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달, 열닷새, 믈날.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하여 공휴일이 된 오늘,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닌 내게는
이 날이 특별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 같으면 절에 가서 연등행사도 지켜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었겠지만
지금은 특별히 쌓을 인연도 없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이라고 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소리, 바람결, 꽃향기가 더 좋으니
오히려 절간의 수많은 말들이 소음(騷音)일 수도 있다는 것,
엊그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여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것이 하소연인지,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갖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하나의 과정인지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말을 들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쓰면서
내 나름대로 상담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자라나
나보다 훨씬 더 커버려 나를 버겁게 하는
또 다른 나, 즉 바보인 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이 엮어온 삶,
그중 아주 일부만 추려서 말하고 있는 동안
거듭해서 그 이야기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췄고
누구도 보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음에도
거듭 내 안에서 부끄러움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삶, 그가 누구든 절반은 어리석음이고
결국은 바보짓이라는 것,
나쁜 짓이나 악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바보 짓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얼핏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뒤에도
그와 나눈 이야기의 조각들이 내 안에서
갖가지 형태로 춤을 추는데
가만히 지켜보는 춤사위 속에서
아지랑이 같은 무엇이 우줄우줄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고
그게 바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인 ‘바보’의 숨결이라는 것을 보는 짜릿한 통증
하지만 그것이 싫지 않고 상쾌한 자극이었다는 것까지 곱씹으며
어제를 살았고, 또 오늘을 맞이했는데
어쩌면 내 안의 바보가
조금씩 키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하지만
언제 그 ‘또 다른 내’ 키가 줄어들기 시작할진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게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는 것만큼은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데,
그렇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지켜보며
피어올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제 모습을 바꾸는
하늘의 구름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