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는새 봄기운이 저만치 찾아들고 지나간 인고의 시간들이 이제는 가야겠다면 환한 미소를 머금은체 일어서니 그순간 과거는 추억이 됩니다 누구를 기다렸는지도 모르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만큼 나의 삶은 설레였었다 미래를 꿈꾸었던 시간만큼이나 추억은 서럽도록 미련을 남겼다 나는 간구합니다 그 꿈이 아쉬움이나 미련이 아니기를 나는 자리에 누워 꿈을 꿉니다. 꿈이 있어서 살아가고 또,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기에 -끝-
주:누군가는 내가 변해가는 모습입니다
- ( 기용이가) -
어린시절 종로 3가 뒷골목에 허름한 건물 옥탑층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제일고등공민학교를 거친뒤에 중동고에 입학하였고 고교졸업마져 어려워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학을 진학했지만 대학졸업장보다도 중동고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더 강했었다.대한제국 고종황제의 관심속에 최규동선생님은 중동고 건학의 시조이며 초대 서울대총장으로 전임하셨고 6.25동란으로 납북되시기까지 민족지도자 양성의 선도자셨다.삼성그릅의 창업자 이병철씨와 국제그릅의 양정모씨등 수많은 기업총수들,아들을 죽였던 공산분자를 오히려 수양아들로 입적시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진리를 지켰던 손양원목사, 4.19의거에 희생된 수만은 중동고 영혼들,새누리당의 김무성대표와 현역여야 국회의원 5명을 보유하며 자립형사립고 1위의 명성보다는 종로의 깡패학교라는 이미지가 더 좋았다.대학내 동문회를 하면 타학교출신들은 멀리 피해갔다.선후배의 위계질서는 우리의 힘이었고 자랑이었건만~ 건학의 시조 최규동선생님이 친일파라는 일부 기사는 충격이있다.평생을 민족주의(학교내 일본어사용거부, 창씨개명의 거부와 해방후 우리말 사전편찬의 주부등)라는 수식어를 가진분이건만 ~ 동지들 중동고를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