딩딩 팔뚝이 덜덜 떨렸어. 돌담이 기우뚱하더니 와르르 무너져내렸지. 아버지는 무너진 돌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어 후련하다!”
그러더래. 그날 밤에 아버지가 죽었지. 가만있었으면 빌빌 그냥저냥 한 십여년 족히 살았을 거라고 모두들 그러데. 한숨에 모조리 뽑아냈으니 기운이 쇄서 어디 살겠느냔 얘기지. 그래 지금도 나는 낙지는 먹지 않지.
집안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산간의 읍내로 이사를 했어. 어머니는 내가 조상의 뒤를 이어 뱃놈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 우리는 막내삼촌의 의견대로 차부 앞에다 술도 파는 밥집을 냈었지. 그때부터 내 몸은 별 운동두 안했는데 부쩍 늘어나서 열여섯에는 이미 훤칠한 장정이 되어버렸어. 내가 슬슬 역기나 아령이라두 하게 된 건 읍내 운동회 때문이었어. 농한기에드 그랬지만 특히 추석을 전후해서는 읍내에서 꼭 씨름판이 벌어지거든. 나는 출전 첫해에 나가서 이십명을 거꾸러뜨리고 단연 무적이 되었다 그 말이야. 이듬해에는 근육도 늘고, 안다리 걸기, 밭다리 후리기, 들어메치기 하는 요령도 눈치로 배워서 군청 주최 대회에까지 진출했지. 시골 운동회란 어느 행사보다도 가장 살맛이 나는 잔치 중의 잔치라구 생각해. 줄다리기도 좋고, 투석도 좋지만 역시 나는 씨름판에 나서는 게 제일 신나더라. 앞에 떠억 버티고 선 놈이 어떻게나 정다워지는지 몰라. 샅바를 잡고 어깨를 비빌 때엔 피차가 상대의 가려운 곳, 아픈 곳, 근지러운 데, 쑤시는 데를 먼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단 말이지. 제 몸이 되어야 하지.
“아라랏차차차……”
하면서 알아챈 상대방의 그곳으로 파고들어가지. 그 고함의 신명나고 소름끼치게 즐거운 울림이 귀에 쟁쟁하구만. 가을 하늘은 차갑도록 푸르고, 곡식은 누렇게 익었는데, 확성기에서는 우리가 늘 사모해 왔던 열아홉 애송이 여선생님께서 치는 풍금소리가 들려오지. 넝넝 너구리의 불알은 바람도 안 부는데 흔들흔들 아버지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느이 아버지 밑천이란다. 그뿐인가…… 지키는 사람 없는 논에서는 참새들도 잔치 덕을 입어서 날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이삭을 배가 터지도록 포식하는 거야. 그런 날에 나는 영광의 장사로 뽑히곤 했어. 장사의 곁에는 콧김 세고 뽈도 늠름한 황소가 들러리를 서거든. 나를 사모하는 처자들의 눈길이며, 패배한 녀석들의 술취한 고함소리, 나를 에워싸고 들판에까지 쫓아오는 동네 꼬마들의 기나긴 행렬. 나는 실로 장가드는 기분이었다니까. 하지만 잔치는 매일 있는 게 아닌지라 보통때 나는 식당에서 국밥을 나르거나 계란을 부치다가 산에 올라가서 운동을 하곤 했었어. 정신통일한다며 바위에 앉아 눈도 감아보구 그랬었지. 요즘에 와서 그 무렵에 내가 우연히 관상을 봤던 일이 자꾸 생각나는군. 어쩐지 맞힌 것 같기두 하구 재
수없는 쪽만 그럴듯이 좋게 꾸민 사기같이도 여겨지네. 비 오는 날인데 어떤 영 감태기가 들어왔어. 물빠진 헌털뱅이 중절모에 돋보기를 쓰고 고의춤에다 황소불알 같은 안경집을 차구 있었어. 순댓국을 말아다가 갖다주는데, 영감은 수저를 들 생각은 않고, 안경 너머로 나를 지그시 노려본단 말이렷다.
“뭘 보슈?”
“허허, 아깝다 아까워.”
“뭐가 아까워요?”
“인물은 난 인물인데 개천에서 썩는 용이로구나.”
“무슨 소리요?”
“일찍이 조실부모하야 타관 객지로 헤맬 몸인데, 워낙에 뼈가 귀한 지라 비단옷을 입고 말을 타니 만인이 앙시하겠도다.”
이렇게 청산유수로 술술 풀어내는데 무슨 도깨비 노랫가락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비단옷을 입고 말을 타는 게 대체 무슨 얘기냔 말요?”
“즉…… 인기인이 된다는 얘기일세.”
“인기인이라뇨?”
“허허, 벽창호로다. 몸을 팔아 만인의 사랑을 받는 직업을 모르는가? 얼굴에 나타나 있구만. 쓰임새가 큰 자는 큰 바닥으로 나가야 하느니.”
“정말 큰 데 가면 출세할 수 있습니까?”
“출세하다뿐인가, 돈을 엄청나게 벌 것일세.”
하여간에 그때 내 기분은 하늘이라두 뚫고 날아오를 듯했어. 나는 진작에 씨름판을 휩쓸었던 기개가 살아 있을 때였거든. 간뗑이가 부었지. 한데 부은 간이 터져버릴 사건이 일어났어. 근근이 밥집이나마 운영해왔던 어머니가 덜컥 돌아가시게 되었어. 오줌을 누지 못하는 병이라는데 온몸, 발가락, 코, 귓밥까지 통통 부어서 죽을 때엔 안면도 알아볼 수가 없었지. 어머니는 내게 당부하더구만.
“너는 아예 배를 탈 생각은 말아라. 죽더라도 뭍에서 죽어야 되느니라.”
“네, 저두 결심이 서 있습니다. 대처에 가서 성공하렵니다.”
“아니다, 네 따위가 대처엘 가면 불량배나 되기 꼭 알맞지. 삼촌을 따라서 운전이나 다녀라.”
산판에서 나오는 재목 실은 트럭이나 항구에서 생선을 떼어오는 고기차가 범고개 열두 굽이를 요리조리 돌아서 우리 읍내에 닿으면, 운전사들은 점심을 먹고 떠나지. 나는 운전사들이 묻혀온 타관의 활기찬 말과 욕지거리와 맵시가 늘 부러웠어. 그들은 국밥을 퍼먹고 나서 내가 한번도 넘어본 적이 없는 까마득한 재를 다시 넘고 넘어 먼 고장으로 떠나곤 했었지.
나는 도청 주최 장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계획도 포기해야만 되었지. 아……지금은 알지. 그런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었는가를. 어머니의 병원비와 장례비용으로 밥집도 들통이 났으니 나두 먹구살아야 할 일거릴 찾아야 했어. 더구나 나의 먹성은 대단했거든. 국밥은 서너 그릇, 막걸리는 두어 말, 계란은 이삼십 개, 불고기는 너덧 근이라야 포식이랄 수가 있었으니까. 뭐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도 곧잘 참아내기는 하지만, 기운을 쓰자면 그 정도는 먹어야 했어. 나는 부두에서 생선을 떼어다 도회지 어물시장으로 넘기는 청부를 맡은 어느 차주 밑에 들어갔지. 물론 막내삼촌의 소개루 말야. 내 언제 운전대에 한번 올라가보기나 했나. 고작 조수였지. 나는 안개가 자욱이 낀 재를 넘어 트럭을 타고서 영광의 추억이 깃들인 읍내를 떠났어. 재를 넘어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지나 읍에서 군으로, 항구에서 도시로 트럭과 함께 떠돌아다녔지. 촌때를 벗는 중에 씨름이란 오래 전부터 한갓 풍류거리로나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요새는 레슬링이라는 게 인기가 있다더군. 오냐, 레슬링…… 그래서 난 레슬러가 되리라 작정했지.
내가 무일푼으로 도회지에 왔을 때, 제일 처음에 물어 물어서 찾아간 곳이 체육관이었어. 무슨 수로 회비를 내고 무슨 수로 먹고 자야할지 모르겠더군. 야 참말로 바퀴 밑에 들어가 모빌을 뒤집어쓰고 멍키하구 씨름하는 건 지겨웠어. 저 가을날의 하늘…… 그런데 레슬러는 까마득하더구만. 어찌어찌 낙원탕으로 굴러들어와 이 추운 겨울을 다행히 벗구 살지. 그런데 때밀이짓도 아까 말했듯이 기계처럼 미칠 노릇이구만. 더구나 이용사 새끼도 말하고 꼬마도 그러는데, 텔레비에 나오는 레슬링을,
“그건 순 사기다, 사기. 미리 짜구 붙는 거다.”
이렇게 말하니 완전히 나는 갈 바를 잃어버렸지. 나는 스팀의 온기가 따뜻한 의자 뒤의 후미진 구석에서 마른 타월을 깔고 누워 생각해보곤 했었어.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울었던 날도 있었단 말야. 잔치의 함성과 자랑스러운 승리와 늠름한 황소를 끌고 가던 지난날의 영광은 모두 욕탕의 비누거품 속에 사라진 것 같았지. 아니 어쩌면 읍내를 떠나던 날, 그런 것들은 안개 속에 없어졌을지두 몰라.
어느날 묘한 손님이 왔지. 알록달록한 홈스펀 저고리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었는데, 푸른빛이 날 정도로 흰 얼굴이며 흐릿한 눈깔이 아주 불쾌했어. 머리가 길었는데 손가락으로 꿈틀꿈틀 쓰다듬어 올리는 모양이 흉물스럽더군. 작달막한 키에 살집이 통통해서 손목과 발목, 무릎의, 관절마다 주름이 잡혀 있었지. 기분 나쁜 자식은 벗은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높다란 목소리로 말하데.
“어이, 때밀이 없나?”
그 녀석 나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깜짝 놀란 듯이 찬찬히 아래위를 훑어보더군.
“체격이 홀륭하군.”
자기 몸을 맡기고 긴 의자에 늘어져 앉은 남자의 살을 만지면서 나는 몹시 꺼림칙했어. 녀석의 보도랍고 새하얀 살결을 만지자 구역질 비슷한 느낌이 솟아오르더란 말야. 옆구리에서 정강이로, 목덜미에서 손끝으로, 어깨에서 허리로, 궁등이에서 발 뒤꿈치로, 죽죽 밀어나가다가 드디어 가슴에서 불두덩으로 내려가는 순서에 이르렀지. 어럽쇼…… 없잖아. 불알이 없더라 그 말야. 터진 풍선 같은 샅의 주름살이랑 손가락 한개만큼의 상처 자리가 있더구만. 나는 생김새가 그렇기도 하겠다고 여기면서, 분주하게 허벅지에서 장딴지로 밀고 내려가는 중인데 귓전에서 손님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어.
“자네 몇 살인가?"
“스물이오.”
나는 별놈 다 보겠다고 생각하며 영 내키지 않는 손길로 그치 몸에 비누질을 시작했지. 손님이 불쑥 한단 소리가,
“직업 한번 바꿔볼 생각 없나?”
“……?”
“그런 몸 가지고 탕에서 썩 기는 좀 안됐는걸.”
“좋은 일거리가 있나요?”
“있지.”
나는 녀석의 겨드랑이에 비누질을 했어. 예상대로 그 녀석이 기묘한 몸짓으로 흉하게 웃더군.
“낄낄, 고만 고만, 낄낄낄.”
“선생은 뭐하시는 분인데요?”
“감독이지.”
나는 얼결에 비누를 발밑에 떨어뜨렸어. 비누가 미끈덕하더니 배수로를 타고 흘러내려갔어. 나는 가슴이 뛰는 걸 꾹 참았지.
“뭐 심부름시킬 사람이라도 필요하신가요?”
“아냐, 내가 찾는 건, 배우라구.”
“배우……”
“그렇지, 영화배우.”
나는 이번에는 얼마나 놀랐던지 물바가지를 떨어뜨렸지.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따루마 감독이었어. 그분께서는 내게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주고 꼭 찾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지.
옛날에, 아주 옛날에 일봉이라는 천하 장사가 있었는데, 한때는 목욕탕 시다바리 꺽새였으나, 이제는 배우가 되었노라 하고 나는 예언적으루다 중얼거려보았어. 인생이 희비극이란 말도 있다지만, 내가 맡는 역은 모두 희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었어. 나는 앞날의 희망에 가득 차서 낙원탕을 사직하고 그 키 작고 통통한 손님께서 가르쳐준 곳을 찾아나섰지. 법석대는 시장의 한가운데서 ‘요지경’ 카메라 상점을 겨우 찾아냈지.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니 고물 사진기 몇 대와 내가 보기에도 이상스런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 놓였더구만. 사람의 궁둥이 부분만 잔뜩 크게 박아놨는데 살갗에 소름이 돋은 것이며 땀구멍이며 그 위에 묻은 물방울들이 꽉 찼더란 말야. 원 세상에 할 짓 없어 궁둥이를 기념 삼는 녀석들도 있는 모양이라 했지. 따루마씨를 찾는다고 그랬더니, 아이 녀석이 내 허우대를 쓱싹 훑어보고는 이층으로 데리고 올라가데. 좁은 복도 끝에 문이 보였는데 창문에 검은 칠이 되어 있더군. 아, 요기가 사진관인가보다 했지. 아이가 문을 두드리며 누가 왔다고 말했어. 한참 있다가 따루마 선생이 푸석푸석한 얼굴을 찡구리고 내다보더군. 그치가 볼때기를 주욱 찢었지.
“아하, 우리 주연께서 오셨구만.”
자식이 아주 내 어깨를 두드리고 안으로 손을 이끌고 들어가데. 나는 무슨 꿍심이 있는가 싶어 약간은 겁을 먹고 어둠속으로 들어갔지. 들어서자마자 따루마는 쇠를 채우더군. 베니다로 세운 간막이가 희미하게 보였어. 창문이란 전혀 없었지. 우리는 헝겊이 가려진 통로를 지난 거 같았어. 널찍한 방구석에 붉은 등이 하나 켜져 있었지.
“어이, 불을 켜라구.”
불이 켜졌지. 여자가 있었어. 침대 위에서 여자가 속살을 허옇게 드러내놓고 비치는 잠옷 바람으로 앉았더군. 언젠가 항구의 작부집에서 봤던 적이 있지만, 이건 마음의 준비도 없었고 더구나 여자가 여우처럼 예쁘게 생겼더란 말야. 그 여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리를 비스듬히 꼬고 앉아서 내 쪽을 멍하니 바라봤어. 커다란 방안에 침대 하나, 의자가 두 개 그리고 바닥에는 두툼한 스펀지 자리 위에다 하얀 담요를 깔았더군. 전구가 여러 개 달린 막대기가 곳곳에 서 있고, 은종이를 말아서 붙인 판대기가 벽에 돌려가며 세워져 있더구만.
“좋은 콤비가 될 거야. 둘이 인사하라구.”
“애자예요.”
여자가 재빨리 말하더군. 애자…… 여러 군데서 많이 들은 것 같은 이름이었지. 나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까지 하면서 일봉이라구 말했는데, 두 사람 모두 잘 들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더군.
“여기가 영화 만드는 곳인가요?”
“그렇지.”
“다른 배우는 없나요?”
“이 사람하구 자네하구…… 있구만.”
“저는 아무것두 모르는데요.”
두 사람이 동시에 낄낄 해해 웃었지. 내가 모를 소리로 연방 어려운 구라를 풀기 시작했어. 좌우지간에 인간이란 것이 즉 인간이다, 라는 둥 누구나 부끄러운 짓은 안 보는 곳에서는 모두 하고 있다거나, 또는 야술이란(따루마가 제일 많이 지껄인 발이다) 바로 솔직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하며…… 어쩌구저쩌구. 뭔지 알아듣지 못할 서양말도 많이 나왔지. 여자가 하품을 했어. 귀찮다는 듯이 고개와 팔을 함께 젓고는,
“일봉씨 연애해봤어요?”
불쑥 뚱딴지같이 내게 물었어. 나는 머쓱해졌다가 실실 웃음을 내보였어. 애자란 년이 또 그러데.
“여자하구 같이 자봤느냐구요.”
이런 니미랄, 나를 뭘루 보는 거야. 나두 왕년 조수 시절에 일찍이 호구 출입을 해봤단 말이다. 따루마가 시계를 자꾸 보기 시작하자, 여자는 벌써 옷을 벗고 있었고 나는 자꾸만 외면하려고 애썼지. 발가벗은 애자를 보았을 때, 나는 뜨거운 물을 삼킨 때처럼 식도가 아팠어. 그래서 침을 꿀꺽꿀꺽 삼키기만 했었지.
그렇다. 배우라면 명배우였지. 애자는 훌륭했어. 매섭게 차가운 여자였어. 십오분짜리를 찍기 위해서 두 시간 동안이나 견디면서 얼굴 한번 찌푸리는 적이 없었지. 언제나 표정은 같았어. 자, 보아라. 나는 살아 있다. 살기 위해서 당당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엔 뒤로, 옆으로, 팔을 좀더 세게 잡아…… 껴안아 좀더.”
애자는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해물을 사냥하던 처녀라고 그랬지. 그래서인지 그애의 살은 언제나 차가웠어. 그리고 섬뜩함과 매끄러움이 한결같았어. 백열등과 조명판의 새하얀 빛이 우리 두 사람의 몸 위에 쏟아지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게 아니라 불빛을 만지고 있는 듯했지. 인적 없는 숲속에 가서 야외 촬영도 했었는데, 목욕하는 장면, 또는 햇빛에다 물방울 돋은 몸을 드러냈을 때에 애자는 해녀로 되돌아간 듯했지. 나는 어느 결에 다른 사람의 눈초리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어. 그 소리는 자르르 돌아가는 팔밀리 영사기의 자동셔터 소리처럼 언제나 내 등뒤이거나 옆구리 또는 밑에서 들려왔어. 주점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머리 위에서, 시장의 혼잡 가운데를 걸을 때 앞의 골목 모퉁이에서, 버스를 탔을 때 내 목덜미 바로 뒤에서, 그 눈초리 소리가 들렸지. 상가 꼭대기의 자취방에서 비어 있는 고가도로 위를 걸어가는 청소부의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오는 새벽에 깨어났을 때에도, 그 다른 사람의 눈초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 이었어. 따루마는 말했어.
“나무토막 같구만. 최소한 내 눈에 그림이 좋아야 손님들이 많이 찾지. 이건 돌멩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말야, 사람이야. 아니 두 남녀란 말야. 비록 관중은 적지만 최고급의 손님들이야. 거기선 따루마의 작품이라면 적어두 신용을 한다구. 그뿐 아냐. 외국 손님두 있어. 진짜를 보여줘얄 거 아냐. 뭐랄까 정서가 있구, 아름답구, 추한 느낌이 가지 않도록 말이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에는 우리는 따루마의 말대로 호흡이 잘 맞았어. 주문이 많이 밀렸기 때문에 영화 다섯 편과 사진 백여 장을 찍었지. 지배인 녀석이 필름을 가지러 오기 전에 우리는 옷을 두툼히 입고 앉아서 영화 감상을 했어. 지루하더군.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장면들이었지. 부자들이 훌륭한 음식과 좋은 술을 먹고 마시며 고작 저런 따위에 넋을 잃는 게 이해가 안 가데. 따루마는 우리 외에도 제작시간이 다른 팀을 급수에 따라 두어 팀 더 갖고 있는 눈치였어. 애자와 내 팀에 따루마는 신경도 제일 많이 썼고, 보수도 두둑이 주었지. 다른 팀에서는 ‘문화’ 일이 아니고 ’헬리콥터’ 인 모양이었어. 아마 싸구려 월급쟁이들이 끼리끼리 돈을 걷어서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관람하는 모양이데. 나두 몇번 ‘나필’ 애들이 ‘시비’를 붙는 경우를 겪었지.
“앗씨, 그림 보세요.”
또는……
“단체 할인요. 세 분만 더 모십니다.”
나는 어느 틈엔가 애자에게 정이 들어 있었지. 그 애의 손만 잡아도 나는 뜨거워졌어. 눈만 마주쳐도, 목소리만 들어도, 조명 등 아래에서 더듬는 시늉을 할 때보다 더욱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더군. 촬영이 없는 날은 우리는 서로 코빼기도 보기가 힘들었지. 애자는 암실의 불빛 속에서만 만날 수가 있었어. 저 환한 대낮의 거리에서 애자는 어떤 여자일.: 나는 가끔 문간까지 뒤쫓아나가 얌전하게 옷으로 감싸고 사람들의 인파 속에 사라져가는 애자의 뒷모습을 보곤 했었지. 애자가 바닷 속에서 솟아오를 때, 그 손에 펄떡이는 사냥감을 높이 쳐들며 햇빛 쪽으로 얼굴을 향한 신선한 모습을 나는 실감나게 그려보려고 애썼지. 그렇지만 내가 생선차를 탔을 때처럼 그 애가 연락선을 타는 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어. 우리는 그것을 예전에 버리고 말았으니까 말야. 언젠가 요정에서 필름을 가지러 온 단골이 내게 묵상발이 될 뻔했었어. 녀석은 화면으로 알몸을 익힌 여배우에게 대수롭잖게 상소리를 붙였거든. 며칠 뒤에 애자가 말했지.
“내 방 도배를 할려구 그러는데 좀 도와줄래요?”
우리는 ‘요지경’ 을 빠져나가 버스를 탔지. 교외로 변두리로 한없이 달리더군. 철로 연변에 그 애가 혼자 사는 문간방이 있었어. 우리는 의당 그래야 했던 것처럼 시장에 가서 솥이며 냄비며 식기를 샀지. 나는 비닐백에 내의 몇 벌을 꾸려가지고 애자의 방으로 합류했어. 우리는 우리의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밤을 지켜내기 위해서 배우 일을 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이었지. 따라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서로의 살을 남의 눈초리로부터 빼앗아올 수가 있다고 믿었거든. 깨물면 내 살이 아프고, 쓰다듬으면 네 살이 뜨거워지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살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진심은 또 어떠했는지. 그러나 우리는 마음마저 빼앗아올 수는 없었지. 세상은 우리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질 않았지.
애자는 애기를 가졌어. 바다처럼 유순하고 산맥처럼 굳건할 애기를 가졌지. 우리는 영생환이란 수상스런 보약을 생산해내는 약품 행상단체에 끼여들 수가 있었지. 차력을 조금 배웠다는 태산거사라는 사나이와 내가 쌍이 되어, 맥주병을 주먹으로 깨뜨리거나 몸을 자해하면서 장터의 손님들을 모았어. 애자는 천으로 아랫배를 감고 나가서 흘러간 노래들을 몇 곡씩 불렀어. 어느 비 오는 날 논두렁에 처박힌 행상 삼륜차 안에서 애자는 유산을 했지. 나는 애자를 업고 부근 지방 도시의 시립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어. 애자가 피를 많이 쏟아냈어. 나는 침대에 눕혀진 그 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울었지. 애자가 말했지 .
“미안해요.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그렇지만 고생스러워서 이젠 같이 못 살겠군요.”
“우리 따루마를 찾아가보자구.”
애자가 고개를 흔들데.
“돈 많이 벌어서 다시 만나요.”
우리는 이듬해 같은 날, 처음 살림을 차렸던 그 철도 연변의 동네 입구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 나는 지금도 내가 병원문을 닫고 나올 때, 내 등 뒤에서 텅! 하고 들리던 적막한 울림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 ˙
꺽새 일봉이는 자기가 저 한없이 넓고 넓은 욕탕 안을 벗어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 살찐 자의 더러운 넓적다리에 고개를 파묻고 게걸스럽게 핥고 있다는 것도. 자아 때를 밀어라. 거길 한손으로 치우고 쓱싹, 거길 비켜서 쓱싹, 거길 들어올려서 쓱싹, 거길 감싸고 쓱싹, 쓱싹 싹싹싹. 두껍고 더럽고 냄새나는 때는 꾸역꾸역 밀려서 하수구를 타고 넘쳐흘러 길을 뒤덮고 고가도로를 깔아뭉개고 술집과 빌딩의 창문마다 빼곡 들어차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입속마다 꾸역꾸역 넘쳐오르고 관청과 방송국과 신문사에도 겹겹으로 쌓이면서 흘러 학교에도 넘치고 책에도 공책에도 아낙네 가랑이에도 어린애 눈구멍에도 부부의 이부자리에도 갓난애 재롱에도 그러고는 이 꺽새 일봉이의 숨결마다 그것은 넘쳐 흘러나오고 있지 않느냐.
좋았어. 내 오물의 근원이 되어 한땡 잡고야 말리! 기회만 오너라. 우리 조상님 처럼 후련하게 해치울 테다.
“에 시끄럽고 말 많고 골치 아프고 근심 걱정 불안 많은 세상살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금번 명랑당 출판사에서 최근에 나온 단돈 오십원짜리 만담집을 여러분 앞에 소개합니다.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도 축복을 받으리라고 한 말이 성경 말씀에 나와 있다고 본원은 확증할 자신이 없사오나, 여러분께서는 이의없이 이 말에 찬성하실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편집된 이 책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배꼽이 달아날 이야기, 둘이 보며 웃다 웃다가 배꼽이 달아나 서로 빠진 배꼽을 바꿔 차게 되는 포복절도할 이야기인
데……”
버스에서 이런 시시껍절한 구랏발을 풀어놓으면서, 나는 도회지 생활을 다시 시작했어.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엄청난 기사를 보게 되었어. 구인란에 비슷비슷하게 몇 줄씩이나 실린 기사 내용은 구혼광고 같지도 않은 아리송한 광고문이더라 그 말야. 칠천 대 팔천 대 자가용은 재산을, 삼십이세 삼십오세 삼십구세는 젊음을, 고독녀 무자식 독신은 홀몸이란 것을, 동생 오빠 애인 비밀교제 무조건 엔조이는 남자에 주렸음을, 각각 내세우고 있는 게 분명했거든. 나는 광고에 나온 전화번호에 따라 다이얼을 돌렸어. 어떤 곳은 소개비 사천원을 미리 내라고 그랬고, 또 어떤 데서는 우선 면담을 하자고 그러더군. 나는 면담 쪽을 택했지. 닳구 닳은 내가 보통 사기에 넘어가겠나. 안심 푹 놓구 약속한 다방으루 나갔어. 흰색 구슬백을 다탁 가운데 보란 듯이 놓고 있는 여자가 있더군. 전화에서 시킨 대로 말을 걸었지.
“오마담입니까.”
“네, 부인하구 약속하셨죠?”
그 여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뒤쪽을 살펴보고 나서, 마주앉은 나를 같은 시선으로 뜯어보더군.
“우리는 보통 상담소와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절대루 중계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신체 건강하고, 용모 단정하며, 성격이 온순한 젊은 남자를 인원 제한해서 모집하는 중입니다. 정원이 모이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다시 모집하지 않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이곳 메모함에다 명함판 사진 한 장을 푸른색 봉투에 넣어서 갖다두세요. 그리구 주소를 좀 적어주시구요. 이제 댁으로 우편물이 가게될 텐데요. 한번이라도 이행을 안 하실 경우에는 해약하는 것으루 간주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씩이 될 거예요. 전화번호는 매일 바뀌니까, 유감스럽지만 전화로는 다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일사천리로 지껄이고 재빨리 차를 마시더군. 나이는 한 마흔댓쯤, 기생퇴물이나 한창 시절의 퇴역 가오마담 같은 인상이었지. 알맞게 살집이 올랐고 눈자위가 푸르죽죽하구 금테안경을 썼더구만. 여자가 싱겁게 까딱하고 나가면서 말하데.
“아주 급히 연락할 일이 있으시면, 충무로 오여사 앞이라 해서 신문광고를 내주세요.”
나는 기다렸지. 과연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저녁에 분홍 봉투가 배달되어 왔어. 타이프로 짤막한 사연이 찍혀 있었어.
수요일 아침 다섯시, 산책 차림으로 삼청공원 입구로 나오십시오. 상대는 빨강색 물통을 들고 빨강색 손수건을 왼쪽 손목에 매고 있습니다. 상대를 보게 되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시늉을 하시오. 뭘 잃었나요. 네, 만년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번 더 확인하려면 오여사 아시죠, 입니다. 또 연락 드립니다.
나는 편지를 읽고 나서, 누구인가가 내 사진을 보고 나를 점찍어냈다는 겉 알 수 있었지. 그리고 새벽부터 약수터에서 만나자는 꼴을 보면 유부녀가 틀림 없더군. 어느 바람둥이 부자의 여편네이거나, 자주 들르지 않는 사장의 첩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겠지. 거의 뜬눈으로 새우고 네 시에 일어나 찬밥을 든든히 비벼 먹고서 공원으로 갔어. 초여름이라서 날씨는 적당했지만, 나뭇잎과 풀잎에서 떨어지고 스치는 이슬 기운이 아주 차디차더군.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숲 사이에 안개가 끼어 있었디. 나는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내 물건을 비비면서 새삼스럽게 건장함을 확인해보았지. 그때, 저쪽 길 아래편에서 빨간 것이 보인 듯했어. 두런두런 몇 사람의 등산객이 약수터 쪽으로 사라지고 그 뒤를 따라 빨간 물통이 똑같은 걸음으로 침착하게 다가오더군. 나는 쑥스러워져서 진땀이 나는 것 같데. 엉거주춤하고서 땅바닥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렸지 .
“뭘 찾으세요?”
나는 빨강 손수건이 매어진 손목을 봤지. 그리고 고개를 쳐들자 깜짝 놀랐어. 여자는 너무나 점잖고 고상해 보이더란 말야. 혈색도 좋았고, 아주 쾌활해서 근심이나 불안의 빛이란 없었고 몸매도 늘씬했어. 나는 자연히 우물쭈물했어. 여자가 고르게 박힌 이를 드러내며 웃고 다시 물었어.
“뭘 잃으셨어요?”
“네…… 저 ……만년필을.”
여자가 이번엔 입을 가렸지. 입 위에 올라간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가운데엔 다이아를 끼우고 있었어. 그 여자와 나는 말없이 외딴 길로 들어섰지. 숲으로 들어가자 아직 이른 시각이라 알맞게 어둠침침 했어.
“오여사하구 잘 아세요?”
“네 아주 친하조.”
산등성이가 두 줄기로 내려오다가 좁아진 오목한 골짜기 가운데에 관목이 밀집해 있는 곳이 있었어. 여자가 말했지.
“저기가 좋으네요.”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어. 이슬이 와르르 떨어졌지. 거미줄도 헝클어졌어. 나는 약간 비감해지고 흥분해서 떨리는 손으로 묵묵히 옷을 벗었지. 여자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누울 자리를 정돈하더군. 내가 어침 이슬에 젖은 몸을 돌리고 여자를 향해 우뚝 서자, 여자는 스스로도 쑥스러움을 감추고 대담해지려는 듯 낮게 속삭이데.
“역시 잘 골랐군!”
“그래요. 댁은 운이 좋아.”
여자가 일어나며 내게 봉투 한장을 건네주었지. 나는 벗은 채로 풀을 깔고 누워서 담배를 피웠어.
“자아, 나는 약수를 받아갖고 갈 테니까 뒤에 와요. 내일 또 만나요.”
빨강 물통은 재빨리 숲 사이로 사라졌어. 나는 봉투를 꾸깃꾸깃 집어넣고 산을 내려왔어. 그 뒤에 빨강 물통과는 두 번 더 만났어. 나는 갈비집과 소금구이 식당을 찾아다니며 쇠고기를 실컷 먹어 조졌어. 내가 거래에 관해 깨끗했던 것은, 이러한 청부를 거의 육 개월이나 맡았다는 사실로써도 증명이 된 셈이지. 당신은 누구냐, 어디 사느냐, 왜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 남편은 있는가, 나에 관해 얘기해주겠다, 또 만날 수 없는가, 등등의 구질구질한 실수를 한번도 저지른 적이 없었거든. 어떤 때엔 첫번의 약속으로 끝나기도 했고, 또 어면 때에는 여자 쪽의 청에 따라서 세 번 이상을 만났고, 오마담 쪽에서 새로 지정해주는 상대와 겹치기로 만나기도 했었어. 벌이가 좋은 때엔 일주일 내내, 아니 하루에 시간 간격을 두고 두세 차례씩 뛰어다녔지. 공원도 갔고, 교외선도 탔고, 지정한 호텔의 예약된 방에도 갔으며, 침대차도 탔어. 그 수많은 여자들 중에 누가 누군지 기억도 나지않지만 이런 말을 들은 적두 있었지.
“어째서 세상이 이렇게 쓸쓸할까. 어째서 사람 사는 재미가 없을까. 댁하구 멋지게 잠을 자도, 아무리 자도 어째서 마음이 이렇게 쓸쓸할까. 외국엘 가도 여행을 해도 패물을 모아도 곗놀이를 해도 그이가 출세를 해도 왜 이렇게 븐물이 흐를까.”
나는 직업에 따라서 화려한 양복을 여러 벌 맞추었고 조용한 주택가의 이층 양옥집에 하숙도 들었고, 은행에다 적금 거래를 텄어. 이제 꼭 일 년만 이런 생활을 한 뒤에 애자를 만나게 되는 거다. 약속한 달이 가까워올수록 안달이 났고, 그곳으로 찾아가서 공연히 어슬렁거리다가 돌아오곤 했었어. 그런데, 내 몸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지. 전혀 맥이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내 그것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어. 이 녀석은 묵묵히 사색에만 잠겨 있게 되었단 말이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차츰 기간이 길어지자 나는 초조해졌어. 적금을 찾아 까먹어가면서 안정을 했지만, 증세는 더욱 나빠졌지. 나는 너무 피로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은 내 몸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던 모양이야. 여자를 보기만 해도 가까이 가기가 싫었지. 왜냐하면 그들은 내 일의 대상이었고, 책무였기 때문이었어.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어. 매일 하숙집에서 낮에도 두꺼운 담요를 치고 잠만 잤어. 언제가 낮이고 밤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지. 나는 치욕감 때문에 상실한 기능을 되돌이켜보고 싶은 원망도 일어나지 않았지. 오히려 그런 증세를 반가이 맞이해서 안주하고 있었다고나 할 수 있을 거야. 마음도, 이제는 몸마저 잃어버린 것이지. 애자가 보고 싶었어. 그엔의 퀭한 눈과 메마른 웃음을 보게되면 나는 다시 예전의 꺽새 일봉이가 될 것 같았어. 손만 잡아보아도…… 약속한 날, 나는 철도 연변 동네의 그 다리 앞으로 나갔어. 아무리 기다려도 그애는 나타나지 않았지. 어디론가 다른 고장으로 흘러가버렸을지도, 누구에겐가 시집을 갔을지도, 다시 술집이나 사창가에 되돌아갔는지, 아니면 연락선을 탔든지. 아니 사실은 그 시립병원의 텅 빈 응급실에서 내가 문을 닫고 뛰쳐나오자마자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애자는 꼭 온다. 저기 누가 오는군. 그러나 모두들 다리를 건너 지나가고 지나올 뿐이었어. 밤이 되었고, 이튿날 새벽이 되었지. 애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느끼자, 나는 거세되어버렸다는 걸 알았고, 내가 노예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나는 몇 근의 살덩이에 지나지 않았어.
내 살이여 되살아나라. 그래서 적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늠름한 황소의 뿔마저도 잡아 꺾고, 가을날의 잔치 속에 자랑스럽게 서보고 싶다. 햇말의 돌담과 묘심사의 새 기둥을 쓸어 만져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성나서 뒤집혀진 바다 가운데 서 있고 싶었지. 그때에 기적이 일어났지. 내 자지가 호랑이 앞발처럼 억세게 일어났어. 그것은 뿌듯하게 바지춤을 비집고 곤두섰어.
나는 다리를 건너서 철둑을 가로지르고 걸어갔지. 동네의 집집마다 불이 하나둘씩 켜지데. 걷기가 불편해진 나는 조금씩 절뚝이면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이 도시를 떠나가기 시작했지.
〔문학사상 1974. 2; 객지, 창작과비평사 1974〕
2016년 7월 1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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