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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반지를 사용하라 / 에스더 8장 8-17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모르드개의 손에 반지가 끼워졌습니다. 이 반지는 보통 반지가 아닙니다. 왕의 반지입니다. 왕이 이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었다는 것은 모든 국사를 그에게 위임했다는 표시입니다. 이 위치에 앉으면 365명의 참모를(advisers)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굉장한 위치가 모르드개에게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반지를 위임받았다 할지라도 사용할 때는 어느 내용을 쓰든지 왕의 이름을 쓰고, 그리고 왕의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자기 이름으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왕의 허락을 받고 서기관을 시켜 급히 쓴 조서의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각 도에 사는 유대인들은 그날에 한 곳에 모여 생명을 지키라.(11절) 2) 다른 민족이 공격하면 맞서 싸워라. 오는 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과 아내까지도 모두 죽이라. 3) 공격해 오는 사람들의 재산까지 빼앗아도 된다. 4) 그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12월 13일 단 하루뿐이다. 하만이 쓴 조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만이 쓴 조서에는 유대인 남녀노소, 심지어는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조건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쓴 내용을 보면 타민족을 무조건 학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공격하지 않는 사람을 해치거나 빼앗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 날도 유대인을 공격하는 날인 정한 12월 13일 단 하루뿐이라고 했습니다. 단지 공격하여 오는 자들은 그들뿐만 아니라 자식과 아내까지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인한 것 같지만, 그 의도는 철저하게 공격을 막으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의 도장을 왕의 명예를 손상시킬 정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마치고 궁으로부터 나온 모르드개의 모습은 휘황찬란하였습니다. 푸른색과 흰색으로 된 궁중(royal)예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고운 모시로 짠 붉은(purple) 겉옷을 입고 어전에서 나왔습니다. “royal” 이나 “purple”는 임금의 예복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보면 그가 입은 옷은 임금 옷에 버금가는 옷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왕의 조서가 전달되는 곳에선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다른 민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유다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의 됨됨이를 보고 우상 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의 예언이 이뤄진 것입니다.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 되시는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듣고 보았으니” 우리도 너희와 함께 가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포로로 출발한 그의 험난한 생애가 하루아침에 그 나라 제2의 통치자로 변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유대인들은 기뻐했고, 잔치를 벌였습니다.(16-17절) 기뻐했다는 히브리말, “짜할”은 얼마나 기쁜지 고함치며 춤추며 즐거워했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그늘 아래 낙담하며 수치를 당하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을 얻은 것입니다. 어찌 잔치를 베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모르드개가 얻은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날들 동안 하만에게 무시와 멸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뿐 많이 아니라 하만이 만든 처형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죽음 하루 전에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체험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처럼 숨막히는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고난과 죽음을 앞에 놓고도 의연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산 사람입니다. 그가 한 일은 오직 기도였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모르드개가 당한 고난은 자기만 살아나기 위해 당한 고난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당한 고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2장 3절은 자기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주신 말씀이지만, 특별히 주의 일을 하다가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할 일을 만난 이들에게 주신 권고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고난을 이기는 가장 좋은 신앙적인 방법을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은 부활과 같은 것인데, 모르드개가 걸었던 길도 십자가의 길이요 부활의 길입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든 환경 가운데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특별히 주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다면 주께서 십자가로 어떻게 승리하셨는가를 자세히 보십시오. 주께서 어떻게 이기셨는가를 바라보십시오. 반드시 형통의 열쇠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는 주님께 큰 모험을 걸어야 합니다. 이 모험은 자신만을 위한 모험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모함이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모험을 하면 하는 만큼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입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r)는, 내가 누군가를 알려면,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고 나를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고, 여러분 자신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존재로 보이십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고난을 하루아침에 옮기려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지혜로운 자는 하루하루 조금씩 그 고난을 제거해 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을 옮기기까지 합니다. 영광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열매가 아닙니다. 일생을 걸쳐 노력 가운데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그때마다 주시는 축복도 있지만, 가장 큰 영광은 일생을 걸쳐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거야말로 부활 같은 은혜요 형통의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반지의 정체입니다. 이 반지는 왕이 나라를 통치할 때 사용하는 왕의 반지입니다. 모르드개가 이 반지를 받은 것은 일시적인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 반지는 영구히 소유하도록 준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쓰고 언젠가는 다시 왕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반지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도록 준 선물입니다. 왕의 명예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백성들의 평화와 자유,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결코 자기를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마10:1)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능력을 소유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셨다.”(표준새번역) 이처럼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authority)입니다. 즉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권능”이라는 헬라어 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the power to give orders, 마8:9,눅7:8,19:17,20:20)을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jurisdiction,눅23:7)을 복수로는 “공직자”(officials), "당국자“(aithorities,눅12:11;딛3:1)를 의미합니다. 로마서 13장 3절의 ”관원들“(헬라어로 아르콘테스)과 로마서 13장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은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에 능력을 말하는 두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뒤나미스“요 또 하나는 ”엑수시아“입니다. 누가복음 9장 1절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기름 부음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파송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둘째는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 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권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한을 사용하면서 할 때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권능이 우리가 하는 일들에 나타날 것입니다. 봉사하는 곳에 나타날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도 주님이 주신 권세로 할 때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이 권한을 사용합시다. 또 주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대로 실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기도의 권한도 부지런히 사용합시다. 모르드개는 반지를 바로 사용하기 위하여 사용하기 전에 왕에게 묻고 허락을 받았으나, 하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의 반지를 뇌물로 주고 샀습니다.(에3:9) 그리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하만에겐 365명의 참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할 때 누구의 권도도 듣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만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만든 처형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왕의 허락을 받고 왕의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반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만 사용하였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았습니다. 귀신을 내어쫓고 병을 고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권세란 그런 능력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말입니다. 전도할 수 있는 특권과 능력도 받았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특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우리도 먼저 주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기적을 보면 반드시 주님의 명령이 먼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자기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장군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그가 전술에 능해서도 아니고 싸움을 잘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4절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그리고 매 전투시마다 이 약속을 의지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의 기적도 하나님이 먼저 엘리야에게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승리는 그 약속을 믿고 간 데에 있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이루기 전에 먼저 주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권세를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쓰지 말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그처럼 어떤 문제든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도 귀하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우리에게는 가장 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권고도 듣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365명의 참모를 두고도 자기 멋대로 하다 죽은 하만과 같습니다. 하만과 같이 살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으로 개종하였습니다. “유대인을 두려워하여”(17절)라는 구절을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려 깊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두렵기도 하고 존경스러워서 아예 유대인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이뤄낸 일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얼마나 존경스럽게 보였으면 유대인으로 귀화하였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모르드개의 승리는 하나님을 믿고, 바르고 강직하게 산 그의 믿음의 삶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는 물론 나라 안에도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사회가 변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기적이 늘 일어나야 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기적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의 반지를 항상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그 반지를 받고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의 백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가 그 반지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 백성이 다 죽었다면 하나님은 모르드개에게 그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녀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왕(king)이라고 부르십니다. 사탄을 제어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며, 질병을 치유해야 하는 왕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르드개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도 큰 죄입니다. 마지막 날에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권을 부여받으신 여러분, 그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귀신을 제어하고,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십니다. 이제부터 약속과 권세를 받은 자들로 당당하게 삽시다. 100배의 결실을 맺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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