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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오대산 산행 및 사찰순례 ⑤ 江原 平昌 五臺山 山行 及 寺刹巡禮 五
-오대산 월정사 (五臺山 月精寺) ①-
지난 11월 14일 오후 4시경 상원사를 출발하여 4시 20분경 월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원 래 월정사를 참배하려면 일주문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오대산 산행 때문에 역으로 순례하 다 보니 중대 사자암, 그리고 상원사를 참배하고 월정사에 오게 된 것입니다. 간이주차 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아름다운 다리가 맞이합니다.
개천을 건네주는 다리가 아름답습니다.
살며시 보이는 월정사
만월교(滿月橋)
이곳은 오대산 중 만월산(滿月山)의 정기(精氣)를 듬뿍 담고 마음달이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월정사(月精寺)라 합니다. 그래서 다리 이름도 만월교라 한 것 같습니다. 난간에는 십이지신조각상(十二支神彫刻像)이 있어 다리를 더욱 아름답게 해 줍니다.
만월교 풍경
만월교에서
월정사 정경
월정사에 대한 월정사 홈페이지의 글을 옮겨 봅니다.
창건기(創建記)
동쪽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 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 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 뿐더러 예로부터 오만(五萬) 보살(菩薩)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 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開山祖) 자장 율사(慈藏律師)에서부터 근대의 한암(漢巖), 탄허(呑虛) 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 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 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 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 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 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
그 뒤로 유동보살(儒童菩薩)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 - 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信孝居 士)와 또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信義)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 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진부면 수 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의 장로 유연(有緣)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 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 선으로 중문, 탑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중창기(重創記)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而一)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 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12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瀛潭), 정암(淨庵) 스님 같은 분이 앞장 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가운 데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 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관음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 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했다.』
현대 化)스님과 현해(玄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 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비록 몇 차례 화재와 전화로 많은 성물(聖物)과 문화재를 잃긴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당우들이며 국보로 지정된 팔각 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월정사 홈페이지에서-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月精寺)
만월교를 건너면 만나는 전각. 입구.
오대산월정사(五臺山月精寺)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
오대산 일대 사찰은 탄허 스님의 글씨가 없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상원사도 그랬지만 특히 탄허 스님의 주석처인 이곳은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용금루(涌金樓). 안쪽.
이 용금루(湧金樓)는 본래 팔각구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 다고 합니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한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용금루의 계단을 한단한단 오르면 월정사 경내가 마치 불계(佛界) 와도 같이 조금씩 가까워 오는 구조로 월정사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라 하는데 올라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 용금루는 월정사성보박물관 특별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 의 팔작지붕으로 1977년 만화 스님이 중건했습니다.
보화님, 겁도 없으셔~ 그러다가 물리면 큰일 나는데... ㅋㅋㅋ
금강역사가 검(劍)과 도(刀)를 가지고 지키고 있네요.
바위를 드는 용력과 금강저를 든 역사의 힘이 느껴집니다.
웬 북이 통로에 있을까?
월정사 팔각구층탑과 적광전(寂光殿)
적광전(寂光殿)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七佛寶殿)이 자리하고 있 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만화(萬化)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되었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 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 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 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 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華嚴經)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적광전 뒷면 벽화는 10개의 소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 다. 적광전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주련의 넉 줄은 자장율사의 불 탑게(佛塔偈)이다.』 -월정사 홈페이지에서-
주련의 내용은 몇 번 소개 되었으나 나중에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살피는 님들
석탑만 바라보아도 흐뭇합니다. 6. 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서 오대산 모든 사찰이 상원 사만 빼고 다 소각되었는데 전쟁의 참화(慘禍)에도 꿋꿋하게 위용을 잃지 않고 전화(戰禍) 를 비껴간 것에 무한 감사를 올립니다. 이 빼어난 작품이 파탑이 되었다면 월정사는 빛 을 잃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합니다.
팔각구층석탑(八角九層石塔)의 위용.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에 대한 월정사 홈페이지의 글을 전재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나, 그 무렵의 탑들은 평면 정방형에 삼층 또는 오층의 탑 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구층에 이르는 늘씬 한 자태를 이루어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하였는데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 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 고 있다. 기단은 아래층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연꽃 장식을 베풀었다.』
날씨가 좀 흐린데다가 날이 저물고 있어 사진이 어둡습니다.
『그 위로는 굄돌을 놓아 위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님의 연꽃 대좌처럼 장식 되었다.
그 위에 탑신을 받았으니 탑신은 곧 부처님이다. 탑신 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 니 불사리(佛舍利)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이나 다를 바 없고 그러한 진신의 부처님이 연꽃 대좌 모양의 기단위에 계신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기단 위에는 부처님을 앉히기 위한 방석과 같은 석재를 별도로 끼웠으며 탑 앞의 석조보살 좌상도 부처님과 같은 탑 앞에서 공양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탑신은 각 층마다 줄어듦이 적고 층수는 구층을 헤아려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느 낌을 더해주고 있다.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지고 일층의 사면에는 네모난 감실이 하나씩 있는데,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며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몸돌은 모서리마다 귀기둥이 새겨지고 끝은 밑면이 수평이고 위는 곡면으로 처리하여 추 녀 끝이 살짝 위로 솟아 가뜬해 보이며 추녀 끝마다 풍탁이 달려 탑은 언제나 바람의 향 기를 음미한다.
흐트러짐이 없는 정연한 상륜은 보탑의 격조를 한층 더하여 주며, 여기에 금동장식을 더 하여 탑 위에 보관을 얹은 듯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하여 보탑의 절정부는 세련 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 하였다.』
팔각구층탑과 약왕보살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1970년 해체보수를 통하여 1층 2층 6층 9층을 새 돌로 갈았 으며 그 당시에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이 되었다. 은제의 불상 1구와 4점의 청동 거울,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의 총 12점의 유물들은 2003년 6월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또한 2000년 8월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보수공사 시에 지하 1m 아래에서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유구가 발견이 되어 학계의 반향을 불러일 으키고 있다.
이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미터로 우리나라의 팔각석탑(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단연 으뜸이며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주목받고 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 보물 제139호 복제품.
2008년 보안된 이재순(李在珣 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石匠)의 작품입니다.
이 석조보살좌상의 주인공은 약왕보살(藥王菩薩)님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탑을 향하여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공양을 드리는 모습을 한 석조보살좌상이 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고색이 창 연했는데 이제 와 보니 아주 말끔해서 보니 근래에 그대로 복제하여 모셔놓은 것 같습니 다. 이 보살님은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의 보살님은 아마도 성보박물관에 모셔 놓은 것 같습니다. 복제품이지만 은은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 다음 사진은 모셔온 사진입니다.
본래의 석조약왕보살좌상(石造藥王菩薩坐像) 보물 제139호.
덩이 두껍고 뺨은 도톰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어 복스럽게 느껴진다. 머리위에 높다란 원통형 관을 쓰고 있는데 관 옆에 작은 구멍이 얕게 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에 장식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발(寶髮)은 양 어깨의 앞과 뒤로 단정하게 드리워 져 있고, 두 귀는 보발 등으로 살짝 감추어져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새기고 앞가슴은 영락(瓔珞)으로 장엄한 채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무엇을 잡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금 아래로 내려놓은 오른쪽 팔꿈치는 아래에 받침을 괴었는데, 재미있게도 이 받 침은 동자상(童子像)이다. 대좌는 둥글며 커다란 중판연화문(重辦蓮花文)을 조각했다. 이 보살은 탑을 향하여 한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앉아 있고, 상체가 하체 에 견주어 큰데 이것은 우리 눈의 착시현상을 감안한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것은 고대 인도의 관습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스승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것 이다. 이 보살상이 약왕보살임은 법화경에 잘 나와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는 과 거 일월정명덕(日月淨明德)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희견보살(喜見菩薩)이 부처님으 로부터 법화경 설법을 듣고 현일체색신삼매(炫一切色身三昧)를 얻었다. 환희심에 가득한 보살은 여러 가지 공양을 올렸고, 마침내 천이백 년 동안 향을 먹고 몸에 바른 후 자신의 몸을 태우며 공양하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받아 일월정명덕국(日月淨明德國)의 왕자로 태어났을 때 일월정명덕여래는 그가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 희 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팔만사천의 사리탑을 세우고 탑마다 보배로 만든 깃 발과 풍경을 매달아서 장엄하게 꾸몄다. 그러고도 모자라 탑 앞에서 자신을 두 팔을 태우 며 칠만 이천 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하였으니 이 분이 바로 약왕보살(藥王菩薩)이다. 좌상의 전체 높이는 1.8미터이며 보물 제139호이다.』 -월정사 홈페이지에서-
적광전 앞 오른쪽에 있는 석등
적광전 앞에 있는 작은 석등
적광전 앞 왼쪽에 있는 석등
☞ 다음은 2부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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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팔각구층탑의 위용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10여년전 쯤 들른 월정사가 아련하네요. 좀 더 자세히 더듬었어야 했을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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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0년 전에 다녀왔는데 전혀 다르더군요. 팔각구층탑이 월정사의 위용을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6.25때 하마터면 국군에 의해 우리나라 성보들이 많이 사라질 뻔 했습니다. 해인사도 화염에 소진될 뻔 했고 지리산의 모든 사찰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마다 목숨을 걸고 막은 이가 있어 성보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이 많았던 시절 같습니다. 사전에 정보를 많이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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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의 탑 양식이 특이하여 기억이 남네요 ...우리나라 의 귀중한 문화유산 후세들도 잘
지켜나가야 할텐데........
보화님 넘 하시는 거 아니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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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바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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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를 하고 나서 아쉬운 점은 항상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입니다. _()_
맞습니다. 차근차근 볼 틈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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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다관(一去多觀)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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