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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준은 국내에 복귀해 야구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군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해야 할지 결정해야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
야구소년들과 학부모들 사이로 건장한 청년이 야구장 한쪽 구석에서 몸을 푸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몸을 풀 뿐이었지만 눈밭에 떨어진 석류처럼 유독 눈에 띄었다. 이유가 있었다. “한국의 조시 베켓(보스턴 레드삭스) 아입니꺼.” 경남고 야구부원 가운데 한 선수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송승준(26). 경남고 3학년 때인 1998년 혜성처럼 나타나 소속팀을 청룡기와 봉황기 우승 그리고 대통령배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고교 초특급 투수. 1999년 경남고를 졸업한 뒤 계약금 90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한국인 역대 14번째 메이저리그 도전자.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 A팀인 해리스버그 세니터스 소속이던 2003년 4월 28일 에리에 시울브스와 경기에 등판해 1933년 류 크라우스 시니어 이후 처음으로 이스턴 리그에서 ‘노히트 경기’를 기록한 최초의 해리스버그 팀의 투수.
송승준의 경남고 후배 설명대로 그는 한때 조시 베켓과 비교되던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였다. 2001년 송승준은 싱글A 오거스타에서 3승2패 평균자책점 2.04, 상위 싱글A 사라소타에서 5승2패 평균자책점 1.68을 기록하며 도합 123⅓이닝 동안 삼진 135개를 잡아냈는데 이때 볼넷은 36개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같은 해 상위 싱글A팀인 브러버드 카운티에서 6승무패 평균자책점 1.23을 기록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조시 베켓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었다.
2002년에는 <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100대 유망주 가운데 60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59위는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칼 크로포드(탬파베이 데블레이스)였다. 71위와 97위는 각각 알렉스 에스코바르(LA 에인절스)와 빅터 마르티네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이는 송승준이 얼마나 뛰어난 루키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인생 최대의 기로에 선 송승준
아무리 뛰어난 유망주이고 마이너리그에서 ‘노히트 경기’를 기록했다고 해도 성공한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단 한 번도 그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닥쳤던 불운만을 책으로 엮는다면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할 정도다.
“메이저리그로 승격될 만하면 트레이드됐고 원하던 트레이드는 무산되기 일쑤였다. 거기다 중요한 순간마다 다쳤고 재정이 빈약한 구단이나 선수층이 두꺼운 팀만 갔다.” 송승준의 한 맺힌 고백이다. 여기다 감독 운도 없었다.
2002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감독이었던 프랭크 로빈슨은 사회적으로는 은밀하면서도 더그아웃에서는 공개적인 인종주의자였다. “하루는 (김)선우형이 로빈슨 감독과 마찰을 빚어 더블A로 쫓겨났다. 둘이서 와인 5병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다. 로빈슨 감독은 대선수 출신이었지만 감독이 해서는 안 될 말을 선수들에게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이었다. 인종편견도 심해 아시아나 백인들을 대놓고 싫어했다.”
송승준이 2004년 몬트리올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한 뒤 몬트리올은 이듬해 워싱턴 내셔널스로 팀이 바뀌고 감독은 로빈슨에서 그와 김선우를 특별히 아꼈던 3루 코치 매니 엑타로 바뀌었다. 시간은 흘러 2006년 겨울. 1999년 보스턴과 계약한 지 정확히 8년이 흘렀다. 이미 송승준은 마이너리그 FA(프리에이전트)가 됐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여러 팀을 전전하다 올시즌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더블A 위치타 랭글러스에 터를 잡았다.
“싱글A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왕젠밍(뉴욕 양키스)이 메이저리그에 승격돼 엄청난 활약을 하는 걸 보고 나도 용기를 얻었다.” 그의 다짐이지만 그 다짐은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6년 동안 성공하지 못한 메이저리그 승격을 내년에 이룬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그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입대 문제다. 병역미필자인 송승준은 늦어도 내년까지 병역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덧붙여 국내에 복귀해 야구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군 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송승준은 모교인 경남고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밝히듯 ‘인생 최대의 고비’에 놓인 그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송승준은 야구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에 있어 웃음을 찾게 해 준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지금 야구는 그에게 웃음보다는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