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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김재철/인자요산)로서는 모처럼 만의 산행이었다. 성대 신방과 산악회에서 내가 올해 참석하는 처녀 산행이었다. 일정을 잡을 때마다 매주 3째주 토요일은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워놓는 데도 불가피하게 꼭 해야할 다른 일(주로 결혼식 참석 등)이 생겨 신행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자리를 빌어 자주 참석하지 못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번 열심히 산행에 참석하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오랜만에 산행에 참가한 죄로 산행기를 쓰고자 한다.
-산행자 : 김기범(사니사나), 이희용(희망과 용기), 최규갑(아브물), 임병선(알자지라), 조광성(멍게), 김재철(인자요산)
-일시 : 2012.7.28 중복날
-출발지 : 독립문역 2번 출구 08:30
-산행장소 : 인왕산, 북악산 일대
산행 출발시간이 이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여유를 부렸나보다. 신목동역에 도착해보니 시간이 7시 50분. 그런데 전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9호선 배차 간격이 주말에는 조금 느슨한 편이다. 혹시나 늦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10분쯤 기다렸을까. 그러나 마음은 한시간 이상 기다린 것처럼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지하철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 주머니가 허전했다. 여기저기 뒤져봐도 현대 생활인의 필수품 휴대폰이 없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백지상태가 되었다. 도착시간에 늦으면 어찌하나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조금 늦는다고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늦으면 미리 도착한 선배님들이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것이고....집에서 내 전화기로 전화를 받은 집사람은 내가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는 얘기를 하겠지라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은 불안했다. 약속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큰 실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행에서는 늘 막내인데...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여의도에서 전절을 2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갈아타면서도 택시를 탈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과 이미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적인 혼란속에 전철이 정류장에 서자마자 앞만보고 쏜살같이 5호선을 향해 달려갔다. 5호선 전철은 신길역에 멈춰서 있었다. 이제 한 정거장만 지나오면 탈 수 있겠구나!. 다행히 기다리는 시긴이 잛아 여기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을 갈아 타자마자 빈 좌석를 찾아 앉았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몇개 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여자분의 휴대폰을 힐끔힐끔 처다보며 몇시인지? 를 확인했다. 난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든든한 휴대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휴대폰이 없으니 전화를 못거는 것은 고사하고, 몇시인지도 알 길이 없어 음악을 듣고있는 옆자리 여성의 휴대폰을 수시로 쳐다보는 신세를 져야했다. 휴대폰의 중요성? 휴대폰의 노예? 를 다시한번 절감한 순간이었다.
큰 마음 먹고 이제는 휴대폰 신세를 진 여자분의 얼굴까지 힐끗 처다보니 그리 예쁜 얼굴을 아니어서...동가홍상이라고...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여자 손에 든 휴대폰을 쳐다보며 몇차례 시간을 확인하다보니 드디어 서대문역에 다다랐고 이 때는 약속시간인 8시 30분이 거의 다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종로3가에 가서 3호선을 갈아타고 독깁문에서 내리면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서대분역에서 내리긴 했지만 어찌해야 할지???를...어느 버스가 독립문으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전철에서부터 독립문 방향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그렇게 뻘뻘 땀을 을리며 10분쯤 늦게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먼저 오늘 등반할 '인왕산'과 '북악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이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인왕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는 타포니(Tafoni)가 발달한 토르(Tor)가 많다. 주로 서울시 무악동 남쪽기슭 135m 고도에 위치한다. 인왕산의 토르는 주빙하 기후에 의해 화학적 풍화가 진행되어 생성된 것과 후빙기에 절리 발달에 따른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것이 있다고 한다. 흔히 타포니는 토르와 관련되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화강암 토르에서 관찰되는데 인왕산 또한 그에 해당한다. 토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풍화가 더욱 진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7년과 2008년 인왕산에서 관찰된 식물은 전체 75과 232종 38변종 5품종으로 총 275종이며, 귀화종은 37종이다. 주요 출현 식물은 생태계 교란 야생동?식물인 국화과의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이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가 있었다. 경지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그린 산수가 많은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왕산을 등산할 수 있는 코스는 총 5개이며 각각 두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고, 인왕산을 종주하는데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제1코스 사직공원 입구·약수터·정상·부암동(자하문), 제2코스는 사직터널·성터·정상·부암동(자하문), 제3코스는 독립문역·인왕산 일주문·국사당·선바위·철조망문·능선길·범바위·인왕천 갈림길·정상·305능선길·기차바위·인왕아파트 갈림길·홍심약수 갈림길·부암동사무소쪽 갈림길·하림각, 제4코스는 사직터널 전 사직공원·북악스카이웨이·국사당·달팽이바위·인왕산약수·해골바위·정상, 제5코스는 경복궁역·자하문길·영추문·청화대 앞길·청운중학교·최규식 경무관 동상·자하문·성곽길·정상 등이 있다.
북악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ㆍ삼청동ㆍ부암동ㆍ청운동ㆍ궁정동과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의 식물은 총 208종이고 그 중 나무는 81종이 있다. 교목류는 소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고, 관목류는 진달래, 철쭉, 쥐똥나무, 국수나무 등이 있다. 침엽수로는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활엽수는 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섞여 자라고 있다. 그 외 성곽 주변에 아까시나무, 은수원사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와 최근 조경수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팥배나무 군락은 숙정문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ㆍ북한산ㆍ낙산ㆍ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정도전(鄭道傳)은 성저(城底)를 측정(5만 9500자)하고 이를 97구로 나누어 각 1구를 약 600자로 하였으며, 각 구마다 천자문(千字文)의 글자로 번호를 붙였다.
다시 말하면 북악산의 정상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일주하면서 천(天)ㆍ지(地)ㆍ현(玄)ㆍ황(黃)·……의 순서로 글자를 붙여나가다가 95번째 글자인 조(弔)자에 이르러 북악산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현재도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4월 2일자로 북악산 일대 170필지 3,682,738㎡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 사적 지정 명칭은 조선시대 도성과 도성 축성의 개념인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보존의 의미를 되살리고, 조선시대 각종 고지도 및 문헌 등 사료에 전하는 ‘백악(白岳)’의 지명을 살리기 위해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북악산 일원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성곽(사적 제10호)과 서울부암동백석동천 유적(사적 제462호), 대은암(大隱岩)과 부아암(負兒岩) 등이 있으며, 한양의 후현무(後玄武), 북쪽 주산(主山)으로서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정치적 사상과 지형적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태조 5(1396)년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ㆍ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개방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앞의 설명이 인왕산과 북악산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여기서 설명된 대부분의 내용은 문화해설사 보다 훨씬 박식하고 깊이가 있으신 '희망과 용기'께서 등반 내내 설명해 주셨다. 그런데도 흐르는 땀을 닦느라 여념이 없는 환경에서 설명은 들을 때 그때 뿐이고 이해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탓...아마도 과도한 음주의 결과가 아닌가 함....에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적어본 것이다.
우리의 등반코스를 잘 모르겠다. 사실 처음으로 가보는 코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창의문에서 받아온 서울 한양고성 관광안내지도를 보고 설명하면 대충 이렇다.
독립문역 2번 출구-암문-초소-인왕산 정상- 기차바위-창의문(북소문)- 창의문안내소(여기에서 신분증 확인 후 표찰 받음) - 돌고래 쉼터-백악마루-1.21 사태소나무-청운대-암문-곡장-촛대바위-숙정문(북대문)-나무계단-와룡공원-성북동-성북동 누룽지백숙집 이다.
처음에 출발은 '사나사나' 형님을 제외한 5명이 출발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정말 무더운 중복날이었다. 몇걸음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인왕산 정상 338미터가 이렇게 높은 줄 물랐다. 그래서 어디가나 쉬운 산은 없다라는 말을 절감하며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그럼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성곽의 구조, 불교가 한반도 땅에 들어온 경로와 배경, 서울이라는 지명의 기원, 인왕산 개방 시기와 정치적 의미 등 해박한 지식을 전하는 희용이 형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쉴만한 나무그늘이 없어 하산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사나사나 형님을 만났다. 신선이 구름을 타고 오듯 산 정상에서의 조우는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나듯 말이다. 그리고 인왕산 하산길. 6명이 두명씩 각각의 대화를 하면서 오느 어느덧 부암동 으로 내려와 나에게 하산길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도 준비해간 물을 대부분 소비해서 물을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맴돌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규갑형님이 부암동 버스정류장옆 가게에서 얼어있는 생수를 사서 한병씩 가방허리춤에 차고 다시 창의문에서 북악산 등반을 시작했다. 여기서 대문사진도 찍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입산 표찰을 받은 후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데 해는 하늘의 정상에 떠있고, 나무그늘은 없고 힛빛을 받은 도성의 성곽은 더욱 열기를 품고 그야말로 찜통 그 자체였다. 더구나 계단길은 급경사에...그러고 보니 1일 1산주의를 오늘도 스스로 어기고 있는게 아닌가?
돌고래 쉼터 근처인지, 백악마루인지... 아마도 백악마루인지 싶다. 계란 한개씩으로 허기를 달래고 희용이 형님이 가지고온 매실차에 연신 얼음물을 부어가며 다시 따라 마시는 매실차의 달콤한 설탕기운에 우리의 피로는 조금씩 풀렸다. 이제는 맹물만 나오겠지하고 물을 계속해서 붓는데도 화수분처럼 우리의 갈증과 탈콤한 것을 바라는 육신의 욕구를 해소해주었다.
그렇게 북악산 정상에 올라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나와 규갑형님만 안가본 '곡장'에 다녀오라는 희용이 형님의 주문에 다녀오기는 했는데... 괜히 갔다는 생각만 들었다. 성곽이 그게 그거지뭐. 이 더운 날씨에 이게 뭐람.
이제야 드디어 점심을 먹을 목적지가 많이 남지 않았다. 이제 또 말바위를 다녀오라는 제안에 과감히 거절을 하고 빨리 밤을 먹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복날에는 닭고기나 개고기 먹지말라 했는데....왜냐구요. 많이 기다려야 하니 그게 또 고생이라 그러겠지요. 다른날 먹어도 되는 것을 남 먹을때 같이 먹지 않으면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의 성미 때문에... 그런데 점심장소는 성북동 누릉지백숙 집이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30분을 뙤약볕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겨우 자리를 잡아 음식을 시킨 후 밥이 나올 때까지 또 다시 30분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더위와 배고품에 지친 탓에 닭 두마리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니 오늘의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가정적인? 나와 규갑이형은 2차를 가지않고 곧바로 집으로 직행했다. 그런데 기범이 형님, 희용이 형님, 병선이 형님, 광성이 형님 이렇게 네분은 점심먹는 집에서 술을 판지않는다고 투덜대더니 결국 식사후에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알콜을 찾아 성북동 근처를 방황하신것 같다. 이 무더운 중복날 오후 3시에 몸안에 불을 붙이려고 한잔 땡기러 가신 모양이다. 참 체력도 좋으신 형님들이다. 아마도 산행으로 단련된 체력 덕분이신 모양이다.
첫댓글 인자요산님, '사니사나'가 맞습니다. '참 체력도 좋으신 형님들이다.' ㅋ 우리 그렇게 당신과 차이 나는 관계 아니거든. 잘 읽었습니다. 더운 날 쓰느라고 고생했겠습니다.
그렇게 마음 쫄이는(?) 순간에도 예쁜지, 안 이쁜지 다 보이는구나....ㅋ
재수할 때부터 대학교2학년까지 제가 가정교사하던-불법으로 ㅎㅎ-집이 홍제동이었던지라..새벽마다 그집 가정부 언니한테 끌려 거의 반강제로 약수뜨러 오르던 산이 아마 인왕산이었던거 같은데...그립습니다...산오르던 초입에 흩어져 있던 연탄재들과 개 짓는 소리, 새벽 별, 산에 올라갈 때마다 언니가 감췄다 주던 옥수수와 도넛 같은 주전부리들...앞 서 걷는 가정부 언니의 엄청나게 큰 엉덩이...잘 살고 있기를 기원하며...ㅎㅎㅎ...언니 이름이 선희였는디...날씨가 너무 덥네요...더운데 수고들 하셨습니다...알은 이제 괜찮냐?
비가정적인 4명은 성북동에서 헤매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마땅한 술집이 없어 택시를 타고 명륜동으로 향했는데 토요일 대낮에 문을 연 술집이 없더군요. 대학로 쪽으로 가다가 여러 차례 방황한 끝데 겨우 BBQ 치킨집을 찾았습니다. 과일안주를 곁들여 시원한 생맥주 50cc 두 잔씩 마신 뒤(알은 한 잔) 모처럼 환할 때 집에 들어갔습니다. 인자요산은 올 때마다 산행기를 쓰는군. 잘 읽었다.
오랜만에 쓰는 산행기를 양으로 떼웠구나. 희망과 용기가 말로 하는 수다(?, 본인은 해설로 생각)를 인자요산은 글로 퍼와서 한다고나 할까. 늦었지만 승진 축하하고, 축하턱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하는 걸로(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삘루다)!. 글고 뭔 존대를 그렇게 남발하냐? 정말로 대단한 깍두기들인 줄 알겄다. 보면 글과 실제의 그 엄청난 차이를 어떡할고.ㅋㅋ 알은 이제 뱀독은 다 빠졌나?@#$%
뱀독 올림픽이 빼고 있습니다요. 다들 무더위 잘 견디세요.
오랜만에 긴~~산행기 잘 읽었다.역시 산행기는 길어야 제 맛이여.^^
언제 승진 턱 낼지 미리미리 공지해라.다들 무쟈게 바쁜 사람들이라 미리 스케쥴 빼놔야 혀.
컴하고 친하지 않아서 언제나 늦은 리플을... 지리산 닉네임 바꿨구나. 저는 토요일 집안 모임 위해 보은 갔다가 일찍 도착해서 문장대 올랐는데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신선산행 이었슴다. 산에 관한 한 저는 복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