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시간에 쫓겨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지난주의 못다 푼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점심 브레이크(운행 8시간 이내에
한 번에 30분 이상을 쉬어야 하는 규정)에 맞추어
주유소 옆 공터에 새벽이를 세웠다.
분위기가 음산해 가까이 가지 못했던 폐주유소를
낮 환한 기운을 믿고 두리번 살폈다.
이 폐주유소에 그려진 낙서(그라피티)는 주류사회에
대한 반항과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던 슬럼가의
그라피티와 동일한 방식인데, 검색해 보니 지금은
전 세계 그라피티 아티트들이 성지순례하듯 들러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야외 갤러리 같은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예술을 보는 눈이 얕아도 너무 얕은 내 눈에는
그저 좀 지저분하고 으스스해 보이기만 하는데...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황야길 따라 걷다 보니
지난주에 본 아파치 무덤 동굴 위의 허물어진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한번 본 곳이라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점심 휴식시간을 이용한 탐방이라 걸음을 아꼈다.
비포장 흙길을 조금 더 걸어내려가니 저 건물,
간판과 건물 뼈대만 조금 남은
Mountain Lions Zoo (마운틴 라이언 동물원)이
나왔다.
이 동물원에는 1920년 당시, 우리가 퓨마로
알고 있는, 이곳에선 마운틴 라이언 또는 쿠거라
부르던 산사자와 애리조나 독사, 길라 몬스터라
불리는 독도마뱀등을 실제로 전시했다고 한다.
12살의 어린이날, 동물원이 있던 대구 달성공원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생 무료입장이란 소문을 듣고 동네 아이들과
몇날며칠 코끼리와 사자 호랑이 원숭이... 볼 꿈을
꾸며 기다렸다가 아이들 걸음으로 한 시간 거리인
그곳으로 뛸 듯이 달려갔더니 공원문을 지키고
있던 거인 아저씨,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거인
아저씨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만 공짜."
풀 죽어 돌아오던 어린 우리들이 떠올랐다.
그곳은 오십여 년 세월 동안 더 잘 꾸며졌겠지만,
여기 산사자 동물원은 다 허물어졌고 백 년 전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스쳐가는 바람 따라 맴돌고 있다.
동물원 폐허 뒤로 백 년 된 다리, 디아블로 캐년
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 또 다른 허물어진 건물이
보였다. 저 멀리에 허물어진 기념품 가게까지..
디아블로 캐년 다리에도 낙서들은 이어졌고,
그 다리를 건너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폐건물
앞에 섰다.
이곳은 캐년 롯지, 백 년 전 여행객들의 숙소와
거래소였던 곳으로 우체국도 있었다 하니 그 당시
규모로는 제법 큰 시설이었을 것이다.
디아블로 캐년을 배경으로 둔 롯지를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세기의 시간은 허물어진 잔해로 남았고,
허물어진 벽들 사이로 협곡을 지나다 들린
바람이 내 모자를 날릴 듯 회오리를 만든다.
'기분이 왜 이렇지?'
뭔가를 잃은 듯
뭔가를 뺏긴 듯
호기심은 어느 정도 풀었지만
새벽이에게로 돌아가는 길,
뭔지 모를 찜찜한 기분이 남았다.
정리되지 않는 상념들도 남았다.
세월... 인생... 남김... 허무... 집착...
그 기분으로 걷다가 저 꽃무리들을 만났다.
방문객 차들이 지나다니는 그 흙길에
비도 별로 오지 않는 애리조나 황무지길에
언제 밟힐지 모르는 바퀴 사이 그 좁은 길에
바라는 것도 없이
기다리는 것도 없이
지나간 원망도 없이
그저 활짝 웃으며
서로 부비고 의지하며
지금을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내 걸음은 다시 가벼워졌고
협곡을 지나온 바람은 내 모자 대신
내 찝찝한 기분과 상념들을 다 데리고 갔다.
첫댓글
마음자리님의 글로 쓴,
아메리카 대륙의 어느 遺虛地의 모습입니다.
허허로운 마음이
제가 보기엔,
구절초 같아보이는 하얀꽃이
맘님에게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 꽃 역시,
맘자리님을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인적도 없고
바람이 불어야 폴폴 거리는 먼지도
반가웠을 겁니다.
찾아보니 그 꽃이름이 '사막아스터'라고
하는데, 같은 국화계열로 생김도
많이 닮아서 북미구절초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해줍니다. ㅎ
팍팍한 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저 꽃들이 말없는 가르침을 전해주더군요.
자세한 설명보다 궁금증이란 커다란 광장을 만나게 되네요.
기록으로 남기길 잘했어요.
언젠간 증언, 증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거기에 흔적도 남겨보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보기도 하게요.
네. 앞으로 자주 그곳에 멈추어서
쉬기도 하고 잠들기도 할 겁니다.
그곳의 밤하늘엔 은하수도 선명하게
흘렀습니다.
우왕~~ 눈 큰 아재 사진도 있당ㅎㅎ
으스스한 폐허 비슷한 곳에 혼자 가셔도 두렵지 않으실 듯한 듬직함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런 곳들을 거침 없이 홀로 탐방하시다니 용감하시기도 하고요.
오십 년 전 동물원에 갔다가 허탕치고 풀죽어 돌아오던 어린 마음자리님의 모습도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저는 며칠 후 애리조나에서 온 오래 된 벗을 만납니다.
20대 초반에 함께 신앙 생활하던 자매인데 지금은 애리조나에서 살고, 모처럼 귀국한 그녀를 보기 위해 이젠 환갑 진갑 다 지난 당시 멤버들이 열 명 이상 모일 거라서 기대가 됩니다.
마음자리님 덕분에 저도 두루 두루 구경 잘하고 갑니다. ^^
애리조나에는 볼 곳들이 참 많습니다.
저야 그냥 길 지나다니며 볼 뿐이지만,
피닉스나 세도나 플래그스태프를
중심으로한 지역 곳곳이 수려한 곳들
이지요. 그랜트캐년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플래그스태프 근처에
머물며 여러 곳을 함께 둘러보기도
합니다. 저도 기회되면 그곳에 머물며
애리조나 곳곳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오랜 벗과 만나면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돌보는 이 없어도 절로 피었다 지는 들꽃이 마음자리님을 위로해 주었군요.
사진 속의 폐허 ᆢ나도 궁금증이 몽실몽실 생깁니다
푸른비님도 가보고 싶지요? ㅎ
그러리라 생각했답니다.
마음님 실물을 사진으로 처음 접합니다 의외로 예리하게 생기셨군요.. ㅎㅎ 한국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장시간 운행후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없지만 미국은 반드시 있어야 겠지요.. 요번에 중국엘 가보니 거기두 브레이크 타임이 있더군요... 늘 조심 운전하세요..
제가 셀프 사진을 거의 안 찍다보니
자세도 표정도 시선도 다 어색합니다. ㅎ
한국에도 그런 규정은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는 모릅니다.
안전운전~!
애리죠나 일까?
디아블로 캐년,
캘리포니아 일까??
오래전 문을 닫고
폐허같이된
캐년 같네요....
유타주는 아니것
같고요...
어느 내셔널파크
일까요??
유명 캐년은
다가본것 같았는데
생소 한곳 이네요...❤️👍
귀히한곳,,
궁금해요...ㅎㅎ🏔🏛🏘🛖🛕🚗🚍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곳으로
유명한 곳은 아닙니다.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 지나 동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윈슬로우 지역이 나오는데
입구 지명은 Two Guns로 나옵니다.
100년전 66번 옛 동서하이웨이가
열렸을 때 한동안 번성했던 곳이랍니다.
@마음자리
아,,,,감사 드립니다!
모르는곳
알려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