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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절 불암사 원문보기 글쓴이: 素雲
說話 |
이 화두는 『보협인다라니경(寶筴印多羅尼經)』에 나오는 글이다.
"자자(自恣)"라 함은 스스로가 자기의 허물을 진술하고
마음대로 대중들에게 들추게 한다는 뜻이다.
『수경(手經)』에서도
"자기의 허물은 마음대로 다른 이에게 들추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 곳[三處]"이라 함은 한 달은 왕후의 궁전에서,
한 달은 동자들의 학당(學堂)에서, 한달은 음녀(婬女)들의 기방에서 였으니,
이는 곧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다.
이들 세 곳에서 살 때 궁중에서 5백 궁녀를, 학당에서 5백 동자를,
기방에서 5백 음녀를 아뇩보리(阿耨菩提)에서 물러나지 않고
위없는 도에 머무르게 했다고 되어 있다.
'세 곳에서 여름을 지냈다[三處過夏]" 함은
탐욕이 도(道)요,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러하여
이러한 세 가지에 한량없는 불법이 갖추어 있다는 뜻이다.
온 세계가 문수사리여서 탐냄, 성냄, 어리석음 3독이
진실과 성품에 부합되는 문수와 보현 등 큰 사람의 경계이다.
"가섭(迦葉)은 마하가섭이 아니라 세 가섭 중의 하나이다.
어떤 책에는 우바리(優婆離)라 되어 있기도 하다.
"공개하고 내쫒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다[欲白椎擯出而不得]" 함은
큰 사람의 경계를 소승의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가의 도리로는 어떠한가?
가섭이 공개[白椎]하고 쫒아내려 한 것에 대하여 만송(萬松)이 이르기를
"내가 대중들을 관찰해 보니 바다와 같이 맑고 고요한데
오직 문수만이 여름 지내는 법을 깨뜨렸고,
대중들의 질서를 깨뜨렸다.
가섭은 이미 총림의 기강을 맡았는지라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구담까지도 일시에 쫒아내고 다만 가섭만 남겨 두어
방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부처도 치고 조사도 치는 격이라 참사람 앞에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도리이다.
"백천만억 문수가 보였다[乃見百千萬]"고 한 것은
부처도 두고 조사도 두는 경지이니, 납승(衲僧)의 뱃속이 바다같이 너그럽다.
그렇다면 세 곳에서 여름을 지냈다고 하는 세 곳의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황도(皇都)의 제왕궁과 먼지가 자욱한 홍진(紅塵)의 거리와
높은 산봉우리 위이니,
이는 큰 사람의 경계로서 밝음과 어둠이 뒤섞인 곳이다.
"가섭이 망치를 들지 못했다[迦葉椎不能擧]" 한 것에 대해
만송은 말하기를, "이미 참 가풍을 절벽같이 도모했다면
방편으로 불조(佛祖)를 머무르게 하는 것도 무방하다.
듣지 못했는가? 꽃도 상하지 않고 꿀만 얻어낸다 하였느니라."
만송의 이런 말이 가섭에게 티를 더하는 면이 있어
이야기가 두 토막 나거니와,
만일 원오(圓悟)와 천동(天童)의 생각에 준하면
가섭이 이 망치를 내리지 못한 것을 약점[落節:敗因],
또는 담력없는 꼴로 보았으니 이 논리라야 옳다.
무의자(無依子)가 송하기를,
"세 곳에서 안거한 묘길상(妙吉祥)이여/
티끌 수 세계에 금빛 모습 드러냈네/
머리만 있고 꼬리 없는 계봉(雞峰:계족산)의 노두타(老頭陀)여/
공연히 선가들의 한바탕 웃음만 자아냈네"라고 하였으니,
이 게송을 보면 가섭이 망치를 들지 못한 뜻을 알 수 있다.
원오(圓悟)의 송에서
"큰 코끼리[大象]"라 함은 문수의 큰사람 경계를 말하는 것인데,
가섭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으로
"토끼 길[兎徑]에 들지 않는다." 하였으니, 토끼 길은 가섭이다.
"큰 기러기[鴻鵠]"라 함은
가섭이 바른 법령[正令]을 높이 제창하는 것인데
문수가 흉내낼 만한 것이 아니므로
"제비와 참새가 어찌...알랴" 하였으니, 제비와 참새는 문수이다.
"바른 법령을 시행함은 [據令]..."이라 함은 가섭이요,
"과녁을 맞춤은[破的]..."이라 함은 문수이니,
그러한즉 온 세계가 문수인지라 문수 밖에 가섭이 없고,
온 세계가 가섭인지라 가섭 밖에 문수가 없다는 것이다.
해인(海印)의 염은 문수와 가섭의 경계를 증득한 이라야
비로소 안다는 내용이다.
또 상당(又上堂)에서
"대중들에게 청하노니[請大衆]"에서부터 "한 말씀 해 보라[轉語]"까지는 .
이를 줄 아는 사람[解道得地人]이 적절한 말을 찾아냈다고 한들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뜻이다.
고목(枯木)의 상당에서
"가섭 사형은[迦葉師兄]"에서부터
"호랑이 꼬리를 잡을 줄은 몰랐구나[收虎尾]"까지는
바른 법령이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요,
"누군가가 나 향산(香山)에게 묻기를[或有人問香山]"에서부터
"오뚝한 봉우리 위에 있었다[孤峰頂上]"까지는
교화하는 문호에서의 증하고 화함[證化]이다.
"지금[還有]"에서부터 "설욕해 줄 이가 있겠는가?[雪屈自麽]"까지는
금색두타(金色頭陀:가섭)의 설 자리를 굳힘이다.
"하마터라면 지혜 많은 이를 옥에 가두어 둘 뻔했구나.[洎合停囚長智]"
라고 하 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후한(後漢) 원제(元帝) 때 두독(杜篤)의 자는 계치(季雉)인데
죄가 있어 옥에 갇혔다.
때마침 사마(司馬) 벼슬에 있는 오한(吳漢)이 꿈을 꾸니,
고조제(高祖帝)가 모든 유생들을 모아 과거를 뵈는데,
옥중에 있는 두독의 문장이 가장 좋았다.
원제가 이상히 여겨 후한 상을 주고 죄를 면해 주었다."
이 고사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몸 빠져나갈 길은 있다는 말이다.
천동(天童)의 염은 문장에 뜻이 잘 드러나 있다.
장로(長蘆)의 거화(擧話)에서
"주장자를 번쩍 들고[拈起柱杖]...." 라 함은 가섭의 경계요,
"시방 삼세가 모두 이 속에 있다[盡十方三世在這裏]" 함은
문수의 경계이니, 다시 제2가 없다.
그런즉 "모든 곳이 문수사리요, 모든 곳에서 석 달 안거를 했다.
[一切處文殊師利一切處三月安居]"고 한 것이 허물이 없지 않고,
대가섭(大迦葉)도 허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 문서에 조서를 받아 귀양을 보냈을 것이다.[一狀領過]"
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밖의 구절은 다시 한 수 높이는 것인가?
주장자를 들어 세운 경지도 마찬가지다.
원오(圓悟)의 염에서
"종은 치지 아니하면[鐘不擊]"이라 함은
문수와 가섭이 북을 치고 비파를 친다는 것이요,
"가섭은[迦葉]"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있다[坐斷]"까지는
한결같이 구멍 없는 무쇠 망치[無孔鐵槌:쓸모없는 것]라는 뜻이며,
그렇지만 금색두타(金色頭陀)가 실수에 떨어졌으므로,
"놓친 일이 애석하구나."라고 말하였다.
또 소참에서는[又小參] 문수 큰사람의 경계를 나타낸 것이다.
"문수와 가섭을 떠나서는[離却文殊迦葉]..."이라 함은
앞에서 말한 것이 문수와 가섭에 우열(優劣)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니,
우열을 여의는 것은 인(因)이요, 우열이 없는 것은 과(果)이다.
"90일 동안의 공부[九十日功]"라 함은
여전히 문수와 보현의 경계라는 뜻이다.
불안(佛眼)의 소참(小參)에서
"털끝만큼도 볼 수 없게 되리라.[武絲毫可見]" 함은
한 망치 쳐서 바른 법령[正令]을 다시 행했어야 한다는 뜻이요,
"움직이는 것이 조용한 것만 못하다[動不如靜]"라 함은
그 한 망치를 쳤다 해도 역시 요동이니 놓아 버리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수와 가섭은
"저녁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 가을 바다는 끝없는 하늘"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운문(雲門)의 상당에서
"문수가 세 곳에서[文殊三處]"에서부터
"귀신 보는 꼴을 면치 못했다.[見鬼]"까지는
모두 놓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요,
"지공(誌公)은 일 없는 화상은 아니였느니라[誌公不是閑和上]" 함은
이미 일 없는 화상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어지러히 분주한가 함이다.
"모두가 세 번씩 절을 하라.[大家觸禮三拜]" 함은
문수와 가섭이 무슨 허물이 있는가 함이니,
숲에 들어도 풀이 흔들리지 않고 물에 들어도 파도가 일지 않는 경지리라.
밀암(密庵)의 거화에서
"이번 여름에 장산(蔣山)에서[今夏莊山]"부터
"화장에서 해제를 했으니[華藏終夏]"까지는 위에서 말한 바,
한 달은 황도(皇都)에서, 한 달은 먼지 빛 붉은 언덕에서 보냈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문수와 같은가. 다른가?
같아도 무방하고 달라도 무방하다.
"세 곳으로 장소를 옮긴 것은[三處移場]..."이라 함은
세 곳으로 옮겼기 때문에 시비가 있다는 뜻이다.
"완악한 마음은[頑心]..."이라 함은 철저히 완악하고 어리석다는 뜻이고,
"오랑캐의 말[胡言]..."라고 함은
호(胡)의 땅에서 다니기도 하고
한(漢)의 땅에서 달리기도 한다는 말에서 온 것이니,
호와 한도 깨우치고 감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요,
"무쇠 이마와[鐵額]..."라고 함은
비록 무쇠 이마, 구리 머리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선문염송. 염송설화((禪門拈頌 拈頌說話) 중
제2권 대각세존 석가문불(大覺世尊 釋迦文佛)
33. 자자(自恣) 說話 p214~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