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예술의 정신세계
예술에 있어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정신적 에너지는 사상(思想)의 배경이 설정되어야 한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동양예술이 이어져 내려온 것에 대한 의문은 어느 누구도 부인을 못한다. 동양예술에 있어 기초가 될 수 있는 개념들은 도가(道家), 유가(儒家), 불가(佛家)의 삼가사상(三家思想)에 의해서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삼가사상의 성향을 이루고 있는 사고(思考)의 근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1) 道家思想
구미(歐美) 미학(美學)에 있어서의 범주는 '미'(美)를 탐구하지만 동양의 미학은 '덕'(德)을 탐구한다. 구미예술은 인간의 창작의지를 바탕으로 미적 표현을 결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동양예술은 미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여 생명의 만족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생명의 만족을 [악기(樂記)]의 예악(禮樂)은 '악'(樂)이라고 밝힌다. 동양예술은 그러한 악(樂)이 인간의 뜻에 따라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화'(和)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양예술의 이러한 주장은 곧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자연과 맥을 나누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도가(道家)의 자연은 동양예술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게 된다.
우리는 장자(莊子)하면 먼저 도교(道敎)철학을 생각한다. 자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무위(無爲)란 노자(老子) 학설의 중심을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무위(無爲)란 인간의 힘을 가하여서는 안되며 자연히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광대무변한 진리가 포함된 노 장자(老 莊子)의 자연주의 철학은 확실히 동양화, 특히 산수화와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 많은 관계가 있다. 공자(孔子)의 유교회화사상(儒敎繪畵思想)은 후소(後素)를 중요시한 데 비하여 노 장자(老 莊子)의 도교회화사상(道敎繪畵思想)은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정신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진의를 파악하면 후소(後素)와 정신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자(莊子)는 미(美)의 본질이 우주(宇宙)의 근원(根源)에 있고 우주의 근원은 무(無)에 있다고 하였다. 또 정신은 미(美)를 떠날 수 없고 미는 정신을 떠날 수 없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장자(莊子)의 예술 정신은 미(美)와 악(樂)의 교(巧)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데에 있다. 미 악 교(美 樂 巧)는 각각 부동의 예술 특징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 세 특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미의 정신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그 극치를 이루는 데 머물러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세속적으로 되어 허위(墟僞), 사치(奢侈), 요염(妖艶)해진다고하였다. 도가(道家)의 가치개념은 서로 태어나는 것[상
생(相生)], 서로 이룩하는 것[상성(相成)], 서로 드러나는 것[상형(相形)], 서로 아우는 것[상경(相傾)], 서로 어울리는 것[상화(相和)], 그리고 서로 따르는 것[상수(相隨)]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사물 사이의 관계가 갖는 가치를 도가사상(道家思想)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 관계의 내용이 갖는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또한 알수 있다. 상대(相對)와 상호(相互)의 관계는 상(相)이며 이 상(相)은 사물의 관계의 가치이다. 그리고 '생(生) 성(成) 형(形) 경(傾) 화(和) 수(隨)'등은 그 관계의 내용이 갖는 가치인 셈이다. 그러므로 도가사상(道家思想)의 가치판단은 무위(無爲)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무위(無爲)는 사물관계의 자연을 말한다. 여기서 인간의 결정에 의한 가치론을 도가사상(道家思想)이 부정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가치론의 입장에서 보면 도가(道家)의 자연은 사물 관계를 상대가 아니라 상호의 '상(相)'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그 관계의 내용은 '생(生) 성(成) 형(形) 경(傾) 화(和) 수(隨)' 등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개념이 아니라 가치로 볼 때, 그 가치의 내용은 결정되어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용은 미학이 탐구하는 예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의미의 부단한 발생을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미적 가치에 관한 보편적 인식은 부단한 의미 발생에 두게 된다. 사물관계의 자연을 가치의 차원에서 볼 때 도가사상(道家思想)은 그 작용이 사물의 상호작용일 뿐 대립작용이 아님을 밝혀 주고 있다.
(2) 儒家思想
유교적인 철학이념이란 곧 공자(孔子)의 학설을 말한 것으로 일찍이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묻기를 <시경(詩經)>에 귀여운 입가의 웃음이여, 맑게 개인 미인의 눈웃음이여, 본바탕<소(素)>이 찬란함이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그림을 그릴때는 본바탕이(素)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라는 뜻>이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말한 소(素)라는 말은 눈에는 보이질 않는 질(質)인데 색채(色彩)로서 오색(五色)을 서로 조화시켜 작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후소(後素)라 한다. 이를 덕(德)에 비유하자면 덕(德)에는 오덕(五德)이 있는데 그중 예(禮)는 오덕(五德)을 잘 조화하여 중화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유교에서 <후예(後禮)>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람의 행위에 있어 충신성(忠臣性)이 있고 거기에 뒤따르는 <예의(禮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의(禮儀)가 없는 충신(忠臣)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그 충성심은 오래 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회화에 있어서도 오색(五色)의 색질(色質)이 있으면 그 질(質)을 잘 조화할 수 있는 소(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사상에 있어 <인(仁)>을 인식하는 것을 일체의 도덕과 진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고 인(仁)이 몰락하면 일체의 도덕도 허사로 빠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회화에 있어서도 반영하게 되는데 모든 인격의 표준을 인(仁)에 두듯이 덕망의 표현을 회화에서도 조화로서 도모하였다. 중국의 고대문화는 항상 예악(禮樂)을 중요시 했다. 그것은 공자의 예악(禮樂) 중시관이라할 수 있다. 동양예술의 바탕을 이루어온 시가(詩歌)를 치인(治人)과 치세(治世)의 핵심적인 덕목으로 유가사상(儒家思想)이 제시한바 공자에 의한 초기 유가사상(儒家思想)이 인(仁)의 예악(禮樂)을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하면서 시가(詩歌)의 가치를 중심에 두었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이념적 근본은 '나를 닦고 사람을 다스린다(修己治人)와 안을 성실히 하고 지극히 한 다음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한다(內聖外作)'는 것으로 요약 된다. 수기(修己)와 내성(內聖)은 개인의 내적 심성에 치중되므로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서 주관적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추구하게 마련인데치인(治人)과 외작(外作)은 집단의 외적 상황에 치중되므로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서 객관적인 사고와 행동의 규범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유사사상(儒家思想)이 밟은 사고의 중심축이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가 알 수 있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은 초기에 수기(修己)와 내성(內聖)을 예술성과 윤리성으로 강조 하였으나 후기에는 치인(治人)과 외작(外作)을 중심으로 윤리성과 정치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미학적 기초개념은 초기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교육(藝術敎育[樂敎])을 유가사상(儒家思想)은 강조하는데 악교(樂敎)의 단서는 <書經>의 무전(舞典)에서 찾을 수 있다.
도가사상(道家思想)에 있어 인간의 문제를 천지(天地)에 문제에서 수렴하고 해석 했다면 유가사상(儒家思想)은 인간 문제에 관하여 탐구하고 해석 했던 사상에 속하는데 유가(儒家)의 악교(樂敎)가 그것이며 이는 예술교육을 뜻한다. <書經>은 시(詩)를 '언지(言志)'로 가(歌)를 '영언(永言)'으로 성(聲)을 '의영(依永)'으로 율(律)을 '화성(和聲)'으로 개념화 하고 있다. 서구(西歐)의 시(詩)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며 신(神)의 영감을 받아 시인(詩人)이 신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면 동양은 처음부터 시(詩)를 하늘의 영감에 의한 신탁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동양은 사람의 마음(人心)은 하늘의 마음(天心)과 동일시 했고 사람의 마음은 덕성(德性)을 추구해야 하고 그덕성은 천성(天性)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詩)는 인간에 의해서 덕성을 표현하는 출발로 보았다. 예기≪禮記≫의 악기<樂記>를 보면, 가(歌)의 발생은 시(詩)로 부터 비롯되고 무(舞)의 발생은 가(歌)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 가 무(詩 歌 舞)의 표현은 모두 인간의 마음과 행동으로 하여금 덕성(德性)을 향하게 하는데 동양예술의 특성은 미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미적 체험이 덕성(德性)의 체험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는 근원을 해명할 수 있다. 여기서 서구의 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서구의 예술은 즐거움의 충만(樂)을 미적 가치로 인식한다. 그러나 동양의 예술은 즐거움의 충만(樂)은 즐거움의 절제(禮)와 융합되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악기<樂記>는 시가무(詩歌舞)를 예악(禮樂)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의 관점에서 시(詩)정신의 개념은 공자(孔子)의 인(仁) 사상이며 그 인(仁)사상은 중용(中庸)을 통하여 미적 표현은 시(詩)가 할 수 있고 그러한 시(詩)를 짓는 시인(詩人)의 정신과 시(詩)를 체험하는 독자의 정신은 예악(禮樂) 정신으로 이끌게 된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판단을 통하여 동양 미학은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시관(詩觀)을 해석한다. 시관은 시의 절대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시의 개념을 확립 시킨다. 논어≪論語≫에서 밝혀 지는 시(詩)의 관점은 바로 인(仁)사상에 기초를 두고 성립되었고 여기서 동양미학은 시의 개념을 ' 시(詩)는 인(仁)의 표현이다.' 이것이 유가사상(儒家思想)이 밝힌 시관(詩觀)이다.
(3) 佛家思想
불교 교리중의 하나인 선(禪)이란 팔만법장(八萬法藏)에서 대(大). 소(小). 권(權) 실(實) 돈(頓) 현(顯) 밀(密)등 만법(萬法)을 총괄하는 것이다. 선(禪)은 심(心)의 근(根)이고 심(心)은 천지간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마다 나타난 것이며 심(心)으로 인하여 사물마다의 형태를 깨달아 형(形)을 창조하는 것이니 선화(禪畵)란 바로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라 하겠다. 즉 모든 것은 유형인데 이것을 불심(佛心)으로 변통하여 보면 일월처럼 밝아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형적 광명관이라 한다. 이 무형적 광명(光明)이 곧 선화(禪畵)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禪)의 예술이란 침묵속에 내재하는 무형적 공허미(空虛美)라고 할 수 있다.
최초로 중국에 선가(禪家) 사상을 전해준 사람은 인도승 달마(達磨)라고 한다. 우선 선<禪>이라는 글과 역시 그 뜻이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인생수양의 정신적 소양을 뜻한다. 선(禪)이란 불교에서만 중시한 것이 아니고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에서도 중시하였는데 이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정관(靜觀)'(조용히 사물을 깊이 관찰함)이다. 즉 참선하거나 깊이 명상함을 뜻한다. 따라서 선학(禪學)의 경계는 회화상에서 화학(畵學)의 경계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가(禪家)의 회화이념은 정신수양에서 얻어지는 우주무한의 추상미로서 자기의 정신이 우주의 자연과 일치하여 하나의 추상 이치를 깨달으면 자연히 그화가는 회화의 욕기를 초월하고 위대한 화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禪家의 회화에는 스승이나 자연의 조화를 배우는 것이 필요없으며, 오직 마음이 신(神)과 합치면 회화의 도(道)를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본래 동양화 속에는 동양 역사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양 특유의 사상적 배경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이철학의 주류는 크게 세가지로서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인데 이중 불교(佛敎)만이 그들의 종교적 범주의 미술을 형성하였고 도교(道敎)와 유교(儒敎)는 그들의 사상만 동양화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범주의 미술은 형성하지 않았다. 불교(佛敎)의 교리속에 숨어 있는 선종(禪宗) 사상은 동양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것이 곧 동양화상에 문인화(文人 )를 탄생시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에서 사고 논리의 바탕을 음양론(陰陽論)의 상응에 있었으나 불가(佛家)의 사유는 그 바탕의 논리를 연기론(緣起論)의 상응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양가(兩家)와 불가(佛家)의 사고 방식이 갖는 논리의 차이점을 이해하려면 음양(陰陽)의 상응과 연기(緣起)의
상응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