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읽는 단편 교리]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오늘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1914년 제정된 이날은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교회공동체의 지지와 관심을 드러냅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시 전 세계 가톨릭교회와 더불어 9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정해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 종교 박해와 기후 위기 등 여러 이유로 고국을 떠나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기억합니다.
2023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제였던 <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자유>가 이주민들이 고국에 머물 수 있는 권리에 주목했다면, 올해의 주제인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걸어가십니다>는 ‘이주하는 이들의 여정에 함께하는 분이 누구이신지’ ‘하느님께서 어떻게 교회와 동행하시는지’를 바라보게 합니다.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아담부터 새로운 소명을 위해 고향과 친지를 떠난 아브라함,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에 하느님께서 보호자로 동행해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성경 속 하느님의 백성이 체험한 역사는 오늘날 이주민의 삶과 맞닿아있으며, 지상 나그네로 살아가는 ‘교회의 순례자적 차원’을 묵상하게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3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의 피난민 숫자를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UN 난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이주민을 3억 명으로 추산합니다. 그중 1억 2천만 명이 난민인데, 전 세계 80명 중 한 사람이 난민인 셈입니다. 폭력과 박해, 기후 위기와 빈곤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에게 더 비참한 사실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인간의 기본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8년 제주에 유입된 예멘 난민들을 향한 냉담한 여론에서도 볼 수 있듯, 문화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선주민과의 갈등,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들을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특정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9) 이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건네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한때 종의 신분, 이방인으로 겪었던 서러움과 아픔을 기억하며 새롭게 만나는 이방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따뜻하게 맞아줄 것을 강조하십니다. 우리 한국인 역시 한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났던 피난민 처지였음을 기억합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파견 노동자, 실향민, 전쟁고아, 피란민 등 우리 세대에 익숙하게 남아있는 이 말들은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이 타향에서 마주했던 추위와 배고픔, 온갖 차별과 무시당함은, 오늘날 우리 곁에 살아가는 이주민과 난민들을 어떻게 환대해야 할지 가르쳐 줍니다. 이주민과 난민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4년 9월 29일(나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의정부주보 8면, 김항수 파스카시오 신부(파주 EXODUS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