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처님이시여, 부처의 자성 자리를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설하여 주시었다.
부처는 감관의 한정을 넘어 과도 아니요 인도 아니요, 모든 법의 상을 여의었다.
경계의 법도 또 그 몸을 부처는 하나도 보지 않는다.
보여지는 법이 다시없으면, 어떻게 분별을 일으키겠나.
비록 분별의 밖에 있어도 그렇다고 법이 없는 것 아니다.
법은 법대로 스스로 있다.
나와 내 것의 이치를 몰라 오로지 말에만 사로잡히면 유와 무의 한쪽에 빠져 자기도 망치고 세상도 망친다.
잘 이 법을 보아 살피면 모든 허물을 여읠 수 있으리.
5 대혜보살은 부처님의 힘을 받아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교외도들이 말하는 바 법의 불생불멸과 부처님의 설하신 불생불멸은 같은 것입니까?"
"대혜여, 내가 설하는 법의 불생불멸과 외도들이 설하는 불생불멸과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외도들은 법에 실성과 실상이 있어서, 나지도 않고 또 변하지도 않는다고 이른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유ㆍ무의 범주에 떨어지는 설을 세우지 아니한다. 내가 설하는 바는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니며, 또는 생하는 것이나 멸하는 것을 여의고 있다. 어째서 무가 아닌가? 일체의 만법은 다 꿈과 같은 까닭이다. 또 어째서 유가 아닌가? 일체 만법은 유도 없고 무도 없다고 설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느 법은 다만 자기가 보는 바에 불과하다고 깨닫고 망상을 여의면, 세상의 번거로운 일은 아주 쉬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망상은 어리석은 범부가 가지는 것으로서 성자의 일은 아니다.
대혜여, 미혹한 마음은 허망한 경계를 헤아린다. 비유하면, 어린아이들이 신기루나 요술쟁이가 만든 인형을 보고, 실물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을 보고 멸을 보는 것이나, 유위로 보고 무위로 보는 것도 다 이와 같은 것이다. 인형의 출입을 보고 생멸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혜여, 세상 사람은 이와 같이 허망한 생멸의 생각을 일으킨다. 성자는 그렇지 않다. 허망이라 하는 것은, 법의 성품과 같이 보는 것이 아니요, 뒤바뀐 소견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법의 본성을 유라고 고집하여 적멸로 보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허망한 분별을 여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무상으로 보는 것은 수승한 일이다. 상을 보고 이에 집착하는 것은 미혹의 생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만일 상相을 보지 아니하면 분별이 없을 것이다.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진실한 도리를 보고 분별심을 버리며, 부처가 안으로 증득한 성지를 얻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서 적멸ㆍ열반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6 "부처님이시여, 삼세의 모든 부처는 항가 강가의 모래알과 같다고 설하신 것은 무슨 뜻이오니까?"
"대혜여, 말대로만 들어서는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가장 뛰어나서 모든 세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비유로써 미칠 수가 없다. 다만 비유에 의하여 그 일부를 다루는 까닭이다. 중생은 항상 세상에 집착하여, 좋지 못한 생각을 더하여 가기 때문에 생사의 구렁을 휘도는 까닭으로, 저들로 하여금 그것을 싫게 하고, 수승한 희망을 내게 하기 위하여, 부처는 이루기 쉽고, 부처는 만나기 쉽다는 것을 일러서, 부처는 항가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이 있다고 설한 것이다. 저 부처의 교화를 받는 어떤 이를 보면 '나는 부처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우담바라 꽃을 만나는 거와 같이 드물다'고 배우고 있다.
대혜여, 진실한 여래는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 보는 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혹 때에 따라서 비유를 설하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항가 강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거북과 고기와 코끼리와 말들이 밟는 곳이 되지마는,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언제든지 맑아 있다. 부처의 성지는 항가 강과 같고, 자재한 힘은 모래수와 같은데, 이교도의 외도들인 고기와 자라와 거북들이 다투어 와서 흔들어 놓아도, 여래는 한 생각도 분별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 무슨 끼닭인가? 여래는 그 본원에 의하여 선정의 즐거움을 가지고 중생을 편안하게 함은 항가 강의 모래가 사랑과 미워함을 갖지 않는 거와 같은 것이다.
대혜여, 항가 강의 모래 수가 한이 없는 거와 같아서, 여래의 광명도 한이 없다. 모든 중생의 마음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모든 부처의 회장을 비춘다. 또 항가 강의 모래는 집어내어도 줄지 않고 모아 쌓아도 더하지 않는 거와 같아서, 부처는 방편의 지혜로써 중생을 다루는 데 증감이 없다. 그것은 부처의 법신은 세상의 보통 몸이 아닌 까닭이다.
또 항가 강의 모래를 짜서 기름을 얻을 수가 없는 거와 같아서, 부처는 어떻게 하든지 중생의 고통에 눌리더라도 저들이 다 열반을 얻지 못하면, 전법계에 뻗쳐서 깊은 원력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어째서냐 하면, 대자대비한 마음을 모자람 없이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 대혜여, 항가 강의 모래가 물을 따라서 흐르고 거슬러 흐르지 못하는 거와 같아서, 부처의 모든 가르침도 열반의 흐름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혜여, 이러한 이치에 의하여 여래는 항가 강의 모래 수효 같다고 말한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노래하여 보이셨다.
진실한 것을 보고자 하거든, 분별을 버리고 좋은 방법을 닦아라.
반드시 부처를 보아 받으리.
세상은 꿈과 같고 재물은 환과 같다.
만일 사람이 이 이치를 알면, 세상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리라.
미迷한 세계는 마음에서 일어나서
미하여 망령되게 보는 바가 된다.
미를 여의어서 세계가 없으니,
진실하게 알면 더러움을 여의리라.
그린 그림에 높낮이 있어 보이기는 하여도 잡을 수는 없다.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아지랑이와 같고 꿈과 같나니.
세상의 분별은 다 공한 것, 미한 것은 꿈이요 또 환幻이다.
모든 집착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한 세계는 의지할 곳 없다.
물건은 본래 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공하여 자성이 없다.
인연을 따라 있는 것에 미하고,
생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에 의하여 성품이 없는 그 가운데서 물건이 일어난다.
다만 이 말이 없으면 일어나는 물건도 또한 없으리.
악한 습관에 익혀서 나타나는 형상에 아득히 헤매고 온갖 형상을 그대로 믿어 헤아릴 것 없는 것을 그대로 헤아린다.
헤아림 없으면 진성이 나타나 참된 공을 스스로 보리라.
첫댓글 당최. 어러버서 무슨 뜻인지 이중생은 모르겠나이다~~
한문이 많아서 찾아 봐가며 진득하게 읽어야제 ㅎ 건강하게 잘 지내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