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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の 宿から 都はるみ
1975
作詩/阿久悠 作曲/小林亜星
都はるみ / 北の宿から(『'93夏 都はるみコンサート ねぷた伝説』より)
https://www.youtube.com/watch?v=siNlA_j55sQ
北の宿から 都はるみ
1975 . 12
북녘의 숙소에서(北の宿から)
작사 阿久悠 (아쿠 유) 작곡 小林亜星(고바야시 아세이)
1.
あなた 変わりは ないですか
아나타 카와리와 나이데스카
당신 별고는 없으세요
日ごと 寒さが つのります
히고토 사무사ㅇ가 츠노리마스
날마다 추위가 더해집니다
着ては もらえぬ セㅡタㅡを
키테와 모라에누 세ㅡ타ㅡ오
입혀 드릴 수 없는 세타를
寒さ こらえて 編んでます
사무사 코라에테 안데마스
추위를 참고서 뜨고 있어요
女心の 未練でしょう
온나 코코로노 미렌데쇼오
여자 마음의 미련 이겠지요
あなた 恋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
2.
후부키 마지리니 키샤노오토
ふぶき まじりに きしゃのおと
눈보라 속에 기차소리가
스스리 나쿠요니 키코에마스
すすり なくよに きこえます
흐느껴 우는듯 들려오네요
오사케 나라베테 타다 히토리
おさけ ならべて ただひとり
술잔을 나란히놓고 그저혼자서
나미다 우타나도 우타이마스
なみだ うたなど うたいます
눈물의 노래따위 부르고 있어요
온나 코코로노 미렌데쇼오
おんなこころの みれんでしょう
여자 마음의 미련이겠죠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あなた こいしい きたのやど
당신이 그리운 북녁의숙소
3.
あなた 死んでも いいですか
아나타 신데모 이이데스카
당신 제가 죽어도 좋은가요
胸 が しんしん 泣いてます
무네ㅇ가 신신 나이테마스
가슴이 저미도록 울고있어요
窓に うつして 寝化粧を
마도니 우츠시테 네ㅇ게쇼오
창문에 비추면서 잠화장을
しても 心は 晴れません
시테모 코코로와 하레마센
해본들 마음은 맑지 않아요
女心の 未練でしょう
온나 코코로노 미렌데쇼오
여자 마음의 미련 이겠지요
あなた 恋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
女心の 未練でしょう
온나 코코로노 미렌 데쇼오
여자 마음의 미련 이겠지요
あなた 恋しい 北の宿
아나타 코이시이 키타노야도
당신이 그리운 북녘의 숙소
* ねげしょう[寝化粧]
여자가 잠자기 전, 하는 엷은 화장
北の 宿から 都はるみ
https://www.youtube.com/watch?v=k2jmvGPCsjM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과 FNS 가요제 그랑프리 수상
1970년대 엔카의 대표곡.
오리콘 싱글차트 부분에 무려 44주동안이나 랭크되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2003년에 나카지마 미유키에 의해 깨지게 된다.
北の 宿から 都はるみ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 <북녘의 숙소에서, 北の宿から>
SIDE A
1. 北の宿から(북녘의 숙소에서)
2. 風の噂(바람의 소문)
일본콜롬비아주식회사 AA-167
1975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는 한국 트로트의 연구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트로트의 꺽기 창법을 유행시킨 최초의 인물이 미야코 하루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야코 하루미가 제일교포 2세라는 점이다. 그의 아버지 이종택은 일본인 마츠시로를 만나 1948년 미야코 하루미를 낳았다. 미야코 하루미의 한국명은 이춘미이다.
미야코 하루미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콜롬비아 주최 오디션에 참가하여 하타케야마 미도리의 노래를 불러 합격하여 주류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노래를 배웠는데, 어느 날 로우코쿠 가수 출신의 만담가, 타이헤이 유메지(タイヘイ夢路)의 무대를 본 어머니가 딸의 노래에 개성을 주기 위해 우나리(꺽기)를 강조하도록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2005년 개봉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시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사건 당일 심수봉 역할을 했던 자우림의 김윤아가 기타치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미야코 하루미의 <북쪽 숙소에서>(北の宿から)이다.
임상수 감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노래를 즐겨 들었다는 점, 시해사건 때 한 자리에 있었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가 <북쪽 숙소에서>가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노래를 선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미야코 하루미는 잠시 은퇴를 했다가 프로듀서로 재기하였는데 가수 김연자의 음반을 프로듀싱 한 일도 있었다. 노래를 들어보면 김연자의 창법이 미야코 하루미의 창법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쇼와 40년대~50년대에 수많은 히트곡을 낳은,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엔카 가수.
린(リン) - 북녘의 숙소에서(北の宿から)
한일가왕전 2회 MBN 240409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aolKFYizVk8
1973년 '선 뮤직 프로덕션'으로 이적한 ‘미야코 하루미’는
1976년 그동안 불러온 전통적인 엔카와 다른 감성적인 가요 ‘북쪽의 집에서’(北の 宿から)를 발표하여 앨범판매 143만 장이라는 큰 흥행을 가져온다.
이 노래는 12월 엄동의 겨울에 발표되어 추운 겨울 연인을 향한 애틋한 여심을 발라더한 대중가요로 노래하여
대 히트를 기록하면서 ‘미야코 하루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던 노래이다.
1976년 이와 같은 대 히트곡 ‘북쪽의 집에서’로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받게 된다.
1976년 12월 9일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 중 하나인 ‘산케이신문’(産業経済新聞)에서 발행하는 ‘주간 산케이’에 ‘하루미의 아버지는 일본인이 아니다.’ ‘이러한 하루미에게 일본의 대표적인 상을 줄 수 없다.’ 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미야코 하루미’는 우여곡절 끝에 레코드 대상을 받았지만 ‘이즈오섬’(伊豆大島)을 소재로 만든 ‘아가씨 동백꽃은 사랑의 꽃’을 부를 때마다 환호하던 함성과 ‘눈물의 연락선’과 ‘북쪽의 집에서’를 부를 때 함께 울던 눈물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한마디의 말에 차가운 냉소로 돌아서는 비정함을 바라보며 가수 생활을 그만두려 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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