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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첫사랑은 좀 늦으막히 대학 3년 때 우연히 ㅎㅎㅎ
기대하시라'
다음 주 병원 다녀와서 발켜 드리게스 ㅎㅎㅎ
누구나 첫사랑을 경험한다.
이루어지면 다행? 이지만
대부분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내 첫사랑은 우연히 다가왔다.
대학 3년 어느 주일
난 지방(대전)출신이기에
숙소에서 생활했고 그 날은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에
문병가려고 일찍 길을 나서는 길이었다.
숙소는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했고
난 늘 여학생이 즐비해 있는 곳에 살고는 있었지만
숫기가 여간해 여자가 말을 걸어오면
머리가 하얗게 돼버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버스정거장으로 향해 가는데
뒤에서 누가
“저기요”
분명 날 부르는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女子목소리
거리엔 나 혼자였으니‘당첨’은 나
로또에 당첨된 만큼 떨렸을까
난 뒤돌아보았고
거기엔 세 명의 여학생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 심장은 사정없이 탭댄스를 치고 있었다.
그녀들은 다짜고짜
“민우씨 좀” 그랬다.
그들 중 친구‘민우’라는 녀석에게 볼 일?이...
다행...
난‘민우 어제 외박하고 지금 없다’고 전했다.
---여기서 잠시---
이민우
당시 재미교포로 국적이 미국 놈인 동갑네기 친구
툭함 외박하던 한국운동세계를 무시하던 괴짜 녀석
우리는 그를 몽키라 불렀다.
현재 미국LA에 두 아들과 살며 아내와는
2001년 내가 유학시절 교통사고로 사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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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무슨 신호를 잠시 보내더니
내게 작업을 걸어왔다.
난 순식간에 꿩 대신‘닭’이 되었다.
에구에구
그 중 한명이 어딜 가냐 물었고
난 친구 문병가고 있다고
그랬더니
가지 말라며 내 주위를 도둑 잡듯 에워싸는 듯했다.
무섭고 당황하는 내 심정을 눈치라도 쳇 냥
키득댔다.
머꼬이게!!!
그 세 마녀들은 날 도마에 올려놓고
지들 맘대로 지지고 볶을 냥
신난 표정
난 날 잡슈하는 식으로 꼬리 팍 내린지 오래
신나는 일인지 아님 유괴 당하는 중인지
당시 어리벙벙한 채로 난 그들이 시키는 주문에
순종하는 듯 따랐다.
그 세 마녀들의 주문은 이랬다.
1. 문병가지 말 것
2. 아픈 친구에게 전화해서 불러낼 것
3. 자칭 세 미녀와 놀 것 등
머 이런 것들
난 꼭두각시 마냥 순순히 응했다.
왜 그랬냐는 아직도‘미스테리’
아마도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 내가 대학 3년생이 될 때 까정
단 한 번도 여자와 엮기게 될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1년생 때
미팅 한번 나가서
어찌어찌 잘?해서 전화번호도 따냈다.
내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아 예의상 준거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 학생과 어떻게 됐을까...
꺼이꺼이 TT
참으로 안타까운 속 뒤집어지는 현실
당시 운동선수에게 하늘과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그 존잰 바로‘선배’다
발걸음 상쾌하게
루루라라
그러나 태양은 내게 그리 오래 비치질 않았다.
숙수로 돌아오자마자 2년 선배(현모프로팀코치)가
“승일아 미팅녀 전화번호 가져와라”는 거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첫 번째 여자를 그렇게 스틸 당했다.
두 번째 여친이 될 뻔 한 여고 3년생 스토리
나와 1년 차이
어느 날 야간훈련 때 단체기합으로 선배에게 몽둥이찜질로
북극펭귄마냥 뒤뚱이며 걷는 날 본 후
알게 됐다는 여고생
하지만 시작도 제대로 하기 전
큰누나의 단 한 마디로
운동에만 전념하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너 고향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불쌍하지도 않냐”며
내가 젤로 약한 부분을 후벼 팠다.
콧구녕 파듯...
아주 심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3학년 1학기 초
늘 솔로로 보내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과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주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동감녀
첫인상은 ok
그러나 이어지는‘자화자찬’
윽!!@@ 내가 젤로 시로하는 인종
그리고 당근 결과는
빠이빠이
이것들이 내 솔로 생활의 에피소드다
이어서
음..
난 세 명이 조종하는 대로
아파 누워 있을 녀석에게 욕먹을 각올 하고
전활 걸었다.
오잉!!
의외의 반응
아포하던 넘
당장 갈 테니
커피숍에 그 세 여자를 붙잡고 있으라는 녀석의 활기찬 목소리
당부의 한 단어
'꼭 잡고 있어!!'란 말만
귓가에 맴돌고.
오~~진정한 제비.여친도 있던 넘이
(지금 다른 여자와 결혼 잘해서 애낳고? 잘 살고 있다.)
아~~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 날~~
이 노래가 유행할 적엔 노랫말 보단
선희누나 가창력에 매료되어 그냥 노래가 좋았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가슴에 팍팍 내리꼬치는 게
음..
그랬다
난 무엇에 홀린 듯
전혀 내 이상형도 매력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우린 그렇게 만났고
뭘 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난 헤어지는 순간
내게 잘 대해준 세 명 중 한 여자에게 고마움 표시로
애프터 신청을 아무 사심 없이 했다.
그 이윤 그녀가 민우를 좋아한다는 그 세 명 중 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고
내 이상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늘 내처 여잔 적어도
내 이상녀와 가까운 녀와 해야 한다라는
쓸때없는 생각을 갖은 놈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그녀에게 아무감정이 생기질 않았고
오히려 민우에게 미안함이 컸다.
당시 민우와 같은 방을 사용하였는데
그녀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그가 생각났기 땜이다.
그러나
내 호기심이 내 양심을 비웃 듯
난 그녀에게 점점 호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늘 그들과 동질감을 이젠 같이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그들이란
대학 동기생들이다.
난 만 19살 적 당연하다면 너무도 당연한
술, 담배, 여자를 멀리했었다.
그러나 서울로 상경?한 난
완전 촌놈이었다.
내가 문명인 같지 않았고
이미 술과 담배는 기본 여잔 옵션이라 할 정도로
많은 경험의 소유자들
난 미개인인 냥
그들의 경험?담이 신기하기만 했고
주말이면 옷치장에 왜 그리도 바쁜지
난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 탓에
기회는 많았지만
미팅 두 번이 내 대학시절 전부였다.
주말이면 바빠지는 친구들이나 선후배와는 달리
난 기껏하여
만화방 또는 오락실에서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곤 했고
외박 허락받는 날이면
시어머니처럼 잔소리 대마왕 큰 누나집 또는 사촌 누나집에서
내 젊음을 불태웠다 어린 조카들과
민우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아
말을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더라.
많은 팬이 있다 이거다
짭뽕같은 넘
그럼 난 단무지?!!
그리고 난 부담 없이 그녀를 만났고
그녀 역시 내가 싫지 않은 듯
날 만났다.
그러던 중 아주 큰 사건??이 터졌다.
내 동공에 마취주사를 놓아버린 여자가 등장한 것이다.
풀려버린 내 시선
한 동안시간이 멈춘 듯 난 정신을 잠시 외출시켜 놓고 내 맘을 빼앗을 그녀(첫사랑이 아닌) 를 넋 나간 듯 한참동안 보고 있던 곳은
버스안
난 1년에 한 번 있는 연세대 농구부 행사인
‘신입생환영회 가족모임’
그 날은 선수 파트너도 같이하는 자리
당연 내 여친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녀는 자격지심이 있었다.(누구처럼)
신학대학에 다니던 그녀는 당시 여학생들의 선망.
인기가 연예인보다 좋은
연대농구팀이 부담스럽던지
내 부탁을 거절해서 나 홀로 행사에 참여got고
내게 뉴페이스로 다가온 그녀는
중학교 때 한참 유행하던 연습장 청순녀처럼 생긴
내 이상여와 너무도 흡사했당.
첫 사랑녀 와는‘사귀자’는 전재를 놓고 시작하지 않던 상태라
난 순간 내 동공을 풀리게 한 그녀만 쳐다보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불끈불끈 생겼는지
환영야유회가 끝나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쿵쾅거리는 내 가슴을 동여매고
난 그녀 옆에 눈치 없이 엉덩이 비비고 앉아 그녀 파트너에게
땔레파스를 마구마구 보냈다.
‘안 일어남두거’
그 후배넘은 우째 알았는지
내게 기회를 주는 냥 자릴 비웠다.
난 그넘 엉덩이가 자리에서 이륙하자마자
신속정확하게 그녀자리 옆으로 다이빙하듯 몸을 날렸다.
10점 만점이다.
농구를 이런 정성과 노력으로 했담 NBA선수가 되께따
난 이후 어찌어찌 이러쿵저러쿵하여
이름과 폰번호를 따냈고
우리의 14년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설레임과 흥분은
내겐 너무 큰 福이였나.
그 짜릿한 경험에 행복함을 만끽하기도 전에
난‘죄의식에 사로잡혀
고민꺼리가 된 나의‘첫 선택녀’
‘양다리’
이게 아닌데
내가...
바람둥이가 된 듯 한 기분이 든 건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난 가끔 대전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러 숙소 밖
이화당이라는 내가 즐겨가던 빵집 앞 공중전화박스
난 부모님 안부전화 후
동갑내기 여친에게 내 하루일과를 야그하고 난 후
난 똑같은 내용을 내 선택녀에 하고 있었던 날
발견했다.
쿵!!
이런...
수화기를 놓은 뒤 한 동안 비좁은 전화박스 안에서 거부정한 자세로 멍하니 서 있었다.
때는 초겨울 난 숙소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전화박스가 있기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지만 추위를 느끼진 못했다.
처음 느낀 감정 전혀 알 수 없는...
그러나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내 감정은 숨길 수 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아마도 이런 저런 이유로 여친 만드는 걸 너무 적날한 표현으로 큰 누나가 반대했나보다.
난 정말로 귀중한 시간적 타이밍 때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졌다.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정말 중요한 시점 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사랑과 운동 어느 것 하나 내편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난 죄책감에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 그리고 난 내 선택녀에게 말했다.
비밀을 고백한다기보다는 그냥 내 사정을 말했다.
속이려 했던 계획적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만은 않았다.
그것 자체가 둘 중 한 사람을 포기해야한다는 의미였기에 누굴 포기해야하는 그 자체가 넘 괴로운 일 이였지만 이런 관계를 계속 진행하는 게 후엔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걸 알기에 희생자가 필요했지만 지금도 생각나지 않은 ‘헤어짐의 기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젤로 후회되는 대목이다.
22년 만에 찾아온 사랑은 내게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어느 날 난 내 선택녀에게 헤어짐의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건냈다.
도저히 말로는 헤어지자고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첫 사랑녀는 내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내 이상녀는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엔 헤어짐의 기준은 누굴 먼저 만났느냐가 ‘헤어짐의 이유’ 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난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역한 달을 보냈다.
운동만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선택녀의 전화번호가 머릿속에 맴돌고 짧지만 그녀와의 추억이 왜 꼭 잠자리에 들면 아련히 떠오르는지, 생전 꿈에 나타나지 않던 그녀가 나타나고 친구들이 내 등을‘툭툭’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내가 멍~~하니 딴 생각을 하는 모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마치 꼬리처럼 날 늘 따라 다녔다 오랜 시간.
그래서 내가 내린 처방은 난 그녀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일 년에 한두 번이 의미는 그녀와 재결합이 아닌 내 마음에 짙게 남아있는 그녀를 조금씩 지우되 내 맘속에 오래 간직하기 위함이다.
싫어서
미워서
헤어진 게 아니라
다소 엉뚱한‘헤어짐의 이유’로 인해 이기적인 내 마음에 치유법.
너무 자주 만나면 내 마음이 흔들릴 것 같고 그냥 잊기엔 후회스러워 할 내 미래 모습이 떠오르고, 난 그녀를 만나는 년래 행사 같은 날이면 맘을 다잡으며 묵뚝뚝함으로 그녈 대했다.
지나친 내 행동으로 나도 그녀도 오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내 마음은 내꺼인 걸.
그러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했다.
이렇게라도 만나면 맘을 진정할 수 있다고 믿었건만.
만남을 갖고 헤어진 후면 예전에 짧았지만 순수했던 만남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스케치북 넘기듯 한 장 한 장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담. 헤어지지나 말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그러나 이런 맘이 들수록 당시 교재 중이던 첫사랑에 대해 미안한 맘이 생겼다.
이유가 선택녀와 헤어진 후‘일 년에 한두 번 만남을 갖자는 결론을 내리자는 결정’을
하기 전 난 호기심으로 시작한 첫 사랑녀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면 선택녀도 자연스레 잊게 될 것이며 죄책감 역시 사라지고 첫 사랑녀에 최소한의 도리라 여겼다.
그러나 잊혀졌을 것이라 믿었던 마음은 일 년에 단번일지라도 그녀를 마면 가슴이 설레곤 했다.
첫사랑 그녀도 내가 그의 첫사랑 이였을까.
아니었다.
그녀의 행동과 습관에서 옛 남자들의 체취?가 느껴졌다.
첫 만남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스킨쉽’ 그런 생소한 분위기에 놀랐던 나
‘촌놈’
그치만 그런 스킨쉽이 싫지만은 않았던 나.
@너는 누구냐@
zzz
그땐 아마도 그런 스킨쉽이 마냥 조아라 했다.
%%꼴에 사내라고 내 몸속 피는 늑대피?가 흐르고 있었다.
동기들 중 자신의 여자와의 성관계를 아주 리얼하게 이야기하던 녀석이 있었는데
그의 모험담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아직 감히 경험하지 못한 영역을 그는 수년 전 이미 마스터했다는 사실에 웃기게도 그가 존경스러웠다.
뭐가 그리도 대단한 지
별게 다 존경스러운지
난 당시만 해도 그 녀석 이야기는 흥미로움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조목조목 빠짐없이 상상까지 해가며 그림을 기억해뒀다.
꼭 어느 누구에게 써 볼 냥
ㅋㅋㅋ
남자란 다 엉큼하지만은 않아용@#$%^_________^
그녀는 그 동안 쌓아온 노하율 나에게 접목시켜 날 가지고 노는 듯 쥐었다 풀었다 내 애간장을 태우는 듯했다.
난 가끔 그녀의 과거 남자들과 그녀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그녈 알아 갈수록 때론 호기심으로 때론 자극적으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그들 관계에서 난 허우적 대곤했다.
그녀와 어디까지 갔을까.
왜 헤어지게 된 이유가 뭔가.
그들도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을 텐데 나처럼.
과거를 알면 뭐할 건가 그냥 과거일 뿐인데.
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었고 또 그렇게 되었다.
그녀는 성격이 밝고 쾌활해 주위에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남자가 오해할 수 있을 만한 스킨쉽.
난 당시 모든 연인들도 그녀정도의‘자연스런 스킨쉽’은 다하는 줄 만 알았다.
말도 잘하고 착하고 노래나 피아노도 잘 치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자동차운전까지 다하는 만능 엔터테이먼트.
난 그런 그녀가 좋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남이 하는걸 보면 도전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난 그래서 27살 때 별로 알려지지 않던 번지점프를 두 번이나 했고 스킹 역시 대중화되기 전인 23살 때 한기범 선배에게 기본자세만 배우고 바로 중급자에 도전하면서 성공하고 수영도 자유형 배우면서 어깨너머 평형과 배영을 한 달 만에 세 가지 종목을 다 익혔다.
이 때가 21살 운전면허도 부모님 몰래 차키를 슬쩍해서 연습해서 25살에 땄다.
남이 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내 도전 목표물은 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다 보니 다 내 자랑이네.
그러나 어쩌랴 다 사실인 걸...
^______+
그런 그녈 좋아했던 난 뒤통수를 맞았다.
그녈 만난 지 2년이 좀 넘은 95년 어느 봄날 내게 헤어지잔 말을 담담하게 하는 그녀.
이유는 남자가 생겼다고, 당시 청소년 드라마PD를 좋아한다고, 우연한 계기로 그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면서 알게 된 게 화근.
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적지 않은 충격과 배신감으로 한동안 멍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던 난
이층 커피숍을 터덜터덜내려오면서
아~~이럴 수도 있구나
정말 잘 해줬는데
때론 가족에겐 소홀히 해가며
챙겨주곤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녀의 가정환경은 엉망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은 이해하지만
부모님 별거와 전도사인 오빠와의 불화는
당시 그녀 집안이 절실한 기독교이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난 남친 으로써 모든 것을
감싸주고 안아주고 이해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애썼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닌‘남자욕심’
그녀는 얼마 전엔 교회 사람과 데이트도 했다는 걸 우연하게 알게 되었고
난 이런저런 이유로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더 웃긴 상황은 몇 년 후에 일어났다.
내가 선수생활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하며 강남에 회사와 집이 생기고
많은 이성 친구들(그녀와 헤어지기 전 나에게 큰 변화가 생기면서 생긴 친구들)과
난 한마디로‘잘 나가는 놈’이었을 때
그녀‘첫사랑’이 찾아왔다.
다시 사귀자고
나랑 헤어진 후 짝사랑한 그 PD가 받아주지 않아
몇 년 동안 솔로로 지냈고
날 잊지 못해 찾아 왔노라고
그러나 난 반기지 않았다.
이윤
내가 싫증나 변심한 그녀
나중에 또 맘에 드는 이성이 나타나면 변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람은 좋으나 남 잘 더 좋아하는 그녈
난 받아줄 수 없었고
당시 내주위에 맘이 오가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첫사랑이야긴 막을 내리고
‘제 2의 인생’이야기가 comming so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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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 고향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불쌍하지도 않냐” 라는 누님 한마디가 승일님 콧구녕 후벼파듯 마음을 찔렀군요. 이글을 보고서도 역시 승일님 진정한 첫사랑인 그분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전 아파서 누워있는사람이ㅎㅎ아픈것도 마다하고 테이트 할 찬스가 생기니까 ""꼭 잡고 있어"란 말이 얼마나 우수운지..ㅎㅎ
어머님,아버님은 가게 일로 바쁘시고 실질적인 보호자는 큰 누님이셨지요.당연히 누님으로써 하실 수 있는 말씀인데 승일씨 표현이 ㅎㅎ 너무 재미있어요.
승일씨 표현은 최고예요.
홍홍홍..... 아침부터 구구절절 대하드라마급 로맨스 스토리 감상했숨다 2탄도 기대하게씀
대하드라마급에 한표 2탄 기대해요
2탄 기대해요. ^_^
한표 추가!!!
첫사랑 조차도 마음껏 하지 못한 승일씨~~~ 2탄 기대해요.
완전 32부작 드라마같으삼!!!ㅎㅎ 진짜 재미있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