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의식과 전통보다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의도인가?
주님 앞에서 점검하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당화되거나 올바른 생각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의식과 전통은 처음에는 주님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을텐데 시간이 흐르며 구분과 잣대로 변해버린 것을 봅니다.
매일매일 주님 말씀을 담을 새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만 오직 예수님만 눈에 보였던 중풍병자의 친구들.
지붕을 뜯고라도 예수님께 병든 친구를 고쳐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사람들처럼 다른 기준이 아니라 오직 주님 말씀을 담기 위한 새 부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8절)
서기관들의 삐딱한 시선과 마음이 제게도 보일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중풍병자의 고침을 보고도,죄인들을 긍휼히 여김을 보고도 그 행한 일에 대한 감탄이 아닌 삐뚤어진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상의 삶 가운데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이 정직하고 선 해야 함을 묵상합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시기심에 차 있으면 대상을 바르게 볼 수 없으며 주시는 은혜마저도 받을 수 없음입니다.
칭찬받을만한 사람을 칭찬하고, 때로 실수하는 사람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바르게 묵상하고 순종할 줄 아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중심의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도 읽고, 신앙서적을 읽어도 쉬이 변하지 않음은 나의 모습이 낡은 가죽 부대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진리가 들어와도 담지 못하는 낡은 가죽부대에서 새 부대가 되어 진리를 가득 담고 또 나누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친구의 병고침을 위해 지붕을 뜯고 친구를 들어올려 예수님을 뵙기까지 중풍병자와 네 사람의 우정과 믿음을 봅니다.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본인이 아닌 타인을 위해 간절할수 있다는 것이 더 대단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 믿음을 보셨나 봅니다.
중보기도도 그래서 힘이 있나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더 기뻐받으심을 믿습니다.
나도 누군가를 예수님께 인도하고, 중보로 간절히 같이 기도할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우리의 죄때문에 이 땅에 오신 주님!!
지금도 우리의 죄때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 매일 너무나 보잘것 없는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죄인이 교만까지 하니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이름으로 거룩한 삶 되길 기도합니다.
육신의 삶은 내일이되고 열흘이 되고 백 년이 되면 먼지 일뿐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고 하나님영광을 위한 삶에 소망을 두며 살길 기도합니다.
주님 인도하여 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담대하게 승리하길 기도합니다.
1장의 회개에 이어서 2장에서는 죄사함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배조각을 낡은 옷에 붙여서 사용할 수 없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을 수 없음은 회개를 통한 죄사함이 없이는 우리의 삶은 낡은 옷이고 낡은 가죽부대일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은 생배조각과 같고 새 포도주입니다.
나 삶이 회개를 통한 새로움이 없는 삶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의미없는 허무한 삶이됩니다. 주님을 통하여 날마다 새롭게 되기 원합니다. 교회 다닌지 오래된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매일매일 말씀과 은혜를 통하여 새롭게 되는 내 자신이 되기 원하고 내 삶이 생배로 만든 새옷과 같은 삶 새로운 가죽부대에 새롭게 채워진 신선한 포도주와 같은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안의 고인물이 아니라 샘솟는 샘물과 같은 존재가 되기원합니다.
16-17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율법만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모르는 것보다 이 땅의 불쌍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품어주고 살피며 주의 선과 사랑으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함을 배울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땅엔 수많은 사람이 있고 태어나 죽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교제의 시간을 거칩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만나온 이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로 대했던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한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이유로, 좀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이유로 멀리하며 배제한 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하며 내 멋대로 판단하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변하지 않을까 봐 피하는 게 답이다 생각했었습니다.
아픈 이들 보다, 약한 이들 보다 더 악한 나도 거둬주시고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기만 하고 나누질 못하였습니다.
헌금 꼬박꼬박 하고 교회에 빠짐없이 나가는 것보다
(물론 이도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내 믿음이 어딜 향하고 어딜 향해 나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틀에만 얽매여 사는 믿음이 아닌 내 온 마음이 주가 주신 선함으로 가득 차 주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며 믿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어제 7~8시간 동안 회의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남을 향한 오해가 쌓이고 싸여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진 분들과의 대화는 정말 소통불가였습니다.
구약 율법의 잣대로 예수님과 논쟁하는 바리새인의 모습과 같이 저의 마음도 이렇게 굳어진 부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매일 말씀을 묵상할 때 깨닫게 하여 주셔서 주님의 말씀들이 저의 굳은 생각들과 습관들을 쪼개어 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심기고 열매 맺는 그런 마음밭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와 축복을 잘 담아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유익한 종으로 이 땅에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