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
최해숙
가을이 되었다. 노란 은행잎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신사가 저만치 앞에 걷고 있다. 눈에 익은 모습이다. 서둘러 몇 발자국 따라가 본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온다. 노신사가 중절모를 쓰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중절모만 보면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된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일을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라 근처 공원을 오가셨다. 때로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손질한 모시옷을 입고, 때로는 훤칠한 키가 더 커 보이는 까만 양복을 입고 지팡이 소리 또닥이며 다니셨다. 계절에 따라 옷은 달라져도 모자는 변함이 없었다. 늘 날렵하게 모양 잡은 중절모를 쓰셨다. 아버지에게 중절모는 꽤나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저 모자처럼 따가운 햇볕을,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멋에만 빠져 있었을 뿐 식구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철모르던 시절 겪은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넌지시 물었다.
너거 작은엄마 이뿌더나?
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아주머니들을 쳐다봤다. 작은집이 한동네에 있고 작은엄마가 예쁜지 안 예쁜지는 당신들도 알 텐데 무슨 소리냐 싶어서였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아주머니들은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사주에 역마살이 있었던지 늘 바깥으로 다니셨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좀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그 치다꺼리를 하느라 더더욱 가족은 뒷전이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일은 물론, 겨울에 모자라는 땔감을 해 나르는 사람도 어머니였다. 그런 지경이니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듣기 민망한 소리까지 나오곤 했다.
고향에서 더 이상 아버지를 바라보고 살 수 없었던 어머니는 막냇동생이 태어나자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고, 농사일 또한 마음을 붙일 수 없었던 아버지도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로 왔다. 어머니가 며칠씩 시골로 장사를 하러 떠나고 나면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보살폈다.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직장을 얻기도 힘들었고, 장사를 해도 끈기가 없어 어머니의 반도 못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건사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없었다. 성정이 호방하고 풍채도 좋아 밖에서는 따르는 이가 많았지만, 가족을 부양할 가장으로서는 낙제생이었다.
예전처럼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지 못한 탓일까. 담장 안에 매여 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반갑잖은 손님이 찾아왔다. 중풍이었다. 서둘러 치료를 한 덕분에 마비되었던 수족은 더디게나마 회복되어 갔다. 하지만 정신은 건강하던 날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 문제며 혼사 문제 등 어느 한 가지도 기댈 언덕이 되지 못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일지언정 살아 있을 때 자식 하나라도 짝을 맺어 주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나는 처음으로 선을 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신행에 함께 왔다가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대문을 나섰을 때였다. 보폭이 커서 성큼성큼 멀어져야 할 아버지의 길이 제자리였다. 자식이라고 다정히 손 붙잡고 걸어 보지도 못한 지난날을 더듬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영 자식을 떼 놓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신 걸까? 아버지의 걸음이 자꾸만 늦어졌다.
걸음만 늦어지는 게 아니었다. 긴 팔을 흔들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가에 시린 햇살 같은 애잔함이 묻어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휘청거리며 차에 오르는 아버지는, 팔도가 좁다며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던 힘 있던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을 삼킨 듯 목이 화끈거렸다.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는 원망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너무 오래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보고 살았던 탓인지,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까지도 속속들이 애틋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거라던 친구의 말도 귀담아들리지 않았다. 무겁기만 한 어머니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뿐, 내게는 가슴에 남을 아버지와의 변변한 추억 한 자락 없었다. 그저 머리 위에 가체를 얹은 듯 무거운 모자의 무게를 견뎌 왔을 뿐이었다. 앞으로만 내닫는 햇살처럼 굴곡지지 않은 삶도 있지만 돌 틈을 돌다 땅속에 스미는 삶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머리 위의 가체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그것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손에 잡힐 듯 내려앉은 하늘 탓일까. 중절모를 쓰고 가는 노신사의 뒷모습 때문에 눈앞이 흐려진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푸른 잎에 단풍이 들 듯 철없던 마음도 붉게 물이 든다. 가슴 뿌듯한 추억 한 자락 만들어주지 않았어도, 물려준 재물이 없어도, 영육을 나누어 준 아버지는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 내 마음의 고향임을 저 중절모가 깨우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