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9월
1일 새벽에 집을 나서 홍제천에 도착하니 6시가 되었고 어제 부산에 간 영식이는 일찍부터 전화를 한다. 6시20분 마라톤 연습을 시작하여 성산대교와 양화대교까지 1시간을 달렸다가 돌아오니 8시20분이 지났다. 멈추지 않고 달린 2시간의 거리지만 지구력이나 인내심이 필요하고 정신을 한 곳에 모아야 하는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땀을 흘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집에 왔더니 아내는 산에 올랐다가 점심 때가 되어 돌아왔다. 오후에 강의실을 이전하기 위하여 학원에 나가 현재 수업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한신학원 원장을 만났다. 50대 중반의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로 내일부터 옮겨와 강의를 하기로 약속했고 임대료는 매월 30만원을 주기로 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인솔하여 내일부터 수업할 새로운 학원에 들렀다가 맥도날드에 가서 모두에게 햄버거를 사 주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수학선생을 대신하여 여기에서 강의하는 선생이 수업을 맡게 되어 서로가 편하고 도움이 되는 상황이다. 동생 정환이는 오늘 낮에 어머님(고모님)께서 간에 문제가 있어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리는데 황달이 심한 중환자라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는 중에 신내동에 사는 조카 진우가 어제 군에 입대를 했다고 이야기를 하여 미안함이 많았다. 과거에 돌아가신 어머니 입장에서 가장 먼저 안아본 아들 손자라 기쁨과 기대가 컸고 나도 또한 진우를 애지중지 아꼈는데 전화 한 통도 없이 입대를 했다니 서운하기만 하다.
2일 오늘은 학원을 옮겨야 하는 일로 바쁠 것 같아 마라톤이나 체육관 운동은 못하고 일찍 안산에 올랐다. 1시간을 걷고 약수터를 돌아 중턱에 있는 대운동장에 도착하니 새벽부터 나온 많은 사람들로 장터를 방불케 한다. 얼마쯤 지나자 50여명의 산악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아침체조를 시작하여 보는 나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고 모두 나이가 들었지만 아름답기까지 했다. 산에서 내려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학교에 가는 아들이 나왔고 잘 다녀오라는 소리에 대꾸가 없어 걸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아들이 잔뜩 불만에 쌓여 있는 모습이지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면 지금의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새로 옮겨간 학원에 나가서 청소를 하고 교재준비도 하면서 보냈는데 시원한 성격의 한신학원 원장은 꼼꼼한 면도 보통사람 이상이다. 살아가면서 주변에 만나는 사람이 중요한 법인데 이 곳 원장과는 어떤 관계로 언제까지 생활이 지속될지 알 수는 없다. 고향 친구가 서울에 와서 시내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지만 어린 시절과 달리 나와 가는 길이 너무 달라 대화가 쉽지 않았다. 부산에 가 있는 영식이는 사업에 대한 어려움을 전화로 토로했고 나로서는 무엇이든 쉬운 일이 없으니 건강 조심하고 잘 올라오라고 당부했다.
3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어제 고향 친구와 술을 마시고 두고 온 차를 가지러 남영동까지 독립문 서울역을 거쳐 1시간 걸어서 갔다. 1분에 120보 1시간에 7200보를 걸었으니 하루에 1만보를 걷는다는 것이 집이나 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만만하지 않을 듯하다. 남영동에서 곧장 서부면허시험장으로 갔다가 수색방향을 돌아오는 마지막 주행시험에 응시했고 최종 합격을 하여 새롭게 면허증을 교부받았다. 5월5일 면허취소 통보를 받고 6월21일부터 무면허로 약 70일 동안 지내다가 오늘부터 다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며 아내에게 자랑하듯 면허증을 보여주니 빨리 취득했다고 무덤덤하게 남의 일처럼 말을 할 뿐이다. 오후에 현수막과 인터넷을 학원에 설치했고 이곳 한신학원 영,수선생들이 처음으로 강의를 실시했는데 학생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선생들은 평소 자신들의 수업보다 1,2교시를 더 하는 정도이니 수입이 생기고 내 입장에서도 강사료에 부담이 없어 더 좋다. 초라하게 운영하는 학원의 현실이지만 새로운 기회가 올 때까지 교재 준비 충분히 하면서 기다릴 것이다. 수업을 마친 밤에 창문을 열었더니 성북동 로터리가 한눈에 들어와 휘황찬란은 했는데 방음이 되지 않아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막걸리 1병을 집에 사 가지고 들어와서 누워있는 아내를 깨워 마셨고 늦게 온다는 아들을 기다리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4일 아들을 기다리다 잠이 들어 새벽 1시에 눈을 떠 혹시나 하고 문을 열었더니 언제 왔는지 잠을 자고 있다.
청국장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아들은 어제 내가 깊은 잠을 자고 있어 불만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고 거실을 나선다. 오전에 마지막 과외를 12시경까지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산에 갔다가 청소년 수련관 근처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신학원에서 강의실을 임대하여 수업은 하지만 졸업장이나 자격증 등을 교육청에 제출해야 해서 오후에 서류를 준비하여 학원으로 출발했다. 9월이 되었는데 낮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고 가로수는 여름과 다를 바 없이 아직도 짙은 녹색을 드리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하는 중등부 최대표를 학원 근처에서 만나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방향도 논의하였다. 저녁이 되어 강의를 하는 중에 학원 앞 분수대에서 성북동 미니콘서트가 열려 소음으로 무척 시끄러웠다. 학원의 위치가 좋아 처음에는 만족을 했는데 생각보다 큰 소음으로 수업에 지장이 이만저만 아니다. 영식이 모친이 서울에 오셨다고 하여 찾아뵈려다가 특례학생 최종 문제풀이로 내일 인사를 드리기로 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5일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학원에서 새벽에 돌아온 아들이 거실에서 잠든 나를 깨워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일찍 일어나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이번에는 6학년 딸과 초등학교 근처까지 처음으로 동행을 했다가 교문 입구에서 헤어져 이발소에 들어갔다. 동네에 사는 주민의 병문안으로 오전에 서울대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무엇을 느꼈는지 건강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더니 누워있는 나한테까지 와서 건강을 외친다. 오늘 점심에는 삼겹살을 보쌈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그 동안 먹은 음식 중 이렇게 맛있는 경우는 거의 기억에 없을 정도다. 영식이한테 서울에 오신 어머니를 뵌다고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어렵다고 하여 신당동 중앙시장에 논술교실 의자를 구입하러 나갔다. 날씨가 더워 결국 흥정만 하고 학원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남대문시장에 나와서 쇼핑 중이라고 한다. 달리기 대회에 출전한다는 딸을 위하여 일만 원을 주고 운동화도 샀다고 하는데 남대문표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까.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마트에서 구입한 냉면으로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역시 주문한 것과는 차이가 있어 송이스프를 요리하여 부족함을 채웠다.
6일 일요일이라 아침에 가족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가자고 했더니 오늘은 모두가 흔쾌히 응한다. 아내는 여행같은 활동적인 것은 좋아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정도가 취미이니 나하고 다른 면이 많은 사람이다. 아침 식사도 나가서 하기로 하고 잠자는 아들과 딸을 깨워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경춘고속도로를 달렸다. 7월 말 휴가로 나온 이후 40여일 만에 다시 달리는 도로에 이제는 가을이 오는지 길 가장자리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가평 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지난번 잠을 잔 건너편 서울방향 공간을 바라보니 오늘은 차량만 듬성듬성하다. 춘천방향 가평휴게소 뒤편에 앉아 아침으로 라면을 끓이려고 했는데 코펠을 집에 두고 와 컵라면과 가져온 밥을 먹었다. 남춘천을 지나 춘천시내를 통과하여 맨 먼저 공지천에 도착하니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이 낡고 초라하여 실망스러웠다. 청평사 가는 길 소양강 댐으로 이동하여 전망대 등을 구경하고 시내로 나오는 길목에서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었더니 춘천답게 맛이 좋았다. 오후 4시부터 아내의 일정이 있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서울로 돌아왔지만 오늘 같은 날은 가족을 위해서 수업을 미루었으면 더 좋았겠다. 다시 가평 휴게소를 지나쳐 오후 3시에 구리를 통과했고 집에는 3시40분에 도착, 춘천 소양강에서 집까지 1시간50분 만에 달려온 것이다. 아내는 바로 논술학원에 가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딸과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빠르게 다녀온 여행이지만 그나마 교통이 좋아 다행이고 즐거운 나들이 춘천을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7일 최근에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른하고 의욕이 없는 새벽을 맞이했다. 몸이 피곤하여 그대로 안방에 있었더니 아내가 잔소리를 하여 억지로 홍제천에 나갔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고 월드컵경기장을 돌아오는 10킬로를 속도를 내어 달려왔더니 몸이 가뿐해졌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했고 요즘은 주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예민하기만 하고 말도 안하는 딸을 학교에 보냈다. 체육관에 가서 기구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하여 힘이 들고 지루하여 12시가 조금 지나서 나왔고 점심을 하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명갈비에서 모임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 중이라 한다. 학원에 나가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고 재활용센터에 들어갔는데 그냥 버리는 책상이나 의자도 구입하려니 가격이 높아 바로 나와 학원으로 이동했다. 꼼꼼한 신원장이 화이트보드 칠판을 구입하여 교체를 해 놓았는데 배려하는 마음은 나도 닮아가야 할 부분이다. 수업을 마치고 들어온 집에서는 아들이 학교에서 춤을 배웠다고 엄마한테 가르치고 또한 아내는 따라서 동작을 하는데 너무 어색하여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8일 가을이 오는가 했는데 아직도 모기가 있어 시달리다가 일어났고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다. 아내가 먼저 나가고 나는 10시에 안산을 올라 9월의 하늘을 만끽하며 정상에서 봉원사까지 2시간을 걸어 다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집으로 왔다.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이지만 서류정리와 주말 보충수업 때문에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신설동으로 이동하여 3층 세입자를 만났다. 나이가 80이 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는 사람이 요양원이나 노인호텔 등을 설립한다고 투자까지 강요하니 어이가 없었고 몸도 성하지 않고 임대료도 내지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노인이 더 한심하고 초라할 뿐이었다. 늙어서는 건강도 해야지만 바른 마음으로 주변인에게 식사라도 살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노력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 아래에 있는 호프집에 내려갔더니 주인은 처음보다 장사가 덜 된다고 하소연을 하고 나로서는 2층임을 감안하여 임대료를 내려서 계약한 상태다. 적은 액수를 투자하고 많은 수익을 기대하니 항상 불평과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내가 청산학원에 근무할 때 이 곳은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였는데 마을버스가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줄어들어 지금은 상권이 약화된 상태다. 남영동에 가서 영식이와 다른 친구들까지 만나 빈대떡 막걸리와 생태탕 저녁을 먹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9일 어제 은근히 과음을 하여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무겁다. 8월 중순에 정산해야 하는 마원장의 수익금이 오늘 입금되어 어려운 상황에서 고맙기도 했지만 공증까지 한 금전관계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등교시간이 늦어 허둥대는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면서 고등학교 진학문제를 논의했다. 중학교 전체를 합하는 내신성적이 불리하여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는 어렵고 자사고라도 가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고등학교에 따라 대학도 좌우되는 중요한 시기이니 신중하게 생각할 일인데 아들은 현실을 무시하고 그럴 듯한 미래만 이야기한다. 오전에 체육관에 갔다가 돌아오니 산에서 내려온 아내는 시간이 늦었다며 숨 돌릴 틈도 없이 학원에 올라가고 혼자 삼겹살 파티를 하며 점심을 보냈다. 오후에 어머니의 기록을 책으로 만드는 편집을 시작했고 수업을 마친 밤 10시에 집에 돌아왔더니 아들은 종로도서관에 갔다고 한다. 시험 때도 아닌데 의아했고 포도 한 송이를 먹으며 기다렸는데 밤12시가 지나도 아들은 오지 않았다.
10일 새벽에 마라톤을 하러 나가다가 중간에 PC방으로 가서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요약하고 머리말 등을 작성하는 편집을 했다. 8시가 지나 집에 왔더니 아들과 딸은 학교에 갔고 아내는 산에 간다고 나갔다가 11시에 들어와 다시 외출을 한다. 도시락을 준비하여 배낭을 메고 안산 정상에 올랐다가 중턱으로 내려오면서 전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 가져온 점심을 먹었다. 청명한 하늘에 서울의 모습이 그림같고 이따금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누워서 잠까지 잤더니 4시가 되었다. 오늘은 아들 딸과 모처럼 외식을 하려고 집으로 내려와서 전화를 했더니 모두 불통이라 혼자만 식사를 했다. TV를 보는 저녁에 퇴계원에 사는 처제가 허리가 아파서 입원을 했고 내일 중에 디스크 수술을 받는다는 전화가 왔다. 수업 마치고 걱정을 하며 내려온 아내를 태우고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늦은시간 구리시 신경외과에 도착했더니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다. 큰 수술은 아니라지만 허리부분 디스크라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어 내일 다시 보기로 하고 12시가 지나 집에 돌아왔다. 아내나 처제는 체중이 있기 때문에 허리나 다리에 무리가 생길 수 있어 평소에 운동을 하고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11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홍제천으로 나가서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기 준비를 하는데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몸이 움츠려드니 달리는 초반에는 힘이 들었지만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 이르자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되었다.
가볍고 빠르게 공원 호수를 돌아 출발점에 들어왔고 바로 아파트에 가서는 아들을 태우고 학교로 출발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평범한 일상이지만 중학생 아들과 동행한 지금의 순간들이 세월이 흐르면 그립고 행복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한 뒤에 오늘 수술을 한다는 처제를 위로하기 위해 아내를 태우고 구리병원에 다시 갔다. 간단한 정도라고 해도 당사자와 용구아빠 그리고 조카들까지 염려스런 표정이었지만 수술을 마친 3시에는 모두가 밝고 좋았다. 밖으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수업이 있는 나먼저 출발하여 학원으로 돌아와 수업을 했다. 어머님 장례식 때 와 준 친구가 부평에 카페를 개업한다기에 동양란을 주문하여 보내고 밤에 형준이와 도착했더니 몇 명의 동창들이 미리 와서 자리를 하고 있다. 굵은 비가 내리는 밤 12시에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집에 와서는 아들과 라면을 먹고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다.
12일 아내가 처제를 간병한다고 병원에 있어 혼자 잤는데 모기 때문에 자다가 깨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토요일이라 아들과 딸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 먼저 일어난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용구아빠가 조카들과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왔다. 조카들을 두고 용구아빠는 바로 출발했고 식사 후에 나도 학원에 가려고 아파트를 나섰는데 아들이 오늘 친구들과 빕스에 간다며 4만원을 달라고 전화를 한다. 평소에 1,2만원씩 달라더니 이제는 그 액수가 커졌다고 생각하며 통장으로 5만원을 입금해 주고 나니 웃음도 나왔다. 아들이 벌써 자라서 용돈이 이렇게 필요하다니 몇 년이 지나면 술값도 요구할 것인데 이런 과정이 살아가는 보람이고 행복이다. 학원에 도착하여 수업을 했고 오후에는 광풍이 불고 소리가 큰 천둥이 치는데 이렇게 요란한 경우는 50여년을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비가 쏟아지는 날 단골로 다녔던 왕십리 설렁탕이 생각나서 단숨에 갔더니 역시 변함없는 맛이었고 주인은 소주 1병을 서비스라고 내밀었지만 운전하는 입장에서 사양을 했다. 토요일이라 서울을 벗어난 차가 많은지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내를 통과하여 집에 돌아왔고 교보문고에서 컴퓨터 워드시험을 봤다는 딸도 이어서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딸의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해져서 말을 붙이기도 어렵고 오늘도 방에 들어가서는 소리도 흔적도 없이 보내고 있다.
13일 새벽에 아내가 일어나 책을 읽고 있더니 이내 들어가 다시 자리에 눕는다. 날씨가 좋아 마라톤을 할까 하다가 10시부터 보충수업이 있어 우선 가까운 안산에 올랐다. 정상을 거쳐 중턱을 걷는 이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모두가 활력이 넘쳐 보이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9시에 내려와 식사를 하고 공부하러 간다는 아들을 태우고 종로도서관에 내려주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를 하는 중에 그대로 성큼 계단을 올라간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BMW 차를 대신하여 오늘 세피아를 몰고 나왔더니 괜히 신경이 쓰이고 학원에 도착해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든 시간이었다. 학원에서 바라본 성북동 거리는 휴일임에도 밀려오는 차량이 많아 눈이 부시었고 이 좋은 휴일에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아쉬움도 생겼다. 수학선생과 청국장으로 식사를 하고 오후에 강의를 마치고는 수강생들을 롯데리아에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아침에 도서관에 간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여 나도 서둘러 왔더니 아들은 보이지 않고 집에 머물렀던 조카들을 데리러 용구아빠가 왔다. 닭국물로 저녁을 먹은 후 밤 10시가 되어 수업을 마친 아내가 왔고 아들은 11시가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14일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날은 확실히 몸이 가뿐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조선일보 신문을 보니 지난 7월말에 제출한 논픽션 응모작이 발표되었다. 전체 216명이 응모했는데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영화배우 김진규와 관련된 글이 대상이고 당선작 5명 가운데 나는 들지 못했다. 여름 100일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성한 내용이라 허망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추모했던 과정이 나에게는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소리 없이 집을 나서 홍제천에서 한강을 향해 출발했고 성산대교와 양화대교를 지나 절두산 아래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니 20킬로를 달렸다. 쉬지 않고 2시간 이상을 뛰면서 마라톤은 외로운 인생길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사는 삶과도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여 BMW 서비스센터 직원을 만나 차량 점검을 했더니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교체를 요구한다. 오전에 집에서 쉬다가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가면서 동소문동 우체국에 들러 신설동 3층 임대료 미납에 관한 서류를 접수했다. 소송을 할 때마다 유쾌할 리가 없는데 오늘은 신설동 재산세가 부과되어 더 절박하고 단호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9시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와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 구입한 딸의 핸드폰을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있다. DHB가 안 되는 저렴한 것을 구입했다고 하지만 최신형 핸드폰이라고 딸은 마치 횡재라도 한 것처럼 마냥 좋아한다.
15일 일과가 많아 새벽에 산부터 올랐다. 산에 오르거나 달리기를 계획하고 집에서 나올 때는 귀찮고 힘들어도 일단 시작을 하면 여유가 생기고 상쾌하다. 오늘도 정상에 서니 안개 속으로 서울 도심이 우뚝 솟아 있고 중턱으로 내려와 바위와 소나무 숲에 어리어 있는 공기를 쐬며 8시30분에 집으로 내려왔다. 아침에 학원에 나가면서 남대문 꽃 도매시장에 들러 확장하여 이전한 마원장 학원에 고무나무(5만원)를 구입하여 배달시켰다. 오늘 신종인플루 때문에 임시로 휴교한 동성고 수강생들 시험준비를 오전에 하고 지하철로 대치동에 참석하려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출발했다. 강남으로 가면서 영식이한테 전화를 했더니 도서관에 있다고 하여 의아했고 무슨 공부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후 1시30분에 마선일 학원에 도착하니 화분만 도착해 있을 뿐 초청 문자를 보낸 당사자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하여 개원한 교실만 구경하고 3시에 집으로 와서 늦은 점심을 하고 다시 성북동 학원에 나갔다가 수업을 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16일 새벽에 일어나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 되었는데 밖은 아직 어둑하다. 마라톤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어둡다는 이유로 망설였더니 7시가 지났고 산이라도 가야지 하다가 이것도 늦장을 부려 기회를 놓쳤는데 마음 먹은 일을 바로 실행하는 실천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체육관 근처 PC방에 가서 책자를 만드는 원고를 편집했더니 금방 오후 1시가 되었다. 학원에 가려고 밖에 나왔더니 주차위반으로 스티커가 붙어 있고 시동까지 걸리지 않아 차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많은 오늘이다. 10월 중순에 초등학교 모임을 갖는다고 고향 친구가 연락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친구들 간에 갈등이 많아 불투명하다고 전화가 왔다. 아무리 죽마고우라고 해도 각자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마당에 모두의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 학원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답답하다는 동생 정환이의 하소연을 들었다. 내일 만나기로 약속을 했지만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만족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정환이도 생활에 대한 권태와 지루함으로 불만이 쌓일 때도 되었다. 수업을 마친 저녁에는 수학선생과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몇 잔 마셨더니 오늘은 유달리 취기가 빨랐다.
17일 어제 술을 마시고 오기는 했어도 오늘은 마라톤 연습을 하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집을 나와 안산에 올랐다가 약수터를 지나 반대쪽 서대문구청을 거쳐 홍제천으로 내려갔다. 7시에 시작하여 성산대교를 돌아오는 1시간 20분 거리를 달리고 다시 안산으로 올라와 중턱을 걸어 집에 도착하니 9시가 되었다. 아침에 어제 예약한 자동차 배터리를 16만원에 교환하고 체육관에 11시에 도착하여 기구운동을 하고 나왔는데 오늘은 산과 마라톤 그리고 체육관까지 다양하게 운동을 한 날이다. 학원으로 동생 정환이가 온다고 해서 서둘러 나가 만났고 점심을 먹으며 새로운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학원운영에 매진하라고 격려를 했다. 동생을 보내고 수업을 한 뒤에 정식이를 만나러 신설동에 나가 삼겹살로 저녁을 함께 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대화가 잘 되는 친구라 마음이 편했고 9시30분이 지나 영식이가 합석하여 함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는데 키가 없어져 당황했고 아마 택시 안에서 흘렸을 것으로 자동차, 아파트, 학원과 신설동 것까지 묶음으로 된 9개의 키가 통째로 날아갔으니 답답한 밤이 아닐 수가 없다.
18일 눈을 뜨니 아침 9시가 지나고 있다. 어제 키도 잃어버리고 늦게 들어왔지만 술김에 7시간은 수면을 취한 것 같다. 거실에 나오니 아들과 딸은 이미 학교에 갔고 식사를 마친 아내는 민경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어제 퇴계원에 가서 청소를 많이 해서 피곤한 것인지 늦게 들어온 나 때문에 잠을 못 잤는지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키 묶음 때문에 걱정이 되어 식사를 거르고 지하철로 먼저 학원에 갔다가 신설동 식당 등 어제의 장소를 다녔는데 결국 찾지를 못했다. 분명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것 같은데 핸드폰과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우선 어제 가지고 나와서 학원 근처에 파킹해 둔 세피아 키를 출장시켜 만들었더니 5만원이 들었고 BMW 키는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제작을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는 중에 다행히 BMW는 서비스쎈터에 보관 중인 보조키가 있다고 연락이 왔고 그것도 출동하여 가져다준다니 한 시름을 덜었다. 아파트나 학원 신설동 키는 다시 만들기로 했지만 술 마시고 정신을 놓고 다닌 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시간이 지나 BMW 서비스쎈터에서 보조키를 전달하러 왔고 보관 비상용이니 빠른 시일내에 키를 만들고 반환하라고 한다. 오후에 청계천 방산시장 근처에 갔다가 종이컵을 1박스 구입하고 시장통에서 갈치조림 점심을 사 먹은 뒤에 학원으로 들어와 오후내내 책자를 편집했다. 저녁에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오늘은 마음을 졸이며 다닌 그러면서도 다행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19일 키를 분실하여 발을 구르며 이틀을 보냈는데 정신을 놓고 다닌 나답지 못한 행동에 자책감이 더 많았다.
어제 BMW 보조키를 받기는 했어도 독일에서 새로 만들어 들어오는 기간이 15일이고 비용은 25만원이라고 한다. 새벽 6시30분 안산에 올라 머리를 정리하며 산길을 걷고 8시30분에 내려왔더니 가족들이 늦잠을 자서 아들은 밥도 먹지 못하고 택시로 학교에 갔다고 한다. 오늘은 강의가 없어 고향에 가서 산소에 들르고 논을 소작하는 상희 선배를 만나 서류를 완성하기 위해 용산역에 나가 11시30분 새마을호 열차를 탔다. 3시간을 달려 김제역에 내리니 전주에 사는 친구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마을까지 바래다 주었고 소작을 맡는 선배를 만나서 서류정리를 마쳤다. 가까운 곳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들어서니 아직도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였고 긴 시간 추모를 해서 그런지 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겼다. 넓게 펼쳐진 고향의 들녘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마을을 나와 김제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에 군산으로 이동했다. 과거에 먼지를 날리며 달렸던 도로는 말끔하게 일직선으로 뚫렸고 내가 살았던 경장동 근처는 상전벽해 너무 변하여 방향을 가름하기도 힘이 들었다. 군산항 근처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시내에서 하루를 보낸 생각지도 않게 고향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되었다.
20일 아침에 군산시청 근처에서 해장국으로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과거에는 논과 밭으로 시내 외곽이었던
이 곳이 음식점이 즐비한 신도시로 변해있으니 지나간 세월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바람까지 시원하게 부는 아침에 새만금 방조제 현장을 방문하니 아직 연결이 되지 않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머지않아 완공이 되면 바다를 가로지르는 수평선 고속도로가 되어 전북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도 남을 듯 싶다. 완산구 근처에서 새우시래기 탕으로 점심을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여 4시간이 지나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최근에 자동차 키와 재산세 등으로 신경을 쓰며 보내다가 어제와 오늘 고향을 누볐더니 새롭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수업을 마친 아내가 그리고 12시가 지나서는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21일 마라톤 연습을 하려고 새벽을 준비하는 중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홍제천은 비가 오더라도 고가도로가 있어 단거리 왕복은 충분히 연습할 수가 있는데 망설이다가 다시 자리에 누어서 잠이 들었다. 모두 나태한 내가 아닐 수 없고 아침 식사 중에는 어제 늦게 밥을 먹었다는 아들이 학교 급식이 오전 11시라며 그냥 학교에 간다. 비가 내리는 아침이라 학교에 아들을 태우고 갔다가 돌아와서 오전에 책자를 만드는 원고 줄거리 모음을 이어나갔다. 10시에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동학이 엄마와 인사동에 있어 친하고 좋은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좋을 것이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책자 편집에 몰두하다가 학원으로 나갔고 현재는 왜소하고 잠깐의 수업일지라도 언젠가는 나도 능력을 발휘하는 더 나은 시간이 올 수 있음을 생각했다. 비가 오면 개는 날이 있고 바람도 불다가 그치는 때가 있는 법이니 힘들고 이익이 없다고 하던 일을 팽개치는 것은 삶의 이치를 모르는 경우이다. 집에 들어와 추석 때 가족과 나들이를 하려고 강원도 펜션을 알아보는데 아내와 딸은 외부인처럼 드라마에만 몰두해 있다.
22일 어제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맑게 개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일전에 고향에서 받아온 서류를 바탕으로 소작에 대한 공증 약정서를 작성했다. 재산으로 인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분쟁이 많아서 확실하게 해 두려는 것으로 논의 면적은 1000평이고 1년 소작료는 20킬로 쌀을 16개 받는 것으로 정하였다. 오늘은 아내가 오전 중에 집에 있어 모처럼 점심을 함께 먹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과 딸을 위하여 간식까지 만들어 두었다. 사실 오늘 새벽 신설동에 나가 3층에서 숙식을 하는 강사장과 임대료 문제로 한바탕 다투어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고 또한 아침에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려고 용두동 단골집에도 갔었는데 휴업이라 집에 와서 식사를 한 터이다. 찜찜한 하루를 보내다가 학원으로 가면서 오전에 작성한 공증 약정서를 발송하고 수업을 마친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하고 TV를 보면서 10시를 보내는 중에 시골에서 친구가 보낸 택배 김치가 도착했다. 한밤중에 택배가 오다니 고마움보다 불쾌한 마음이 먼저였다.
23일 어제 잠을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 누워서 아침을 맞이했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에 가는 아들을 보내고 1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가벼워져 마라톤 복장으로 홍제천에 나갔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성산대교 양화대교 서강대교까지 20킬로 침묵의 2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다리가 뻐근하다. 12시가 되어 집으로 갔더니 이른 아침에 동사무소 수업을 마치고 산에 간다는 아내도 벌써 내려와 오늘은 딸을 위하여 고로켓 빵을 만들고 있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엄마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3시에 학원으로 가서 책자를 위한 원고를 정리하고 수업까지 마친 뒤에 집에 왔더니 오늘따라 아내가 대단히 친절하여 어리둥절했다. 식사를 하고 엊그제처럼 추석에 갈 펜션을 예약한다고 컴퓨터를 보는데 옆에 있는 아내는 이미 강원도에 가 있다.
24일 어제 늦게까지 컴퓨터를 하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에 고등어구이와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했다. 오늘도 그냥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고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소귀에 경을 읽는 격이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1시간을 누워서 보내다가 책자를 위한 원고를 정리했고 체육관은 12시에 갔다가 돌아왔다. 아내가 얻어온 깻잎과 김치로 맛있게 점심을 하고 2시가 지나서 학원에 갔더니 밖의 선선한 기온과는 다르게 강의실이 찜통이다. 수업을 마친 오후에 영식이를 비롯한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원고 줄거리를 요약하는 책자를 만드는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다 9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하는 일도 없이 바쁘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허전하여 김치찌개를 안주삼아 칡술을 한 잔 마셨더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학원에 간 아들은 새벽이 되어도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더니 중간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고 한다.
25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아들도 식탁에 앉는다. 감기에 걸렸는지 연속하여 재채기를 하더니 식사를 마치고는 흥이 없는 얼굴로 학교에 간다. 오전에 신설동 3층에 가서 임대료를 내든지 빨리 사무실을 비우든지 택일하라고 엊그제처럼 한바탕 언쟁을 벌이고 학원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책자를 만들기 위해 원고를 들고 인쇄소에 갔더니 사장이 최종 마무리를 하면서 열심히 재편집을 해 주어 고마웠다. 오늘은 원고 중에서 요약한 내용을 1차로 전했으니 추석 이후에 책자에 들어갈 사진과 표지만 넘겨주면 되는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서 어머니와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부족한 부분으로 후회가 많았고 그나마 기록이라도 남겼으니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열쇠를 새로 만들어 학원에 들어왔고 수업을 마친 저녁에 다시 신설동에 가서 강회장을 만났더니 다음 주에 임대료를 정산한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신뢰가 가는 듯해도 사실은 구태에 젖어 있어 확실하지가 않고 문제는 돈이 없으니 답이 나오니 않는 것이다.
26일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8시가 되었다. 휴일 토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이 이른 아침에 시험공부를 하는데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한다. 미역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논술수업으로 아들은 수학학원으로 나가고 나는 산행을 하려고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 11시가 넘어 도착했했다. 백운대를 목표로 2시간 이상을 걸었고 정상 아래까지 가서 집에서 가져온 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겨울날 구정 무렵에 눈보라를 뚫고 왔었으니 벌써 7개월이 지난 시간으로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그 사이 어머니를 보내고 갈등의 시간도 많았는데 다시 온 백운대는 변함없는 의연한 자세로 나를 맞이하고 있다. 정상 근처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여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고 머지않아 울긋불긋 아름다운 모습의 북한산으로 변해갈 것이다. 문득 오늘 산에서 내려가면 어머님 기록처럼 이제는 아들 중학교 3년의 시간을 문집으로 만들어 졸업할 때 선물로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아들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인데 아들에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다. 백운대를 내려와 오래된 백운산장에 들러 막걸리 1잔을 벌컥 마셨더니 순간 신선이 된 듯했고 호기로운 마음까지 생겼다.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우이동 방향으로 하산하여 도선사에 들어가 명상에 잠기다가 계곡을 따라 주차장까지 한참을 내려왔다. 시내버스를 타고 안암동 고려대 근처에서 하차하여 물회를 사 먹었는데 역시 시원하고 맛이 좋아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다. 10여분을 걸어 신설동에 도착했고 집에 돌아와 쉬는 중에 아침 8시부터 수업을 했다는 아내가 왔는데 산에서 보낸 나와 오늘은 대조적인 시간을 보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아내를 보면서 미안하기도 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27일 날이 흐린 일요일이다. 새벽에 마라톤 연습을 나가야 하는데 게으름이 또 발목을 잡는다. 아침에 아내가 홈쇼핑에서 주문한 소갈비탕을 식탁에 올렸는데 진짜 한우인지 국물 맛이 시원하고 고소했다. 감기에 걸린 아들도 식사를 잘 했고 10시가 지나서는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아내가 논술교실에 가고 나는 산으로 올랐다.
안산에 올라 중턱을 돌고 12시30분에 내려와 점심을 하러 온 아내와 라면을 함께 먹었는데 아들은 방에서 공부를 하는지 소리가 없다. 오후 4시가 되어 아내와 딸이 동시에 논술교실에 오르고 학원 수업이 없는 나는 안방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초라해지는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젊은 날 더 노력하여 지금쯤 경찰청장이나 국회의원 아니면 내가 꿈을 꾸었던 방송국 앵커라도 하고 있었더라면 아들이나 딸한테 더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닭곰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아들을 다시 바라보았고 아내는 어제와 같이 10시가 되어 수업을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는 2박3일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희생하는 시간을 만들어 볼 것이다.
28일 일찍 잠을 잔 탓으로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서 신문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부터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시작하는 아들을 깨우려고 방문을 열었더니 불을 켠 채 새우잠을 자던 아들이 벌떡 일어선다. 오늘 아들의 국어시험이라 일요일인 어제 내가 정리를 해 주려고 했었는데 다 안다며 아들이 거부를 한 터이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학교에 갔다가 차에서 내리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하는데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들어섰다. 집으로 돌아와 추석 때 가족여행으로 갈 강원도 평창에 있는 피라미드 황토찜질방 펜션을 확정하고 신설동 수도요금 때문에 청량리 수도사업소에 나갔다.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 누수가 되는지 확인하러 간 것인데 왕십리로 이전했다고 하여 국철을 타고 찾아갔다가 마무리를 하고 돌아왔다. 10월 25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하여 청량리 역에서 새벽시간 기차 티켓을 예약하는데 벌써 좌석이 매진되어 가까스로 입석을 구입하게 되었다. 점심을 사 먹고 학원에 들어가 예약한 황토찜질방 펜션 2박3일분을 입금하고 오후를 보내다가 중간고사 부분 수업을 했다. 오늘 저녁에 경기도 안산에서 고등학교 친구들 친목 모임이라고 참석을 요구하는 우현이 전화가 왔는데 가 보고는 싶어도 내일 일이 많아 집에 돌아왔다. 시험공부를 한다는 아들을 위하여 조용하게 밤을 보내면서 아내에게 추석여행 2박3일 강원도 평창에 예약을 했다고 하니 내일 떠나는 사람처럼 좋아한다.
29일 오늘은 아침 컨디션이 좋다. 중간고사 이틀 째 수학시험이 있는 날이라 식사 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곧장 홍제천으로 이동하여 마라톤 준비를 했다. 게으름으로 며칠 동안 못했으니 긴 시간을 다짐하고 출발하여 성산, 양화, 서강대교 아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25킬로 2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평소에 달리던 20킬로를 넘어서니 역시 힘들었고 10월에 42.195킬로를 달린다는 상상을 했더니 그것만으로도 까마득하고 끔찍했다. 흐르는 땀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음료수를 마셨더니 날아갈 듯 몸과 마음이 가뿐하여 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다시 기구운동을 1시간 더 했다. 12시30분 집에 들어서니 시험을 마친 아들이 와 있고 방에서 나오는 아내는 오늘 아들의 수학 점수가 만점이라고 희색을 띠며 말한다. 그 동안 아들의 말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아 믿기지가 않았는데 아무튼 만점이라니 잘했다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을 해 주었다.
김치찜으로 점심을 먹고 산부인과에 간다는 아내를 홍제역에 내려주고 학원에 가서 수업을 마쳤다. 얼마 전에 경상도에서 올라오신 영식이 어머님을 저녁에 방배동에 가서 뵙고 큰 절을 올렸는데 지난 겨울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시다. 영식이와 방배동 카페 골목으로 나와 저녁을 먹었고 752번 시내버스를 타고 늦게 집에 들어왔다.
30일 어제 방배동에서 술을 마시고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들어와 새벽 1시에 잠을 잤더니 아침에 겉모양은 멀쩡한데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거북하다. 새벽에 운동도 못 가고 오늘이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는 아들만 간신히 학교에 태우고 가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를 했다. 오전에 세피아 승용차를 수리하려고 장안평에 가서 15만원 비용으로 범퍼를 교체하고 점심도 사 먹었다. 장안평은 우리나라 최대의 중고차 매매단지로 다양하고 저렴하게 부품을 수리하는 곳이 많아 평소에도 자주 오는 곳이다. 며칠 전에 신설동 누수 문제를 수도사업소에 신청한 적이 있는데 오늘 확인을 한다고 왔다기에 장안동에서 부지런히 이동했더니 2층인지 3층인지 누수 지점도 탐지를 못한다. 수도사업소조차 깜깜하니 어이가 없었고 추석을 보내고 전문기술자를 불러 다시 확인하리라 생각하고 수업을 하려고 학원에 6시에 들어갔다. 4시간이 지나고 10시가 되어 집에 왔더니 오늘 시험을 마친 아들이 홀가분한 얼굴로 밖에서 들어온다. 9월은 가을의 길목인 줄만 알았는데 한낮에 무더위가 여전하여 여름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지경으로 오늘도 무척 더웠다. 하지만 오묘한 계절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기에 10월이 오는 내일은 붉고 노란 잎들이 새롭게 자연의 화폭을 만들어 갈 것이다. 가을이 오는 아름다운 내일이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