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 (B-1)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로마서에서의 법(法)이란 무엇인가?(롬7:15-8:2)
살전5:23절은 “평안의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하셔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나무랄 데 없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혼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되어 있다. 의지는 인간의 내적 힘인 반면에, 법(法)은 자연의 힘이다. 지난날 여러번 설명한 바 있지만, 지구에는 중력(重力)이 있다. 중력은 하나의 힘일 뿐만 아니라 법칙이기도 하다. 법칙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중력이 바로 법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령 만일에 어떤 이가 오늘 사람을 죽인다면, 경찰에 즉시 체포될 것이다. 그러나 내일 죽이면 체포되지 않고, 모레 죽이면 체포된다면 그것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법은 항상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그 자체가 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법”은 사람의 노력으로 조작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지구의 중력을 예로 들었는데, 만일 어떤 물체를 지구의 어느 곳에서 떨어뜨리든지 간에, 그 물체는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 왜냐하면 그것을 밑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자연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애써 내리누를 필요가 없다. 법칙의 배후에는 언제나 자연적인 힘이 있다.
그렇다면 “의지”란 무엇인가? 의지는 인간의 결정이다. 그것은 인간이 결정하거나 갈망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의지를 행사하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내가 만일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그 일을 시작한다. 걷기로 결정하면, 나는 걷는다. 걷다가 쉬기로 결정하면, 나는 쉰다. 나는 한 사람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있고, 나의 의지는 어떤 힘을 발산한다.
그러나 의지의 힘과 법의 힘은 다르다. 법의 힘을 자연력(自然力)이라고 한다면, 의지의 힘은 인력(人力)이다. 중역(重力)은 사물을 낙하시키기 위해 복잡한 전기 장치를 배후에 설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공기가 가열되면 상승하고 팽창하게 된다. 이것은 법칙이다. 또 상승하고 팽창하면서 그것은 힘을 발산하는데, 이 힘은 자연적이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의 힘은 인간적인 요소이다. 오직 살아 있는 것만 의지를 갖는다. 의자나 책상은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도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 또한 인간도 의지를 가지고 있다. 오직 살아 있는 생명체만이 의지를 갖는다. 인간의 의지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인력이다. 그것은 법이 가지고 있는 자연력과 현저하게 대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와 “법(법칙)”이 대립할 때, 어느 것이 우세할까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대두된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인간의 의지가 우세하다가 마지막에는 법이 이기에 된다. 인간이 먼저 자연법칙을 제어하지만, 결국에는 자연법칙이 승자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무거운 의자나 책상을 들고 있다면 아마도 한 두 시간 정도까지는 떨어지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두 시간이 지나면 팔이 말을 듣지 않고 아파서 그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법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은 자연의 법칙을 이길 수 없다. 지구의 중력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 이 중력에는 아무런 의지도 생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의자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억지로 의자를 붙들고 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의자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의 의지는 패배하고 법이 승리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의지는 자연법칙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의지가 자연법칙에 굴복하지 않고 반항하여 처음에는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법에 굴복하고 만다. 지구의 중력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마다 이것과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당신은 매일 중력을 이기고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당신은 지구의 그 거대한 힘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마지막 죽음이 없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활동한다. 그러나 당신 또한 죄와 사망의 무서운 중력에 이끌려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당신의 삶의 활동은 끝난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결국 법이 이긴 것이다. 로마서 7장의 주제는 “법”과 “의지”의 대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매우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의지와 법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도 바울은 “ 죄”가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바울은 성경에서 이 진리를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또한 “법”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중력의 법칙은 알고 있지만, 그러나 죄가 법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바울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가 거듭 거듭 죄를 짓고 나서 자기 안에 죄를 짓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울은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았으나, 자기 안에 있는 힘이 자꾸 범죄 하도록 이끌고 있음을 깨달았다. 범죄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법”이다. 유혹이 밀려올 때, 우리는 그것을 물리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우리는 실패하고 만다. 다시 유혹이 오고 또다시 우리는 그 유혹을 이기려고 애쓰다가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열 번, 백 번, 천 번, 백만 번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유혹이 오고, 우리는 반항하지만 죄가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실패만 거듭할 뿐이다. 이런 일이 거듭됨에 따라,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죄를 범하는 것은 “법(法)에 속한다. 만일 인간이 한 번만 범죄하고 만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범죄는 일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법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혹이 밀려오면 나는 실패한다. 나는 그것을 이길 힘이 없다. 유혹이 올 때마다 나는 실패하였고, 그래서 나의 실패가 단순한 실패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패배의 법이다. 패배가 나에게 법이 된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이 사실을 깨달았는가? 사도 바울은 마침내 이 사실을 깨달았다! 사도 바울은 롬7:21절에서 자신의 위대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라고 말한다. 이때 처음으로 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한 “법”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 법이란 무엇인가? 곧 “선(善)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惡)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외친 것이다. So I find this law at work : When I want to do good, evil is right there with me.
바울은 자기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마다, 악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법”이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 동시에 내 안에 죄가 존재한다. 죄는 항상 선의 뒤를 바싹 따라다닌다. 한 번도 아니고, 백 번, 천 번도 아니고, 언제나 붙어 다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계속).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