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김호중처럼’이란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노래를 김호중처럼 잘하자’거나
‘김호중처럼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김호중이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망갔다가
17시간이 지난 후에 ‘자기가 운전을 했다. 음주운전이 맞다’고 했지만
음주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관련법상으로 ‘위험운전과 뺑소니는 맞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이상한 법적용 논리가 모든 음주운전자들의 모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은 김호중에게서 먼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유명정치인들이 이미 이런 법논리로 자신의 책임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사건이나 채상병사건등을 봐도
분명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혹은 권력을 사용하여 일어난 문제가 맞음에도
법이 명확하게 지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용하여
‘잘못은 있지만 처벌할 법이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면책을 주장하고,
또 그렇게 판결해주는 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회가 일반성도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여서
이런 법 저런 법을 이용하여 권징을 하면서,
정작에 목사나 장로의 문제는
온갖 법을 끌어드려 상대방을 문제삼고,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는 악한 모습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법을 아는 지식을 이용하여
교회법을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겁박하거나,
성도들이 지도자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하여 적용한 법의 기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에 법정신의 가장 기본이 되어져야 할 양심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거짓 혹은 위법사항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다른 법이나 원칙을 끌어드려 자신의 잘못을 면피하고
오히려 상대방을 긍휼이 없는 사람처럼,
혹은 위법한 사람처럼 취급당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법으로 양심을 덮어 버리고,
악인이 의인을 본건과 상관도 없는 법을 끌어와 정죄하는 뒤집어진 세상을
교회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지도자들의 법정신이 참으로 가련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