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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의 고난은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 자격증입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며 구원은 그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이 시대에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고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믿으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예수를 믿으면 이 땅의 행복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고 진짜 복음이 전해지면 전도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예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있고 기적을 일으키고 복을 줄 수 있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처럼 발가벗겨져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는 무력하고 나약한 예수에게 이 세상의 현실이 아닌 내세를 부탁하는 것이 우리 성도가 믿어야 하는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는 이 시대의 교회에서 홀대를 받고 냉대를 받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는 그렇게 나약하게 얻어 터지고 맞아서 피나 흘리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예수가 전해지는 곳에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내가 다시 이 땅에 올 때에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했듯이 그 믿음을 보일 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 사단의 나라에서 당신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우상삼아 신처럼 살고 싶어 하는 신이 되려하는 우리의 옛 자아의 자기 부인과 이 사망의 땅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그것이 그 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아담 속에서 하나님처럼을 지향하던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되었고 그리고 우리의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십자가가 선 것이지 우리의 현실을 돕기 위해 십자가가 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5:5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못 박혀 죽었다고 과거시제로 이야기합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정'이라는 것은 인간 관계에서 얻는 만족과 힘을 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욕심,정욕이나 욕망이 십자가에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 그 사실을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배우고 그것을 깨닫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이 필요하고 목사가 필요한 것이지 그 십자가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예배당과 목사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 십자가의 복음은 배우려 하지 않고 전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성경을 접목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사람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는가에만 온 관심이 다 쏠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현실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기쁨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육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로 끌려 내려가는 과정속에서 성도가 반드시 육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고난으로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이 세상이 가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힘의 원리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사람들의 공감도 얻지 못합니다
너만 잘났냐는 비아냥에 왕따를 당합니다
현실에 닥쳐있는 삶의 무게는 직접적으로 나를 아프게 하고 예수님은 하나도 도와 주시지를 않고 방관자처럼 나의 기도를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나 하나만 불행한 것 같고 남들은 다 행복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나?"라고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 외롭고 힘이 듭니다
그렇게 영적 현실과 육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복음으로 올바로 알아 깨닫고 있으면 그 길을 믿음으로 기쁘게 가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아 갖고 있지 못하면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마다 기쁨은 고사하고 믿음을 의심하게 되고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그래서 신자는 반드시 이 십자가의 복음을 무기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복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신앙생활은 천지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삶이 마감되기 전 까지는 육의 몸을 입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을 노력을 해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그 고백을 토해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곤고한 자이며 모두가 다 죄인 중의 괴수들입니다
우리가 육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하는 동안 토해내야 하는 고백이며 우리의 현실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그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이중적 메세지가 함의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운명적으로 신분적으로 선언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를 죽였고 우리의 정과 욕심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결국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실패되어질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형의 우리의 인생 속에서 또한 그 십자가의 현실을 실제화하여 우리에게 경험케 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동성 십자가의 이중성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역사 속에서는 이천 년 전에 골고다 위에 한번 섰지만 그 십자가는 창세전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영원 속에 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린 양이 창세 전에 알리신 바 되었다"라고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그 창세 전에 알린 바 되었다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지고 준비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영원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는 그곳에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뭘 생각하고 계획
하셨다는 것은 이미 완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영원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통합된 십자가가 서서 이 역사 전체를 아우르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천 년 전에 십자가가 섰지만 그 전에 살았던 아담,셋,노아,등이 전부 십자가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역사 속에 한 번 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원속에서 선 십자가가 온 역사를 아우르면서 우리 인간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면서 십자가의 역활을 해 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지나갔으니까 이제 십자가가 다 이루어 놓은 복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구원의 방법이기 이전에 그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입니다
그 십자가의 삶을 이 땅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원리로 사는 하나님 나라에서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힘든 시련과 고난이 닥쳐올 때 그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하시고 잘 참아 내십시오
그것이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복입니다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는 구원을 받는 순간 바로 그 십자가의 삶으로 끌어 당겨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하나님처럼의 삶을 원하는 내 옛 자아를 내 교만을 내 마귀적 속성을 부수고 들어 오는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그 십자가가 매순간 여러분의 삶에 개입을 해서 죽여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십자가에 의해 살해당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남이 보입니다
그래야 그때 나를 향해 쏟아붓던 관심과 사랑과 점수가 타인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힘으로 안 되니까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가 내 안에 들어 오셔서 안 보이는 것처럼 침묵하는 것처럼 연약하게 연한 순처럼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전혀 도와주지 못하는 존재처럼 나를 끌고 가십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잘 참아 내십시오
예수님이 검을 주시러 오셔서 내가 원수 만들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잘라 내시는 것입니다
그때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 십자가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경험하면서 나 때문에 예수가 이런 고통과 수모를 당하셨다는 것을 느끼시고 처음 자리로 내려가십시오
그때 겸손한 순종의 피조물로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출처
https://story.kakao.com/sgd2401/KNPaenWR2ha
그리스도 생명으로 존재하는 삶이 구원받은 산'자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땅애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생명으로 존재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생명으로 이 땅애서 생존하는 방법을 가르치시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때 성도는 비로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삶이란 철저하게 이 땅에서 자기부인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은혜가 더욱 더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 속에 무력하고 불가능한 자기부인의 모습이 폭로될 때 그 삶을 고쳐달라고 그 삶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은혜가 왕 노릇하며 살아가는 그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때 여러분의 인생 속에 닥친 고통과 시련의 삶이 모두 선으로 변해서 은혜의 삶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고 생명으로 존재하는 삶입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예수 그리스도가 안으로 뚫고 들어와 내주 하시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는 자’라고 ‘산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인생은 헛된 인생 죽은 자들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상관없이 사는 모든 인생을 다 죽은 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전혀 카운트가 되지 않는 삶입니다
그래서 허망하고 헛된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심으로 영생에 관심을 두고 계시고 정말 영생을 원하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십자가 복음을 통해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선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삶을 추구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만이 진짜 생명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다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온전한 말씀을 통해 깨닫지 못하면 그 생명의 삶은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다른 이들이 나의 삶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그런 삶, 그것이 성도에게 나타나야 하는 생명의 현상들입니다
그것이 내가 부인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 속에 나타나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삶입니다
생명을 선물하는 삶,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존재하셨으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세상과 우리의 인생은 그 이미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의 뜻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바꿔 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이 갑자기 환난을 만나 고통을 당했을 때 자신의 전과(前過)를 돌이켜 보고 모든 상식을 동원해서 문제의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 안에서 다른 말로 자기 이성과 지혜와 뜻 안에서는 도저히 그 답을 찿을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회의와 혼돈 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력하고 불가능함 속에서 절망하고 있던 욥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욥은 깨달았습니다
욥은 자기 이전에 자기보다 크고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과 그 뜻은 뜻을 ‘내신 자’가 아닌 ‘나온 자’인 인간으로서는 결코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욥은 자신이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죽은 흙의 자리라는 원래의 피조물의 자리를 자각할 수 있었고
그 때 은혜가 그를 덮치자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야 본다는 십자가를 경험하고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산'자의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고백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할 수 있는 산' 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마음이 청결해지셔서 이 고백을 하셔야만 합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내 노력으로 나를 깨끗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피조물의 처음의 자리인 죽은 흙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내 안에 십자가가 서서 내가 판단하고 행할 수 있다며 스스로 왕 노릇하던 옛 사람의 나를 죽인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목베임을 경험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할 수 없습니다
목이 베어진 자들은 이제 더 이상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손과 발을 스스로 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과한 성도는 이제 내 안에 새롭게 주어진 생명에 의해서만 생각하고 판단되어져서 행하게 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그 삶이 자기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삶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이라고 하고 산'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산'자의 삶이 나의 육신의 무력하고 불가능함을 드러나게 만드는 삶이고 그 때 은혜가 더욱 더 빛을 발하며 은혜가 왕 노릇하며 나를 끌고 가는 자기부인의 삶이 펼쳐지게 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내 믿음을 죽이고 새롭게 주어진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아지게 만드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믿어지게 하신 분이 그 믿음으로 살아지게도 하심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삶이 진정 내 안의 새로운 생명으로 존재하는 삶이고 진정한 자기부인의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 산 자의 삶을 여러분은 지금 경험하며 살고 계십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벗어나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말씀의 뜻을 알고 살아갈 때에 생명이 있는 산'자의 삶을 살 수 있고 기장 행복한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말씀의 뜻을 모르고 살아갈 때는 결코 참 행복을 누릴 수도 없고 허망하고 헛된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인 십자가 복음이 사라져 버린 교회는 양의 탈을 쓴 이리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버렸습니다
세상과 구별되고 분리됨이 없는 그저 세상적 가치와 판단으로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뿐 세상 사람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 곳에 대고 회개하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례미야처럼 성전 문 앞에서 십자가 복음이 빠진 여기는 여호와의 전이 아니라고 외치고 세례 요한처럼 율법적으로 잘 무장하여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던 유대인들의 대표 바리새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 앞에서 그 외식하는 종교행위가 심판받고 지옥가는 죄이니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지금 가는 길이 지금 하고 있는 믿음의 행위가 모두 잘 못된 것이니 그 길에서 그 행함에서 돌이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 복음이 사라진 교회 앞에서 목숨 걸고 외쳐야얀 하는 소리입니다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십자가를 통해 옛 하늘과 옛 땅을 벗어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듭나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여러분 안에서 완성이 될 때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여전히 불완전한 육신을 폭로당하는 삶 가운데서도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산'자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입니다
진지하게 지금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십시오
출처
https://story.kakao.com/sgd2401/IZNdBKsw5Ia
죽어야만 들어가는 양의 문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을 척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성전에 문들이 있습니다
그 문은 동쪽에서부터 시작되어 맨 서쪽의 지성소까지 나 있는 문들입니다
그 문으로 제사장과 제물이 들어오는데 서쪽으로 길수록 문이 4척씩 줄어듭니다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가까워질수록 문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9에 보면 양의 문에 대해서 반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로 들어가는 양의 문!
그 성전의 문은 제물인 양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양의 문입니다
그런데 그 제물인 양은 죽으러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육의 죽음은 너무나 힘이 드는 문이라 문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문을 언급하셨을 때 바로 에스겔서의 그 성전의 문을 예로 들어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소 앞에는 문이 없고 거대한 휘장으로 막혀 있습니다
진입 불가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더 이상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도하여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예수를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양의 문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고 하시고 돌아가셨을 때 지성소의 휘장이 반으로 찣어진 것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께서 마지막 휘장이 되셔서 그 휘장까지 찣어 버리신 것입니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러니까 휘장이 찣어지는 사건이 십자가인 것이고 저주받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들어오며 점점 좁은 문으로 통과하게 되는 그 과정이 역사 속에서의 성도의 인생인 것입니다
찣겨진 휘장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가는 길은 나의 육적 자아가 점점 해체되고 부인되는 길이기에 좁은 문인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을 죽음으로 통과하다가 결국 만나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성도의 삶에 영문 밖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영문 밖은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에 의해 살해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향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은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의 밖으로 나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불러 내시는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요10:1~5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지 아니하는 자는 절도요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 하느니라
세상은 평화와 안식에 이르는 문을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에서 찿습니다
그러나 하늘 백성이 하늘에 이르는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향하여 이 문으로 들어오라고 외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세상 쪽에서 보면 성도가 예수라는 문을 통하여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고 묵시 쪽에서 보면 성도가 세상 쪽에서 십자가라는 문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양의 문으로 양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불러 모으시는데 양의 이름을 부르신다고 하십니다
이미 부를 이름이 있다는 것은 목자가 벌써 자기가 불러낼 양들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고 이름까지 붙여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작위로 아무나 불러 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름 붙여서 이 역사 속에 내려 보낸 자기 양만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말은 또한 목자가 불러 내는 양들의 역사 속 이름은 목자에 의해 삭제 당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은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역사속 아담들은 자신에게 스스로 근사한 이름을 붙이려고 애쓰지만 성도는 그 역사속 이름을 하나님에 의해 삭제 당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다른 이름을 받습니다
계14:1 ,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 만 사천(교회)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완성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삭제당하고 그리스도인 즉 메시아이신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창조된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의 뜻이 아닌 예수의 뜻에 의해 움직여지는 하늘 신부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역사속에서 세상의 음성을 듣지 않고 어린양의 음성 즉 말씀을 좇아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고 좁은 문으로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백성들의 존재 양식이며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삶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이 세상 속 삶은 환난 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 땅에 내려 보내신 하늘의 아들들은 반드시 그 목자의 목소리 즉 진리의 말씀 복음을 알아 듣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예수라는 믿음을 심어 놓은 이들만 현실 속에서 묵시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들만 골라서 아버지 나라로 다시 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들만 알아듣고 그들만 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들을 하나도 잃어 버리지 말고 십자가로 다 끌고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갖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세상 속에 뿌려진 수많은 첫 번째 아담들 사이에서 육과 상관없이 말씀으로 창조된 하늘의 아들들을 구별해 내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창조가 이 역사속에서 펼쳐지게 되면 구별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을 히브리 사람들이 거룩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분리로서의 새 창조의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 1장의 첫 창조 이야기입니다
창조가 일어나는그 창조가 분리의 형식으로 일어납니다
어둠과 빛이 갈라지고 궁창 위와 아래가 갈라지며 물과 물이 갈라집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가면 빛만 가득한 세상과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합된 신랑인 어린 양과 교회라는 신부와 저주의 바다가 다시 있지 않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묵시 속에 다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도만 그것을 주어진 믿음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의 근간은 인간의 자격과 조건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는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어떤 종교의 종교인들도 모두 자기가 섬기는 신을 무서워합니다
그것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은 나의 행위와 업적을 자격과 조건 갖추기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인 것이고 한 발 더 나아가 나의 유익에 착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나의 유익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묶여 있는 이들은 나의 유익과 손해에 민감하기 때문에 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나'를 죽여 버리시는 것이고 그들의 자격과 조건을 삭제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은혜로만 그들을 살려 내시고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두려움이 없고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자들이 진짜 평화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만 안식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에만 복종해야 합니다
그 진리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잣대에 의해서 언제나 변하는 세상의 진리?를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영원히 변치않는 예수라는 진리만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출처 https://story.kakao.com/sgd2401/1FWs96AL4g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