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깊은 산속 절간의 여승들 / 正道 金珉煥
군대를 가기 전에 누가 우체국에서 임시직으로 편지 배달부를 좀 해보라고 그런다.
우편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산골짜기를 돌아다니는데 하루에 보통 30 킬로는 걸어 다녀야 한다.
그게 무슨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무턱대고 우편 가방만 그냥 메고만 다니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가방을 메고 한나절을 걸어 다니고 있는데, 그날따라 깊은 산골의 절에 편지가 있는 것이다.
동네의 이장 집에다 맡겨도 되는 일인데 왠지 꼭 올라가보고 싶다.
그 때는 아마 젊은데다가 모험심도 있고 기운이 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꼬불꼬불 얼마나 올라갔는가? 힘들게 올라가보면 그야말로 앉은뱅이 문턱 넘기 식으로 조금씩 올라갔지 깊은 골짜기의 절엔 아직도 먼 상태이다.
한겨울인데다 눈 덮인 산골짜기를 걷고 있는데, 그야말로 더위 먹은 황소처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씩씩거리고 올라갔었다.
세상에 편지 한 장을 가지고 그렇게 멀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머리가 미련하면 육체가 고생을 한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막상 다 올라가보니 절이라고는 게딱지만한 절에 초라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걸레스님 중광이 도를 닦다가 코를 휑하니 풀어 제치고 나가버린 빈 오두막집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승 두 사람이 나를 보더니 마치 춘향이가 이 도령을 만난 것처럼 반색을 한다.
세상에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를 올라왔느냐며 양쪽에서 나를 끌어안고 나뒹굴 것처럼 반기는데, 그것은 마치 강아지가 집을 지키고 있다가 먼 여행을 다녀온 주인이 나타나자 반가워하듯 그냥 죽어 자빠지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자기들의 신랑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반색을 하며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깊은 산속에서 여승들만 살다가 새파랗게 젊은 총각을 만나서 그러는지, 반갑다고 그만 호들갑을 떠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편지를 전달하고 곧 바로 내려오려고 하였다.
그런데 두 여승들이 어떻게나 붙잡고 못 가게 말리고 있는지 어림없는 일이다.
여승들만 사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사내를 보더니 그냥 미쳐버린 여승들인가!!?
아니면 내가 총각인줄을 자기들도 빤히 알고서 홀딱 반해버려 환장을 한 처녀들인가!!?
무슨 심신의 깊은 마음으로 스님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깊은 산속에서 총각을 보더니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이 느껴진다.
여승들이 도를 닦아야지 새파란 총각이 방문했다고 홀딱 반해서 넘어진다면, 도를 닦는 것이고 극락이고 다 무너진다는 것을 그녀들이 모르지 않을 텐데 공연히 가슴이 쿵쾅거린다.
나는 공연히 땡감을 가지고 단감인줄 착각을 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골통을 굴리고 있었다.ㅎㅎㅎ
여승들이 말하기를 깊은 산골짜기인데다 절이 가난하여 없는 반찬이고 보리밥일망정 금방 해 올릴 테니 밥이나 자시고 가라고 그런다.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배달했다고 밥을 얻어먹는다니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배가 등짝에 붙었지만 억지로 뿌리치며 내려오려고 하였으나 막무가내로 붙잡는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젊은 여승 두 사람이 총각을 보더니 미치고 환장을 했는지, 양쪽에서 매달리며 억지로 방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보드라운 손길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양쪽에서 잡고 끌고 밀어대어 결국은 그녀들한테 이끌려 방에 들어가 혼자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저 여승들이 나를 붙잡아놓고 절에서 같이 살자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산속에 여승들이 둘이나 되니 일은 하지도 말고, 자기들이 일해서 나를 벌어먹여 살린다고 하면 그야말로 내 팔자가 상팔자가 되는 것인가!!?
한사람도 아니고 두 여승들이 무슨 심보로 나를 그렇게 반기고 야단법석을 떤단 말인가?
혹시라도 그 무서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두 여승들이 칼이나 갈고 있으면 나는 오늘 제삿날이 될 것 같아 간담이 오싹해진다.
새파란 총각을 마치 돼지를 잡듯이 잡아가지고 목을 따서 사각을 내어 걸어놓고 장작불로 바비큐를 해먹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덜 덜 덜 덜.
두 여승들이 덜그럭거리며 찧고 까부르고 야단이 났다.
그녀들이 칼을 갈지 않는 것으로 봐서 나를 잡아먹지는 않을 것 같고, 몹시 바쁘게 움직이고들 있으니 내가 칙사 아니면 입금님의 대접을 받을 모양이다.
내가 지금 황제로서의 대접을 받을 모양인데, 밥상다리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그럴듯하게 차려올 것이다.
혼자서 해도 진수성찬 일 텐데 둘이서 요리들을 만들고 있으니, 이거 오늘 재수가 대통한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니 입안에서 침이 저절로 고인다.
얼마동안을 기다렸던가? 그녀들이 밥상을 들고 들어와 반찬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먹으라고 하는데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기가 막힌 밥상인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러한 밥상은 처음이다.
꽁보리밥 한 그릇에 볶은 소금 한 종자기를 올려놓고 물 한 대접을 올려놓았다.
산골이고 절이 가난해서 보리밥인데다 반찬이 없고 소금뿐이라며, 두 여승들이 쭈그려 앉아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겨울인데다 절간이라서 쇠갈비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 말려놓은 그 흔한 나물 한 접시도 없다.
나는 꽁보리밥에 볶은 소금을 넣어 비벼가지고 배가 부르도록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조금만 먹고나오면 반찬이 없고 소금뿐이라서 안 먹는다고 두 여승들이 섭섭해 할까봐, 체면불구하고 더 달라고 하여 억지로 많이 먹었다.
나는 모처럼 보리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지만, 그 여승들은 평생토록 보리밥에 청빈한 삶을 살며 도를 닦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 여승들이 절에서 같이 살자고 하지도 않겠지만, 만약에 같이 살자고 하면 내 팔자가 상팔자로 늘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또라이 같은 생각의 여운을 남기고 그 절을 내려오고 말았다.ㅎㅎㅎㅎㅎ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극기로 수도를 하던 그 여승들이 지금은 극락세계로 갔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