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의 향기를 퍼뜨리는 시인 “이기은”
이기은 시인의 인터뷰을 앞두고 시인에 대해 좀 더 알고자, 그동안 월간 <광장>에 실린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시집도 두 권이 발간되었다는 약력을 보고 눈에 들어왔던 것이 <자귀나무 향기>이다. ‘자귀나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 보았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특징을 찾지는 못하였다.
인터넷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좀 그렇고 이기은 시인을 만나면 제일먼저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시집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력을 보니 의아했던 점이 또 한 가지 생겼다. 일반 회사원도 아니고 약력에 기술사라는 말이 적혀있었고 그렇다면 엔지니어라는 말인데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만 갖고 있는 본인보다 무려 25개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증은 접어두고 시집 두 권을 읽어보면서 새로이 느낀 것도 많았다. 실려 있는 많은 시중에서 직업적인 부분에 관한 시는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의문점이 많은 시인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내고 말았다
<자귀나무 향기1, 2>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는데 실린 시의 제목을 보면 일상생활이 아닌 자연<꽃, 계절과 같은>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고 작품 활동을 하실 때 염두하고 계시는 부분이나 소재 선택 시에 중점을 두는 부분과 ‘자귀나무’에 대해 갖은 궁금증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기은 시인은 작품의 배경이 어릴 적 시골에서의 생활이 글속에 배어 있고 점차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져가는 기억들 그 기억 속에는 누군가에게 해주고픈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고 한다.
좀 더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함께 사라져 갈 것이고, 그것이 안타까워 기억이 조금이라도 선명한 지금 그 기억에 덧칠하듯 글을 써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덧붙이기를 ‘시는 짓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쓰는 것’이며, 지은 시는 심금을 울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내기가 또한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험한 사실을 쓰게 되면 쉽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가 있으며, 글의 소재는 주로 지나온 날들에서 찾으며 글의 주제 역시 경험에서 얻어진 생각들을 토대로 구성하려고 애를 쓴다고 시인만의 노하우도 덤으로 알려주셨다. ‘자귀나무’에 대해서는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하고자 해서 출판사를 찾았을 때 그 출판사에 근무하는 기자 한분이 “자귀나무 향기”라는 제목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하고 질문 메일을 보내와서 이렇게 답변 한 적이 있다고 하셔서 요약하여 인용해 본다.
거창한 뜻이 있어 자귀나무 향기를 쓰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어릴 적부터 자귀나무를 무척 좋아했고 신혼 초에는 자귀나무를 분재로 키워 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네요. 결혼 후에 분재로 키우려 한 것은 자귀나무를 “합환수(合歡樹)”라고도 하거든요, 밤이 되면 마주보는 잎들이 사랑하는 부부가 잠자리에서 서로 다정하게 껴안듯이 꼭 붙어서 밤을 새거든요. 그래서 정원에 자귀나무를 심으면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고 해요. 하지만 요즈음 아파트에는 정원이 없어서 집에서 분재로 키워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고요. 그래서 글 속에서나마 자귀나무를 가꾸어 보고 싶어 처음 글 쓸 때가 칼럼이었는데 칼럼 이름을 “자귀나무 향기”라고 만들었네요. 그러다보니 늘 “자귀나무 향기”라는 말이 “사랑애비”란 닉네임과 함께 따라다니게 되었고요 사랑애비란 닉네임도 참 오래되었는데 “사랑방에 기거하는 지아비”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란 뜻도 있지만요, 옛 선비들이 기거하던 사랑방에다가 그 사랑방에 기거하는 지아비를 합성 한 것이랍니다. 그 둘이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요 사랑애비 글이 좋다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벌써 5년여 자귀나무향기나 사랑애비란 단어를 이기은 이란 이름보다 더 많이 기억해 주신답니다. 그래서 자귀나무 향기 하면 사랑애비, 이기은 이렇게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빛나되 눈부시지 않게”란 말을 살면서 참 많이 되씹어 왔네요. 그에 걸맞은 자귀나무향기 란 단어도 함께요,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발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귀나무 향기 하나에서, 열, 스물까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랍니다.
이기은 시인의 말씀을 들으며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자귀나무나 심어보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시골에 다녀왔을 때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이제 환갑이 지나고 나니 어머니 아껴주시는 씀씀이가 보여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기은 시인 몰래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불쑥 한다는 말이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명함을 먼저 보았기 때문인지 작품에도 직업적인 소재가 많이 담겨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연적인 시들이 많아서 조금은 놀랐고 주위에서는 작품 활동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기은 시인의 직장동료나 업무상 만나는 파트너들은 시인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두 번의 시집을 출간하였다는 사실은 더더군다나 모르는 일이고, 사회생활이 참으로 단순한 듯해도 복잡다단하여 시인이 글을 쓰는 것이 직장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로 작용할 수도 있고, 업무시간 외의 시간을 활용하여 글을 쓰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에 엔지니어로서의 직장일과 글 쓰는 일과는 완전히 별개로 떼어놓고 있다고 한다. 글 쓰는 일을 함께 하는 동료 선배들로부터는 시인의 서정적 이미지가 옛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어 참 좋다는 말을 자주 듣고, 물론 문인들의 모임에 참가해보면 거의가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래서인지 시인의 시에는 업무와 관계되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설명을 해주어 궁금증을 덜 수 있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정년퇴임을 하면 업무와 관련된 그런 글을 쓰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잊혀 가는 어릴 적 시골생활의 애환, 우리 농촌의 사라져가는 서정적인 이미지, 넘쳐 나던 따뜻한 정, 점차 없어져가는 정겨운 모습들을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가슴으로 그려보고 싶을 뿐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이번 질문을 참 잘했다는 스스의 자화자찬에 잠시 빠져 있었다.
이기은 시인은 초, 중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여러 백일장에 나가 수상도 여러 번 하면서 시인, 소설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농촌의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차남이고 물려받을 재산도 별로 없었고 생활이 우선이었기에 이공계를 택하고 기술자격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국가에서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기술자 양성을 한참 하던 때여서 자연스레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 군대에 가서도 수백편의 습작을 썼다고 한다. 그 습작마저 포기한 것은 결혼, 그리고 취직, 모든 초점이 생활에 맞추어 지면서 작가의 길은 잠시 가슴 한 편에 보관해둔 어릴 적 꿈이 되었다고 한다. 국가기술 자격증을 25개 보유할 때까지 단 한편의 습작도 쓰지 못할 정도로 숨 가쁘게 지내다 보니 40대 초반에 목표하는 자격증을 거의 취득할 수 있었다. 잠시 몇 년을 공부에서 손 뗀 시기, 그때는 춘란(보춘화)에 빠져 몇 년을 산속을 헤맸고, 또 낚시에 빠져 몇 년을 바닷가 갯바위를 전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다시금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인터넷을 배우면서였다고 한다. 다음의 전신인 한 메일 넷이나, 하이텔, 천리안 등 PC 통신 유료사이트를 이용하면서 인터넷에서 칼럼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종종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간헐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정작 다시금 글을 쓰기에는 용기가 부족하여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다음 칼럼이 활성화 되던 시기에 누군가 대신 신청해서 보내준 ‘고도원의 새벽편지’가 다시금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메일로 전달된 고도원의 새벽편지를 읽으면서 한편씩 습작(시, 수필 등)을 쓰다가 용기를 낸 것이 2004년경, 다음 사이트에 “자귀나무 향기”라는 타이틀로 개인 칼럼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전문 기술서적에 연구자료 또는 신기술 발표 등 직접 쓴 글이 몇 번 활자화 된 경험은 있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기술홍보 내지는 유저에게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시나, 수필 등은 순전히 개인적인 시간에 조금씩 습작하는 정도로 일과 글 쓰는 것과는 별개로 구분 짓고 있다. 지금도 직장과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은 시인이 글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시인은 직장 근무시간에는 회사일, 기술자료 분석, 자료파일 작성, 연구 개발, 실험 등의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고 퇴근 후 2-3시간 정도 거의 매일 한편 이상의 글을 쓰기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시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자주 드나드는 카페에 글을 올리고 지인들과 교류도 하면서 때로는 문학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도 하고 주말엔 문학행사에 참여하며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조금씩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요즘 근황을 알려주셨다. 이런 이중적인 생활이 언제까지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생활이 우선인 현재의 삶에서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며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아직 시인, 작가라는 호칭보다는 회사에서의 직함이 더 친숙한걸 보면 글과 관련된 이 방면에서는 새내기에 불과한 자신임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필자의 자귀나무에 대한 궁금증 풀이를 한 다음에 이렇게 시인님의 어릴 적 생활부터 근래의 활동까지 들으며 이기은 시인의 세계에 함께 침투를 했다가 나왔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필력이 부족하고 지면상 다 옮기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면 단골로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인, 가장 존경하는 분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시인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다. 아직 작품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사사를 받은 적이 없으며, 누군가 도움을 준다면 참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형편상 배울 시간이 없어 그냥 혼자서 긁적이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나쁜 습관들이 몸에 배이기 전에 누군가 지적해주고 지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한다. 혼자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스스로의 단점을 스스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덧붙여주었다. 다만 어릴 적부터 글이 좋아 존경해왔던 분은 만해 한용운님이라고 한다. 그 시절에 글을 쓰신 분들 거의 모두가 시대적인 배경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가슴속 응어리를 배출할 수 없는 시기여서 함축된 언어로 시대 상황을 이야기하고 아픔을 토로하며 울분을 달래던 시기였지만 한용운님의 시어 속에는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정서와 함부로 표출할 수 없었던 한이 그대로 스며있는 듯 시구 한 단어 한 단어, 어절 한 토막 한 토막이 내 것 인양 가슴에 젖어와 버릇처럼 흥얼거리고 다녔다고 한다.
시인은 특별한 어떤 계기보다도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다니던 청소년기, 펜팔에 빠져 온갖 미사여구를 훔쳐와 편지지에 새겨 넣던 사춘기 시절, 안개 자욱한 숲 속에서 안개를 맞으며 보낸 어린 시절, 여름날 소 풀 먹이러 다니던 그때에도 한용운 시인님의 <님의 침묵>처럼 가슴 울리는 그런 글을 써보고자 희망을 가득 가슴에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은 자연스레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정적인 정서에 가장 쉽게 스며드는 시이면서 표출 할 수 없었던 내면의 한을 절절한 가슴으로 읊을 수 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님의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 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 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 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 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인은 아직 스스로를 새내기라 말한다. 여백이 많이 남은 깨끗한 가슴이라 생각하기에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고, ‘이것이 이기은의 글이다’하는 시인만의 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길을 밟고 있다. 언제쯤 그런 때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의 지금은 우리의 전통적인 서정시를 나름대로 부활시켜 보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고, 시가 산문화 되고 시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에 어떻게 쓰든 쓴 사람이 ‘시’라 하면 다 시가 되겠지만 시인의 생각으로는 쓰는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이 ‘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쓰는 이의 몫과 읽는 이의 몫이 따로 있는 것이 또한 ‘시’라고 하시면서 “저는 읽는 사람의 편이 되고 싶습니다. 읽는 사람이느끼고 공감하고 맞아 그랬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것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좀 더 공부하고 시인다운 시인이 된 후에라도 꼭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
다음으로 시인에게 그동안 써왔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시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니 아직 미발표된 작품을 꼽아주셨다.
늙은 공중전화
재잘재잘 하염없이 말을 쏟아내던 전화 부스 세월이 내려앉아 고운 화장 지워져버린 빨강 전화기 겨울바람에 삐걱 이는 덧문의 신음소리 들으며 아린 마음으로 추억을 보듬는다.
막걸리에 또 무엇을 섞어 마셨을까, 혼절하고 싶도록 냄새가 심한 세상에 저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 막무가내인 화상이 몇 분을 부여잡고 미주알고주알 고문 하더니 부서져라 팽개치는 바람에 실어증 걸린 장난감 되어 흔들흔들 괘종의 궤적을 흉내 내며 잿빛 시간을 헤아린다.
언제쯤 고사리 손에 이끌려 사랑 가득한 언어의 유희 속으로 유영 해볼까 말이 하고 싶어, 말이 듣고 싶어, 말을 참아야 하는 새장을 잃어버린 앵무새 삭풍 휘몰아치는 계절 속에서 홀로 외롭다.
“사오정 오륙도” 라는 유행어가 창궐하는 참 고약한 세상 아직 일 할 수 있는 나이에 정년이란 꼬리표 달고 집안에 틀어박혀 볼 아이도 없는 허전한 집을 지켜야 하는 수많은 중년의 신사들, 일이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어 지하철역을 전전하는 노숙자들, 이들이 현재의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가장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햇살이 밝을수록 그늘이 짙어지듯 이 사회가 휘황한 네온을 밝힐수록 자꾸만 어둡고 음습해지는, 환한 보름달의 뒷면이 되어가는 시대에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내 이웃의 아픔이고 누구에게나 다가 올 수 있는 아픔처럼 느껴져 시인이 읊은 글이다. 언제쯤 새장을 잃어버린 새들이 파란 하늘을 울타리삼아 맑은 소리로 노래하며 마음껏 저 하늘을 유영 할 수 있을지 한시라도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잘 담겨있는 글이다. 이기은 시인이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시인은 무엇이든 설정된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는 자신에게 엄격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는 단 한편의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시며 자격증 공부를 할 때에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그 결과 스스로 계획한 것의 어느 만큼은 이루었다고 하신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에게는 관대하되 자신에게만큼은 깨물어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냉정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며, 글을 쓸 때의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회초리 맞던 초등학교 시절 숙제하듯 쓰는 것이라며 글이 좋든 아니든 많이 써야 좋은 글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한편, 안되면 최소한 일주일에 6편의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며 그것을 지켜가고 있다고 하시니 여기에 시인의 多作 노하우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이것만큼은 이해하고 읽었으면 좋겠다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지구의 유일한 위성 달은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같아서 우리는 늘 달의 한 쪽 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지구에서는 영원히 달의 뒷면을 볼 수가 없다는 말이고 시에도 앞면이 있고 뒷면이 있다.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의 시를 읽더라도 겉으로 표현된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그 뒷면을 보려 애쓰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은 사랑시를 보면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 생각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남녀 간의 사랑보다도 더 깊은 인생철학을 담을 수도 있으며 달의 뒷면을 볼 수 있게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선을 띄워 보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이기은 시인으로부터 작가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과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분이 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OOO 시인이다’ 그렇게 소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스스로를 자신 있게 시인이라 호칭하시는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하여 그분의 작품을 찾아서 몇 편을 읽었지요, 불과 10편도 읽기 전에 더 읽을 필요가 없겠다 싶을 정도의 통속적인 단어의 조합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글을 잘 써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른 어떤 분이 제 글을 보고 저처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말씀을 감히 드리는 것입니다.” 시인의 성정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미사여구의 조합만으로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하는 배짱에 오히려 시인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어쩌면 그런 배짱을 가질 수 있을까?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글을 쓰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 마련인데 스스로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진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만큼 자신의 글이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할 것이라고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더불어 예비 작가가 될 후배들에게 글을 그만 쓸 때 까지는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말고 더 좋은 글을 쓰기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씀과 글이 좋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글이 참 곱다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댓글, 그런 것들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닦달하는 방법만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냐는 당부도 잊지 않으신다.
시인은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그림을 좀 더 그려보고 싶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기억이 잿빛으로 바래기 전까지 열심히 덧칠한 어제의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고 싶어 한다. 화가라면 고운 수채화로 남길 수 있고, 소설가라면 그때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겠지만 시인이 가장 근접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시’라는 장르이기에 ‘시’로서 그 시절 우리들의 정서, 그 시절 고향 마을의 정경, 계절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던 산과 들의 모습, 긴긴 삼동 사랑방에 모여앉아 주고받던 정담, 우물가에서 깔깔거리며 나누던 행복 넘치던 일상들을 공부하고 애써서 가장 적절한 언어로 가장 적절한 표현 방법으로 한 행, 한 연의 시로 구성하여 누구든 글을 보면서 “맞아 그랬어. 그때가 참 행복했었지. 내게도 그런 고향이 있었어.” 눈물 글썽이며 이런 이야기로 스스로를 위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이기은 시인의 마음이다.
이기은 시인은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자귀나무 향기” 라는 고향냄새 물씬 풍기는 제목의 시집을 최소한 10권 정도는 연작으로 엮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한 치의 의문도 갖지 않고 꼭 그리 되리라 믿는다.
끊임없이 시를 쓰고, 시를 읽으며 시와 함께 살고 있는 이기은 시인의 만남을 통해 시인은 시와 하나가 될 때 비로써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나는 것임을 알게 된 기분 좋은 하루였다.
- 조미은 <편집부 취재기자>
이기은 1958년 포항 출생(현재 김포 거주). 空調冷凍機械 技術士, 가스 技術士, 국가기술 자격증 25개 보유. 월간 한울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계간 아람문학 시 부문 신인상. 계간 대한문학세계 수필부문 신인상. 개인저서(시집) <자귀나무 향기 1>(우리함께 눈먼 새로 살자), <자귀나무 향기 2>(날갯짓을 해야 삶이 곱다). 공저 <봄을 밀회한 여자> 外 20여권 작품수록. 월간 광장 外 10여종 문학지 신작 발표. 서정문학회 정회원, 늘 푸른 문학회 정회원, (사)창작 예술인 협회 정회원.
사랑(仁愛) - 하나
이기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아니한 새벽 늦은 밤까지 호롱불 벗 삼아 바느질하느라 천근이 되어버린 눈꺼풀 힘겹게 피곤을 밀어올리고 하루를 열면 까만 무쇠 솥 행주로 훔쳐내며 얼어붙은 산자락 너럭바위 아래에서 뜨거운 여름 햇살로 키만큼 자란 싸릿대 아름 베어 지고 오신 낭군님 땀 냄새 밴 묵묵한 사랑으로 달구어진 솥에서 고슬고슬 잘 퍼진 햅쌀밥 하얀 사기 사발에 고봉으로 담은 사랑 짝 맞춘 대접에 따뜻한 된장국 개다리소반 정갈하게 차려놓고 해 뜨는 아침결 마주앉은 가시버시 말없이 주고받는 눈길에 가득 채워진 가슴 먹먹하게 차오르는 그것.
사랑(仁愛) - 둘
희미한 등잔 아래 펄럭이는 그림자 어둠과 정 나누던 동지섣달 귀먹은 바늘과 긴긴밤을 지새우다가 늙은 교회 해묵은 종(鐘)소리 과거처럼 아련하게 달그림자 밟고 와서 조용히 봉창을 흔들던 새벽 이불 걷어차고 윗목에서 잠든 배고픈 삼동을 견디느라 홀쭉해진 아이 이불 깃 당겨 꼭꼭 여며주며 지그시 바라보시던 내 어머님 눈길 곁눈질하던 문풍지도 삭풍 달래며 쪽잠 자던 동틀 녘까지 잠 못 드시던 애 끓는 모정(母情)
사랑(仁愛) - 셋
나지막한 돌담 너머 호박 넝쿨 칭칭 감긴 오동나무 보라색 그윽한 꽃 빛 거친 손으로 만지기에도 안쓰러운 여식의 볼만 같다.
오후 새참으로 마신 막걸리 몇 사발에 얼큰하게 달아오른 가슴 여며도 자꾸만 헤살 거리며 튀어나오는 청춘가 한 자락 저녁연기 자욱한 추녀를 넘어 땅거미 드리워진 여름밤을 서성이는 날
오동 심던 그날이 어제처럼 떠오른 아비의 보일 듯 말듯 눈가에 어리는 웃음
사랑(仁愛) - 넷
까마득하게 잊고 살던 벗에게서 따뜻한 안부 담긴 고운 편지를 받아든 뿌연 하늘 울먹이던 어떤 날 전해진 온기에 알지 못하는 무엇이 목젖 너머로 울컥 이며 넘어갈 때 터질 듯 벅차오르던 가슴 한편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그리움 닮은 그것이 가을날 해거름 산비탈에 하나, 둘 쌓여가던 낙엽처럼 가슴 보듬어 온기를 보전하던 밤 마음 저리게 느껴지던 안온함......
사랑(仁愛) - 다섯
쏟아질 듯 나지막이 내려앉은 별빛 마당에 펼쳐놓은 살 평상에 머물던 저녁 정오에 해 걸리던 산마루 삼태성 찬란하게 밤을 밝히는데 호박 순 따다 넣은 수제비 한 그릇에도 세상의 행복 다 보듬고 잠든 식구 외양간에서 태질하듯 휘젓는 누렁이 꼬리 질에 놀란 날갯짓으로 살 평상을 향하여 달음질치던 모기떼 시누 대 잘게 쪼개 안개 낀 앞산을 수묵화로 담은 성근 부챗살을 활짝 펴서 훠이훠이 저으며 모기 쫓던 어머님 뜬눈으로 밝힌 샐 녘 홑이불 덮어주던 가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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