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엘렌 G. 화잇에게 “구원의 확신”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해서 얻는 확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확신에 훨씬 가깝습니다.
동시에 화잇은 “한 번 구원받았으니 이후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값싼 확신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붙잡는 것이 핵심입니다.
1.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화잇은 구원하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The believer commits his soul and body to God, and with assurance may say, Christ is able to keep 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믿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과 몸을 하나님께 맡기며,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내가 맡긴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Manuscript 6, 1889, Mind, Character, and Personality, vol. 2, p. 531. (EGW Writings)
여기서 핵심은 “내가 끝까지 잘 버틸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키실 수 있는가?”
입니다.
화잇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은 “예수께 나 자신을 맡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화잇은 믿음을 단순한 지적 동의로 보지 않습니다.
“Saving faith … is the act of the soul by which the whole man is given over to the guardianship and control of Jesus Christ.”
즉 구원하는 믿음은 사람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와 통제에 맡기는 행위입니다. (EGW Writings)
그래서 구원의 확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착하다.” ❌
“나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
“나는 예수님께 나 자신을 맡겼고, 예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신다.” ⭕
이것이 화잇이 말하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3. “나는 죄인이다”라고 인정하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복음의 아름다움입니다.
화잇은 죄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I am a lost sinner; but Christ came to seek and to save that which was lost.”
“나는 잃어버린 죄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I need not remain a moment longer unsaved.”
“나는 더 이상 한 순간도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머물 필요가 없다.”
— Selected Messages, book 1, p. 392. (EGW Writings)
이것은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아주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죄를 깨닫는 것과 구원의 확신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이다”
라는 고백 다음에
“그러므로 나는 예수가 필요하다.”
가 나오고,
그 다음에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신다.”
라는 확신이 옵니다.
4. 확신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데서 옵니다
앞에서 우리가 나눈 주제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면서, 믿는 사람에게는
“the assurance that the soul is washed in the blood of Christ and clothed with His righteousness”
즉
“그 영혼이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다는 확신”
이 있다고 말합니다. (EGW Writings)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내가 의롭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입었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 차이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5.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다는 확신
화잇은 Manuscript Releases에서 아주 아름답게 말합니다.
“When any soul approaches God as his Father, heaven becomes his home.”
“어떤 영혼이 하나님께 자신의 아버지로 나아갈 때, 하늘은 그의 집이 된다.”
그리고 이어서:
“Only through Christ is there hope for the soul's salvation.”
“영혼의 구원에 대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있다.”
또한:
“Through faith in the righteousness of Christ, man holds the hand of angels.”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사람은 천사들의 손을 붙든다.”
— Manuscript Releases, vol. 6, p. 31. (EGW Writings)
얼마나 따뜻한 표현입니까.
구원의 확신은
“나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큼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받아 주셨다.”
라는 확신입니다.
6. 그러면 “나는 오늘 구원받았는가?”라고 물을 때 화잇은 무엇이라 하는가?
아주 직접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The perishing sinner may say … ‘I accept the forgiveness He has promised.’”
죄인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지금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GW Writings)
즉 구원은 단지
“언젠가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다.”
라는 미래형 소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현재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구원 경험에 관한 진술도 같은 방향으로 말합니다.
“Abiding in Him … we have the assurance of salvation now and in the judgment.”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우리는 현재에도 그리고 심판에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 (EGW Writings)
7. 그렇다면 조사심판은 구원의 확신을 없애는가?
화잇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사심판의 복음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의를 더욱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연결하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have the fullest assurance that they have been born anew, from above”
“자신이 위로부터 새로 태어났다는 가장 완전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that their guilt has been canceled”
“자신의 죄책이 제거되었다는 것”
을 알아야 하며,
“are thus ready to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EGW Writings)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재림신앙입니다.
심판을 두려워해서 확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심판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는 것입니다.
8. 그러나 화잇은 “한번 믿었으니 이제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화잇은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계속 거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공식적인 재림교회 구원 교리도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현재와 심판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EGW Writings)
즉 확신은
“나는 이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라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예수님의 것이므로 계속 그분 안에 거하겠다.”
라는 관계적 확신입니다.
9. 그래서 구원의 확신과 성화는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화잇에게는 다음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확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다.”
성화
“그러므로 나는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간다.”
확신
“나는 그분의 자녀이다.”
성화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의 품성을 닮아간다.”
확신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다.”
성화
“그리스도의 의가 내 삶 속에 나타난다.”
이것이 화잇의 균형입니다.
10. 구원의 확신을 잃게 만드는 가장 큰 것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화잇의 영적 권면을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실패를 계속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권합니다.
“Do not speak of trials and discouragements. Look away from these things to Christ.”
“시련과 낙담에 대해 말하지 말고, 그런 것들에서 눈을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고:
“Never doubt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 This Day With God, p. 204. (EGW Writings)
이것이 구원의 확신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11. 그래서 감정은 확신의 기초가 아닙니다
어떤 날은 기도가 잘됩니다.
마음이 뜨겁습니다.
예수님이 아주 가까이 느껴집니다.
“나는 구원받은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날은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기도도 메마릅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크게 보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화잇의 원칙에 따르면 그날의 감정이 구원의 근거가 아닙니다.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약속
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말합니다.
“내 감정은 변하지만 예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12. 구원의 확신을 위한 화잇의 실제적인 5단계
제가 화잇의 여러 진술을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죄를 인정하라
“나는 죄인입니다.”
↓
② 그리스도께 나아가라
“예수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
③ 그분의 용서를 믿어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용서를 받아들입니다.”
↓
④ 자신을 그분께 맡겨라
“내 영혼과 몸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
⑤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그 결과:
“Christ is able to keep 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그리스도께서 내가 맡긴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신다.” (EGW Writings)
13. 이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목사님, 저는 화잇이 가르치는 구원의 확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끝까지 완전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오늘도 나 자신을 맡기며 그분이 나를 끝까지 지키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봅니다.
↓
그분의 용서를 믿습니다.
↓
그분께 나 자신을 맡깁니다.
↓
그분 안에 거합니다.
↓
성령께서 그분의 품성을 내 안에 이루십니다.
↓
그래서 나는 심판의 때에도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잇 자신이 보여 준 확신
목사님, 이것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화잇은 생애 마지막 무렵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I know in whom I have believed.”
“나는 내가 믿는 분을 안다.”
이 말은 “나는 내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안다”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 안다.”
입니다.
이것이 화잇이 가르치는 구원의 확신의 핵심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EGW Writings)
확신의 중심은 ‘나’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그리스도의 의의 옷 → 구원의 확신 → 심판 앞의 담대함 → 세 천사의 기별을 하나로 연결하는 복음의 중심축입니다. (EGW Wri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