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영란(英蘭)전쟁]
무역 패권 놓고 20년새 3번 전쟁…
영국이 해상 강국 됐죠
지난 7일 미국무역대표부가 160억달러(약 17조9360억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오는 23일부터 관세 25%를 물리겠다고 했어요. 앞서 미국이 중국산 제품 340억달러(약 38조5900억원)어치에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대응한 데 이어 나온 조치예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나라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더욱 심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17세기 후반 영국과 네덜란드도 향신료 무역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습니다. 당시 갈등은 함선과 군대를 동원한, 말 그대로 '무역 전쟁'으로 이어졌어요.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은 아시아에서 무역을 누가 주도할지 결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시아로 진출한 유럽 열강들
유럽 세력이 아시아로 통하는 항로를 열고 진출할 때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은 나라는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이들은 16세기에 동남아시아에 자리를 잡고 중국과 일본까지도 진출하지요. 하지만 포르투갈은 곧 강력한 해상 국가였던 네덜란드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맙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동남아시아에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향신료를 독점해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 무렵 영국 동인도회사도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 했어요. 영국은 이미 인도네시아 자바섬 등에서 많은 후추를 확보했지만 후추로는 기대한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향신료는 정향이나 육두구였고, 이런 고급 향신료가 재배되는 곳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미 진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 지역에서 극단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경쟁으로 향신료 가격이 크게 오르자 두 국가는 협정을 맺어 향신료 가격과 구입 비율을 조율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미 향신료를 독점하고 있던 네덜란드로서는 이러한 협정이 불만이었어요.
결국 네덜란드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합니다. 네덜란드가 개발한 향신료 재배지였던 암보이나섬(현재 인도네시아 암본섬)에 있던 영국 상관 주재원 18명을 불법 침입 명목으로 체포하고 9명을 사형해요. 영국으로선 해상 강국이던 네덜란드에 저항하기 힘들어 당분간 인도 쪽으로 진출에 집중하게 됩니다.
◇"영국이 점령한 항구에는 영국 화물선만"
한편 영국에서는 1651년 '항해 조례'를 발표했어요. 영국이 점령한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화물선은 영국 소유라고 밝힌 거죠. 네덜란드 선박이 영국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해 해상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뚜렷했습니다. 이렇게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이듬해 제1차 영란전쟁이 벌어져요. 네덜란드가 한자어로는 화란인데 여기서 '란(蘭)'을 따온 거예요.
네덜란드 해군은 초반에 승리를 거듭하며 영국을 위협했지만 영국은 장비를 잘 갖춘 대형 군함을 이용해 네덜란드에 큰 타격을 입혔어요. 생각보다 큰 손해를 입은 네덜란드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화해 조약을 맺습니다. 영국의 항해 조례를 인정하고 암보이나섬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했지요.
▲ 제2차 영란전쟁 때 네덜란드 로이테르 제독이 영국 전함 13척을 불태운 ‘메드웨이 기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그 후 양국은 화해 조약을 맺지만 몇 년 뒤 3차 전쟁이 벌어집니다.
|
그 후 영국에선 찰스 2세가 국왕에 올라 계속 네덜란드를 견제하고자 했어요. 또 네덜란드가 경영하던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을 공격해 차지했죠. 영국은 다시 한 번 선전포고를 해 제2차 전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또한 1차 전쟁 이후 많은 준비를 해온 상태였어요. 게다가 영국은 전쟁 중이던 1666년 집 1만3000채가 불타 버린 '런던 대화재'도 겪었어요.
특히 네덜란드 미힐 데 로이테르 지휘관은 런던 코앞의 템스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국의 주력 전함을 불태우고 유유히 돌아와 영국에 큰 굴욕을 안겼습니다. 전쟁을 이어갈 수 없었던 영국은 1667년 네덜란드 브레다에서 화해합니다. 이 '브레다 조약'에서 영국은 일부 지방에 항해 조례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영국이 경영하던 동남아시아 주요 항구를 네덜란드에 내줍니다. 그 대가로 영국이 받은 곳이 바로 지금의 뉴욕이에요. 향신료 무역을 위한 항구가 신대륙 정착지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기였어요.
◇해상 강국으로 부상한 대영제국
영국이 복수를 준비하던 중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프랑스의 중죄인이 네덜란드로 도망가고 네덜란드가 그 죄인들을 보호해주기로 한 것이죠. 프랑스 국왕 '태양왕' 루이 14세는 영국 찰스 2세와 함께 네덜란드와 전쟁을 하자는 비밀 조약을 맺었어요.
이렇게 1672년 제3차 영란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영국이 우세한 적도 있었지만 뉴욕을 네덜란드에 다시 빼앗기는 등 밀리기도 했지요.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돈이었어요. 전쟁 때문에 영국 국고가 바닥나 버렸지요. 네덜란드도 프랑스까지 뛰어든 전쟁을 지속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두 나라는 다시 화해합니다. 이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남아메리카 수리남을 확실하게 차지하는 대신 영국은 뉴욕을 돌려받았어요.
3차 전쟁 후 두 나라는 큰 변화를 겪었어요. 네덜란드는 한때 해상 열강이었지만 연이은 전쟁으로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어요. 영국은 전쟁 후 명예 혁명을 겪어 왕조가 바뀌었지요. 찰스 2세의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이 돼 가톨릭 부흥 정책을 펴자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영국 의회가 반발했습니다. 의회는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새로운 왕을 세웠지요. 흥미로운 점은 이때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영국 왕이 된 사람이 네덜란드의 실질적 통치자, 오렌지 공(公) 윌리엄 3세였다는 사실입니다. 윌리엄 3세는 제3차 영란전쟁에서 네덜란드 총사령관으로 활약하기도 했죠. 영국 국민은 한때 적국의 총사령관을 국왕으로 맞이한 거예요.
3차 전쟁 후 양국은 약 100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했지만 1780년 영국이 전쟁을 선포한 후 네덜란드 해안을 봉쇄합니다. 그 후 3년여 동안 이어진 전쟁은 네덜란드가 항복하면서 끝나죠. 이로써 영국은 해상 강국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합니다.
☞식민 지배를 위한 동인도회사
대항해 시대 유럽 각국에서 세운 아시아 무역회사예요. 회사 우두머리가 식민지 총독을 겸하기도 했죠. 영국 동인도회사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규모는 네덜란드의 것이 더 컸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이기도 해요. 포르투갈, 프랑스, 스웨덴도 비슷한 성격이나 이름을 가진 동인도회사를 만들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에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이를 따라 한 거예요.
안영우·명덕고 역사 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