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당 득점률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황선홍은 중요한 경기에서
못한다라는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골을 많이 넣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네팔같은 팀이랑 해서 8골이나 넣은게 자랑이냐라는 대답만 돌아왔구요.
그가 88년에 데뷔한 이후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살펴 봤습니다.
국가대표 초기...
88년 아시안컵 : 일본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A매치에 화려한 데뷔.
교체멤버였던 카타르, 중국, 사우디전에서는
무득점을 기록하나 Full 로 뛴 이란전에서 득점.
89년 월드컵예선 : 서울과 싱가폴에서 열린 예선전에서 3경기 연속득점.
4개월 후 열린 최종예선에서 북한을 상대로 결승골,
사우디를 상대로 2-0 으로 이기는 골 성공.
90년 월드컵본선 : 벨기에전 Full 출장. 무득점.
우루과이전 뒤늦은 교체 출장. 무득점.
90년 다이너스티컵 : 일본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림.
90년 아시안게임 : 6경기중 2경기 Full 출장. 2경기 교체멤버.
출장한 경기에서 3득점.
90년 친선경기 : 북한을 상대로 결승골.
일본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황선홍은 정말로 화려한
국가대표 데뷔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예선에선 그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경쟁자였던 북한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한 황선홍.
언론에서는 차범근과 최순호의 뒤를 잇는 특급 스트라이커라면서
황선홍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90년 월드컵본선. 일방적으로 밀린
벨기에전에서 이회택은 황선홍을 기용했지만 무득점에 그치고,
언론은 차세대 기대주라고 한참 띄워주던 황선홍의 이름을 들먹이며
별로 득점기회도 없던 그 경기에 대해 '득점실패,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경기에 이회택 감독은 황선홍을
기용하지 않았죠. 세번째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는 뒤늦게 교체로
들어 갔구요.
월드컵이 끝나고, 황선홍은 일본전에서 다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일본전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다시 국민들로부터 기대를 받게 됩니다만,
아직까지 그는 국가대표에서 신출나기였고 90년 아시안게임에서도 크게
중용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90년 10월에, 이미 8월에 평양에서 한 번
진 북한을 상대로 1:0 승리를 이끌어내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황선홍은
국가대표 부동의 포워드로서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드래프트를 과감히 거부하고, 독일로 진출합니다.
90년 10월부터 93년 9월까지 3년동안의 공백은 그 때문에 생긴 거죠.
황선홍은 홍명보와 같은 시기에 나타나서, 처음에는 그보다 훨씬 더
주목받는 선수였습니다. 출전기회도 훨씬 많았구요. 88년 12월에
데뷔하여 1년동안 그는 17경기에 출전해서 10골을 넣었습니다. 골을
넣은 경기는 8경기. 이동국, 안정환의 국가대표 데뷔 초기 모습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잘했었습니다.
90년에서 94년...
독일로 진출한 황선홍은 독일 2부 리그의 부퍼탈이라는 팀에서 주전
포워드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2부 리그 득점랭킹 2, 3위를 달리게
됩니다. 90년 독일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그 때 당시
독일 2부 리그의 위상은 지금 설기현이 뛰고 있는 벨기에 주필러
리그보다 더 인정받는 리그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독일뿐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다 마찬가지인데 2부 리그에서 득점랭킹
상위를 달리는 선수는 웬만한 1부 리그팀은 상당히 욕심을 낼만한
그런 선수입니다.
그러나... 황선홍은 상대 선수의 태클에 걸려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십자 인대 부상이라는. 축구 선수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부상. 황선홍은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에도 참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김호 김독은 황선홍을 믿고 2차예선에 황선홍을 부릅니다.
부상 후유증때문에 황선홍 선수가 한 번 거절을 했지만, 그래도 뛰어
주는게 좋겠다고 불렀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습니다. (이건 확실하지
않지만)
오랜만의 대표 복귀. 황선홍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예전처럼 두 경기하면 한 번 정도 넣어
주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5경기동안 무득점에 그치죠. 언론은
그 때도 부진한 황선홍을 기용하는 것에 대해 뭐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93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북한과의
경기에서 한 골을 기록하지만 3:0 의 승부였고, 사실 이 경기로 인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도하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라크의
동점골로 본선에 진출했기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죠. 사실 황선홍이
욕 먹기 시작한건 93년에 있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부터였습니다.
그 후, 월드컵 본선이 시작되기전까지 황선홍은 다시 그의 득점
레이스를 펼쳐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경기 걸러 한 골. 콜롬비아,
카메룬, 온두라스... 그리고 언론은 황선홍이 완전히 부활했다며
다시 한국 축구의 스타로 황선홍을 소개하죠.
그리고 94년 월드컵 본선. 스페인의 서정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사람이 홍명보라는 건 알아도, 그 홍명보에게 정확히 패스할 수 있도록
공을 밀어준 선수가 황선홍이라는 사실은 거의 기억하는 사람 없이
맞이한 볼리비아전. 어이없이 뜨는 중거리슈팅과, 결정적인 몇 번의
찬스를 놓친 황선홍. 그보다 더 완벽한 찬스를 놓친 조진호, 하석주는
별로 기억되지 않은채 황선홍은 패전의 멍에를 혼자 뒤집어 씁니다.
물론 수비진은 0실점으로 선방했으니 패전의 멍에는 공격진이 뒤집어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그 멍에는 황선홍이 혼자 다 뒤집어 쓰게
되죠. 사실 이 때의 플레이는 황선홍 최악의 플레이로 기록될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결국 독일전에서 한 골을 넣었지만, 3골을
내 준 수비진에 대한 질타보다 황선홍을 질책하는 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94년 월드컵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네팔전에서 8골을 기록하지만,
사람들에게선 네팔같은 나라한테만 잘 한다는 비아냥만 들렸습니다.
그 당시 결코 만만치 않았던 오만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어도(2:1 승리)
별로 그를 칭찬하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대일본전. 황선홍은 2골 1어시스트를 하며 3:2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역시 황선홍'이라는 글자가 스포츠면을 장식하고, 사람들은 '어, 얘가
웬일이래'하면서 아시안게임 4강전을 기다립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일방적으로 몰아 붙였지만, 결국 우리팀 선수 누구도 골을
기록하진 못합니다. 황선홍이 볼리비아전만큼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도 아닌데, 우리팀이 골을 못 넣은건 황선홍 잘못인 것처럼 사람들이
얘기를 하더군요.
95년 8경기 연속골. 96년 올림픽. 그리고 96년 아시안컵에서의 부상...
95년이 맞을 겁니다. 황선홍이 8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던 해가. 안정환이
다시 한 번 기록했지만 그 때 황선홍이 세운 기록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94년 월드컵 이후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은
프로에서만 잘하고 국가대표에서는 못하는 황선홍이라고 말을 했고,
조금 더 봐줘서 중요한 경기에서는 항상 못하는 황선홍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황선홍은 95년 8경기 연속골을 몰아치면서, 6월에 다시 A매치에 나섭니다.
(그 해는 96년 올림픽때문에 올림픽팀 위주의 일정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95년 6월부터 96년 4월까지 8경기 나서서 사우디, UAE,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유럽에 속해서 월드컵에 못 나와서 그렇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닙니다)을 상대로 4골을 뽑는 활약을 펼칩니다. 당연히, 아틀란타
올림픽을 준비하던 비쇼베츠의 부름을 받아 와일드카드로 뽑히죠.
그리고 96년 올림픽... 황선홍은 올림픽 본선사상 첫 승을 이끌어 냅니다.
가나를 상대로 수비진을 휘저으며 결국 그 날의 결승골이 된 페널티킥을
유도해내죠. 여기서 기억이 확실치 않은데, 황선홍이 부상을 당하고
마지막 이탈리와의 경기에서 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비기기만 해도
올라가는데 결국 져서 8강에 올라가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용수가
아틀란타 올림픽 예선을 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정작 올림픽
본선에서 가나를 상대로 첫 승을 이끌어 낸 최고 수훈갑은 황선홍이었습니다.
그러나 8강 진출 실패로 결국 황선홍은 또 불명예를 완전히 씻어 버리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몇 달 후,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하는 아시안컵. 황선홍은 아시안컵
본선 조별 예선전 3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아시안컵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가장 유력한 득점왕 후보로
꼽은 선수가 황선홍이었습니다. 우리는 6-2의 패배를 안긴 알리 다에이를
대단했다고 기억하지만 그 선수보다 더 많은 외국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가 바로 황선홍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의 부상. 결국 그는
이란과의 8강전에서 나서지 못하고 맙니다.
98년부터 지금까지...
최용수는 97년 아시아 최종예선을 거치면서 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96년의 끔찍한 부상에서 벗어난 황선홍을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복귀전인 일본전에서 멋진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정말로 멋진 세레모니를 펼쳐 보이죠. 그리고 월드컵을 앞둔 평가전에서
유럽팀들과 맞붙은 4경기에서 2골을 뽑아내며 차범근 감독에게서 팀 전력의
50%를 차지한다는 말을 들으며 명예회복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평가전인 중국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며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죠.
99년. 3월에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경기. 직접 경기장을 찾아서 살펴 본
황선홍의 모습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축구를 전혀 모르는 제 친구도
그 날의 황선홍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으니까요. 김도훈의 골로 1-0으로
이겼지만 그 날 브라질 수비수들 4명 사이에서 교묘하게 공간을 차지하며
멋진 몸동작과 패스로 혼자 2명의 수비수를 끌고 다니며 한국팀 공격을
혼자 주도했습니다. 숫자놀음은 의미가 없지만 그 날의 포메이션은
3-6-1이었으며 서정원 대신 김도훈이 들어 오면서 3-5-2 로 바뀌었죠.
황선홍은 브라질 진영에 홀로 남아서 교묘한 움직임으로 브라질 수비수가
오버래핑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잡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포워드는
골을 넣어야 빛이 나는 법. 역시 그 날의 스타는 김도훈이었고, 황선홍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99년. J리그의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 언젠가 한국에 돌아와서 명예
회복을 하겠다던 황선홍은 수원블루윙즈로 돌아오지만, 오자마자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2000년을 화려한 명예 회복의 해로 삼으려던 황선홍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재활 훈련에 힘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1년하고
3개월이 지나 다시 복귀한 대표팀 경기인 카메룬전에서 그는 역시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프랑스전을 거쳐서 히딩크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은
후 멕시코전과 호주전을 통해 왜 이때까지 한 명의 감독도 빠지지 않고
그를 불렀는지 그 이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모든 감독은 황선홍과
유상철을 썼습니다. 홍명보는 비쇼베츠때 제외되었죠)
황선홍... 그가 잘 한 경기...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일전 4경기에서 5골 2어시스트.
90년대 초까지 역시나 분위기 살벌했던 대북한전 5경기에서 3골.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 한국팀 내 최고득점 8경기에서 7골.
94년 히로시마아시안 게임 득점왕 5경기에서 11골.
96년 아틀란타 올림픽 가나전 결승페널티킥 유도.
96년 아시안컵 예선리그 득점왕. 3골.
황선홍... 그가 못 한 경기...
93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
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
황선홍 선수가 정말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건 누가 말하는 것처럼
볼리비아전 한 경기만은 아닙니다. 정말로 93년 하반기부터 94년 상반기까지
미국 월드컵과 관련하여 황선홍이 보여준 모습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게
하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 십자 인대 부상을
안고 있었습니다. 부상을 두려워해서 골을 못 넣는 것도 결국 그 선수의
실력일 뿐이다라는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감독이 썼을까요. 그렇게 골을 넣지 못하는 포워드를... 그건
감독 입장에서 봤을 때 기대값이 높기 때문입니다. 황선홍이 없으면
경기당 2-3번의 찬스가 생긴다면 황선홍이 있으면 5-6번의 찬스가 생깁니다.
그게 황선홍한테 온 찬스건 다른 선수한테 온 찬스건간에. 5-6번의 기회가
모두 황선홍한테 걸리고 황선홍의 성공률이 다른 선수 성공률의 50%라고
해도 결국 전체 기대값(골 찬스 * 성공룔)은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선홍을 기용하게 되는 거지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런 것일수도 있고, 아직 축구와 관련한 문화가
뒤져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너무 결과만을 중요시합니다.
경기에 뒤지면 항상 나오는 말이 고질적인 골결정력 부족. 골을 넣을만한
찬스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골을 못 넣으면 우리나라
언론에선 그건 골결정력 부족입니다. 전체적으로 공격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골결정력 부족이 드러났다'는 말
한 마디로 경기 전체를 설명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말은 패배의 책임을
포워드들에게 뒤집어 씌우게 되고, 특히 황선홍은 그의 짝과는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의 욕을 혼자 먹어 왔습니다.
황선홍... 부상...
부상으로 인한 1년의 부진...
그리고 완치하기 힘든 무릎 부상은 96년에, 그리고 또 98년에 재발하여
그에게 똥볼 + 약골이라는 불명예만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고 재발하기 쉬웠는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부상을 당한 본인의 마음은 어떤 지도...
OB를 응원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박철순을 끝까지 응원했는데,
왜 국가의 이름을 걸고 뛰는 선수들에겐
'저 새끼는 왜 맨날 다쳐, 병신같으니...'
'역시 우리나라 애들은 피 나고 붕대를 둘러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라는 말을 하는지 저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부산을 떨지 않는 선수입니다. 그 많은 부상을 당했어도
본인이야말로 사실 얼마나 내심 조급하겠습니까? 이 치료, 저
치료를 다 받아 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잠깐이라도 나가서 뛰어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실 조그마한 부상을 입고도 나 죽네
사네 하는 선수들 많거든요. 큰소리 안 내는 고참 선수지만, 그런
그의 모범적이고 우직한 자세가 후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고,
그가 부상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건 못하건간에,
그 자신이 골을 넣건 넣지 못하건간에,
거의 마지막이 될 A매치 경기들을 치루고 나서,
그 스스로가 후련한 마음으로 웃으며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황선홍 A매치 통산 기록
2001/06/04 현재 (F=Full Time, O = 교체아웃, I =교체투입, * = 결승골)
-------------------------------------------------------------------------
횟수 날짜 장소 대회 상대팀 출장 득점
-------------------------------------------------------------------------
1. 88.12.06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일본 F 1득점
2. 88.12.09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카타르 I
3. 88.12.11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이란 F 1득점
4. 88.12.14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중국 O
5. 88.12.18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사우디 O
6. 89.05.23 서울 동대문 월드컵 예선 싱가포르 O 2득점
7. 89.05.27 서울 동대문 월드컵 예선 말레이시아 F 2득점
8. 89.06.05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말레이시아 F 1득점
9. 89.06.26 서울 잠실 대통령배 체코 O
10. 89.08.11 미국 L.A. 친선경기 멕시코 F
11. 89.08.13 미국 L.A. 친선경기 미국 F 1득점
12. 89.09.16 서울 잠실 친선경기 이집트 F
13. 89.10.13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카타르 O
14. 89.10.16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북한 F 1득점
15. 89.10.20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중국 F
16. 89.10.25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사우디 F 1득점
17. 89.10.28 싱가포르 월드컵 예선 U.A.E. F
18. 90.02.04 몰타 친선경기 노르웨이 O 1득점
19. 90.02.15 이라크 바그다드 친선경기 이라크 F
20. 90.02.18 이집트 카이로 친선경기 이집트 O
21. 90.06.12 이탈리아 베로나 월드컵 본선 벨기에 F
22. 90.06.21 이탈리아 우디네 월드컵 본선 우루과이 I
23. 90.07.27 중국 북경 다이너스티컵 일본 F 1득점
24. 90.07.29 중국 북경 다이너스티컵 북한 O
25. 90.07.31 중국 북경 다이너스티컵 중국 F
26. 90.08.03 중국 북경 다이너스티컵 중국 I
27. 90.09.06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호주 O
28. 90.09.09 부산 친선경기 호주 O
29. 90.09.25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 파키스탄 F 3득점
30. 90.10.01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 쿠웨이트 O
31. 90.10.03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 이란 I
32. 90.10.05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 태국 F
33. 90.10.11 평양 친선경기 북한 I
34. 90.10.28 서울 잠실 친선경기 북한 O 1득점
35. 93.09.24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호주 O
36. 93.09.26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호주 F
37. 93.10.16 카타르 도하 월드컵 예선 이란 O
38. 93.10.19 카타르 도하 월드컵 예선 이라크 F
39. 93.10.22 카타르 도하 월드컵 예선 사우디 F
40. 93.10.28 카타르 도하 월드컵 예선 북한 F 1득점
41. 94.02.16 창원 친선경기 루마니아 F
42. 94.02.26 미국 L.A. 친선경기 콜롬비아 F 1득점
43. 94.03.12 미국 L.A. 친선경기 미국 F
44. 94.05.04 창원 친선경기 카메룬 I 1득점
45. 94.06.05 미국 보스톤 친선경기 에콰도르 F
46. 94.06.11 미국 댈러스 친선경기 온두라스 O 1득점
47. 94.06.17 미국 댈러스 월드컵 본선 스페인 F
48. 94.06.23 미국 보스톤 월드컵 본선 볼리비아 F
49. 94.06.27 미국 댈러스 월드컵 본선 독일 F 1득점
50. 94.09.11 강릉 친선경기 우크라이나 F
51. 94.09.13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우크라이나 I 1득점
52. 94.09.19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U.A.E. O
53. 94.10.01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네팔 F 8득점
54. 94.10.05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오만 O 1득점
55. 94.10.07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쿠웨이트 I
56. 94.10.11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일본 F 2득점
57. 94.10.13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즈베키스탄 F
58. 95.06.10 서울 동대문 코리아컵 잠비아 F
59. 95.08.12 수원 친선경기 브라질 F
60. 95.10.31 서울 잠실 친선경기 사우디 O 1득점
61. 96.03.13 자그레브 친선경기 크로아티아 IO
62. 96.03.19 U.A.E. 두바이 친선대회 U.A.E. F 1득점
63. 96.03.23 U.A.E. 두바이 친선대회 모로코 F
64. 96.03.25 U.A.E. 두바이 친선대회 이집트 O
65. 96.04.30 이스라엘 텔아비브 친선경기 이스라엘 F 2득점
66. 96.11.23 수원 친선경기 콜롬비아 F 2득점
67. 96.11.26 중국 광조우 친선경기 중국 F
68. 96.12.04 U.A.E. 두바이 아시안컵 U.A.E. F 1득점
69. 96.12.07 U.A.E. 두바이 아시안컵 인도네시아 F 2득점
70. 96.12.10 U.A.E. 두바이 아시안컵 쿠웨이트 F
71. 98.04.01 서울 잠실 친선경기 일본 F 1득점
72. 98.04.15 슬로바키아 친선경기 슬로바키아 F
73. 98.04.18 마케도니아 친선경기 마케도니아 I
74. 98.04.22 유고슬라비아 친선경기 유고슬라비아 F 1득점
75. 98.05.16 서울 잠실 친선경기 자메이카 O
76. 98.05.19 서울 동대문 친선경기 자메이카 F
77. 98.05.27 서울 잠실 친선경기 체코 O 1득점
78. 98.06.04 서울 잠실 친선경기 중국 O
79. 99.03.28 서울 잠실 친선경기 브라질 F
80. 99.06.07 서울 잠실 친선경기 벨기에 F
81. 99.06.13 서울 잠실 코리아컵 멕시코 O
82. 99.06.16 서울 잠실 코리아컵 이집트 O
83. 99.06.20 서울 잠실 코리아컵 크로아티아 O
84. 00.02.16 미국 L.A. 골드컵 캐나다 F
85. 00.02.18 미국 L.A. 골드컵 코스타리카 F
86. 01.05.25 수원 친선경기 카메룬 I
87. 01.05.30 대구 컨페더컵 프랑스 I
88. 01.06.01 울산 컨페더컵 멕시코 O 1득점
89. 01.06.03 수원 컨페더컵 호주 F 1득점
이 자료는 하이텔의 정재상님이 송기룡님에게 부탁해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제가 최근의 결과를 추가시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현재 까지 A매치 94경기 49골 기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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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6 (22:24) from 210.221.1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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