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도시 인천에는 용현동 물텀벙거리, 인현동 삼치거리, 차이나타운의 밴댕이회거리 등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음식 거리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 인하대학교 인근 용현동 교차로의 물텀벙거리는 오랜 세월 십수개의 물텀벙집이 성업 중이던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주변의 재개발로 대여섯 곳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이곳의 ‘성진물텀벙’만은 여전히 유명세를 떨치며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성진물텀벙은 이곳에서 제일 처음 문을 연 원조집이다. 1972년 전병찬(80)·우금련(81)씨 부부는 비가 줄줄 새는 낡은 움막집을 월세로 얻었다. 원래 신포동에서 대폿집을 운영했는데, 사람 좋은 주인장에 외상손님이 자꾸 늘다 보니 그만 쫄딱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다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전씨는 인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천덕꾸러기 생선, 물텀벙이 생각났다.
“예전에 여기 어부들은 머리만 크고 미끈거리는 물텀벙이 그물에 걸려들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다시 물에 텀벙텀벙 던져 버렸대요. 그래서 이름이 물텀벙이었어요.”
전씨는 살은 적지만 국물이 맛있게 우러나는 물텀벙이 탕거리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큼직한 양은냄비에 물텀벙을 툭툭 잘라 넣고 채소를 듬뿍 올린 다음 해장국처럼 시원하게 뽑은 육수를 부어 200원씩에 팔기 시작했다. 서해의 수산물과 노동자들이 모이는 인천항에서 전씨의 물텀벙탕은 곧 큰 인기를 모았다. 싸고 푸짐한 데다 안주 겸 끼니 해결에도 그만이어서 연안부두의 노동자들에게 입소문이 난 것이다. 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너나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물텀벙탕을 처음 시작한 지 3년 만에 움막집을 헐고 이층집을 올릴 정도였다. 지금의 번듯한 3층 건물은 2008년에 지은 것으로 주차장을 완비하고 엘리베이터까지 달아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출입하기 편하다.
▲ 주방장 고정미씨
인천 용현동을 ‘물텀벙거리’로 만들다
이 집의 성공에 힘입어 용현동 네거리 일대에 하나둘 물텀벙탕 집이 늘어났고 마침내 물텀벙 특화 골목까지 이루게 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값싼 술국이었던 음식이 어느새 별미 음식으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인천 사람들이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생선은 다름 아닌 아귀다. 못생기고 살이 적어 천대했던 우리와 다르게 서양에서는 일찌감치 고급 어종으로 대우받아온 생선이다. 서양에서는 쫄깃한 잡부위는 버리고 주로 포실한 살만 골라 요리한다. 그런가 하면, 아귀의 간은 한국과 서양에서 두루 사랑받는 특별한 부위. 화이트와인을 넣고 찐 아귀 간은 부드럽고 고소해서 고급 서양요리로 각광받는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선 아귀 간을 빼서 손님들을 투덜대게 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아귀가 잘 잡히지 않아 몸값이 오르다 보니 생물보다는 내장을 분리한 냉동 아귀 살만 가져다 쓰는 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만 있고 간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쫄깃한 위포까지 한꺼번에 넣어 제대로 요리해주는 식당은 더욱 드물다.
마산이 바닷바람에 말려서 쫀득하게 쪄내는 아귀찜으로 유명하다면 이곳 인천에서는 연안부두에 막 도착한 신선한 생물 아귀로 속 시원하게 끓여낸 탕을 알아준다. 이 집도 찜과 탕, 백숙 등 다양한 아귀 요리 메뉴가 있지만 이 중에 백미는 단연 아귀 간과 위포를 넣어주는 ‘아구지리’다. 아구지리는 콩나물을 냄비 바닥에 넉넉히 깔고 생아귀를 큼직하게 토막 쳐 안친다. 여기에 미더덕과 아귀 간, 미나리, 쑥갓 등을 듬뿍 올린 뒤 뽀얀 육수를 붓고 아귀 위포를 올려 상에서 직접 끓인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 뚜껑을 열면 향긋한 미나리 향에 군침이 쓱 돈다. 미리 삶아서 맨 위에 올려주는 아귀 위포는 순댓국의 오소리감투처럼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좋아 미나리와 함께 초고추장에 찍어 먹다 보면 입맛이 확 살아난다. 육수는 한입 뜨자마자 개운하고 진한 맛이 남다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고아낸 맛으로 이보다 더 좋은 해장국이나 술국이 또 있을까 싶다. 아귀 살도 마찬가지! 탄력 있는 물렁뼈와 쫄깃하고 부들부들한 속살이 입안에서 요동친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 때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고소한 맛, 아귀의 간이 크게 자라 있는 상태여서 다른 계절보다도 넉넉히 맛볼 수 있다. 건지를 건져 먹고 남은 구수한 국물에 공깃밥을 볶아 먹는 맛도 별미다.
20여년 전 전씨가 마산까지 가서 먹어 보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아구찜’도 인기다. 찜에 더러 마늘을 너무 넣어 먹고 나면 속이 쓰린 집도 있는데 이 집은 마늘은 물론 다른 양념도 전혀 과하지 않다. 싱싱한 아귀를 사용하기에 양념을 세게 하지 않고 아귀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질 좋은 고춧가루를 사용해 고추 특유의 매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양 또한 푸짐하다. 쫄깃한 살점을 기호에 맞춰 초장 또는 와사비간장에 찍어 먹으면 톡 쏘는 맛과 함께 얼큰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살아나는데, 이 모두가 손님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창업주 전병찬씨가 직접 주방에서 조리법을 계속 연구 개발해온 덕분이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인천의 전통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되었다. 전씨 부부의 아귀 요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찾았을 정도로 유명하다. 2005년 6월 이곳에서 오찬 기념으로 주인장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입구에 걸려 있다. 인천 출신 개그맨인 이혁재씨와 지상렬씨도 단골이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이 집과 인연을 맺게 된 주방장 고정미(55)씨는 40년 가까이 성진물텀벙의 맛을 지키고 있다. 이 집 아구지리의 맛은 정성껏 준비하는 육수에서 나온다. 밴댕이(디포리)와 멸치, 아귀 뼈, 다시마, 무 등을 넣고 다섯 시간 정도 푹 끓여서 된장을 풀어 간을 하기에 더욱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특히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아 더 개운한 맛을 낸다고.
찜용은 살이 풀어지지 않도록 일부러 쫄깃한 식감의 선동을 구해 살 부분을 넉넉히 넣고, 탕용은 연안부두에서 매일 싱싱한 생물을 들여와 살과 함께 뼈에 붙은 껍질 부분까지 넣는다. 다만 더운 여름철 아귀가 바닷속 깊이 들어가 잡히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국산 선동으로 안치기도 한다. 찜이나 탕이나 염도계로 쟀을 때 5도를 넘지 않는다. 싱거우면 초장과 간장을 찍어 먹을지언정 짜지 않게 요리하는 것이 이 집의 전통이다.
1990년에 송도에 분점을 내면서 전씨 부부는 송도점을 맡고, 용현동 본점은 오래전부터 일을 돕던 아들 전성욱, 며느리 한순자씨가 운영하고 있다. 그 흔하던 아귀 가격이 자꾸만 올라 어려움이 있지만 정성과 맛만큼은 대를 이어 여전하다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