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5, 7, 25, 충남, 아산, 송악면, 외암리,
광덕산 주차장에 애마를 쉬게하고,, 강당골 계곡 탐방에 들어갑니다 ~
덥다고요,, 그렇다면 계곡이죠..?
그리하여 찾은 "강당골 계곡"<講堂谷 溪谷>에 들어서니,, 우선 공기 맛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뭐 ~ 유..?
용추폭포 위에서 옥시기 하모니카를 불며,, 독립이라도 한듯 "만세 떼창" 입니다 !!
강당골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계곡 초입의 "용추"<龍秋>라고 하는데,, 비스듬한 폭포 아래의 깊은 "못"<潭>에서 ~
용이 승천했다 하여 붙여졌으며,, 좌,우가 수직 암벽으로 이루어져 폭포 부분이 돌문과 같아 보여 석문용추<石門龍秋>라 불렸다네요 ~
조선 후기 아산 출신의 성리학자 "외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27>이,, 그 상류쪽에 "외암정사" 를 지을 당시도 "용추" 라 했으며 ~
외암정사를 흔히 "강당"<講堂>이라 불러,, 계곡과 마을 이름도 강당에서 비롯 되었다고 합니다 ~
용추 주변 바위에는 한자로 새긴 다양한 "석각" 이 있는데,, 예안 이씨 7명,, 이간의 벗인 "윤혼"<尹焜>의 후손 파평 윤씨 2명 ~
그 밖의 인물 2명이 새겨져 있고,, 예안 이씨 사람들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인물들이 랍니다 ~
"아산 강당골 용추석각"<牙山 講堂谷 龍秋石刻>안내도를 보고,,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면 ~
산고무이,, 동심화양과,, 그 아래 한수추월,, 이 있는데 ~
"산고무이"<山高武夷>는 "산이 높아 무이와 같다" 는 뜻으로,, 이곳 광덕산은 "주희"<주자>가 머물던 "무이산" 과 같고 ~
"동심화양"<洞深華陽>은 "골<谷>이 깊어 화양과 같다" 는 뜻으로,, 강당골은,, 우암 송시열이 머물던 화양동과 같다는것이니 ~
"이간" 이,,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朱子>와 "송시열" 의 학문을 이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
동심화양,, 산고무이,, 아래 새겨진 "한수추월"<寒水秋月>은 "가을 달빛이 한수를 비춘다" 는 뜻으로,, 송시열의 수제자 이자 ~
이간의 스승인 "권상하"<權尙夏>의 호가 "한수재"<寒水齋>이고,, 권상하가 제자 이간에게 내려준 호가 "추월한" 이니 ~
"한수추월" 은,, 이간이 스승 "권상하" 를 밝게 비춘다는 의미로,, 외암 이간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
후손들이 새긴 것으로 보이며,, 아래 "이용헌"<李用憲>은,, 이간의 7대손이고,, 글씨는 20세기 초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 한다네요..?
"이욱렬" <李郁烈>은,, 이간의 후손인듯 하고..?
약간은 허접한 글씨라고 할까? '유기석<柳基錫>은 아류가 아닐까 하는생각..?
"이주열"<李周烈>은,, 이씨 집안 이겠죠..?
"이백선"<李伯善>과 ~
위쪽의 "이용오"<李用五>와,, 아래는 "이용대"<李用大> 그렇다면 형제..?
"윤홍" <尹泓>이구요 ~
정성이 깃든 "윤태희" <尹太熙> 각자입니다 ~
계곡에 발을 담그고,, 뚜꺼비 사냥을 마친후,,?
상류로 올라와 "강당사"<講堂寺>로 가기 위해 용담교<龍潭橋>를 건너갑니다 ~
"관선재"<觀善齋>는 "우암 송시열"<尤闇 宋時烈>의 수제자이자 계승자인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의 제자면서 ~
"강문 팔학사"<江門 八學士>중 한사람인 "외암 이간"<巍巖 李柬>이 지은 집으로,, 벗인 "천서 윤혼"<泉西 尹焜>과 ~
"도학"<道學>을 강론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원<書院>인데,,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자,, 이를 모면하려 ~
인근의 마곡사에서,, 불상 한분을 모셔다 봉안하므로 인해,, 사찰의 시원<始原>이 되었다고 합니다 ~
현재 "정사"<情舍>만이 남아 있어 자손들이 보호 관리하고,, 매년 "제향"<祭享>을 올린다고 하네요 ~
이곳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승려를 두어 불사를 하게 하므로 이것이 "강당사"<講堂寺>라고 하며 ~
"세상을 선 하게 보고 자신을 닦는다" 는 뜻의 "관선재"<觀善齋>는 "권상하" 가 짓고,, 현판은 "추사 김정희" 의 글이라고 합니다 !!
계곡옆 식당에서 유영규 옹이 쏜,, 만찬으로 몸무게를 불린후 1박2일 일정을 마무리 하며,, 귀로에 오릅니다 /
첫댓글 멋쟁이 회장님 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