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 최장순
골똘히 생각을 받치고 있는 저쪽이 클로즈업된다.. 저 손은 지금 아득한 고민을 감당하고 있을까. 탁자의 찻잔은 이미 식은 듯하다. 문득, 생각을 괴었던 나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을 잡아준 따스함 덕분에 나는 고민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인간은 섬세한 손을 가졌다. 원숭이의 손이 인간과 닮았다지만, 세밀한 움직임은 따라올 수 없다. 원숭이의 두 손이 네 발의 일부라고 생각해 볼 때, 온전히 손의 역할만 감당하는 인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엄지가 짧아 다른 손가락 끝과 합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외부의 뇌’로 불릴 만큼 뇌의 가장 큰 지배를 받는 운동기관이자 감각기관인 손. 먹이를 사냥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온갖 감정을 표현하지만, 가만 살펴보면 손은 여러 의미를 집어 올린다.
손은 내력이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눈을 마주치고 얼굴부터 훑지만 맞잡은 감촉은 상대의 상태를 느낀다. 흘깃 바라본 손마디나 주름, 혹은 모양과 체온으로 직업은 물론 건강까지 추측할 수 있다. 언젠가 만났던 낯익은 그 손에 내심 얼마나 반가웠던가. 불현듯 경배의 입맞춤을 하고 싶어졌다. 저승꽃이 만발했던, 울퉁불퉁한 손마디에 지문마저 무뎌진 그 손은 잊히지 않는 뭉클한 손이다.
수상手相으로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한다. 손금은 애초 정해지기도 하지만 살아온 만큼 달라진 궤적이기도 하다. 생명의 길, 성공의 길, 감정의 길, 재물의 길, 손금과 지문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길이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기도 하고, 어딘가로 부터 다시 생겨난 작은 길들. 손이 예쁘다거나 밉다고 말하지만 손의 모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 손을 보면 그 사람의 내력이 보이는 까닭이다.
눈높이 아래에 두고 내려다보는 손. 그 손을 보고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그 사람의 지나온 길을 존 경함이다.. 손이 한 일에 대한 존경이다. 고운 손만이 예쁜 게 아닌 것도 그 때문이다.
손은 예술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일상을 리드미컬하게 지휘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악기를 다루는 등 단순한 기술을 넘어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손짓은 몸짓의 결정 같아 숨죽이며 관람하는 사람들 입에서 절로 찬사를 쏟아내게 했다. 점프를 한 뒤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뻗은 손은 기도하듯, 나비의 날개 짓이듯 아름다웠다. 천 개의 손이 있다한들 한 쌍의 손동작을 따라갈 수 있을까. 몸동작과 어울린 손은, 따로 떼어 놓은 천개의 손과 엄연히 다르다. 김연아가 가산점을 받은 것은 손과 표정의 자연스런 어울림이 빚어낸 예술성 덕분이었다. 스케이트 부츠에 갇힌 발과 발목이 점프와 착지의 하중을 이겨내고, 때로는 부상을 견디면서 만들어 낸 열정의 기운이 손끝으로 모아져 예술의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발레리나의 무수한 발동작이 결국 손으로 모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손은 공간언어다. 수화 통역사의 절도 있는 손동작은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간결한 언어다. 기자의 보도를 재빨리 전달하려다 보니 표정은 심각하지만 손동작은 마침표와 쉼표를 정확하게 짚는다. 좁은 공간에서도 최대한 의미를 전달해야만하기 때문에 흐름이 길지 않고 동작이 크지도 않다.
언젠가 목격한 남녀의 수화는 시끄러운 대화였다. 손동작은 반경이 컸고, 빨랐고, 표정은 화가 난 듯 찌푸리거나 상기되어 있었다. 그들의 동작에 슬며시 말소리를 입혀보면서, 다시는 그 둘의 만남이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우리가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듯 그들의 손은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재빨리 바람을 가르는 그들의 손은 거침없는 입이었다.
손버릇으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상대의 면전으로 튀어나간 권총 모양의 손짓이 삿대질로 오인되었다. 오랜 군 생활에 익숙한 손동작이었다.
“여긴 군대가 아니잖아, 손버릇 좀 고쳐!”
불쾌해진 상대가 고함으로 되받아쳤을 때 아차, 싶었다.
손은 무기다. 주먹을 쥔 손은 공격적이고 주먹을 편 손은 개방적이다. 주먹을 상대의 면전에 들이대거나 몸을 가격할 때는 무기로 변한다. 움켜쥔 주먹은 결연한 의지이며 분노이며 저항이다. 기분 나쁘다고 휘두른 주먹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를 지켜준 주먹은 선의의 방어무기다. 불화했던 누군가와 화해하고 싶다면 주먹 쥔 손을 펴서 상대에게 내밀어야 한다. 만난 손과 손은 사교이자 화해다.
이렇듯 손은 내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을 나타내는 신체의 온도계다. 지나치면 무례가 되고 치한으로 오해받는다. 손은 뇌의 하수下手지만, 잘 쓰면 약이고, 함부로 쓰면 독이 된다. 부드러운 손길은 애정으로 이어지지만, 희롱은 폭력이 된다. 김정남을 독살한 무기는 독극물을 바른 손이었다. 단 한번 얼굴을 비볐을 뿐인데 죽음을 부른 것이다. 아무데서나 담배를 쥔 손은 불특정다수의 건강을 해치고, 악성 댓글을 다는 악플러의 손은 치명적인 무기다.
손은 표정이다. 악수는 우호, 박수는 칭찬과 격려의 표시다. 두 손을 비비면 비굴한 아부가 된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는 말은 큰 죄를 진 것에 대한 용서를 비는 행위다. '손들어!' 명령하는 것은 저항하지 말라는 메시지이고, 전투 중 포로들이 두 손을 머리위로 번쩍 치켜올리는 것은 항복의 뜻이다. 치켜 올린 엄지는 상대를 웃게 만들고, 세운 중지로 상대를 가리키면 욕이 되고, 손바닥을 상대에게 흔들면 반가움이 된다.
손은 마음이다. 마음 가는 곳에 손이 따라간다. 말하기 곤란한 어렵고 미묘한 상황에서 손은 풍부한 어휘력을 발휘한다.‘괜찮아?’묻지 않아도 손이 먼저 상대의 손이나 이마에 얹어질 때 마음은 충분히 전달된다.
두서너 달에 한 번꼴로 아이들이 부대를 찾아왔다. 모처럼 전방 골짜기가 환해지던 그때, 막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아들과 딸에게 해줄 말이 많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혹여 마음이라도 상하게 할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잠자리에서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딸의 손을 토닥여주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손을 통한 마음과 마음은 훈훈했다.
‘손을 한번 바라보자'던 몽테뉴. 그는 손이 어떻게 약속하고 맹세하고 간청하고 위협하고 저주하고 가리키는지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손이 어떻게 기뻐하고 물어보고 놀리고 고백하고 아첨하고 명령하고 비웃는지, 확인하듯 나는 손을 들여다본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듯,, 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믿는다.
팔목아래의 작은 지체. 눈에 종속된 도구라 할지라도 손은 위대하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같은 몸에 붙어 있는 손이라도 그것의 쓰임은 어느 일을 담당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밥을 먹는 손과 볼일을 해결하는 손. 하지만 손은 결국 홀로가 아닌 함께 해야 빛나는 것. 박수가 그렇고 포옹이 그렇다. 쓰다듬거나 만지거나, 손은 결국 실천하는 마음의 도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