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피리를 불고서 걷는 여수 화양면 옥적길'
여수풀꽃사랑 화양면 옥피리길 답사
♤ 때 : 6월 18일(토) 오후 2시 (비가 오면 생략)
♤ 모일곳 : 쌍봉사거리 나한의원 옆
♤ 가는길 : 시내버스 창무 마을 하차
▶ 임도를 따라 소옥마을, 옥적저수지, 신기마을, 옥적마을
▶ 대옥마을 '꽃밭415'에서 차 한잔과 꽃밭 구경
▶ 시내버스 타고서 나진마을 막국수로 저녁식사
▶ 시내버스 타고 귀가
♤ 특징 : 산은 오르지 않고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꽃과 나무, 마을 보면서 걷기
기우귀가(騎牛歸家)는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목동이 소 등에 타고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더이상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없이 즐겁다. 시우도 중의 6번째 그림이다. 시우도(
우리는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기 위해 소 등에 타고 피리를 불지는 않지만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서 화양면 옥적길을 걷는다. 한적한 시골길에서는 누구나 철학자가 되고, 도인이 된다.
화양면은 곡화목장이 있었던 곳으로 군마용 말을 길렀다. 화양면 옥적리(玉笛里)리는 곡화목장이 있었던 조선시대에 여러 마을의 목동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말거리산'이라고 불렀다. 옥적산이 남서쪽으로 길게 뻗쳐 큰 골인 대옥마을과 작은 골인 소옥마을을 만들었다. 뻗친 산의 모양이 꼭 옥피리를 닮았다고 해서 옥적이라고 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옥피리형 지세의 마을은 옛적부터 자손들이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된다고 하였으니 좋은 이름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목동들이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서 말등을 타고 옥피리를 불면서 마을로 들어왔을지 모른다. 아니면 보리가 익어갈 무렵 보리 줄기를 빼서 풀피리라도 만들고, 건너 팔영산으로 넘어가면서 여자만에 흩뿌리는 저녁놀을 보고서 가녀린 신세를 한탄해 구슬픈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화양면 옥피리길'은 여러 길이 있지만, 곡화목장의 경계성이 시작되는 창무마을에서 이천으로 뻗어있는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을 택하였다. 창무마을을 들어서면서부터 시멘트 길이어서 여름 날씨처럼 짜증을 내게 하지만, 비봉산자락을 돌아서면 숲이 깊어져 그늘을 만든다. 간간이 짓푸른 풀섶 사이로 새빨간 산딸기가 살짝 유혹의 손길을 내밀면 조금 전까지 짜증은 이내 사라진다. 붉은 다이아몬드 보석 같은 알이 촘촘이 박힌 산딸기를 입안에 쏙 집어넣어 오물오물하면 달콤한 향이 확 번진다.
간혹 지나다니는 차 바퀴를 피해서 자라나는 풀들과 마사토 흙이 조화를 이루는 길을 걸으면 풀피리는 아니어도 절로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스코틀랜드 국화 엉겅퀴가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채 의젓하게 보랏빛 꽃술을 내밀어 반긴다. 모퉁이를 돌면 비봉산 아래 골짜기에 집단으로 모여사는 농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종교적 신념에서 같이 산다는 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모습이 학교 다니던 시절 열심히 외웠던 이스라엘 공동농장 '기브츠'를 연상케 한다. 축구장에서 두 팀으로 나뉘어서 공을 차는 것이나, 군데군데 들어선 건물, 수영장, 놀이터, 하우스, 과수원, 논밭, 갖출 것은 다 갖춘 것이 뒷받침을 한다.
때가 이미 지났지만 고사리밭인 곳을 지나면 발걸음이 멈춰진다. 지난 봄에 고사리를 꺾으러 왔던 엄청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아뿔싸 또 시멘트길이다. 지난번에는 없었는데 어느새 포장을 하였나보다.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나 만난 맨흙길 가운데 움푹 파인데도 누군가 건축 폐기물 블럭 깨진 것을 갖다 메웠다. 그 옆 미루나무 가지에 한들거리는 잎을 보면서 할 말을 잊는다. '속 좁은 인간의 욕심'
이천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틀어 소옥마을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이 깊은 산골 논 어느 한 배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모내기를 하여 놀랐다. 그래도 가운데로 길이 있어서 기계로 농사를 지으니까 이곳까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혹 물이 부족할까봐 산 아래 저수지에서 펌프 2개를 이어 "콸콸" 논에 물대기가 바쁘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요즘에도 농번기를 느낀다고 한다. 확실히 농사철에는 손님이 적다고 한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농촌의 바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아랫마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서 논물 보러오신 농부는 "어쩔 수 없어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이제 이것도 당신 대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서 길게 한숨을 쉰다. 바쁜 농사철에 한가로히 돌아다니는 것 같아 미리 인사를 하며 한 마디를 건네었다. 이곳에서 내려가면 처음 만나는 마을이 바로 소옥마을이다. 마을 앞에 꽤 큰 옥적저수지가 있다. 너른 저수지 수면에 아로새겨진 온 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마도 오래 전 목동들은 우리와 다르게 소 등을 타고 옥피리를 불면서 저수지 둑을 따라서 이 마을을 지나가지 않았을까?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계속 포장된 길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래도 심심치 않게 반겨 주는 것이 바로 개망초꽃이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어서 꽃 보기가 힘들지만 씩씩하게 길가에서 꽃을 피운 개망초도 정겹기만 하다.
어디를 가도 신기마을이 있다. 그것은 옛날 마을이 아니라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면 '새터'라고 불렀고, 한자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신기'가 된 것이다. 옥적리에도 신기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인동 장씨가 이 마을에 이주해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이 마을 출신 학자 장태지(張泰址)는 1858년에 태어나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까지 올랐다가 낙향하여 향리의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기운이 서린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옛 옥적초등학교는 1948년 개교하여 50여 년 넘게 주변 마을 기초 교육을 담당하다가 1999년 폐교되었다. 지금은 여수미술협회가 운영하는 예술인촌이 되었다.
소옥과 대옥, 신기마을 목동들이 옥적 삼거리에서 만나 어떤 놀이를 했을까? 지금의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목동들이 놀면서 처음 하였던 놀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목동, 머슴들은 아마도 '낫치기', '소싸움', '풍물놀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목동들이 북적거리면서 소란스러웠던 소리가 그리워지는 곳이 되어버렸다.
옥피리산 아래 옥적마을을 지나 동쪽에 있는 대옥마을로 걸어간다. 옥적, 이천, 감도에서 나진으로 가는 찻길을 500m 정도 걸으면 대옥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 커다란 정자나무 옆에 꽃밭 찻집 '꽃밭 415'가 들어섰다. 농촌 전원생활의 향수만 생각하면서 지나쳤던 이곳이 오만가지 꽃이 피는 꽃동산, 꽃뜨락이 생긴 것이다. 일찌기 꽃꽂이 회장을 지냈던 분이 오랫동안 가꾸어온 꽃밭을 찻집으로 개방하였다. 잘 다듬어진 정원처럼 쌈박한 맛은 없지만, 오랜 시골 동네 친구처럼 꽃들이 서로 모여서 만들어내는 은은한 맛은 오래 기억될 곳이다. 화양면 옥적, 옥피리길을 걸으면서 못보았던 꽃들을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꽃밭415'에서 차 한 잔을 마신다음 서둘러 시내버스를 타고서, 나진마을로 나왔다. 화양면 면소재지 나진마을에 있는 국밥집은 국밥도 맛있지만 근처 밭에서 직접 키운 열무로 담근 김치를 넣어서 '막국수'를 내준다. 1인분에 6천원이면서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메밀로 만들었다. 식당 간판 이름은 국밥이지만 실제 먹고 있는 사람들은 메밀로 만든 '열무막국수'와 '열무 냉면'을 더 먹는 것 같다. 열무김치를 넣어서 만든 왕만두도 먹음직스럽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화양면에도 하나 둘씩 맛있는 음식점과 찻집이 들어서서 심심치 않을 것 같다.
十牛圖)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심우도(尋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