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 잡고 싶을텐데~~
기성 세대들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가오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일본어 가오라고 검색해 보면“얼굴, 낯”이라 설명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에 익숙한 이들은 흔히 일제의 잔재임을 알면서도
가오 선다, 가오 잡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충분히 무게를 잡아도 될 만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경우를 확인하게 됩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열왕기하 6장에 나오는 엘리사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때문에 비밀 군사 작전도 무용지물이 되자 아람왕은 도단에 있던
엘리사 선지자를 잡으려고 군사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6:14절입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이렇듯 엘리사가 머무르던 성이 아람군대의 포위를 당하자 사환이 겁을 먹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인 엘리사가 하는 기도를 보십시다. 6:17절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가 머무르던 성이 포위된 상황하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의 응답 하심으로 아람군대가 집단으로 눈이 가리워 지게 됩니다.
적군이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단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 성으로
포로로 끌고 오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저 같으면 집단 최면 같은 것을 행하여 인질로 잡았다면
그에 준하는 댓가를 요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엘리사는 포로들을 죽일까를 묻는 왕에게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하여 아람으로 돌려보내도록 합니다. 왕하6:23절입니다.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성경이 말씀하는 은사는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은 은사의 주인은 내가 아닌,
내게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때 바른 은사 사용임을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남다른 기도 응답을 경험했다면,
자기 과시나 얼굴을 내세우는 일이 아닌 공적 유익을 위하거나
드러내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받은 특별한 기도 응답의 역사를
자기 과시나 욕심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포로가 되었던 아람 군인의 입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분명히 자기 나라의 대군이 엘리사가 있던 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단으로 소경이 되어 버렸고, 앞 사람이 가는대로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적진의 중심지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는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더니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건없이 말입니다.
그러니 이들 군인들의 내면속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꿈도 꿀 수 없었겠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공생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동일하게 눈이 열려서 물질을 얻게 된다면 주신 물질로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적 바른 은사 사용은
은사를 행하는 자보다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적군의 부대원들을 송두리째 포로로 잡았다면 공치사나 자신의 치적인 양 포장할
법함에도 엘리사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고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조건없는 섬김과 사랑을 행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과 섬김을 선험적으로 경험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높고 깊은 사랑을 경험했다면,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이제는 그 사랑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