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빈씨대종회 #대구빈씨 2020년4월11일
카톡방에 올라온 중요한 글을 캡쳐해서 올립니다.
[週 刊 溯 考]
족보 재편찬에 따른 當爲性을 종친들에게 說破 해야될 當事者가 토론방을 나가서 下手人을 통해 할말은 하고있군요
"곤양종친 기선,기홍씨가 족보편찬을 제창하니 여러 宗人들이 감히 이의가 없었다"라는 병일선조의 序文을 기해보에 싣고 있는데 이 글을 我田引水 해석하고 있는것 같군요
족보편찬 필요성에 동의한 서문의 내용을 "기해보 만들 당시 참여를 하셨고 기해보에 관련해서 단 한마디 이의 없이 찬성과 동조를 하셨다"로 마치 기해보 결과에 동조한양 종친들 설득에 왜곡,이용하고 있군요
序文이 실렸다고 責任轉嫁를 위한 參與를 주장 하는것은 語不成說, 過猶不及 입니다
"參與"라는것은 족보의 내용과 편집 방향에 영향을 행사 한것을 의미합니다
무주세보가 1947년 작성 되었다고 기해보 논쟁에 달라지는 것은 없읍니다.
1980년 고성회의 당시 족보의 작성연대를 이미 검증하여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각 계파 가승의 연대를 살펴보면 정확 한것은 알수 없으나 년대가 오랜것은 무주 다음은 남해고 의령은 왜정말기 전쟁시기에 간행된 가승의 순서이다"
무주세보는 무주가승보에 근거하여 작성이 된것입니다
거창장씨 문중에 질의하는 등 고생들 하셨네요
대종회는 기해보에 제기된 문제들을 해명 하는게 우선인데 한마디 해명도 못하면서 무주보를 상처내어 쟁점을 흐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군요
병일선조의 찬동, 무주세보의 작성연대, 시조의 귀화연도 등은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논란의 核心은 기해보의 잘못된 내용임을 熟考하시기 바랍니다
기해보의 후손들이 대종회를 장악,이용하여 紛亂의 책임을 물어 제명처분 하였지만 眞實은 바뀔수가 없읍니다
賓氏 同一歷史를 各 地域의 5개史冊은 모두 비슷하게 쓰였으나, 後에 나온 기해보만 判異하게 다르게 썼다면 틀리게 기술한것이 어느 것인지는 초등학생도 정답을 알수 있읍니다.
5개史冊에 따라 私心없이 充實하게 기해보가 작성 되었다면 오늘날 이런 紛亂은 없었을 것입니다.
紛亂을 야기하는 것은 기해보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해보 自體 입니다.
# 5개史冊 : 무주가승,무주세보,남해가승,의령보,장수가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