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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소드의 변화> |
양손검은 13세기 이후 새로이 등장한 무겁고 긴 검이며 이는 기사의 갑옷이 보다 강화됨에 따라서 베거나 찌르기 보다는 무거운 검으로 찍거나 때려 누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워낙 무거워서 보병이 사용하거나 기사가 말에서 내려 싸울 때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바스타드 소드 역시 두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검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한손으로 잡고 사용할 수 있도록 경량화된 양손검이다. 클레이모어는 화기의 발달로 갑옷의 중요성이 낮아진 시기에 영국의 하이랜더들이 개발한 양손검으로서 베기에 적합한 검이다.
외날 한손도중 펄션(falchion)은 북구유럽의 초기 게르만족의 외날 단검인 스크래머삭스를 계승한 칼로서 방패를 든 보병간의 난전에서 짧게 찍어치는데 적합한 외날의 칼이다.
중세 유럽검의 시기별 특성은 다음과 같다.
게르만족은 원래 현재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아크 지방에 거주하던 키가 크고 금발에 눈이 파란 민족이었다. 이들은 기원전 1세기 부터 남하하여 라인강의 동쪽에서 러시아 평원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하고 조잡한 농업과 목축업으로 생활하였다. 로마제국 시대에도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부족 사회를 유지하던 게르만족은 기원후 3세기 부터 로마화된 켈트족이 거주하던 라인강 서쪽을 침입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후 4세기 경 게르만족이 흉노족의 침입을 받게되자 본격적으로 침략적인 이주를 시작하였다. 스페인(서고트족)과 프랑스(프랑크족), 이탈리아 북부(롬바르드족), 영국(앵글로 색슨족), 북아프리카(반달족)은 각각 유럽의 일정 지역을 점령한 후 각 부족별로 국가를 세우게 된다. 그 결과 현재의 유럽인 대부분은 게르만족의 후예이며 다만 지역별로 켈트족과 로마의 라틴족 피가 어느정도 섞였을 뿐이다. 이들 게르만족 국가는 결국 프랑크족의 메로빙거왕조(merovingiens)에 의해 통일되어 840년경 프랑크국이 동프랑크(독일), 서프랑크(프랑스), 중부프랑크(이탈리아)로 분할될 때까지 유럽을 지배한다.
이들 게르만족, 특히 프랑크족이 주로 사용한 단병기는 프랑시스크(Francisque)라고 불리는 손도끼와 던지는 창이었으며 칼은 비교적 고가의 무기였으므로 전투원의 일부만이 소지할 수있었다. 로마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450년경 멸망한 후 부터 프랑크왕국의 유럽 통치 체제가 무너져가던 700년경 까지 게르만족이 사용한 검은 전체 길이 약 33 ~ 37인치에 날의 너비가 1.7 ~ 2.5인치 정도되는 한손검이었다. 아직 철 가공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칼의 소재가 연철이었으며 표면 부분만이 침탄(浸炭)에 의하여 강화되어있었다. 따라서 칼을 사용하다보면 강화된 표면이 부서져나가고 안의 연철이 휘어져버리곤 했다. 이 때문에 초기 게르만족의 검은 그 너비가 상당히 넓고 두께도 두터운 편이다. 날은 칼끝까지 평행하고 칼 끝은 둥근 편이다. 칼배에는 넓고 얕게 파인 혈조가 있는데 이는 피가 빠져나가게 하는 혈조 본연의 기능 보다는 휘기 쉬운 칼날의 구조적 견고성을 높이고 칼의 무게를 줄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칼날과 칼자루는 하나로 만들어졌고 칼자루 끝의 병두(폼멜)는 매우 정교한 구조로 되어있다. 초기의 게르만 검은 코등이가 없거나 작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차 커지게 된다.
무른 연철로 만든 칼의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로서 철봉 몇개를 꼬아 두들겨서 칼을 만드는 기술(pattern wield steel)은 기원후 100년경 유럽에 나타나는데 이를 보편화 시킨 것은 프랑크왕국이었다. 표면 침탄에 의해 칼을 만들면 칼의 표면만 강화되지만 침탄을 시킨 철봉 여러개를 꼬아 칼을 만들게 되면 칼의 내부에도 강철이 들어가서 칼의 강도를 높여주게된다. 이 기술은 바이킹족에게로 전파되었다가 약 1000년경 유럽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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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메로빙거왕조(Merovingian dynasty) 칼자루> 5세기 후반. 중앙아시아의 공예기술과 로마의 공예기술이 함께 반영된 것임.the grave of Childeric at the royal villa at Tourn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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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족 칼> Strand의 기마병사 무덤 출토 프랑크족 칼의 전형적인 형태, Norway Rogaland, Ryfyl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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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 장검 기원후 7세기 전체 길이: 93.5 cm. 날길이: 79.5 cm taper (17 %), pattern-welding |
바이킹족은 게르만족중 유럽의 중부와 남부로 이동하지 않고 계속 스칸디나비아반도 주변에 거주하였던 부족의 후예들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이 민족은 기원후 8세기 부터 갑자기 유럽의 전지역에 가볍고 긴 바이킹선을 타고 나타나 무차별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영국을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프랑스 남부의 노르만지역에 자신들의 공국을 건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멀리 러시아에 까지 진출하여 현재 러시아의 기원이 되는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바이킹족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한 부족으로서 투구와 사슬 갑옷을 입고 양손 도끼를 잽싸게 휘둘러 적의 투구와 방패를 두동강 내버리곤 했다. 이들 바이킹 전사중 약 10% 정도만이 양날의 한손검을 소유했다. 사실 바이킹 검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당시에 유럽의 전사들이 시용하던 대부분의 검(그들도 역시 대부분 게르만족이었다)의 일종이었을 뿐이다. 바이킹족의 칼중 일부는 프랑크국으로 부터 배운, 철봉 몇개를 꼬아 두들겨서 만든(pattern wield steel) 고급 제품이었다.
바이킹 시대의 칼 날은 볼록렌즈 형으로 매우 두터운 편이었고 날의 휨을 방지할 목적으로 넓고 긴 혈조를 팠다. 칼은 주로 찍고 베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므로 칼날은 평행하고 칼 끝도 둥근 편이었다. 칼 손잡이는 일체형으로 만들어졌고 그 끝에 삼각형 모양의 폼멜이 달려있다. 코등이는 비교적 작은 편이어서 손을 보호하는 기능 보다는 상대를 찌를 때 손이 앞으로 밀려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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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Schelde Rive r850 to 950 AD 전체 길이: 89.2 cm. 날길이: 78.0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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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10세기 스웨덴 전체 길이: 103 cm. 날길이: 88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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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10세기 바이킹 칼 |
노르만족은 바이킹족의 일파로서 프랑스의 서부 해안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공국(公國)을 이룬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노르만족은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하였던 기마술과 중무장 기병에 의한 충격전을 배우게 된다.이들은 11세기에 앵글로색슨족이 지배하던 영국을 정복하여 영국의 지배 계층이 된다.
중세 봉건시대의 본격적인 형성 시기 부터 십자군 전쟁 시기까지는 유럽이 아직도 강철을 생산하지 못하였으므로 여전히 괴련철을 사용하였으나 담금질 기술등의 발전으로 인하여 칼 소재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칼날의 두께와 폭은 작아지는 대신 기병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일부 칼날의 길이는 4인치 정도 길어진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칼자루의 모양은 십자가 형태가 선호되었고 바이킹과 게르만의 삼각형 병두 대신 둥근 고리형의 폼멜이 유행하게 된다. 칼의 단면은 종전의 렌즈형에서, 날 중앙은 평평하고 날 부분에서 각이 있는 형태로 변화한다. 혈조는 칼자루에서 칼날의 약 2/3 정도 길이까지만 있고 폭도 줄어들게 되며 칼 끝의 폭은 전 시대 보다는 좀더 급격히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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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길이: 95.0 cm. 날길이: 82.1 cm. 950 to 1100 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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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세 검, 1100년 ~ 1150년경> |
이 시기에는 유럽에서 기사가 강철로 제조된 전신 갑옷을 입게 됨으로써 최상의 전투력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인 동시에 스위스 용병등 장창을 소지한 밀집 보병과 장궁, 석궁에 의하여 중갑 기사의 효용성이 의심받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기사의 갑옷을 위협한 것은 석궁으로서 약 11세기경 부터 유럽에서 나타나는데 석궁은 사수의 양성이 매우 용이하고 근거리에서는 왠만한 갑주를 꽤뚫을 수 있는 매우 위험스러운 물건이었다. 게다가 점차 크랭크를 이용하고 활대를 강철로 만든 강력한 석궁까지 등장하자 기사의 갑주는 더욱 강화될 필요성이 생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석궁은 발사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1분에 약 2발)에 주로 성에서의 방어 무기로 애용되었고 말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야전에서는 기사들의 용감한 돌격에 석궁 부대가 쉽게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14세기 초에 영국에서 채택된 장궁은 발사 속도도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사거리와 관통력도 석궁과 맞먹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영국의 평민들로 구성된 장궁 사수들은 약 두배에 달하는 숫자의 프랑스 귀족 출신 기사들을 장궁으로 괴멸시켜 버림으로써 기사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다. 경무장의 스위스 용병이 중갑 기사를 상대로 올린 전과는 그들의 무기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스위스용병들은 6미터에 달하는 미늘창으로 기사를 견제하고 할버드로 찍거나 말위에서 끌어내리는 새로운 전법으로 승리를 얻었지만 미늘창과 할버드가 승리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화된 국가의 자유인으로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전투에 참여했고 그런 그들은 기사의 돌격 앞에서 스스로 대오를 유지할 만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장창을 소지하고 전투 의지를 가진 자유민들이 이룬 밀집 대형은 유럽 전역에서 기사의 돌격을 막을 수 있었다.
기사들은 갑옷을 강철로 된 판금 갑옷으로 대체하고 장갑의 두께를 늘림으로써 석궁과 장궁, 미늘창의 위협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16세기에 오면 갑옷의 무게는 60kg까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갑옷의 중량화는 기마병의 최대 강점인 속도와 충격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게 된다.
13세기 이후의 한손검은 강철(steel)의 사용으로 인하여 날의 두께가 더 얇아지면서 보다 예리하고 튼튼해지게 된다. 또한 갑옷의 강화에 따라서 찌르는 공격의 중요성이 커지고 칼날은 칼끝부분에서 훨씬 가늘어지게 된다. 혈조는 이제 더이상 구조적인 안정성을 위해 존재할 필요가 없었으므로그 길이가 칼날의 1/2 이하로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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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all: 99.5 cm. Blade: 84 cm. 1400 to 1450 AD, possibly la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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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세검 위에서부터 1300년경, 1325년경, 1426년경, 1460년경 |
이 시기에 양손으로 휘두르는 거대한 검인 투핸디드소드(two handed sword)와 독일의 쯔바이핸더(zweihander) 혹은 그레이트소드(great sword)가 출현하는데 그 길이가 무려 1.8 ~ 2.5m에 이르고 무게는 최고 9kg에 달하였다. 이 양손검은 적을 베거나 찌르기 보다는 칼의 무게를 이용한 차지(charge) 공격으로 적을 때려 눕히고 갑옷을 찌그러트리기 위한 무기였다. 특히 독일의 양손검인 쯔바이핸더는 일반적인 양손검 보다 손잡이가 더 길고 칼날에 날이 없는 부분인 리카소(riccaso)가 있다. 이 리카소는 칼을 메어 운반할 때 어깨에 거는 부분이 되기도 했고 전투시에는 칼을 창처럼 잡아 사용하는데 이용했다. 이 무거운 양손검은 말 위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대개 기사들이 땅위에서 싸울 때 사용했고 이와는 별도로 종래의 한손검 하나를 더 휴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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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그레이트 소드 검술교본 "Golia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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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handed sword 1550년대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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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handed sword, 1580년대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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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handed sword 1600년대 독일 |
한편, 양손검과 한손검을 각각 지니고 다니며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여긴 사람들, 특히 독일과 스위스 기사들에 의하여 양손검(two handed sword)과 한손검(long sword)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칼이 13세기에 소개되는데 이것이 바로 바스타드소드(bastard sword)이다. 바스타드란 서자, 혼혈아라는 뜻으로서 한손, 양손 겸용의 칼이라는 의미를 잘 표현해준다. 또 다른 이름으로 핸드앤어하프소드(hand and a half sword)라고 불리기도한다. 이 칼은 직선형의 날카로운 칼날을 가졌으므로 찌르기 공격에도 적절하였고 양손으로 내려 베기에도 적절하였다. 하지만 길이가 1.15 ~ 1.4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2.5 ~ 3kg에 달하여 한손으로 오랜시간 휘두를 수 있는 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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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타드소드(bastard sword) 총길이: 112 cm. 날길이: 87 cm. 1350 ~ 1400 AD |
바스타드 소드와 규격이 비슷하지만 그 용도가 달랐던 스코틀랜드의 클레이모어(claymore)는 좀더 이후 시기인 15C경에 나타나는데 이 때는 이미 석궁과 화약무기의 발달로 갑옷의 중요성이 낮아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클레이모어는 경무장을 한 적을 베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드 끝 부분의 수레바퀴모양의 장식은 승리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 길이는 약 1.2m이고 무게는 3kg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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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모어> 복원품 |
쇼트소드란 짧은 칼이라는 의미이지만 유럽의 칼을 분류할 때는 특히 14세기 ~ 16세기에 중장보병이 사용하던 한손검만을 의미한다. 이 칼은 길이가 70 ~ 80센티미터 정도로 짧고 칼 끝이 매우 날카로운 대신 가드 쪽의 날은 8 ~ 10cm에 달할 정도로 넓다. 14세기에 들어가면서 종래에 무적으로 여겨졌던 중무장 기병은 석궁과 장궁에 의해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창을 든 중장 보병의 밀집 대형으로도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반하여 중장보병은 기사에 비해 아주 저렴한 비용이 들면서도 궁병과의 협동 전투 수행에 유리했으므로 중장 보병이 유럽 각지에 유행처럼 번졌다. 이들 중장보병은 보조 무기로 칼을 휴대했는데 보병간의 난전에서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짧고 튼튼한 검이 선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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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1400년 경, 쇼트소드, 개인소장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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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년 독일 쇼트소드> |
외날의 한손도인 펄션(falchion)은 쇼트소드와는 모양도 전혀 다르고 그 기원도 다르지만 중세 후기에 애용된 이유는 쇼트소드와 동일하다. 펄션은 그 동양적인 모양 때문에 중국이나 아랍에서 전파되었다고 추정되기도 하지만 뚜렸한 증거는 없으며 유럽에서는 이 칼이 북유럽의 외날 나이프인 스크래머삭스(scramasax)를 계승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펄션도 길이가 짧고 무거운 만큼 방패를 사용하는 밀집 보병간의 전투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길이는 약 70 ~ 80센티에 1.5kg ~ 1.7kg 정도 무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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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션(falchion), 이탈리아 17세기 21 3/8''> 두개의 혈조가 있고 S자 퀼리온. 손잡이는 철사로 감겨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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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래머삭스(scramasax)> 복원품 |
출처: <고죽의 칼 이야기; www.swords.pe.kr>
첫댓글 고죽의 칼 이야기. 좋은 사이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