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엿장수 윤석준 - 일권씨
시상(세상)에 누가 제 아들 엿장수 시키고 싶어혀.”아버지는 거칠게 손사래를 쳤다
막내아들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엿을 팔겠다’고 했을 때 불같이 역정을 냈다
그러나 엿장수 아버지의 64년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청주시 원천동의 작은 골목안.
이곳에 대를 이어 엿장수의 길을 걷는 부자의 터전이 있다.
'엿장수 윤팔도' 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아버지 윤석준옹(78)과 그의 막내아들이자
'공식후계자' 일권씨(32)의 아담한 엿공장 겸 집이다.
일권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10월. 대학졸업 후 10년 동안 근속했
던 회사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 뒤 펜 대신 엿가위를 집어 들었다.
'어렸을 땐 멀리서 아버지의 엿가위 소리가 들리면 몰래 숨곤 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엿장수라는 사실이 창피했다.
아버지의 직업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일권씨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엿만큼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고
고백한다.
60여년간 엿장수로 팔도를 돌아다닌 윤옹은 당뇨와 관절염 때문에 최근 2년간은
장터에서 하던 엿가위질을 멈췄다.
주문된 엿을 만들거나 지방 축제에 초청될 때 틈틈이 신명나는 엿가위 장단의 솜씨
를 보여줄 뿐이다.
윤옹은 '엿을 팔면 한달 평균 100∼200만원의 수입은 올린다'고 밝혔다.
일권씨가 노구의 부친에게 전수받고 있는 것은
전통 엿 만드는 방법과 엿가위 장단이다.
조청과 호박으로 만든 엿에 콩가루를 묻힌 말랑말랑한 엿이 윤팔도엿의 기본이다.
일권씨는 '엿 만드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정말 몰랐다.
5개월 동안 밤낮으로 만들어내 이제 겨우 흉내만 내는 정도' 라고 말했다.
엿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엿가위 장단이다.
대학시절 성악을 전공하고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쳤다는 일권씨는 '엿가위 장단만큼
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도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
요즘은 밤마다 엿가위 환청이 들린다'며 털어놓았다.
하지만 윤옹은 '엄지손톱이 몇번 빠져야 엿가위질이 손에 배는 것'이라며
'아직 멀긴 했지만 그동안 나한테 엿가위질 배워간 수백명 중에 아들이 제일 낫다'
고 평했다.
엿가위 가락을 배우면서 일권씨는 아버지의 보물 1호인 엿가위 두 벌 중 한 벌을 물
려받았다.
엿장수가 왔다고 알리는 신호인 엿가위질 역시 해방 직후 윤옹이 처음 시작한 것.
엿가위 가락으로 각종 TV프로그램과 밤무대,축제에 초청될 정도로 윤옹의 엿가위질
솜씨는 독보적이다.
일권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아내도 어머니도 말렸지만 윤팔도엿과 가위장단을
브랜드화해 아들에게까지 일을 이어주고 싶다'며
'단순히 '엿장수' 라는 이름으로 60년 외길 인생을 사신 아버지께 '장인'의 호칭도
달아드리는 게 소원'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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