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년이 지난 일인데요
제가 일본에서 사업을 했습니다
통크게 투자해서 보기 좋게 망해 먹었지요
평생 모은 돈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합하여
5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한 푼도 못 건지고 퇴출되었습니다
원인은 사람을 믿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매일 바둑이나 두면서 등산 좀 하면서
할 일도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기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여서 죽음을 무릅쓰고 고깃배를 타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나이 대장부가 이깐 일로 의기소침이라니 말도 안 된다
부산으로 갔습니다
딱 차비만 가지고 갔습니다
인력소개소에 가서 다짜고짜
배를 타러 왔으니 멀리 태평양이나 대서양에서
일할 수 있는 고깃배를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소장이라는 사람이
만두를 칠 줄 아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탈려면 최소한 사그네를 맬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무슨 소리인 줄을 몰랐는데
배를 타니 실전에서 정말 고깃배의 선원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밧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소장님은 그런 몸으로 배를 탄다니
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그 당시에 몸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평소에 70kg이었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60kg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소장님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정 그렇게 배를 타고 싶다면 외항선은 안 되고
국내선을 먼저 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산에 있는 통발어선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군산으로 와 처음에 배를 탔을 때
정말 이렇게 일이 힘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통발어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고
끊임없이 통발을 던지고 먼저 던진 통발을 다시 걷고
다시 던졌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안 잡히는 날에는 더 많이 던져넣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던져넣은 만큼 다시 걷어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죽을 맛이었지요
한데 그것에 더하여
내가 탄 배는 선주가 나쁜 사람으로 소문이 널리 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자를 보면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난다는 정말 대단히 사악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래서 일하는 선원들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저도 그 일원으로 정말 고생 말도 못하게 했습니다
석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받은 댓가는 고작해야 200만 원
참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석 달을 타고 통발어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잡아탄 배가 고데구리(저인망어선) 불법어선이었습니다
저인망어선은 불법이라서 낮에는 잠을 잡니다
바다에서 하는 일은 멀리에서 해경들이 망원경으로 다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50km 밖에서 하는 일도 해경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다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낮에 저인망을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요
고데구리어선은 좀 편합니다 낮에는 일단 쉴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고 밤에 작업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일단 저인망을 바다에 던지면 두 시간 정도 끌고 다니다 들어올립니다
그 시간은 일정치 않지만 대충 그렇습니다
들어올릴 때 옥순이(도르레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들어올리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고깃배가 다들 그렇습니다만 그물을 올린 이후가 좀 바쁩니다
저인망은 온갖 바닷고기들이 다 들어옵니다
키조개 같은 갑각류부터 갑오징어 놀래미 간재미 우럭 꽃게 꼼장어 왕새우
이름도 모를 이상한 고기(예를 들어 곰치)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정말 싱싱한 횟감들이 한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이 고기들 중 돈되는 놈부터 분류를 합니다
갑오징어 철이면 갑오징어 손님이 많으니 갑오징어를 먼저 분류를 합니다
봄에는 간재미 우럭이 먼저고 가을엔 꽃게를 먼저 선창에 던지는 식이지요
죽은 것은 가구에 담고 청소 깨끗이 하고 우리도 술을 한 잔합니다
제가 서해에서 배를 타며
먹어본 것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갑오징어 새끼였습니다
쇠주 한 잔에 그 맛이라니 우하하하하하
물에서 막 튀어오른 갑오징어 새끼와 쇠주 한 잔은
내 인생 전체와도 바꾸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이 즈음 서해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마시는 그 쇠주는 내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뱃놈이 아니면 절대 그 맛을 볼 수 없으니
당신께서도 그 맛을 위하여 잠시 배를 타보면 어떨지요 ㅎㅎ
그 고데구리 불법어선도 때가 되어서 내렸습니다
한 8개월 정도 타다가 내려서
양조망을 탔습니다
전어잡이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여서
양조망(전어배)으로 바꾸어 탄 것이지요
가을이 되기 직전에 전어잡이 배가 뜹니다
전어잡이 배는 힘든다는 것보다 재밌습니다
TV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참치잡이 배를 생각하면 맞습니다
그 참치잡이 배는 규모가 크고 전어잡이 배는 규모가 작다는 것뿐입니다
그물을 놓는 방법이나 회수하는 방법이 거의 같습니다
이 전어잡이의 생명은 신속입니다
일사불란하게 선원들이 움직이고 신속하게 그물을 잡아당겨야 전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0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1억 원치의 고기가 들 때도 있습니다
전어잡이는 완전히 도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누구는 한철(가을)에 3억을 벌고 누구는 1천만 원을 벌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야말로 운7 기3이지요
내가 탄 배는 선장이 욕쟁이였습니다
어떻게나 욕을 하는지 정말 한대 패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들이 갑이니 참고 잘 견뎌야 했습니다
내가 그 전어잡이 배를 탈 때 돈을 꽤 벌었습니다
그물 한 번 내려서 5천만 원을 번 일도 있었고
한 번에 10t의 전어를 잡을 때도 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올 무렵
1년 4개월 동안의 어부생활을 청산하고
군산 앞바다를 뒤로 할 때 내 손에 쥔 돈은
450만 원 흐규 흐규 ㅠㅠ
이유는 묻지 말기 바랍니다
전어잡이 배를 탈 때 선유도와 12동파도 사이를 많이 다녔는데
노을이 지는 서해의 선유도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시절에 시 한 편을 썼는데
그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갯내음과
멀리 지나가는 통통배
짝을 찾아 노래 부르는 갈매기
사랑하는 이의 머릿결에 깃든 붉은 노을
그와 함께 쇠주를 한 잔을 마시고 싶네
여러분들도 버킷리스트에 선유도의 노을을 꼭 넣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올 여름에 한 번 다녀오신든가요 ㅎㅎ
참 좋았습니다
선유도의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쇠주 한 잔
어떠십니까
[출처] 어선을 탔습니다 (굿바이싱글 - 굿싱/싱글카페/돌싱/3040//싱글모임/싱글라이프) | 작성자 첼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