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입맛은 내려가지 않는다
역시 담양은 대나무 고장이다. 전날 소쇄원에서
본 대나무밭은 이곳 담양읍내 녹죽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11년 전 개장한 9만 4천평 규모의 대나무밭 녹죽원은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등 재미있게 붙여진 8개 코스 2.4킬로에 달하는 죽림욕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대나무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록차가 자생해 특산물로 팔리고 있다. 관광객들은 바람에 대나무 잎이 부딪치며 내는 '쏴' 소리에 정신까지 맑아진다. 나는 전날 광주에서 자고
이날 녹죽원을 찾았는데 굵고 키가 큰 싱싱한 초록색 대나무가 쭉쭉 뻗은 것이 대한민국의 드높은 기상을 보는 것같아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나는 매일 커피를 한잔 마셔야 입맛이
개운하다. 이번 여행 중 나는 혼자 커피 마시러 가기도 그렇고 경비도 아낄겸 불랙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셨다. 그런데 이날 아침에는 커피가
떨어져 마시지 못했다. 녹죽원 관람 후 점심을 짜장면으로 때우고 버스터미날을 향해 걷는데 '파리바케트' 간판이 보였다. 요즘 미국에도 진출해
눈에 익은 빵집이다. 그러나 경험해 본 일은 없다. 나는 발품도 쉴 겸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니 무슨 커피냐고 되묻는다. 나는 그냥 불랙으로
달라는데 종업원은 못알아 듣는 표정으로 메뉴판을 가리킨다. 맙소사, 메뉴에는 커피 종류가 열가지도 넘는다. '아메리카노' '카페모카'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그밖에 처음 보는 이름도 많다. 나는 갑자기 촌사람이 되어 멍하니 메뉴판을 보다 이태리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격이 3천 5백원이란다. 조금 전 짜장면도 3천 5백원이니 커피와 점심값이 같은 셈이다. 그런데 후일
서울에서 친지와 만나기로한 호텔의 커피값은 1만 5천원인데 2만 원이상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물론 자리값이겠지만 미국돈 20불인 셈이다.
미국에서 맥도날, 버거킹 같은데는 어디가나 크기에 관계없이 1불이다. 물론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에는 종류에 따라 3,4불 이상짜리도 있지만
내가 마시는 일반 커피는 2불 50전 정도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 그것도 지방 소읍아닌가 너무 비싸다.
요즘 한국 대부분 지역에 커피전문점들이
흔하다. 파리바케트는 읍소재지는 물론 웬만한 면소재지에서도 흔히 보인다. 이밖에 다른 커피점까지 합하면 숫자가 엄청날 것 같다. 구례에서 겪은
일이다. 아침 5일장 장터에서 국밥을 먹는데 장사꾼 차림 중년 몇사람이 종업원에게 근처 파리바케트에서 커피 넉잔 사 오라고 지시한다. 이들 단골
식당인 모양이다. 이들은 능숙하게 "카페라테" "카페모카" "아메리카노"하고 소리친다. 그러자 옆애서 행주치마에 손을 닦고 있던 국밥집 주모도
"나도 카페라테"하며 합세한다. 나는 순간 깜작놀라 여기가 과연 전라남도 구례읍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날 아침 내가 먹은 소머리국밥이
5천원이니 커피 2잔 값도 안되는 셈이다. 내가 이민할 당시에는 고작 다방커피였는데 그동안의 변화가 너무 놀라웠다. 또한 한국에는 이러한 커피
열풍을 말해주듯 수많은 바리스타 양성학원과 전문대학까지 있다. 심지어 천주교 신부도 바리스타가 되어 성당에 카페를 꾸며 봉사자를 양성하는 경우도
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한국 커피 원두 수입량은 매년 급증해 2013년에는 7억불 규모이다. 그리고 1인당 1년 커피소비량은 평균
490잔, 금액으로 17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소비량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양복에 갓쓴 것처럼 어색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또 한가지 우리 조국의 낫선 풍경을
말해야겠다. 대한민국에는 담양의 대나무처럼 싱싱한 쭉쭉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는 물론 어느 시골에 가도 쭉쭉 뻗어 올라가는 것이 고층
아파트 숲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물론 비좁은 땅에 효과적으로 많은 세대를 수용할 수있는 아파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농현상으로 빈집이 많은 시골 논 한가운데 우뚝 선 10여 층 아파트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농촌사람도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 잘못이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외국 어디에 가도 우리나라처럼 도시, 농촌 가리지 않고 고층 아파트 짓는 곳은 보지 못했다. 물론
재래식 부엌과 화장실 등 옛 집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이나 하다 못해 이웃 일본처럼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 낮은 연립주택이나 꽃담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을 은연 중 자랑하는 것이다. 아파트
이름도 '푸르마' '푸르지오' '자이' 등 외국어인지 우리말인지 뜻을 알 수없게 지어 놓았다. 강원도 태백 산골에서도 논 한가운데 생뚱 맞게
서있는 10여 층 아파트를 보고 기겁했다. 나는 제주시내 60층짜리 빌딩이 들어선다는 뉴스를 보고 언짢았다. 주변 경관은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든
빌딩이든 높게, 높게만 지어 올리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때 우리나라도 북한과 빌딩 높이로 경쟁한 적이 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70년 대 평양 아파트를 의식해 우리도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또한 서울 63빌딩에 자극받은 북한이 평양에 103층 호텔을 짓다 힘에겨워 20년 이상 흉물스럽게 방치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는 50층 이상 고층아파트가 흔하다. 또한 내후년 완공된다는 높이 5백 미터가 넘는 123층, 108층의 초대형 빌딩들이
서울과 부산에서 건설 중이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한국에 꼭 필요한 것인지, 교통대책이나 환경평가 등은 제대로 검토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정부가 재벌기업에게 특혜를 베푼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만일 국민들이 초고층 빌딩들이 나라의 자랑이며, 높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신분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오르는 것은 담양 대나무 숲이나 울창한 소나무들 그리고 국민들 삶의 질과
행복지수여야 한다.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하늘로 치솟는 시멘트 덩어리는 인간 오만과 허영을 보여주는 바벨탑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조국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국에 오기 전 외양간 쇠죽 끓이는 내음과 거름내나는 황토길을 막연하게나마 기대했던 내가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깨우친다. 얼마 전
경제관계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한번 높아진 입맛은 여간해서는 내려가지 않는다" 자본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약점을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하긴 개구리가 순간순간이나마 올챙이적 생각을 한다면 이미 개구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욱 씁슬하다.
(2014.6.8 뉴욕
虛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