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심장 부여잡고
나아가리, 까마귀 내려앉은
황량한 시체밭으로.
가련하게도 죽어 누운 동포들을,
한때 어깨 나란히 하고서
나아갔던 성장의 발판들을
염하고 묻어주기 위해서.
불씨 묻은 재를 가슴팍 가득히
꽉꽉 채워넣은 초췌한 전사가
푸석한 머리 휘날리며 걸어가네.
눈은 저 멀리, 머나먼 지평선,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바라보네.
그의 옷은 다 헤져 너덜너덜,
먼지 날리는 황야를 하염없이 걷네.
한때는 내리꽂히는 번개처럼
강렬하게 전장을 지배하고
다른 때는 번져가는 들불처럼
묵묵히 남 상처 핥아주던
전사는 그 날 패배하여 절뚝절뚝,
늙은 개처럼 비겁하게도
참담한 심정 그러안고 도망했다.
층층이 구름 쌓여 어둑한 저녁 하늘
번개는 구름 사이 으르렁대고
비는 융단처럼 땅 깔아뭉개는데
남자는 마치 갓 태어난 듯이
태초의 모습으로 서서 울고 우짖어
자백하듯 눈물 흐르고 이 악무는데
귓가엔 여전한 동지들의 귀곡성.
새 파먹고 휑뎅그렁한 눈구멍
벌레 갉고 뭉개진 살점
헤어졌다 재회한 동지들은
생전 늠름한 풍채는 간데없이
싱거운 잔해만 남아 간신히
시간신의 손길에 저항하다 마침내
용맹한 겁쟁이의 손에 바스라진다.
짓밟힌 평원 지나간다.
말라붙은 강바닥 건너간다.
산 정상 덮친 벼락이 내어준
회한의 불씨와 인고의 흉터.
헐벗은 무덤지기의 잿빛 발자국에
새초롬히 싹 하나 틔워오르고
햇살 한 줄기 그 가는 길 비추네.
첫댓글 벅차고 처절한 느낌입니다.
부디 탈영병 앞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하시길~
싸울 만큼 싸웠으면 탈영할 권리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사자 만이 영웅은 아닙니다.
탈영하게 된 연유가 있겠지요.
전장을 누비며 싸웠는데 그 공을 알아주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겠지요
앞길엔 햇살 가득하길 바랍니다.
힘겹게 탈영했지만
앞날에 꽃길만 걸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