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기도: 주님, 너무 오랜만에 주님께 나온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이 여러 핑계들이 있었으나, onething 하지 않고, 다윗처럼 듣는 마음만 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들에 현혹이 되고, 분주함과 할 것들에 마음을 뺏깁니다. 주님, 그런 저를 매일 기다리신 것 압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오늘도 막둥이 재우며 잠깐 졸다가 일어났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말씀으로 말씀하실 때 잘 들을 수 있는 겸손함 주십시오.
@ 말씀주해:
(12-15절)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충고는 무시하고 젊은이들의 충고대로 따르기로 결정하여, 3일 뒤 백성에게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는데, 이젠 나는 그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소. 내 아버지는 가축 채찍으로 매질했지만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 라고 말했다. 왕이 이렇게 한 것은 주님께서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시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 (왕상11:31-37) (여로보암에게 아히야가 새 옷을 찢어 12조각을 내며 말했다.) 10조각은 그대가 가지십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가 솔로몬의 왕국을 찢어서, 10지파를 너에게 준다. 그리고 1지하는 내 종 다윗을 생각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내가 선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생각해서, 솔로몬이 다스리도록 그대로 남겨둔다. (중략)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
- 아히야를 통한 말씀을 이루시기위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때 바로가 완악했듯이, 르호보암도 백성들을 향해 더 하나님 노릇, 왕 노릇을 함으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왕국에서 찢어지게 하신다.
- 말씀을 이루시는 것은 성경 전반에 곳곳에 나온다. 마치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성경을 기록했을 정도로.. 창세전부터 예수님이 오실 것을 계획하신 것을 모든 성경 속에서 말씀 하시고, 그것을 이루셨고, 다시 오실 예수님까지 이루실 것이다.
-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말씀으로 이루어 가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루실 것이다.
(16-20절) 온 이스라엘은 왕이 요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는 다윗에게서 받을 몫도 없고, 유산도 없으니, 각자 집으로 가자고 한다. 다윗 왕조는 네 집안이나 돌보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다의 여러 성읍에 살던 이스라엘 자손은 르호보암 아래에 있었다. 르호보암은 강제노동 감독관 아도니람을 보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돌로 쳐죽였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놀라서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총회로 불러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추대했다. 유다 지파만 제외하고는 어떤 지파도 다윗 가문을 따르지 않았다.
- 주님이 솔로몬의 집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이루시고, 아히야를 통해 말씀하신대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다. 모든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실 수 있었고, 대적들을 통해 다 쓸어버릴 수 있으시지만, 언약을 기억하여 계속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시다.
- 다윗의 왕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이로 인해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언약을 깬 아들 솔로몬으로 인해, 그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은 결국 2개로 나눠진다. 일이 이렇게 되고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21-24절)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온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동원령을 내려, 18만 정병 선발했다. 이스라엘 가문과 싸워서 왕국을 다시 솔로몬의 아들에게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시킨 것이니,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의 동족과 싸우지 말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거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모두 귀향하였다.
- (ESV 성경) 르호보암으로 인해 같은 동족끼리 싸울 뻔 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적어도 지금은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국 사이에 평화로운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앞으로 독자들은 두 나라들이 자주 전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나라였던 이스라엘 왕국이 두 나라로 갈라진 이후로, 두 나라는 수시로 전쟁을 했다. (14:30, 15:6, 16) 그러다가 마침내 두 나라가 서로 형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였다.
-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를 통해 갈라진 두 나라의 왕조와 그 왕조가 언약 안에 있었는지의 유무를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계속 이뤄 가시는 주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지켜 가시는 주님이시다.
@ 나의 묵상 및 기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라도 그대로 이루시지 않은 것이 있으실까? 그래서 그 위엄 앞에 엎드려지는 부분도 있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언약 안에 있는 자, 생명 가운데 있는 자라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남겨둔 것처럼, 심판하지만 보호하시며, 심판하지만 다시금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늘 나에게도 심판이 있다. 다윗에게도 있었고, 솔로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심판을 받아들였고,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지라도 언약을 떠나지 않았다. 솔로몬은 언약 안에서 많은 것들을 누렸지만 결국 그는 그 길을 떠났다.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죽을 때, 주님을 부인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래서 매일 묵상의 자리가 귀하다. 매일 주님이 하시는 말씀 안에서 교제할 때, 내일 내가 죽어도 오늘 주님과의 교제가 있기에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늘 내일 내가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죽음은 늘 가까이 있으니,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경각심을 놓친다. 그러니, 계속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매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어제 안만났어도 오늘 만나면 되지..’ 하지만, 끼니를 하루라도 거르지 않는 것처럼, 육의 생명은 귀히 여기는데, 영의 생명은 귀히 여기지 않는다. 영의 생명이 죽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이다.
주님, 몇 일만에 진지하게 다시 묵상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래서인지 말씀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해하고 주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까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생명을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 참 이중적인 마음이 많은 저를 오늘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올 수 있는 용기 주시니 감사드리고, 주님 안에 내가,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만큼 큰 기쁨이 없음을 다시 고백합니다. 늦은 밤인데, 쉼이 있게 하여 주시고, 주님과의 교제를 가장 귀히 여기도록 계속 인도하여 주십시오.
- 10월 중에 있을 명수형제 방사선 치료가 과정이 복잡하지만, 순조롭게 하여 주시고, 이 과정을 통해 복순-명수형제가 주님께 연합되길 기도합니다. 형제자매를 주님께서 붙들어주십시오.
- 다음세대가 주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고, 신전도사님과 교사 선생님들을 생명으로 붙들어 주십시오.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새소식반도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