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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소년
설미희
나는 열세 살 섬 소년이다.
우리 동네에서 은빛 바다와 가장 가깝게 산다.
이른 아침이면 멸치어장을 하시는 우리 할아버지의 바닷물이 들어가 있는 검은 장화
소리가 퍽퍽 소리를 내며 이불 속에서 일어나기 싫은 날 깨운다.
“완철아! 니 일어났나?”
난 할아버지랑 둘이서 산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아버지는 바다로 나가셨다가 바다가 되어 버렸다.
엄마는... 그리운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가 외갓집으로 보내버렸다.
내가 오학년.... 가을 어느 날에....
난 할아버지가 무섭다.
구리 빛 도는 검은 얼굴에 늘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말씀이 없으시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앞 바다에 나가셔서 대나무로 막아 발을 만들어 놓은
죽방렴에 걸린 멸치를 거두어 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큰 가마솥에 바닷물을 붓고
잡은 멸치를 넣어 삶아서 작은 자갈 돌 위 대나무 발이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는 어장에
소금처럼 하얗게 펴놓고 왔을 것이다.
“완철아! 니 일어나 이 볼락 좀 미숙이네 갖다 주고 온나”
일어나기 싫어 귀를 틀어막고 있던 내가 ‘미숙’이라는 말에 이불 밑에서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슬며시 펴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할아버지예 죽방에 고기 많이 걸렸던가예”
“응 오늘은 멸치도 제법 잡혔고 니 좋아하는 볼락이며 괴기들이 많더라”
“어디 바예...”
신발을 신고 툇마루를 내려가 늘 비리하고 바다 물로 젖어 있는 우리 집 마당 한 쪽에 자리
잡은 크고 넓적한 빨간 고무 통 곁으로 갔다.
싱싱한 생선들이 펄떡거리며 물을 튕겼다.
“우와 할아버지예 정말 많네예”
“싸게 몇 놈 바가지에 담아서 갖다 주고 온나”
“히히히 몇 놈으로 할까예”
할아버지는 바다에 나갈 때 마다 입는 고무로 된 검은 옷을 벗고 시원하게 마루에 앉아
배가 고프신지 어제 내가 먹던 건빵 부스러기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서너 놈 큰 것으로 가져가라”
미끄러워 잘 잡히지 않는 생선들을 잡는다고 물 통 속에서 내 두 손이 헤엄을 치고 있는데
등 뒤에서 호통을 치시는 할아버지의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그만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엉덩이가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 녀석아! 할애비가 몇 번을 말을 했는디 못 알아듣고 또 손으로 괴기를 만져
니 옆에 있는 채는 어디에 써 먹을 끼고 응... 오후에 괴기 갖고 간다고 이장이
오기로 했는디 니 뜨거운 손으로 만지면 신선도가 떨어지는 거 모르나”
엉덩이 부분이 젖은 바지를 떨며 일어나 손잡이가 긴 채로 잡히는 대로 떠
큰 바가지에 담았다.
서너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 쯤 되어 보였다.
버럭 소리 지르시는 할아버지가 괜스레 미워 아무 말씀도 안 드리고 그냥 들고 나왔다.
바다가 보였다.
은빛 바다가...
그리고 어장에 펼쳐 놓은 촉촉한 멸치가 햇빛과 해풍에 건조 되어 가는 모습도 보였다.
난 바다가 좋다.
늘 보는 바다이지만 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나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흰 파도가
속삭이며 꼭 아버지처럼 내 마음을 달래준다.
‘완철아! 니 속상하제 아부지 니 맘 다 안다.
그래도 할아버지 미워하지 말고 할아버지랑 잘 살아라
아부지가 미안타‘
볼락의 소용돌이에 들고 있던 바가지를 떨어트릴 뻔하였다.
쐐기풀들이 늘어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보였다.
오늘은 주말이라 텅 빈 운동장과 초록의 잔디밭에 사슴 동상과 책을 읽고 있는 하얀
모자를 쓴 소녀 동상이 보였다.
꼭 미숙이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미숙이...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미숙이는 도회지에서 살다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내가 육학년으로 올라가던 날에...
교실에서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노는데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얼굴이 하얗고 조그마한
소녀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란스러웠던 교실 분위기는 잠잠해지고 아이들과 나는 신비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검은 양복을 입으신 선생님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배우 같고, 빨간색 코트를 입은 소녀는
동화책 속 공주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선생님 성함을 쓰셨다.
그리고 가슴을 활짝 펴시고 양손으로 교탁을 집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과 앞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며 육학년을 보내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과 축구도 하고요.
여러분! 선생님은 바다를 잘 몰라요.
여러분처럼 바다와 같이 살지 못했어요.
그러니 바다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제 선생님이랍니다.”
나와 아이들은 웃으며 바다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는 듯이 선생님을 바라다보았다.
“히히히... 선생님 제가 바다를 잘 알려드릴게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조용했던 교실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선생님께서는 한 참을 눈만 반짝이는 촌 녀석들인 우리들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셨다.
“자 여러분!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이 친구도 선생님처럼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여기가 많이 어색할 거 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많이 알려 주고 사이좋게 지내어요.”
선생님 옆에 서 있던 소녀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자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 보아요.”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톰한 작은 입술을 열었다.
“안녕... 전 임미숙입니다.”
미숙이의 하얀 얼굴이 바다 저 끝에 떠오르는 해돋이처럼 살포시 붉어지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호기심으로 찬 우리들을 한 번 쳐다보시고 미숙이를 내 옆에 앉게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늘 엄마를 그리워하던 내 마음에 뭔가가 담기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한테서 나던 바다 냄새가 아닌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난 내 냄새를 킁킁거리며 몰래 맡았다.
‘나에게도 비린 바다 냄새가 날 텐데...’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우리 동네는 항상 바다 고기랑 같이 살고 있다.
햇빛 잘 드는 빨래 줄에는 빨래만 널려 있는 게 아니라 배를 가른 생선들이 꼬챙이에
꿰어 빨래 보다 더 많이 걸려 있다.
그리고 매일 먹는 생선 구이... 온통 비린 냄새만 풍기고 있다.
“자 여러분! 첫 수업은 바다에 가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되어
바다를 멋지게 소개해 줄래요.”
우리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우렁차게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우르르 소리를 내며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3월 초.
우리 학교 운동장 한 쪽 뜰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빨강 분홍 동백꽃이 피어있었다.
우리들 시야에 펼쳐진 바다 세상은 잔잔한 물결을 출렁거리며 ‘어서들 오라고’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나랑 아이들은 어느새 운동장을 벗어나 큰 바위들을 타고 캥거루처럼 껑충거리며 뛰어
내려가 고운 모래를 밟으며 망아지 떼같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 참을 그렇게 달리다 바다 위 운동장 쪽을 바라다보았다.
선생님과 미숙이는 바위를 타고 내려오지도 않고 서서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샘예 왜 안 내려오시는데예...”
나의 큰 목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되돌아 뛰기 시작하였다.
“얘들아! 미안하지만, 다시 이리로 올라올래.”
우리들은 치타처럼 바위를 타고 눈 깜짝할 사이 다시 운동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돌로 된 의자에 앉았다.
모두들 숨을 헐떡거리며 선생님을 바라다보았다.
“얘들아! 바다로 내려가는 곳이 여기 말고 다른 길은 없니?”
“또 있어예... 완철이네 어장으로 가면, 돼예”
순이가 완철이를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좀 전까지 인자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근엄한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다보았다.
“얘들아! 우리 완철이네 어장으로 해서 바다로 가자.
너희들 먼저 뛰어가지 말고 천천히 걸어서 가자.”
아이들이 앞장을 서고 선생님과 미숙이가 뒤에서 따라왔다.
그런데... 걸어가고 있는 미숙이의 다리가 이상해 보였다.
신발과 바지 사이로 쇠 같은 뭔가가 보였다.
교실에서는 몰랐었는데, 걷는 모습도 우리들이랑 달라보였다.
앞장서서 가던 아이들이 되돌아보며 자기네들 끼리 뭉쳤다 흩어졌다 거리며
소곤소곤 거렸다.
미숙이는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마음이 이상해 졌다.
가슴이 콕콕거렸다.
평소에 한 걸음으로 달려갔던 우리 집 어장이 왜 그리도 멀고 울퉁불퉁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 장 서서 가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선생님 곁으로 다가가 발 폭을 맞추며
걷기 시작하였다.
양지바른 들판에는 파릇파릇 쑥이 돋아나 있고 드문드문 고개 숙인 할미꽃도 피어있었다.
나의 눈에는 힘들게 걷고 있는 미숙이만 들어왔다.
‘샘예 저기서 좀 놀다 가예’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어물어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어장에 도착하였다.
3월의 남쪽 바다는 육지보다 더 이르게 봄이 찾아왔다.
멸치의 수확량이 많아지고 할아버지와 갈매기들은 겨울 보다 더 바쁘게 바다에서 살았다.
아직 북쪽 나라로 떠나지 않은 물오리 떼들도 바다를 먹는지 계속 자맥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다에 가까이 가기 위해선 고르지 않고 불퉁하고 높은 돌계단을 내려가야만 하였다.
우리들은 늘 다니는 곳이라 눈 감고도 몇 계단씩 폴짝 뛰어 내려가지만,
미숙이는 주춤거렸다.
선생님께서 손을 내밀고 미숙이는 말없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처럼 그렇게 엉성하게 내려갔다.
바다... 푸르른 바다...
이상하게도 우리들은 바다에만 가면 모래사장을 달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만 닿으면 달렸다.
달리다 지치면, 아무 바위에 앉아서 물웅덩이에 고인 바닷물이 빠져 나갈 때 미쳐 나가지
못 한 작은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여자 얘들은 볕이 잘 드는 모래사장에 앉아 동글동글한 돌을 주워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미숙이는 해변을 걸으며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조개껍질을 줍고
있었다.
배가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작은 배가 멸치를 가득 싣고 부두에 닿았다.
“거기 완철인가?”
할아버지의 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로 달려갔다.
완철이는 어느새 갔는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할아버지께 배 밧줄을 건네받아 부둣가 우뚝
솟은 바위에 묶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다가와서 완철이를 도와주었다.
“할아버지예 안녕하십니꺼?”
“오 그래 네들이냐 핵교는 어쩌고 네들 여기서 다 뭐하노?”
“샘님과 같이 와써예”
그때서야 할아버지는 완철이 옆에 말쑥하게 차려 입은 선생님을 보고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샘예 그만 놔두소 옷 배립니더.”
“괜찮습니다. 어르신 제가 이번에 학교에 부임한 완철이 담임입니다.”
“그래예 반갑습니더.”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고 잡은 멸치를 가마솥으로 날랐다.
그리고 멸치 삶을 솥이 아닌 다른 가마솥에 물을 끓었다.
“완찰아! 이리 와서 끓는 물에 닭 잡아넣어라.”
완철이도 아이들도 우르르 달려갔다.
선생님께서는 미숙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마당 우물 옆에 앉아서 펄떡펄떡 뛰는 놀래미로 회를 떠시면서 선생님을
향해 말씀을 하셨다.
“샘에 회 드시고 가이소. 시방 잡아서 아주 싱싱합니더.”
아이들은 선생님과 둘러앉아서 회를 먹고 노는 동안 할아버지께서는 닭을 손질하여 백숙을
만들어 오셨다.
“우와”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께서는 할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좀처럼 웃지 않은 할아버지가 누른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아이다예 샘예 어서 드이소. 네들도 마니 먹거라.”
할아버지는 다시 가마솥으로 가 삶은 멸치를 건져 어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펴 말리셨다.
어촌 마을인 우리 동네는 따뜻한 봄이 되면 먼 바다로 큰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위해 온 동네가 당굿을 한다고 시끌벅적거렸다.
오늘 밤에는 순이네 배가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 고사를 지내는 날이다.
으레 이런 날이면, 마을회관에 가면, 떡이며 먹을 것을 얻어먹을 수 있기에 우리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기만 하였다.
미숙이와 순이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노는 시간에도 언제나 같이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다.
미숙이는 예전에 우리 동네에서 큰 배를 가장 많이 가지고 계셨던 최 할아버지의
외손녀이다.
미숙이도 우리처럼 잘 걷고 건강하였는데, 2년 전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도회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우물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쯧쯧쯧... 가시나 인물은 좀 이뻐...”
“그나저나 최 영감 속이 얼마나 탈고... 외동딸 좋은 디 시집보낸다고 싱글벙글 웃고
다니시던 때가 엊그제 같던디...손녀 딸 아가 저렇게 되었으니...”
“그러게... 남 일 같지가 않아... 돈이 많으면 뭐 할 끼고... 돈으로도 잃어버린 다리는
살 수도 없으니...”
“순이 어매야! 요즈음 순이 이상하지 않나? 우리 영미는 아침마다 옷 같고 야단법석이다.”
“와... 순이도 그렇다. 잘 씻지도 않던 기집아가 아침마다 머리 감고 거울 앞에서 산다.”
“기집아가 총각 샘한테 홀랑 빠져가지고 정말 눈꼴 시러워 못 봐 주겠다.”
“하하하... 샘이 참말로 멋지기는 하더라...”
“요새 기집아들 우리 때 하고는 너무나 다른기라. 우리 때는 샘 옆에도 못 가고 그랬는디
맛있는 반찬을 먹다가도 아부지가 옆에 계셔도 ‘우리 샘’ 가져다주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디 내가 지 아부지 보기에 더 민망터구마.”
“그런디 미숙이 동생 그 자그마한 가시나가 참 맹랑하다면서...”
“순이 어매 니도 들었나?”
“하모 재 넘어 사는 석준이가 가한테 시겁을 했다면서...”
“뭔디...”
“호진 어매 니는 모르나?”
“모른다. 무신 일이고...”
“석준이가 미숙이를 놀렸나 봐... 그런디 그 자그마한 가시나가 새벽부터 일어나 우물에
이물질이 빠지면 건져 올리는 긴 막대기를 들고 집 앞에 버티고 서 있더래”
“와...”
“핵교를 갈려면 최 영감 집을 거쳐야 가잖아...”
“그런디...”
“호진 어매야 니 아직도 모르겄나? 지 언니에게 사과하라고 핵교를 못 가게 막은 것을...”
“우야꼬 석준이 혼줄이 나겠구먼...”
“하모...”
“석준이 어매 속상허겄다. 아들이면 벌벌 거리는 성미인데...”
“뭐 최 영감이 야단을 친 것도 아니고 자그마한 가시나가 그랬으니 말도 못하고 똥줄 좀
탔을 끼다.”
“그래서 그 개구진 석준이가 사과를 했디...”
“우얄끼고 핵교는 가야하고 최 영감 집 앞이니... 집안에 있는 최 영감이 무서워서라도
꼼짝 못하고 울상이 됐껐지...”
미숙이에게는 일곱 살짜리 희숙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미숙이는 희고 얌전한데 희숙이는 검은 피부에 눈만 멀뚱하게 큰데도 발랄하여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귀여워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무뚝뚝한 우리 할아버지도 그 꼬맹이 하고는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잘
하시는 것 같았다.
희숙이는 매일 아침 우리처럼 학교에 등교를 하였다.
그리고 교장실부터 시작하여 서무실 등 각 학급을 돌아다니면서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다녔다.
선생님들께서는 그런 희숙이가 예쁜지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심지어 무릎에 앉혀놓고
사탕도 주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희숙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수업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교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학교를 벗어나서 우리 어장으로 향했다.
언젠가 할아버지께 여쭈어 본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예... 다른 아들은 멸치 말리는 곳에 못 들어가게 하면서 와 희숙이는 들어가서
꼴뚜기를 주워 먹어도 아무 말씀 안하는디예”
“와... 궁금하나...”
“야...”
“다른 아들은 꼴뚜기만 먹는 줄 아나... 멸치도 집어 먹고 밟아서 영 못 쓰게도 만들지만,
희숙이는 다른 아들하고는 다르다. 꼴뚜기를 주워 먹으면서도 못 쓰는 티가 있으면 가려서
한 쪽에 모아놓고 간다... 어린 것이....”
할아버지는 말끝을 흘리면서 담배를 피우셨다.
그런데 실은 나도 희숙이가 귀엽다.
큰 눈을 반짝이며 “오빠야”하면서 말을 걸어오면 그냥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다.
저학년 아이들이 가끔씩 미숙이를 놀리는 장면을 보고도 나는 용기 있게 아이들 앞에
나서서 뭐라 하지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뒤에서 지켜보는데 어리지만 언니를 위하는
당찬 모습의 희숙이는 요즈음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말이면 보시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토지’라는 연속극에 나오는 ‘서희’ 같았다.
시간표가 빼곡하게 박힌 금요일 그리고 내일은 학교가 쉬는 토요일...
하필 이런 날에 순이네는 배 고사를 지내는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는 나도 아이들도 온통 마음은 마을회관으로 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칠판에다 분수 문제를 써 놓고 열심히
설명을 하셨다.
수학... 그것도 분모 통분을 하여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푸는 문제... 도무지 이해가
빨리 되지를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숙이만 빼놓고 우리 반 아이들은 분수 곱셈식만 풀 줄 알지
분수의 덧셈 뺄셈식을 푸는 것은 통분을 하여 분모를 같게 만든 뒤 더하고 빼야 하는데
통분이 빨리 안 되었다.
미숙이는 수학을 참 잘 하였다.
수학 시간이면 항시 미숙이가 교탁에 나가서 칠판에 적어놓은 문제를 풀었다.
아이들은 미숙이를 점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숙이는 나랑 짝이 된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간단한
이야기만 하였다.
그것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하고는 안 그랬다.
웃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이 못 풀어 온 수학 숙제도 봐 주기도 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시간...
사회 시간이었다.
우리 고장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께서 나 보고 앞으로 나와서 바닷가에 있는
죽방렴에 대해 설명을 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미숙이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매일 눈 뜨면 보는 우리 집 앞 바다... 그곳에는 할아버지께서 하루 두 차례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 등 멸치를 걷어 오는 죽방렴이 있다.
칠판에다 V자로 크게 그리고 참나무 기둥도 세우고 사이사이 대나무와 그물도 그렸다.
그리고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였다.
“죽방렴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식입니더.
밀물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이렇게 제가 그린 그림처럼 바다 속에 V자로 참나무 기둥을
박고 대나무와 그물을 설치 한 다음 빠른 물살과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들이
둥근 통발 속 즉 대나무 사이사이와 그물 속으로 밀물과 함께 들어왔다가 바닷물이
빠지면서 물고기들이 통발 속에 갇히게 되면서 잡히는 방법입니더.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예
지금 우리나라에 죽방렴으로 물고기를 잡는 곳은 우리 동네밖에 없데예
그리고 낚시나 그물로 잡는 물고기보다 금나게 비싸게 팔린데예
왜 그런지 말씀해 드릴게예
낚시는 물고기 아가미에 바늘이 꽂히고 그물은 물고기들끼리 엉키니 상처가 나잖아예
그리고 물고기들이 아파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물고기 맛이 떨어진데요.
그런데 죽방렴은 안 그래예 통발 속에 갇힌 녀석들을 건져 오기만 하면 되니까예”
쑥스럽게 웃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설명을 잘하였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음이 계속 나왔다.
자리에 가서 앉는데 미숙이가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이상하게도 심장이 마구마구 뛰었다.
마을회관 앞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모여 지짐이나 떡 등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남자 어른들은 부둣가에 정박해 놓은 순이네 배 위에서 밤에 있을 배 굿을 위해
오색만기 등 어두움을 쫓으려고 오징어잡이 배처럼 전구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의 굿을 돋우기 위해 꽹과리, 북, 징, 장고 등 악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을 뒤흔들고 있었다.
“완철아! 할아버지 와 안 모시고 왔노”
배위에서 일을 보시고 계시던 순이네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크게 외쳤다.
“가자고 했는데예, 할아버지가 안 오신데예”
“참 영감님도... 순이 어매야 거기 막걸리며 음식 좀 푸짐하게 싸봐라
아무리 바빠도 어장에 쪼매 다녀와야겄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배 굿을 하는 마을 행사에는 예전부터 참석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왜 안 오시는지 잘 모르겠다.
어른들은, 특히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싸면서 쯧쯧쯧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학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친구들은 음식을 만들고 계시는 자기의 엄마 곁으로 가 입을 벌리고 제비처럼 받아먹었다.
내 마음이 이상해졌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보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는 나도 우리 엄마에게 지짐을 받아먹었는데...
“완철아! 이리 온나” 꼭 엄마가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 아픈 사람처럼 멍하니 순이 아주머니 곁으로 가 섰다.
순이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랑 나이도 같고 친하게 지내었기에 엄마가 가시고 난 후로
나에게 아주 잘 해 주셨다.
“이 녀석아 와 그리 힘이 없노 니 점심 안 먹었나?... 입 크게 벌리거라.”
지짐을 받아 입에 물었는데, 무슨 맛인지 아무 맛도 안 나고 입안에서 씹히지도 않았다.
그저 빙글빙글 맴돌 뿐 목으로 넘어 가지를 않았다.
엄마는, 우리 엄마는 외갓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았다.
동네에 가끔씩 오던 박물장수 아저씨에게 할아버지가 보낸 것이었다.
바다 저쪽에서 붉게 노을이 졌다.
엄마를 보낸 할아버지가 항시 미웠는데, 담배를 물고 바다만 보고 있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붉게 물들어가는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이렇게 배 굿이 있는 날이면, 더더욱 말씀이 없으신 우리 할아버지, 왜 마을 행사에
참석을 안 하시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살며시 그곳을 벗어나 바다만을 바라다보고 있는 하얀 등대로 향했다.
등대 안으로 들어가 풀썩 주저앉았다.
“어무이...... 아부지.........”
참았던 설움이 가슴속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
“완철아! 너 여기 있니?”
미숙이의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옷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응...”
“안으로 들어가도 되니?”
“응...”
“너 울었니?”
“아니... 안 울었데이”
“어머, 등대 안이 이렇게 생겼구나! 올라가는 사다리도 있네... 완철아 너 저위에
올라가봤니?”
“와, 올라가고 싶나?”
“응, 그런데 나는...”
“와,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면 되지 뭐가 그런데고...”
“어떻게 내가 올라가니?”
“올라 갈 수 있데이”
“완철아, 저기 올라가면 어때?”
“먼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밤하늘의 별도 아주 가깝게 보인데이...”
“그렇구나...”
미숙이는 서서 등대 안 사다리만 올려다보았다.
“완철아, 저기 올라가면 사람이 있니?”
“아니... 이 등대는 무인 등대데이”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불을 밝혀?”
“나도 잘은 모른데이... 할아버지께서 그랬는데이, 전기 모타식 회전 등명기라고
반사경인 섬광등면기로, 렌즈내부에는 백열등을 설치하고 오목반사경에 불빛을 반사시켜
불을 밝히어 어두운 바다를 향해하는 배들의 안전을 지켜준데이...”
“있잖아 완철아, 만약에 백열등이 나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음... 전구교환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전구가 훼손되면 자동으로 교환이 된데이”
미숙이는 이해가 안 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미숙아 너 저 위에 정말로 올라가고 싶나?”
“응”
“자, 업히거라”
나는 미숙이 앞에 등을 보이며 쪼그리고 앉았다.
“어떡해...”
“와... 개안타... 어서 업히거라”
한 참을 머뭇거리던 미숙이가 내 등에 살짝 몸을 대었다.
무슨 꽃 짐을 지는 것처럼 향긋한 느낌이 들고 가벼웠다.
“내 목 꽉 잡거래이. 나 너 떨어져도 모른데이...”
말을 하자마자 미숙이는 손에 힘을 주고 몸을 바짝 내 등에 대었다.
조심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미숙이는 미안한지 자꾸 이야기를 하였다.
“완철아 나 무겁지......... 완철아 힘들지...”
등대 위는 큰 어른 한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등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바다 저 멀리 물결을 가르고 물을 뿜어대는 것이 보였다.
돌고래였다.
그것도 두 마리가 바다를 노닐며 자맥질을 하였다.
미숙이는 내 등에서 내려 신기한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서서 먼 바다만 바라다보았다.
순이네 배는 이미 배 굿을 시작하였는지 불빛을 환히 밝히고 무당의 굿 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미숙이네 집 앞에 도착하였다.
여느 때라면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귀여운 희숙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오면, 부엌에서 일을 하시다가도 어서 오라고 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던
미숙이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당을 돌아 최 할아버지의 방으로 가 보았다.
최 할아버지께서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어... 완철이 왔나...?”
깜짝 놀라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완철아... 미숙이... 가들 식구... 새벽에 배 타고 갔다.”
“......야?”
다리와 손에 힘이 빠졌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볼락이 든 바가지를 놓칠 뻔하였다.
미숙이의 다리에 찬 보조기도 바꾸어야 하고, 수술을 하면 더 좋게 걸을 수 있을까 하여
먼 나라 미국으로 갔다고 최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온다고 하였다.
어젯밤, 등대에서 같이 있을 때 미숙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완철아.... 너 나 좋아하지?........여름 방학이 지나고 올 가을엔 너랑 같이 이곳에
다시 올라오고 싶다.... 그때는....... 완철아.......”
나를 보면서 말을 흘리던 미숙이의 눈이 생각이 난다.
이슬 맺힌 그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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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동화만으로도 바닷가 아이들의 생활상을 충분히 헤아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멸치잡이와 먼바다 고기잡이에 고사를 지내는 방법등등 그 장면들이 훤히 그려지도록 상세하게 서술을 하였군요. 그 배경에서 다리를 다친 미숙이가 전학을 와서 한 때나마 짝사랑을 하고 그 마음을 미숙에게 읽혀 결국 미숙이도 주인공 완철이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햇살 반짝이는 바닷가 마을의 봄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 놓은듯 합니다. 그 미숙이가 다쳤던 다리를 고치기 위해 멀리 떠나가지만, 그 헤어짐은 영원히 완철이의 마음속에 미숙이를 가득채우고 살아갈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습니다. 캔디님, 정말 캔디님처럼 귀여운 동화입니다. 잘 읽었어요.^^
햇살님...^^,,,말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언제나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는 햇살님 ... 햇살에 오늘도 행복을 담아봅니다.
캔디님. 반갑습니다.저도 햇살아우님의 댓글에 공감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바다의 풍경들을 상상하면서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리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반가워요~ 잔잔히 밀려오는 저녁노을 물결처럼~예쁘고 아름답네요~계속 좋은 작품 기대 합니다~~^^
아침이슬님 고맙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요. 점점 제 마음에 오염물이 끼네요.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단 한 줄이라도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솔바람님... 같은 서울에 살아도 참으로 만나기 힘드네요. 추석 연휴에 그림자님과 다른 분들과 함께 보았으니... 잘 지내시지요? 많이 부족한 저 늘 격려의 말씀 아끼지 않고 좋게만 보아주시는 오라버님의 호탕한 달마의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언제 안동 갈 기회가 생기면 저도 함께 갈래요. 오라버님 노래도 듣고요. 안동에 계시는 님들도 만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