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글을 읽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은 '군(軍)' 과 '도행군(道行軍)' 의 용어 차이인데 좀 언급을 한다면
'군' 은 통솔 부대 규모의 단위로서 수 - 당 시기의 기준으로는 '1군' 당 '5천 - 2만명' 정도의 차이가 있음
'도행군' 은 '특수 지역 정벌' 을 목적으로 기본 '수개의 군' 단위로 편성된 사령관 직할의 '특수사령군' 임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 군 방식으로 접근해 더 쉽게 설명하자면
군은 소장(★★) 또는 중장(★★★) 계급이 맡는 '사단 or 군단' 으로서의 기본적인 대규모 편성단위로 볼 수 있고
도행군은 '지상작전사령부' 나 '제 2 작전사령부' 처럼 대장(★★★★) 계급이 전담한 특수 사령부라 보면 될 듯함
이에 근거해 먼저 고구려와 당 사이 있었던 3차례 전쟁의 당나라 측 동원전력을 보겠음
1차 고구려 VS 당 전쟁(645) : 당 태종 이세민의 대규모 고구려 원정
이세적의 요동도행군(6만 - 10만) + 장량의 평양도행군(4만 3천 - 7만)
+ 당 태종 친위군 6군(3만 - 12만) + 행군 도중 합류한 잔여부대(1만 - 3만)
+ 돌궐, 거란, 해족 등 이민족 부대 + 기타 특수병력, 보급부대(10만 이상)
▶▶ 최소 30만 - 최대 60만 동원
도행군으로 '요동도행군' 과 '평양도행군' 이 편성
대장(★★★★) 계급이 맡는 특수 사령부가 원정에서 2개 편성되었다는 뜻임
거기에 '황제 직속 친위대' 와 사령부가 편성되지 않은 기본 부대들이 더 추가
2차 고구려 VS 당 전쟁(661 - 662) : 백제 멸망 이후 단행한 대규모 원정
요동도행군 + 평양도행군 + 패강도행군 + 부여도행군 + 누방도행군 + 옥저도행군
6개 도행군(★★★★)으로 편성됨 ▶ 총 35군으로 최소 17만 5천 - 최대 70만 동원
(+ 여기에 김유신 휘하의 신라 지원부대도 더해짐)
3차 고구려 VS 당 전쟁(667 - 668) : 마지막 고구려 - 당 전쟁, 고구려의 멸망
요동도행군 대총관 겸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이세적 임명 + 그 외에도 수륙총관 다수 편성
마지막 고구려 원정인 만큼 수십만 병력 동원으로 추정 + 지원군으로 신라군 * 20만 동원
* 『삼국사기』 「김인문열전」
사실 당시의 군 관련 편성 기록이 당의 고구려 1 - 2차 원정 때에 비해 상세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도행군이 편성되었고, 그 사령관으로 백전노장인 이세적이 임명되었다는 것임
* 이세적은 당 태종의 대표공신인 능연각 24훈신 중 하나
지금으로 따진다면 일단 전쟁마다 기본적으로 대장(★★★★) 전담 특수사령군이 편성되었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렇다면 찐으로 100만 대군이 동원되었다는 수 양제의 고구려 2차 침공은 편성 기록이 어떻게 남아 있는가??
今宜授律啓行 分麾届路 掩渤海而雷震 歷扶餘以電掃 比戈按甲誓旅而後行 三先五申必勝而後戰 左十二軍 出鏤方·長岑·溟海·蓋馬·建安·南蘇·遼東·玄莬·扶餘·朝鮮·沃沮·樂浪等道 右十二軍 出黏蟬·含資·渾彌·臨屯·候城·提奚·踏頓·肅愼·碣石·東暆·蔕方·襄平等道 絡繹引途 摠集平壤
이제 마땅히 군율에 따라 행군을 개시하되, 대오를 나누어 목적지로 떠날 것이며, 발해를 뒤덮어 우레같이 진동케 하고, 부여를 짓밟아 번개처럼 휩쓸 것이다. 병기와 갑마를 정돈하고 부대를 경계한 후에 행군할 것이며, 재삼재사 훈시하여 필승을 꾀한 후에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좌 12군은 누방(鏤方), 장잠(長岑), 명해(溟海), 개마(蓋馬), 건안(建安), 남소(南蘇), 요동(遼東), 현도(玄菟), 부여(扶餘), 조선(朝鮮), 옥저(沃沮), 낙랑(樂浪) 방면으로 진군할 것이오, 우 12군은 점선(黏蟬), 함자(含資), 혼미(渾彌), 임둔(臨屯), 후성(候城), 제해(提奚), 답돈(踏頓), 숙신(肅愼), 갈석(碣石), 동이(東暆), 대방(蔕方), 양평(襄平) 방면으로 진군하되, 진군로를 서로 연락하여 전부 평양으로 집합하게 하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612) 1월 기사
도행군으로 좌로 12군, 우로 12군을 편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는 지금으로 따진다면 대장(★★★★)의 전담 특수사령군을 24개나 편성했다는 의미
이런 규모는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정도는 되어야 볼 수 있다. 미친 새끼들...;;;
그 다음에도 이어진 기록을 보면
凡一百十三萬三千八百人 號二百萬 其餽輸者倍之 宜社於南桑乾水上 類上帝於臨朔宮南 祭馬祖於薊城北 帝親授節度 每軍上將亞將各一人 騎兵四十隊 隊百人 十隊爲團 步卒八十隊 分爲四團 團各有偏將一人 其鎧冑纓拂旗旛 每團異色 日遣一軍 相去四十里 連營漸進 終四十日發 乃盡 首尾相繼 鼓角相聞 旌旗亘九百六十里 御營內 合十二衛三臺五省九寺 分隸內外前後左右六軍 次後發 又亘八十里 近古出師之盛 未之有也
모두 1백 13만 3천 8백 명인데 2백만 명이라 하였으며, 군량을 수송하는 자는 그 배였다. 수나라에서는 남쪽 상건수(桑乾水)에서 토지 신령께 제사 지내고, 임삭궁(臨朔宮)의 남쪽에서 상제께 제사 지내고, 계성(薊城)의 북쪽에서 마조(馬祖)에게 제사 지냈다. 양제는 직접 지휘관을 임명하여, 각 군에 상장(上將), 아장(亞將) 각 1명과 기병 40대를 두었다. 1대는 1백 명이며, 10대가 1단이다. 보병은 80대였는데, 4단으로 나누어 단마다 각각 편장(偏將) 1명을 두었으며, 단의 갑옷과 투구의 끈과 깃발의 빛깔을 다르게 하였다. 매일 (도행군)1군씩을 보내어 서로 거리가 40리가 되게 하고 진영이 연이어 점차 나아가니, 40일 만에야 출발이 완료되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 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에 걸쳤다. 어영(御營) 안에는 12위(衛)·3대(臺)·5성(省)·9시(寺)를 합하고, 내외 전후 좌우(內外前後左右) 6군을 나누어 예속시키고 다음에 출발하게 하니 또한 80리를 뻗쳤다. 근래에 군사의 출동이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적이 없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612) 1월 기사
전체적인 내용은 113만 대군으로 된 24개의 도행군 규모와, 기본적인 수나라의 군 단위 편성을 보여주는 내용이고
붉은색으로 표시한 내용은 거기에 '수 양제 직속의 황제 친위군' 까지 더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내용이다. ㅋㅋㅋㅋ;;
즉 특수사령부를 24개나 편성한 걸로도 모자라 황제가 친정까지 감행했단 소리...
* 물론 반란 방지의 차원에서도 이런 규모면 황제가 직접 지휘를 하는 게 맞다. 2차 고구려 - 수 전쟁 이후의 일이지만
양현감의 반란도 수 양제의 친정 도중에 발생할 정도니 말이다.(애초에 양현감도 진짜 못 해 먹겠다며 반란 일으킴...)
그러니까 이 당시의 원정군 규모를 정리하자면 결국엔 다음과 같은데...
2차 고구려 VS 수 전쟁(612) : 수 양제의 1차 고구려 원정
누방도행군, 장잠도행군, 명해도행군, 개마도행군, 건안도행군, 남소도행군,
요동도행군, 현도도행군, 부여도행군, 조선도행군, 옥저도행군, 낙랑도행군
'좌로 원정군' 도행군(★★★★)으로 12군
+
점선도행군, 함자도행군, 혼미도행군, 임둔도행군, 후성도행군, 제해도행군,
답돈도행군, 숙신도행군, 갈석도행군, 동이도행군, 대방도행군, 양평도행군
'우로 원정군' 도행군(★★★★)으로 12군
+
'수 양제 친위군' 6군(내군, 외군, 전군, 후군, 좌군, 우군)
▶▶ 총 전투병 113만 3천 8백 + 황제 친위군 + 보급부대는 전투병의 2배 이상 동원
『삼국사기』 와 『수서』 의 교차검증이 된 기록으로 '최소 340만 - 최대 400만 동원'
※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최대 전쟁 동원 인력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거 천여척 건조하겠다고 산둥반도에서 동원한 죄수와 인부 수십만도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꼴아박기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ㄹㅇ 미친 놈이다.;;
명언...
병신
* 애초에 당의 마지막 3차 고구려 - 당 전쟁도 당시 하북 전역의 모든 세입들을 털어놓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 양제가 동원했었던 원정군 규모보다는 못했지만, 이전 2차례의 원정 실패도 당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기에
연개소문 사후 그 아들들의 내분이라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만큼, 당 입장에서도 사력을 다한 거죠.
그래서 원정 하나 때문에 온 나라를 유례없던 규모로 들쑤신 저 ㅂㅅ은 진짜... 뭘까 싶습니다. ㅡ ㅡ ;;;;;;; ㅎㅎㅎ
그런데 그렇게 실패했는데 1년 간격으로 수십만 단위 대규모 원정을 매번 시도했다는 게 또 공포스러운 부분이죠.
아주 여러모로 말입니다...(그럼에도 차후 국력을 회복한 당의 그 생산력도 또 놀라울 뿐이고...)
중세에 수십만씩 동원해도 치명적인 원정사업을 한번에 백만 단위로 동원하는 미친놈은 아마 전무후무할 겁니다.
첫댓글 대충 요약
수양제는 맥아더마냥 올림픽작전을 계획하고
당시엔 원폭도 없으니 그걸 실제로 실행함ㄷㄷ
근데 다죽었..
올인하고 망함
중국은 아직도 겨울철 한랭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추운 북방보다 남방지역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함.
남방지역은 난방시설도 없고 양말이나 옷한두겹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록적인 추위가 다가올때는 사망자가 속출함.
이런 남방 군대들은 혹한의 만주벌판에 밀어넣은게 수나라정부
진짜 전투부대 113만명+비전투부대까지 해서 200만명 동원한게 맞는거 같음.
이러니 전투 한번만 패배해도 타격이 크지.
저렇게 작정하고 두들겨 패는데 버틴 고구려의 위엄 아닌가요.... 결국 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웬만큼 체급이 되니까 3차까지 간거 ㄷㄷㄷ
심지어(쳐들어가진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통일왕조도 멸망시킴 ㄷㄷㄷ
당나라 마지막 원정은 당나라로서도 마지막 원정이었을거 같은데 고구려가 내분 안일어나고 막았으면 당나라가망했을려나
고구려가 버텄으면... 통일신라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백제부흥운동만 일어났을지
고구려vs신라 2파전이 되었을지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상상하니 재미있네요
연개소문이 정변 안 하고 영류왕이 그대로 있었으면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갈려나간 국력 어느정도 복구해서 망하지는 않았을 수도…
저게 보급이 되는게 신기함 레알 ㅁㅊㄴㄷ임…
안되어서 망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서초패왕 항우 그래서 ㄹㅇ 망하긴 했는데 중국의 통일 왕조가 우리에게 무서운 이유를 말해주죠 ㅜㅜ
병력 동원 스케일이 지금이랑도 안 밀리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