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음악
낭만주의 음악 혹은 낭만파 음악은 서양 음악사에 있어서 시대 양식 개념으로, 고전파에서 이어지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유럽음악. 오늘날 일반적으로 감상하는 음악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문예에서 시작된 낭만주의운동은 예술의 각 분야는 물론 유럽의 모든 정신활동에 침투하였다. E.T.A. 호프만이 <음악은 낭만파의 예술이다>라고 주장하였듯이 낭만주의적 경향은 음악에서도 명백하게 추적할 수가 있다.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에 의한 백과사전 편찬 등에 힘입어 인간 사회와 관련된 모든 정확한 지식을 발견하고 정리하던 사회적 풍토가 정착되고 이와 더불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및 많은 과학적인 지식과 방법들이 주창되면서 낭만파가 형성되던 19세기의 사회도 새로운 과학적 방법과 정확한 지식을 빠르게 추구하는 사회적이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피아노 음악에서는 새로운 음향이 발견되었고, 관현악에서는 새로운 악기들이 추가되고 옛 악기들은 더 낭랑하고 유연한 소리를 내도록 개조되었다. 특히 예술에 있어 존재하는 새로움과 한계를 추구하는 정신에 힘입어 이 시대의 낭만주의 음악은 합리적인 것의 한계를 넘어 무의식적이며 초자연적인 것들을 추구하였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처럼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꿈을 다룬 음악이나 바그너의 악극에서처럼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인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담은 곡들이 한창 생겨났다. 또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나 바그너의 <파르지팔>, 말러의 교향곡 제8번과 같이 이상주의적인 동경심으로 가득찬 음악들이 주로 낭만주의 음악의 소재가 되었다.
고전파와 낭만파
과거에는 음악의 분야에서도 고전파와 낭만파는 대립하는 2개의 시대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는 일관된 조성음악(調性音樂)의 시대로서 고전파가 개척한 작곡기법·형식·곡종류를 낭만파가 모두 답습하고 있으며 복잡화하였거나 변화·발전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낭만파가 개척한 교향시와 캐릭터피스(character piece)라는 피아노 소품인 2개의 곡종류도 그 원천은 고전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고전파와 낭만파는 하나의 양식시대의 2개의 국면이며, 역사적인 변천과정에서도 낭만파는 그 새로운 정신적 자세로 고전파음악의 여러 가지 면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 복잡화하여 발전시켜 갔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에는 <고전파·낭만파의 시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19세기에는 보수파와 현실파의 격론을 비롯한 다채로운 대립을 보이기 때문에 통일적인 낭만파라는 명칭을 대신해서 19세기 음악이라고 하는 새로운 파악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음악환경과 음악가의 변화
왕후귀족과 상류계급이 음악의 담당자이며 궁정이 음악의 중심적인 장소였던 고전파와, 공개연주회가 정착하여 불특정다수의 일반시민이 청중이 되는 낭만파와의 음악환경의 차이는 두 시대 음악이 변화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고전파시대 대부분의 작곡자들은 궁정 등과 고용관계에 있었으며 당시 모든 종류의 작곡을 의무화하였고, 연주가도 겸하였다. 반면에 음악가가 자유롭게 독립된 전문직이 된 낭만파시대에는 먼저 작곡가와 연주가가 분업화되었다. 바이올린의 N. 파가니니, 피아노의 F.F. 쇼팽·F. 리스트로 대표되는 명연주가들의 탄생은 낭만파음악 특유의 명인(名人) 예술을 촉진시키고, 악기 메커니즘의 개량을 수반하였으며 반음계적 화성법(半音階的和聲法)을 비롯하여 음악의 색채적인 표현능력과 오케스트라를 현저하게 확대시켰다. R.A. 슈만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곡가가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듯이 교양을 갖춘 작곡가의 존재로 하여 음악과 다른 예술이 서로 융합되어 나타났다. F.P. 슈베르트에서부터 R.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가곡, 리스트가 고안해 낸 교향시를 중간점으로 하는 다채로운 표제음악은 각각 낭만파음악의 성악과 기악을 대표한다. 유명한 동시에 교향곡을 비롯한 절대음악도 낭만파적인 기교로 활발하게 작곡되었다.
종합과 순화
모든 예술의 종합이라는 낭만파운동의 정점은 작곡가·지휘자·시인·가극개혁자·문화철학자·음악제 주최자를 겸한 초인적인 존재였던 W.R. 바그너가 완성한 종합 예술 작품으로서의 악극에서 볼 수 있다. 요즘 국내에서 상연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로 유명한 바그너는 독일의 전설과 신화 등 문학에 상당한 관심을 갖는 동시에 이를 음악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대 효과 및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한편 음악예술의 순화는 절대음악을 신봉한 J. 브람스, 교향곡과 교회음악에만 혼신을 기울인 J.A. 브루크너, 죽을 때까지 성악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를 계속해서 만들었던 G.F.F. 베르디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소형식과 대형식
주관적인 감정표현을 특색으로 한 낭만파에서는 감정을 직접 간결하게 표현하는 캐릭터 피스가 유행했다. 이 시대에는 피아노를 위한 소곡이 유난히 각광을 받아 수많은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특히 쇼팽으로 대표되는 야상곡(녹턴)과 전주곡, 연습곡, 즉흥곡, 폴로네즈, 마주르카 등이 이러한 소품의 부류에 속한다. 반면 이와 함께 1시간 30분에 이르는 장시간과 1000명의 연주자를 필요로 하는 G. 말러의 교향곡 제8번 <천인(千人)의 교향곡> 등의 거대한 작품이 공존하였다.
과거와 미래
F. 멘델스존에 의한 《마태의 수난곡》의 재연(1829), J.S. 바흐의 악보전집의 출판, 또한 가톨릭 교회음악에서의 그레고리오 성가(聖歌)와 팔레스트리나양식의 재흥 등 낭만파시대는 과거의 음악유산에 새로운 빛을 비추었다. 한편 바그너의 음악이 20세기 음악의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듯이 과거와 미래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이기도 하다.
낭만주의의 유산 - 민족주의의 대두
가곡·가극·표제음악의 발전은 음악과 각국 고유의 문예가 결합되어 필연적으로 민속음악의 요소를 도입시켰으며(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등), 러시아·체코·헝가리 등 음악예술의 후진국에서도 국민악파가 탄생하였다. 또한 선진국의 음악에서도 각국의 독특한 양식적인 성격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유의점
낭만주의는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하는 기본 이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낭만 예술'이란 자체는 어떤 한 시기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시대나 공간에 관계 없이 추구되는 예술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음악사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분류하는 이유는 그 이전에 시작된 고전주의에 반한 특성 때문이며,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낭만 형식을 구축해 나갔기 때문이다. 고전주의 음악으로 유명한 베토벤 역시 그의 음악이 갖는 낭만주의적 정서 때문에 고전주의 작곡가임과 더불어 낭만주의 작곡가로 칭해진다. 낭만주의 음악은 어느 형식에 구속된 음악이라기 보다는 19세기 당시 여러가지 형태로 드러났던 낭만주의적 정서 혹은 '정신'에 입각한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