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문학의 특징
197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진보와 발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거론된 시대이다. 사회적으로 전쟁의 상처가 많이 아물고, 경제적으로는 중진국으로의 진입과 산업화의 가속력이 있었다. 삶의 여건도 많이 변화하여, 농촌 사회가 해체되고 농민들이 산업 노동자로 유입되었으며, 이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말미암아 도시 빈민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문학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우리 소설에 전례 없던 풍성한 자료를 제공했다.
60년대가 관념적 인식과 상징에 의존했다면, 70년대는 현실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그 대표적 형태가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인데, 이문구의 '관촌 수필' , '해벽' , '우리 동네' 연작이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송기숙의 '자랏골의 비가' , '암태도' 는 농민의 저항 의식을 담고 있으며, 농촌 현실을 증언한 김춘복의 '쌈짓골' , 어촌을 배경으로 한 천승세의 '낙월도' , '신궁' , 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을 이 계열에 포함시킬 수 있다.
노동 현실의 소설화 양상도 두드러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 '객지' , 윤홍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직선과 곡선' , '날개 또는 수갑' , '창백한 중년' , 연작 형태의 장편 소설인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이 이러한 유형에 들어 있다.
그러나 70년대는 정치적 삶과 경제적 삶의 불균형 상태를 낳음으로써 불완전성을 내포한 시대였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소설사에 병리적 상징으로 나타나서 불완전한 인물과 병실 공간의 등장이 두드러진다. 이청준의 '퇴원' , '병신과 머저리' , '황홀한 실종' , 박태순의 '실금' , 정종명의 '이명' , 최인호의 '견습 환자' , 정연희의 '어릿광대 의 치통' ,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2' , 안장환의 '동통' , 이동하의 '파편' 김구영의 '어디가 아프십니까' , 한승원의 '벌받는 사람들' , 오탁번의 '절망과 기교' , 문순태의 '개안 수술' , 현기영의 '순이 삼촌' , 임철우의 '직선과 독가스' 등의 작품들이 대표작들이다.
산업화와 인구 도시 집중은 우리 소설사에서 도시형 소설의 다량 생산을 낳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예가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 '서울 사람들' , 이동하의 '도시의 늪' , '장난감 도시' ,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 황석영의 '돼지 꿈' , 최인호의 '타인의 방' , 서영은의 '유리의 방' ,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 시대' , 최일남의 '서울 사람 들' , 전상국의 '고려장' , 이문열의 '달팽이의 꿈' 등이 대표작이며, 이러한 양상은 80 년대 양귀자, 최수철, 박영한 등의 소설로 이어지게 된다.
70년대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 소설이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는 4? 19로 비롯된 역사 의식의 성장과 급격한 시대적 변동에 따른 역사적 단절감의 회복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작품들로, 안수길의 '북간도' , 박경리의 '토지' , 유주현의 '조선 총독부' , 서기원의 '혁명' , 유현종의 '들불' , '연개소문' , '임꺽정' , 황석영의 '장길산' , 김성한의 '이성계' , '임진왜란' , 김주영의 '객주' , 이병주의 '지리산' 등이 있으며, 특기할만한 점은 위인 중심의 전기적 역사 소설에서 탈피하여 우리 역사의 숨겨진 부분과 이름 없는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두드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70년대 소설에는 제3세계적 시각이 폭넓게 깔려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한 것이 '월남 참전' 이었다. 이로부터 자유와 민주의 문제에서 자주의 문제로 확산되어 반제국주의 의식이 형상화되기 시적했는데, 그 대표적 작품들은 신상웅의 '분노의 일기' , 조해일의 '아메리카' , 이문구의 '해벽' ,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 들과 직접 월 남전을 다룬 작품으로 황석영의 '탑' , '낙타 누깔' , '몰개월의 새' , 박영환의 '머나먼 쏭바강' , '인간의 새벽' 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에 안정효의 '하얀 전쟁' 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로 이어지게 된다.
70년대는 이상과 같은 큰 흐름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이 나름대로의 개성적 문학관을 펼치면서 우리 소설사를 장식하고 있다. 자아와 세계의 불화에 대한 낭만적 인식을 기저로 하고 있는 최인호의 '무서운 복수' , '술꾼' , '예행 연습' , '별들의 고향' , '바보들의 행진' , 한수산의 '해빙기의 아침' , '밤의 찬가' , 오정희의 '직녀' , '불의 강' , '꿈꾸는 새' , 서영은의 '야만인' , '틈입자' , '사막을 건너는 법' 등의 소설이 그 예들이다. 그 밖에도 최일남의 '둘째 사위' , '디오게네스의 변절' , 최상규의 '대합실' , 정을병의 '피임 사회' , 강용준의 '탈주자들' , 김용성의 '리빠똥 장군' , 홍성원의 '무사와 악사' , '흔들리는 땅' , 김채원의 '먼 바다' , 유채용의 '누님의 초상'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70년대 후반 소설사에 새로운 작가들로 등장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 '들소' , 김성동의 '만다라' , 김원구의 '무기질 청년' 등도 주목해야 할 작품들이다.
**우상의 눈물
-1980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 잔인하고 교활한 문제 학생 '최기표', 성적 좋고 통솔력 있는 반장 '임형우',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담임 교사. 그들 사이의 갈등을 '나'(이유대)가 관찰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합법적인 권력과 벌거벗은 폭력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신군부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 맞습니다. 신군부 독재란, 70-80년대[이 책의 배경이 1970년대 한 고등학교죠a] 박정희의 유신독재[유신독재시절, 유신헌법은 대통령 간접선거,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화한, 한마디로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헌법이었습니다]
**김지하의 <오적>
--- 볼기가 확확 불이나게 맞을때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것다 .... 김지하의 담시 <오적> 에서
*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시 대안동에서 전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영일"이고 글을 쓰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포에서 중학교 2학년때 원주중학으로 전학하면서, 성당에 나가게 되어, 원주교구의 지학순 신부를 만나게 되며, 둘은 70년대 반독재 투쟁의 동료로써의 인연을 맺습니다. 서울 중동고에 진학, 백일장에서 입상, 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서울대 미대 미학과에 입학한 김지하 는 4.19 시민혁명 직후인 1960년 5월 판문점 남북학생회담 대표 3인의 한명으로 뽑히기도 했죠.. 그러나, 5.16 쿠테타 이후 학생 통일 촉진운동은 꺽이고, 김지하는 주동자로 쫒기게 됩니다..
서울대학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연합회의 소속으로 선언문을 발표한 김지하는 체포, 구금되었다가 넉달만에 풀려납니다. 이런 수난 끝에 1966년 8월 입학 7년반 만에 대학졸업장을 받게 되죠.. 그러나 다시 지명수배자가 되자 탄광으로 들어가 피신, 일을 하다가 폐결핵을 얻어 서대문 병원에 입원 하게 됩니다,,
그러한 끝없는 저항과 도피의 시간속에서도 김지하는 피를 토하듯 시를 썼고, 이 시들을 읽은 문학 평론가 "김현"은 월간지<시인>의 편집을 하던 "조태일"에게 넘겨, 김지하의 시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월간지 <사상계>의 편집장 "김승균"은 1970년 5월호를 기획하며, 세간에 나돌던 오적촌을 주제로 김지하에게 시를 청탁합니다. 오적촌은 정치를 잘해보겠다고 나선 박정희 이하 군인들이 권력을 잡은뒤에 초호화 저택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사상계 편집장 김승균은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함께한 김지하의 필력을 믿었고, 김지하는 불과 사흘만에 3백행이 넘는 장시를 담시의 형식으로 완성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오적> 이죠..
담시 <오적>이 발표되고, 1970년 6월 3일 김지하는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했다는 반공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 됩니다.. 박정희 정권과의 반체제, 민주화운동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