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 나타난
단무지의 시적 이미지와 알레고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김승희 / 시인, 서강대국문과 교수
< 2021 만해문학상 수상>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모가지가 꺽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래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드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고 숨겨본 본심이 나는 무섭다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꺽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
허심이란다
적어도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 줄무늬다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지 오래 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 해 본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먼저 시인 김승희의 詩話 배경 즉 시인의 말을 전문 인용 해 본다 ***********
사랑에의 의지와 공감하는 마음. 표리부동(表裏不同)이 만발한 위선과 불신의 시대를 살다보니, '진실한 사람' 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진심,욕심, 본심,사심,흉심,내심,선심,단심,수심,안심,하심,오심.........진실한 사람은 표리(表裏)가 같은 사람이라 한다면 <단무지나 베이컨>처럼 겉과 속이 같은 것이 가장 진실한 존재일까? ( 그렇다) 단무지와 베이컨처럼 표리가 같은 존재의 헐벗은 가난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다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시인 이상은 말했는데 진실과 진심의 아이러니 앞에 억눌리고 절여지고 얄팍해진 궁색한 단무지와 베이컨이 힘없는 사람의 알레고리로 아프게 존재한다. 그, 예쁜 노란색과 연분홍색은 무력한 절망이 맞서는 한줄기 반항인가?( 그렇다) 위선에 맞서는 힘이 위약뿐이라는 절망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1.
단무지는 단순/무식/ 지랄의 줄임말로 인식한다. 이 단무지의 본성은 “소금‘에 절여져야 단무지의 본성을 획득한다, 시인의 표현대로 단무지는 뼈도 녹인다는 소금 식초 속에 안간힘을 쓰면서 ”쓰라리고 쓰라리게“ 절여져야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 表裏不同 ,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야 진실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연유로 화자는 단무지 처럼 단순 무식한 진실한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적 절망과 삶의 무기력에 절여진 진실한 단무지로 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2.
핵심 시어는 소재(단무지, 메이컨)와 더불어 관념적이지만 ’진실‘이라는 추상명사다.더불어 ’진심‘이란 추상적 관념시어가 이 시에서 어떠한 알레고리로 변용되고 있는지도 살필 일이다. 어쨌든 가장 진실한 존재의 모습의 인간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시인은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마치 단무지나 베이컨의 본연의 모습처럼 말이다. 여기서 ”진실“은 소금에 절여지고 걸러지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 쪼그라든 단무지와의 등가물이기에 화자가 고백하는 진실의 농도는 소금처럼 짤 수밖에 없는 인생의 관조의 자세를 은유하고 있지는 않을까? 추론 해 본다.<위 시인의 말과는 다른 해석>
3.
한편, 시인은 단무지를 힘없고 단순 무식한 진짜 진실한 사람의 알레고리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놓치지 말자. 어찌 보면 사랑이 메마르고 소금기 없는 무미건조한 위선과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에서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차라리 단순/무식/ 지랄한 < 이는 paradox이며 김승희 시인다운 에둘러 표현하기다>란 단무지처럼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화자는 종결부에서 우리에게 진득하게 묻고 있다. 단무지 이후는 생각하지 말자고, 무엇을 더 바라겠냐고 말이다. 그게 시인의 본심이며 진심을 초월하는 몸의 언어이다.
4.
시는 일견 어두운 밤색이지만 행간에서 태양의 시인<최초 시집 : 태양의 미사>인 김승희 다운 발랄한 단무지의 노란, 베이컨의 연분홍이 우리들 마음 속 감정의 프리즘을 투과하며 태양빛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그것은 겉과 속이 같은 빛깔로 빛을 발산하는 정직한 본심인 것이다. 시의 소재인 베이컨도 단무지의 시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단무지는 동양적, 베이컨은 서양적 소금에 절여진 진실을 표상하고 있음을 유의하며 시 읽어내기를 진행하면 될 것 같다. 당초 김승희 시인은 ”鎭魂의 다리(인선과 불신의 시대)를 건너는 봄에 빨간 사과(진실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라고 생각 했었다는 점도 고려하면서 말이다. 이 시가 2021년 만해문학상을 받게 된 시론적 배경은 자유로운 발성과 에너지가 흘러넘치며 다채로운 배경을 통해 펼쳐내는 시적 대상의 인식과 시화법이 놀랍도록 유연하고 활력이 있었다는 심사평도 참고해 보자. 2021년 만해문학상 수상작품답다. 졸스럽고 핍진한 단평은 독서토론 후에 결과물을 바탕으로 정리하여 공유하기로 한다. <德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