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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성경 스크랩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육
하늘사랑 추천 0 조회 8 10.02.24 18: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육

 

- 차 례 -

 

Ⅰ. 들어가는 말

Ⅱ. 육을 통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일 범주화

Ⅲ. 바울의 육에 대한 비판과 회유

Ⅳ. 나오는 말

 

 

발제자: 김 학 철

초 록

‘육’은 바울이 주요하게 사용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다. 이에 이 논문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육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의 사회학적 함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먼저 바울은 ‘육’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일한 범주에 놓고자 한다. 곧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유대교적 관행에 속해 있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적 관습 및 율법의 행위들을 '육'에 속하였다고 규정한다(1.16; 2.16; 3.3; 4.21, 29; 6.12-13). 다른 한 편, 바울은 복음을 접하기 전의 이방인의 상태도 '육'에 속하였다고 선언한다(4.13).

이렇게 육을 통해 동일한 범주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치시킨 후 바울은 '육'과 '육의 행위들'을 비판한다(2.20;3.28;4.23, 29; 5.6, 16-17, 24; 6.8-9,15). 이는 일차적으로 육에 속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비판이 된다. 그러나 헬레니즘에서 '육'은 자랑거리나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던 반면에, 유대교적 관습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을 표시하는 할례된 '육'에 애착을 가지고 신뢰하며 자랑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바울의 '육'에 대한 비판의 주요 대상은 유대교적 관행에 고착되려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할례와 율법, 곧 육에 관련된 복음을 전하는 대적자들에 맞서 바울은 육을 재정의하고,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복음을 변증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회유하려 하였다.

 

Ⅰ. 들어가는 말

 

(sa,rx) 신약 성서에 147번이 사용된다. 이는 인간학적인 용어(anthropological) 있어서 사람(a;nqrwpoj) 마음(kardi,a|) 다음으로 높은 빈도수이다. 그런데 거의 절반에 달하는 72번이 바울에 의해서 사용되었고, 특별히 로마서에 26, 갈라디아서에 18번이 등장한다. 갈라디아서의 육의 빈도수는 바울 서신에 대해서 25퍼센트, 전체 신약에 대해서도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6장에 불과한 갈라디아서의 분량을 감안해 ,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 관련된 여타의 연구들이 수나 질에 있어서 연구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반면에 육에 관한 논의는 놀라울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석서를 통한 부분적인 언급은 있었지만 갈라디아서의 '' 본격적으로 다룬 단행본을 찾아볼 없다. 최근 갈라디아서의 '' 관련된 논문이 나왔으나 부분적인 구절들만을 다룰 뿐이다. 현재의 학적 현실은 기초적이라 있는 갈라디아서의 육이 어떤 의미의 분광층을 가지고 있는 지도 충분하게 논의하지 못한 상태라 하겠다. 이에 논문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육을 점검하고, 이것에 담긴 사회학적 함의들을 도출하여 깊은 갈라디아서 이해에 기여하고자 한다.

 

Ⅱ. 육을 통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일 범주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들을 육에 속하였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점은 갈라디아서에 육이 처음 등장하는 1.16에서부터 확인된다.

1.16에서 바울은 자신 속에 아들이 계시되었을 때에 육과 (sarki. kai. ai[mati) 의논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베츠는 육과 혈이  특정한 이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을 지칭한다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서중석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물론 일반적인 단락에서는 베츠의 주장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단락에서 육과 혈은 유대교적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다. 만일 이것을 일반적인 인간으로 파악한다면 15절의 그러나는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조상의 전통에 대해 열심을 낸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바울이 그러나로 그 소개를 이어갈 때, 16c절의 육과 혈이 일반적인 그러나의 삽입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중략- 오직 16c절의 육과 혈을 유대교적 전통에 서 있는 유대인들로 이해할 때에라야 16c절의 내용으로 14절의 내용을 부정할 수 있다.

 

16절의 육과 혈이 유대교적 전통에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중석의 주장은 이후에 나오는 구절들에서도 재확인된다. 육과 , 특별히 육으로 유대교적 전통에 있는 유대인들을 상징적으로 지목한 경우는 2.16에도 이어서 나온다. 이는 바울이 육으로 유대교적 관행에 고착된 이들을 규정하고자 했다는 글의 논지를 성립시켜 준다.

2.16b, evx e;rgwn no,mou ouv dikaiwqh,setai pa/sa sa,rx에서 우리는 가지 점에 주목할 있다. 2.16b 칠십인역 143:2 인용으로 보이는데, 바울은 시편의zw/n’sa,rx’ 바꾸었다는 것이다. 2.16aouv dikaiou/tai a;nqrwpoj evx e;rgwn no,mou” 2.16bevx e;rgwn no,mou ouv dikaiwqh,setai pa/sa sa,rx” 병행 시키면서도, ‘a;nqrwpoj’ ‘sa,rx’ 바꾸는 미묘한 차이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2.16a에서 사람은 2.15  유대인과 이방 죄인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나타난다고 있다. 사람 누구나에게 있어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2.16b 육은 무엇을 가리키는가는 논란이 되고 있다. 베츠를 위시한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의 육도 16a절과 마찬가지로 인간 전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울이 사람을 육으로 특별히 바꾸어 사용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풍은 위의 학자들의 주장에 비해 세심한 주석을 제시한다. 그는 육을 사용한 바울의 의도적인 변화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 할례된 육은 의로운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는 주장을 에둘러(obliquely) 반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풍이 육은 유대인들의 혹은 할례된 육을 가리킨다고 것은 통찰력 있다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비판은 에두른 비판이 아니다. 의롭게 됨에 있어서는 율법의 행위를 행하고 있는 할례된 유대인들의 육이라도 이방 죄인(2.15)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바울은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2.16b에서어떤 육이라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고 2.16a 나타난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를 탈락 시킨 병행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육’을 일반 인간으로 이해하게 하지 않았다. 대신 육을 율법의 행위에만 관련시켜 육이 할례된 유대인을 가리키게 하는 것이다. 말을 보태면, 바울은 2.16에서 모든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대적자들의 주장대로 율법의 행위와 결부된 할례된 (유대인화한) 육이라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은으로 유대교적 관행에 있는 유대인을 지칭했을 아니라 나아가서, 유대교적 관행 자체 율법의 행위들도 육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3.3 이를 확인해 준다. 3.1-2 갈라디아 사람들을 꾀는 이들이 율법의 행위들을 가르쳤음을 알려준다. 후에 바울은 3.3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겠는가?”하고 힐문(詰問)한다. 러셀은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갈 2.16b에서 바울이 육과 율법의 행위들 사이를 연결한 것과 2.20b-21에 나타난 그 둘 간의 논리적 관계를 두고 생각할 때, 율법과 육의 연결은 매우 밀접한 것이고, 그리고 이 연결은 바울이 이전에 할례에 대해 미묘하게 언급한 것을 좀더 명백하게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위더링톤도 바울이 "할례를 모세 계약을 향한 입문 의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할 없이 여기서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말한다. 물론 할례가 율법의 행위들과 관련하여 갈라디아 교회들에 문제가 되고 있던 것들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율법의 행위들'(e;rgwn no,mou) 복수임을 감안하면, '행위들' 단지 할례로 국한될 없다.

여기서 율법의 행위들은 최소한 4.10 나타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행위들을' 포함한다고 있다. 나아가, 3.10 5.3 근거해 보면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 언급할 때에는 어떤 특정한 항목들을 염두하였다기 보다는 '율법 전체'(o[lon to.n no,mon]) 생각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바울은 이렇게 '' 사용하여 율법 전체를 성격화 한다.

이상과 같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교적 관행을 준수하려는 이들 율법 자체를 ''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글의 주장은 4.23에서 간명하게 재확인된다. 4.23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4.21) '시내 언약'(모세 언약, 4.24) 율법과 율법을 준수하려는 사람들을 '' 따라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보태어, 유대교 율법과 관행의 중심지 유대교적 크리스천들의 집결지로 등장하는(1.17, 18; 2.1) 예루살렘을 '육을 따라' 여종 하갈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4.25). 이는 유대교적 전통에 고착된 크리스천들도 육에 따른 자들이라는 선언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5.16 5.18 사이의 병행은 육과 율법을 호환되게 사용하려는 바울의 의도를 보여준다.

유대교적 관행에 있는 사람들과 율법 자체가 육에 속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미 살펴 보았다. 바울은 이에 그치지 않고 복음이 들어가기 전의 갈라디아 교인들을 또한 '' 속한 사람들로 범주화 하고 있다.

복음을 접하기 갈라디아인들의 상태를 바울이 '' 사용하여 표현했다는 주장은 마틴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고후 12.7 4.13 연결시켜서 4.13 '육의 약함' 바울의 병이나 박해롭터 얻은 상처를 가리킨다는 기존의 주장을 전적으로 그리고 대단히 창의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논문을 통하여 마틴이 주장하고자 바는 크게 가지이다. 첫째, 4.13 육의 약함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인들의 '육의 약함'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약함' 복음을 접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지칭한다. 둘째, 바울의 육에 있어서 갈라디아인들을 '시험' 했던(4.14) 그것은 '바울의 ' 아니라 바울의 할례였다는 것이다.

마틴은 약함(weekness) 뜻하는 'avsqe,neia' (sickness) 가리키는 것으로 종종 사용되지만, 단어가 '' 관련되어 쓰일 병을 지칭하는 경우는 7세기 전에 속하는 문헌들에서 있지 않다는 조사를 벌인다. 당시에 ''이란 영향을 받기 쉬운 '약한 '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연약한 ' 자체로는 건강한 몸과 병든 몸을 모두 가리킬 있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의학적 견해를 따르자면, 병은 육의 문제가 아니라 (body) 문제였다. 따라서 '육의 약함' 당대의 언어 행위에 있어서 '' 가리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바울이 4.13에서 자신의 몸에 병이 들었음을 알리고자 했다면 'avsqe,neia'라는 단어 하나만을 사용하는 것이 ''이라는 단어를 첨가하는 것보다 훨씬 간명하고 분명하리라는 것이 마틴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육의 약함' 으로 바울은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였을까? 마틴은 문제의 실마리가 '육의 약함' 누구의 육의 약함인지를 밝히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13절에 '' 앞에 있는 정관사는 '' 누군가에게는 속하였다는 점을 알려주고, 번역 시에 그것의 소유자가 누구인지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틴에 의하면 4.13 4.14 절의 문법 사항과 근접 문맥은 13절에 나타난 육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다만, 육의 소유자가 바울이거나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 하나를 가리킴에는 틀림 없다. 그리고 양자택일은 갈라디아서의 정황에 비추어서 결정되어야 한다. 근접 문맥에 대한 주장은 적절하다고 없지만, 후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먼저 바울을 육의 소유자로 놓고 바울의 육의 약함, 흔히 추정되기로는 바울의 병이나 상처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까닭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경우 갈라디아서는 이를 뒷받침할 아무런 관련 구절을 갖지 못한다. 더군다나 만약 바울이 병이나 상처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우연적인' 것이 되고, 곳곳에서 자신의 행동이 '계시'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바울의 주장과는 배치된 것이다(마틴은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반대로 13절의 육의 소유자가 복음을 접하기 ,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된다면 이는 갈라디아서의 전체적인 흐름과 부합된다. 마틴은 2.16; 3.3; 4:6-7; 5.13, 16-17, 19-21a, 24; 6.8 등등을 증거 구절들로 놓는다. 그리고 결론 짓기를 " 단락들에서 바울은 육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된 구속 받지 못한 육적인 인간성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육의 약함'이라는 구는 적절하게 이러한 육의 결함(deficiency, 혹은 불완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마틴의 결론은 통찰력 있는 것이지만, 논증에는 가지 비판점이 있다. 하나는 마틴이 제시한 증거 구절들의 일부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대표적으로 2.16; 3.3 유대교적 전통에 있는 유대인과 율법 관행을 지적한 구절들임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이는 논의에 직접적인 증거 구절이 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4.6-7 좀더 세밀한 검토가 있은 후에나 증거 구절로 채택될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접 문맥인 4.8-9 논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마틴은 미처 간파하지 못하였다. 우선, 4.8-9 5.18-21 연결시켜 결론을 확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4.8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갈라디아 교인들의 상태를 묘사한다. 바울에 의하자면 " 때에는 여러분(갈라디아 교인들, 글쓴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종노릇 했다" 것이다. 이는 5.20에서 바울이 제시한 육의 행위 목록 '우상숭배'(eivdwlolatri,a) 곧바로 일치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접하기 전에는 육의 일을 '육에 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4.9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떠나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evpistre,fw)려는가, 하고 묻고 있다. 여기서 초등학문을 성격화 해주는 '약하고'(avsqenh,j)라는 단어는 4.13 육의 '약함'('avsqe,neia') 동일 어근을 가진 단어이다. 설명하자면,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접하기 전은 '약한' 초등학문에 종노릇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육의 '약함' 때문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접하기 전의 갈라디아 교인들이 육의 약함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육의 행위들을 수행하는 육에 속한 사람들로 규정하고자 했음을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 통하여 동일 범주화하고 있다. 또한 유대교적 관행과 율법, 그리고 이방인들의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도 모두 육에 속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작업은 유대교적 관행에 있던 이들, 특별히 육을 자랑하고 신뢰하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에 대한 비판과 바울의 대적자들의 가르침에 현혹되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이라 하겠다. 다음 단락에서 이를 사회학적 조명 하에 상술하고자 한다.

 

III. 육에 대한 비판과 회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일 범주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 비판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육에 속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비판이 된다. 그러나 헬레니즘에서 '' 자랑거리나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던 반면에, 유대교적 관습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을 표시하는 할례된 '' 애착을 가지고 신뢰하며 자랑했다. 점을 감안할 , 바울의 '' 대한 비판의 주요 대상은 유대교적 관행에 고착되려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단락에서는 우선, 육에 속해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바울의 비판을 살펴보고, 이후 특별히 '' 신뢰하고 자랑하는 유대교적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점검한다.

메이트라는 5.19-21 전후한 자신의 주석에서 이전 베츠 류의 주장들을 가지 점에서 극복하였다. 하나는 5.19-21 이른바 악덕의 목록이 무질서(without order or system)하다는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악덕 목록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1) 정욕의 일들(works of sensuality, 음행, 더러운 , 호색); (2) 우상숭배의 일들(우상숭배, 주술); (3) 공동체 분열의 일들(works of community dissension, 원수 맺는 , 분쟁, 시기, 분냄, 짓는 , 분열함, 이단, 투기); (4) 자기탐닉의 일들(works of self-indulgence, 취함, 방탕함).

 

둘째, 악덕 목록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여 구약을 비롯한 유대교 문헌들과 헬라 철학의 문헌들에 나타난 악덕 목록과의 비교에 그치고 있는 주석 대해서도 메이트라는 보다 세심한 분석을 시도한다. 메이트라는 15개의 목록 7개가 공동체 분열의 행위에 해당함을 환기시키고, 7 중에 (e;cqra, dicostasi,a, ai[resij) 신약 당대의 대중적인 도덕 철학의 악덕 목록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락에서 개의 행위와 공동체 분열에 대한 강조는 바울이 갈라디아 회중 속에 있었던 특정한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이 지점에서 심지어 전승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갈라디아의 정황을 조명할 있는 자료를 선택하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항목의 마지막 단락에 자기 탐닉의 행위들은 앞에 나온 것들을 강화시켜 준다. 분열은 자기 탐닉을 낳는다(breed).

 

메이트라가 이른바 악덕 목록이 단지 윤리적 항목들의 무질서한 나열이 아니라 범주화 있는 것들이고, 특별히 공동체 분열의 행위들의 범주에 속한 악덕들은 갈라디아 공동체의 구체적인 분열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그의 주장은 통찰력 있는 것이라 판단할 있다. 그러나 자기 탐닉이 분열을 원인으로 해서 나오게 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일정 정도 자신이 비판했던 '윤리적' 해석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악덕 목록들에 있어서 메이트라의 범주를 사용하자면, (1), (2), (4) 이방인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접하기 전의 상태, 바울에 의하자면 이방 죄인으로(2.15) 육에 속할 때의 악덕들이고, (3) 바울의 대적자들이 아직도 육을 신뢰하고 자랑하면서 발생시킨 악덕들이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바울은 육에 속해 있는 적대자들이 일으킨 악덕들과 복음을 접하기 육의 상태에 있던 갈라디아 교인들의 악덕들을 각각 7개와 8개로 균형을 이루어 분배해 놓고, 이러한 육에 속한 일들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하기 원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이 육에 속한 이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강조점은 유대교적 관행에 고착되어 '' 신뢰하고 자랑하는 이들과 그들로 말미암아 일어난 (3) 악덕들이라고 있다. 이는 5.19-21 속한 인접 문맥 5.15 5.26 보면 명확히 있는데, 바클레이는 점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경고(5.15)는 5.13-14에 나온 사랑과 상호 섬김에 단순한 대조 이상이다. 그것의 중요성은 허영, 상호 도발, 투기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는 5.26에 의해 강조된다. 이 두 구절 사이에 바울의 '육의 일들' 항목이 나온다.

 

이미 언급했듯이 악덕 목록에 다른 바울 서신들의 악덕목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e;cqra, dicostasi,a, ai[resij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악덕들이 갈라디아 공동체의 분열 정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또한 정황은 '' 관련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렇게 '' 통하여 원수 맺음, 분쟁, 질투, 분냄, 파당, 분열하게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대적자들 유대적 관행을 집착하는 이들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바울에 의하자면 대적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격동케 하여 혼란에 몰아 넣으며(tara,ssw, 1.6; 5.10), 헐었던 차별의 담을 다시 세우려고 하며(2.18), 친교와 모임을 그만두게 하여 이간 시키며(evkklei,w,4.17), 이미 세워진 권위에 대해 도전하게 하려는 의도로 무리를 형성하여 혼란을 일으킨다(avnastato,w, 5.12). 이러한 행동들의 이면에는 할례된(혹은 유대인화 ) '' 대한 신뢰와 자랑이 자리잡고 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 대해 신뢰하고 자랑하였다는 것은 바울 서신 전반에서 확인할 있는 사항이다( 1.3; 2.11,17,28, 3.1; 4.1; 9.5, 8; 11.1; 고후 11.18, 22 특별히, 3.3-4). 갈라디아서에서도 유대교적 크리스천들의 육에 대한 신뢰와 자랑을 있다. 이는 6.12-13 가장 드러나 있다. 구절에서 할례는 육체의 좋은 모양을 내는 일이고, 할례 받은 육체들은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된다는 전제가 있다. 마틴은 갈라디아의 선생들(the Teachers) 17장에 대한 해설을 하면서 "하나님이 계약을 ''이라는 단어와 관련시키면서 명백하게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었다" 가르쳤으리라 추정한다. 특별히 마틴에 의하면 17.13 "diaqh,kh mou evpi. th/j sarko.j u`mw/n eivj diaqh,khn aivw,nion" 육에 신뢰를 두는 유대인의 자랑을 가능케 하는 구절이다. 구절이다. 마틴에 따르면,

 

그들은(갈라디아 교인들, 글쓴이) 아브라함이 한 것과 같이 귀두표피의 육을 제거함으로써 계약 백성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하여 오래 전에 하나님에 의해 아브라함에게 선언된 복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설득되었다.

 

마틴이 17장을 배경으로 할례와 그에 대한 유대인의 자랑을 설명해 주기는 했으나, 그러한 자랑이 할례자와 할례 받지 않은 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주목하지는 않았다.

먼저, 할례가 아브라함의 계약에 참여하고자 조건이 되고, 이로 인해 할례된 육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신뢰의 대상이 되어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 '우월한 ' 되었을 , '' 할례자들과 비할례자들을 가르고 차별케 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을 갈라디아서는 보도해 준다(2.11-15).

번째로, '할례된 ' 대하여 자랑하는 이들과 할례 받지 않은 채로 할례에 대해서 경멸을 보내는 이방인 크리스천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을 유발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이 이방인을 유대인화하려는 여러 시도들에 '억지' '강제' 동원되었다고 보도한다(2.3, 14; 6.12). 이와 같은 바울의 보도는 단순히 그의 주관적인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없는데, 점은 당대 그리스인들이 할례에 대해서 취했던 태도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던의 보고대로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할례를 육의 좋은 모양이 아니라 일종의 불구(mutilaion) 형태로 간주하였다. 아니라 할례는 그리스인들에게 경멸적인 것이었는데, 귀두를 항상 노출하게 하는 할례는 과도하게 성적 흥분을 유발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비유대적 문헌과 요세푸스 등의 글은 비유대인들이 얼마나 유대인들의 할례를 경멸하고 비웃었는지를 또한 소개하고 있다.

집단 내에 일부가 자랑하고 신뢰하는 대상에 대해서 다른 쪽이 경멸을 보낸다면 필연적으로 그룹 간에는 다툼과 분쟁이 발생한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다툼과 분쟁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5.15, 20, 26).

이러한 정황에서 복음을 접하기 전의 이방인들과 복음에 관계 없이 유대교적 관행에 집착하는 이들을 '' 속한 것으로 범주화했던 바울은 '' 비판함으로써 1) 육을 신뢰하고 자랑하는 대적자들을 공격하고, 2) 대적자들에게 설득되던 이들에게 육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회유한다. 3) 그리고 할례를 경멸하여 거부하던 이들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고, 부분적으로 수정한다. 부분적으로 지지한다 함은 할례를 거부하는 그들의 행동이고, 부분적으로 수정한다 함은 할례 자체에 대해서 경멸함으로써 오히려 역차별을 유발하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바울 육에 대해 크게 각도에서 비판한다. 하나는 육의 비본질성, 부차성에 대한 강조이다. 이는 2.20; 3.28; 5.6; 6.8, 15 통해 바울이 행한 비판이다.

2.16b 육이 유대인의 육에 대한 에두른 표현이라고 설명하던 풍은 2.20 육은 바울이 어떤 신학적 함의도 없이 사용한 예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베츠는 언급이 논쟁적임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구절에 나타난 바울의 논박의 대상이 '완전히 신적인 삶에 따라 살기 때문에 자신들은 유한성의 한계를 떠났다' 주장하는 이들이라고 지적한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다. 이유는 분명하다. 20절의 전후 맥락에서 바울의 논쟁 대상자는 그러한 완전한 신적 삶을 강변하는 이들이 아니라 육에 신뢰를 두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절의 바울이 살고 있다는 육은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육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자신이 유대인의 안에 살고 있지만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삶이 다른 유대인 크리스천들도 갖추어야 하는 삶의 방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할례 받은 유대인의 육이라도 크리스천이라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비해 본질적으로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3,28; 5.6; 6.15 '' 부차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구절들에서 바울은 유대적 관점에서 인종적 차이(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나 무할례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종이나 자유인이나), 성적 차이(남자나 여자나) 등등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pa,ntej ga.r u`mei/j ei-j evste evn Cristw/| VIhsou/)이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pi,stij diV avga,phj evnergoume,nhÅ) '새로운 창조'(kainh. kti,sij)만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육에 대한 비판의 번째 차원은 ''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에 전적으로 반대되고, 상극(相剋)한다는 것이다. 먼저, 육은 약속/성령과 대비되는 기원을 가리킨다(4.23, 29). 기원에서 각각 발원한 자손들은 서로 화평하지 못하다. 육체를 따라 사람들이 성령을 따라 사람들을 '박해'(diw,kw)했고, 바울 당시에도 박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이 독촉하는 '성경적 대응' 여종과 아들을 '내쫓으라'(evkba,llw) 것이었다(4.29).

둘째, 영은 육과 대조되는 크리스천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삶의 태도 혹은 방법(manner or way) 가리킨다. 삶의 태도 혹은 방법에 있어서 육과 영은 서로를 거스르고, 대적한다(5.16-17). 육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을 거스른다(avnti,keimai).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5.25). 셋째, 육은 영과 극명히 대조되는 결과를 낳는다(6.8-9). 육과 영은 각각 썩어질 것과 영생의 결과를 낳게 한다. 육의 열매와 영의 열매에 대한 대조 후에 바울은 아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육을 십자가에 박았다(evstau,rwsan) 주장하였다(5.24).

 

IV. 나오는 말

 

유대교적 관행에 고착된 이들과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대적자들은 육을 통하여 할례자와 비할례자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장벽을 넘어 약속의 자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바울은 이와는 정반대로 육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차별을 헐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는 육의 상태에 있다. 때에는 비록 율법과 할례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 죄인으로 구분될 수도 있으나(2.15), 그리스도가 오고 후에는 육으로는 율법의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2.16). 그러므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유대인과 같은 육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약속의 자손이 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육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2.21). 이와 같이 바울은 대적자들의 '' 대한 가르침을 공박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비판하고 자신이 전한 복음의 참됨을 드러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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