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지혜를 전한 토마스 아퀴나스
히브 10,1-10; 마르 3,31-35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2025.1.28.
오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13세기에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아퀴노 지방에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태어나서 활약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 아우구스티노에 버금가는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교회 역사 2천 년 동안 출현한 수많은 인물들과 인재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특히 지적인 분야에서 첫 번째 천년에는 아우구스티노가, 두 번째 천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손꼽힙니다.
아우구스티노가 쓴 대표적인 저술로서는 ‘고백록’과 함께 ‘신국론’(神國論, 427년경)을 들 수 있는데, 이로써 그는 고대 교회의 치열한 이단 논쟁을 거쳐 확립한 그리스도교 교리를 정립함으로써 새로이 세워져야 할 하느님의 문명에 대해 사색을 펼쳤고 이후 천 년 동안이나 유럽 그리스도교의 지성적 맥을 형성하였습니다. 그 천 년 후에 이어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신학대전」은 불행했던 십자군 전쟁으로 유입된 앞선 이슬람 문명이 전해준 보물 창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이용하여 근세와 현대를 준비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았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때 활용한 방법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던 교부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신토마스주의, 즉 Neo Thomism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귀납법적으로 사태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귀납법은 먼저 전제를 만들어 이끌어내는 연역법과는 반대로 현실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질문과 응답으로 대화를 이어감으로써 진리에 이르는 방식입니다.
역대 교황들은 이 귀납법적 방식에다가 가르멜 수도자들이 발견해 낸 영성으로 현대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삼았습니다. 그 요체가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시대 상황을 통해 추론해 나가는 방식으로 공의회 문헌이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무신론적 풍조를 반영하던 제반 학문들, 즉 과학은 물론 사회학까지도 모두 공의회 교부들에 의해 고스란히 현대 가톨릭 신학의 연구 대상 범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18~19세기 동안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역사학이 번성했으며 시민혁명의 기운이 온 유럽에 퍼지는 등 온통 무신론적인 세속화 사조가 만연하면서 교회 안에도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현상이 퍼져감으로써, 신앙의 열기가 가라앉고 세계로부터 교회의 고립이 심화되어 가던 무렵에, 공의회를 통해 활기를 불어넣어 준 흐름이 바로 토마스 사상의 귀납법적인 문제제기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맞아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물이 가득 찰 지경으로 위험하게 된 상황이 바로 공의회가 열리기 전 유럽 교회의 처지였습니다. 결국 제자들이 탄 배는 예수님께서 깨어 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조용히 하라고 명하시자 바람이 멎고 고요해 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귀납법적인 문제제기 방식과 ‘관찰-판단-실천’의 방식으로 새로이 바라보게 됨으로써 공의회가 교회 신자들과 인류에게 제시한 메시지는 교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켰고 복음화에 대한 각성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공의회에서는 전례와 계시, 교회와 사목에 관한 헌장을 비롯하여, 사회 미디어, 동방 교회, 교파간 일치, 주교 직무, 수도 생활, 사제 직무 및 양성, 평신도, 선교 등 교령에다가, 그리스도인 교육, 비그리스도교,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까지 방대한 메시지를 인류 사회 앞에 내놓았습니다. 반세기 전에 반포된 공의회가 던진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아직도 주고 있습니다. 천주교 2백 주년을 맞이하여 열렸던 사목회의에서 공의회의 한국판 메시지를 집대성해 놓은 ‘사목의안’ 역시 발간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국교회 현실에는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현재진행형의 메시지입니다.
이 문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작성된 경로를 따라서, 교회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내성(內省)과 대화(對話)로 대별하여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 전례·신심운동·교리교육·지역사목·가정사목·특수사목·교회운영·선교와 사회 등 12분과로 나누어 해당 의안 담당자와 150명에 이르는 전문위원이 교회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교회 저변에서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청취하고, 학문적 뒷받침을 받으면서 의안 초안을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의안에는 공의회 문헌이 수렴해 놓은 서구 신학 사상, 즉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집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아시아-한국의 사상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설립 초기부터 해온 토착화 작업의 성취 노력은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포교 활동이 시작된 뒤에 전통적 한국 문화와 종교 사상에 대한 선교사들의 무시 내지 무지로 말미암아 서구 사회에서 토착화된 교회의 이식 또는 부식으로 시종 점철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서구 교회 편향적 풍토에서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영향권 하에서 서구 신학의 번역 수준에서 한국교회의 지적 작업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 안에서 출현한 한 유다인 나자렛 예수 안에서 드러난 구체적 사건을 절정에 이른 하느님의 계시라고 믿는 데에서 한국교회 신학과 신앙적 성찰의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계시를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하느님 신앙 현상이나 구원 진리 주장들의 진실성 여부를 식별해야 하는데, 이는 한국의 과거 역사에서나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따라서 이를 수용하는 구원 사건은 늘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신학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서구와 다른 지역의 신앙생활 양식과 신학 사상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지속하는 가운데 고금의 한국 역사와 현실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는 진정한 하느님 신앙의 특유하면서도 고유한 역사적 실현 양식을 인지하고 이를 교회생활과 신학 체계 안으로 수렴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그리스도 신앙의 이해와 표현, 생활양식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사고방식, 정감·언어구조·문학유형에 상응할 때 비로소 한국의 문화 토양 안으로 좀 더 깊숙하고 친숙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외래문화의 형식과 사고방식에 그리 친숙하지 않은 소박한 민중까지 그리스도의 신앙 진리가 바로 자신을 위한 구원 진리임을 실존적으로 이해하고 생활화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 작업은 그리스도 신앙의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성격에 입각해 계시된 하느님의 구원 진리가 각 문화권에서 새롭게 사유되고 진술되고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방침과 부합됩니다(참조: 사목헌장, 44항; 58항; 교회헌장, 17항; 선교교령, 19항).
새로운 세기와 천년대가 펼쳐지면서 한국 사회는 물론 온 세계에 광범위하면서도 심층적인 변화가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시 수용과 신앙이 성취되어야 할 장이자 터전인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불화와 부조리, 불의가 만연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표현 양식에서 한국적 면모를 지니는 가운데 그지없이 소외된 한국의 현실을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통해 변혁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한국 신학은 한국 사회와 세계에 만연해 있는 지배와 소유의 ‘죽음의 문화와 문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된 섬김과 나눔의 ‘사랑의 문화와 문명’인 ‘하느님 나라’로 변모시키려는 현실 변혁의 취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신앙 성취와 심화를 위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한 전문적 연구가 불가피하게 요청되며, 앞으로 한국 신학 관계자들에 의해 심도 있게 착수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그리스도 신앙의 성숙과 심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일방적으로 서구 교회와 사상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아시아나 한국의 사상과 학문적 성과 역시 중시하며,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요소를 교회생활과 신학 체계 안으로 수렴해야 합니다.
주로 논리-분석적 사고에 입각하여 형성된 서구 사상과 자연과학은 경이적인 현대의 과학 기술 문명을 창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 근간이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세계에서 비롯된 과학 기술이 현대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지 모르나, 세계를 정의롭고 평화롭게 건설하는 데 상응하는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세기가 바뀐 지금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강대국 간의 무도한 패권주의적 작태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질서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심화와 분쟁 등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부조리와 불의 현상이 감소하기는커녕 날로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사유는 논리-분석적이라기보다는 직관-종합적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관-종합적 사고는 합리적이기보다 직관적이고, 냉철하기보다 즉흥적이며, 활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이고, 진취적이기보다 보수적이어서 정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한편, 실재를 포괄적이고 신비적으로 관조하는 종교와 문화, 예술을 전개하는 동력이 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또는 한국에는 직관-종합적 이해 양식에 입각하여 형성된 인생관과 세계관과 우주관, 신관과 구원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동아시아 또는 한국 문화의 소산은 언제 어디서나 작용하는 하느님의 지평 안에서 이루어진 노작(勞作)의 결과입니다.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필리 4,8)이 여기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관건이 되는 하느님과 구원 실재에 대한 직관적이고 신비적인 이해는 논리-분석적 탐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조명해서 더 깊고 포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아시아 또는 한국의 종교와 문화, 생활양식이 한국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앞으로 더욱 진지하게 취급되고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는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신학은 역사가 진행되는 우주적 과정에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가 어디서나 늘 새롭게 일어나며 인간을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비그리스도인의 신념이나 종교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면서 사람을 사로잡고 변화시키는 하느님께 사로잡힌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신앙 공동체는 더 깊고 넓으며 드높은 경지에서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생각은 말과 글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말과 글은 현실을 창조하지요. 우리네 현실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자면, 우리의 생각이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제로 한 아우구스티노의 연역법적 사고와 세상 사람들의 현실적 사고를 전제로 한 귀납법적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고를 참고로 하면서도, 논리-분석적인 서구적 사유 방식을 떠나 직관-종합적인 사유 방식으로 이 땅에 사는 한민족의 복음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들의 사고를 오늘날 우리가 귀하게 참고했으면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