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흥덕대왕릉
신라는 하대(下代)로 내려오면서 진골 세력간의 권력다툼이 빈번하다. 나라가 망할 징조이다. 흥덕왕(신라42대, 재위826~836)은 원성왕의 손자이다. 할아버지 원성왕은 내물왕계이다. 원성왕은 무열왕계인 김주원과 정권 쟁탈에서 이긴다. 『삼국유사』에는 ‘왕위 승계 1순위 김주원이 홍수 때문에 알천 냇가의 물이 불어나 궁궐로 들어오지 못했다’라고 기술한다. 이 싸움에서 패한 김주원(강릉김씨 시조)은 강릉으로 도피하고 그의 아들 김헌창과 손자 김법문은 난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경주에 사는 연인은 데이트 코스가 많아 좋겠다. 우리나라 국보의 절반은 국립박물관에 있고 나머지는 경주에 있다. 곳곳에 왕릉이요 문화재 창고이다. 흥덕대왕릉 가는 길은 기차와 시골버스를 이용하면 운치가 있다. 경주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이십 여분 남짓이면 안강역이다. 읍내에서 “아재요! 왔능교?”라는 풀냄새 풀풀나는 서라벌 사투리를 듣는다. 죽은 아재 얼굴이 살아나고 장모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포항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십 여분 가면 흥덕대왕릉이다. 네비를 찍어 직행하는 자동차 코스는 시골사람의 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흥덕대왕릉은 경주시 안강읍에 있다. 흥덕대왕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서라벌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있다. 안강의 자옥산(紫玉山)과 안강벌이 만나는 평지에서 아주 낮은 구릉이다. 3홀 정도 크기 골프장을 만들면 제격인 흥덕대왕릉 주위에 수 천 그루 소나무가 왕릉을 지킨다. 토종 소나무는 비틀어지고 울퉁불퉁하여 땔감밖에 쓰일 데라곤 없다. 못생긴 소나무는 흥덕대왕릉 주위에 호위병처럼 도열하고 있다. 부인과 합장한 흥덕대왕릉 처럼 소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새들을 부르고 새들은 짝을 찾는다.
평일에 간 흥덕대왕릉에 사람이라곤 딱 세 사람. 답사를 나온 문화재 연구원도 아니고 데이트 하는 젊은 연인도 아니다. 상석 위에 소주 한 병을 올려 놓고 무언가를 주문하는 무녀(巫女) 뒤로 꾸벅꾸벅 절을 올리는 두 명의 젊은 아낙이다. 금슬이 좋은 흥덕대왕릉은 합장한 무덤이다.‘상석 뒤에 손을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라는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석 뒷면은 반지르하다.
왕 주위에는 아리따운 여인이 지천이다. 왕이 점지하면 그만이다. 남자도 절개가 있는가? 애를 낳다 죽은 노국공주를 못잊어 세상일에 관심을 버린 고려 공민왕과 신라 흥덕왕이 조강지처를 그리워한 왕이다. 흥덕왕은 나이 오십에 즉위한다. 그 해에 사랑하는 부인 장화부인이 죽는다. 죽은 장화부인이 안강의 진골계통 김씨인가? 내물왕계가 안강지역을 배경으로 하는가? 서라벌에서 사 십리 길 이 곳 안강에 장사를 지낸다.
흥덕왕릉에서 문득 지나간 일이 떠오른다. 재작년 나에게 위기가 온다. 집사람이 아프다. 쓸개, 담도, 간 쪽이 좋지 않다. 나는 집사람에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병원에 가보자”
“S병원이제”
“간 쪽이니까 A병원이가?”
나와 집사람은 새벽에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 애들은 옆집에 맡기고.기차 안에서 나는 집사람에게
“괜찮을끼다”
“… …”
집사람은 속마음과 달리 밝게 웃는다. 서울로 가는 세 시간 길은 무척 힘든 시간이다. 못난 나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자꾸 미안해진다.
“혹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애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애를 키울까, 그러면 생활비는 어떻게 하지? 보험금은 얼마일까?”
A병원에서 10일 간 보낸다. 나는 부산과 서울로 오가면서 애와 집사람을 함께 걱정하기는 처음이다. 받기만 한 나는 당장 스스로 해야 한다.
다행하게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라는 의사의 한 마디에 “휴~”라고 한숨을 쉰다. 남자에게 다시 태아나면 현재 집사람과 연을 맺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개 “한다”라고 말을 하지만 여자는 “안 한다”라는 대답이다. 세상에 금슬 좋은 부부가 어디 많겠노?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배경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서야. 지천명의 나이에 사랑하는 부인을 잃은 흥덕왕릉에서 나는 다시 다짐해 본다. 욕심을 위해 달려 온 젊은 날은 끝이다. 무조건 진다. 늙을수록 동행해야 한다. 외로움은 아프다. 지금 해야 한다.(Do it, Now!)
사랑아, 저 세상까지
-흥덕대왕 능 앞에서-
서라벌 옛 길 따라
님 계신 숲에 들면
앵무새 붉은 사랑 명치 끝에 아려온다
정목왕후(定穆王后) 가신 터에
흥덕대왕(興德大王) 임하시니
천년 전 그 사랑을 귀촉도가 전해주네
만만년 세월 가도
영원하실 그 사랑을
도래솔 푸르름이 사랑가로 불러준다
능(陵) 위의 저 풀꽃이
편안하게 피는 것은
가신 님 용안(龍顔)에서 퍼지는 미소인가
(다음 카페에 좋은 시가 있어 인용한다)
2009. 6.17
조해은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 사진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