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2년 누루하치가 청을 건국하였던
동북삼성중 랴오닝성의 심양에 위치한
심양고성!
1996년에 이어 두번째 방문하였는데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네!
자세한 소개는 여행후에 ㅎㅎ
청나라를 건국한 누루하치가 1624년 랴오냥(요양)에서 천도를 함으로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도시..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봉천"으로 불리운 도시이며 요녕성의 성도입니다!!
인구는 거의 천만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크게 이름난 관광지는 그다지 없습니다..
청으로 개명하고 누루하치의 아들인 "황태극"이 명에 이어서 중국을 지배함으로 이곳 왕궁도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집권 왕국의 수도이니 이후 많은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20여년전 이곳을 백두산을 방문하기 위하여 온 이후 두번째 방문입니다..
그 당시는 조금 황량한 장소였는데 지금은 많이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네요!!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이 되면 대부분의 장소가 관광객이 접근이 용이하도록 복구가 되지만
이 복구라는 것이 현대식으로 급속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의 복구가 되다보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감흥을 느끼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보존 방법인지..ㅠㅠ
손오공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중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사진을 찍으면 모델료를 지불하여야 하는데 지불하였나요??ㅎㅎ
청나라는 현대 중국이 이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중국 대륙을 지배하였던 왕조..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만주족의 나라이며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왕조입니다!!
청나라가 건국하여 중국을 통일하기전 한족은 단 한번도 만주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한 역사가 없습니다..
만주족을 통합하여 "후금"을 건국한 누루하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영원전투의 부상 후유증을 사망..
그의 아들 "황태극"이 1636년 황제에 등극하며 국호를 "대청"제국으로 개명합니다..
1642년 전 중국을 통일하며 1644년 "이자성"의 반란군이 북경을 점령하면서 대청 제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처럼 여행을 같이한 집사람(검은옷)입니다..
청나라의 통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은 산해관의 장수였던 "이자성"과 "오삼계"!!
둘의 알력으로 산해관의 문은 전투 한번 없이 열리고 명나라는 멸망합니다..
초창기에 한족들은 "반청복명" 운동을 전개하나 강희, 옹정, 건륭의 치세에 의한 태평성대가 이루어집니다!!
청은 원나라와 달리 "한족억압정책"이 아닌 회유의 압박으로 실효 지배를 시작하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한족화..
소수의 민족이 다수의 민족인 한족을 다스리다 보니 부패하기 시작..
건륭이후 쇠약하여 지기 시작하면서 1796년 백련교의 난으로 국세가 급격하게 축소되었고
1840년 아편 전쟁에서 패전함으로 몰락하기 시작..
1850년 태평천국의 난으로 통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1856년 2차 아편전쟁 이후의 "북경조약"!!
1894년 청일전쟁을 패전이후 굴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에 서명함으로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던 청나라는 급격하게 몰락..
1911년 신해혁명이후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가 1912년 퇴위함으로 청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1644년부터 1912년 약 270년의 역사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던 만주족..
만주족은 현재 거의 한족에 동화되었으며 지금도 천만명에 가까운 만주족이 동북삼성 일대에 거주..
장족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입니다만 전통은 비교적 유명무실한 편..
대충 이정도로 알아보고 청왕궁 구경합니다..
처음부터 규모가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들은 1644년 청나라 건립이후 자금성을 본따서 만든 곳입니다..
이곳에서 약 8시간 떨어진 열하(승덕)의 "피서왕궁"이 여름철 왕들의 거처로 자리잡으면서 외면받기 시작..
쇠락을 거듭하다가 최근에 중국 정부에 의하여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을 받으면서 다시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루하치는 이곳에서 거주하였으나 "황태극"이후는 북경으로 천도..
"황태극"은 당연히 이곳이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진 곳으로 주목하였으나 차츰 기억에서 멀어진 것은 당연하겠죠!!
그냥 중국 "청나라"의 고궁으로 대충 둘러봅니다!!
초기 왕궁답게 비교적 소박합니다..
열심히 사진촬영중인 중국 무용수..
중국의 정원 그리고 돌들은 그냥 한개가 아니라 대부분 짜집기..
중국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
한족이 91.5%이며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이 8.5%!!
인구는 10%가 되지 않지만 그들이 거주하는 면적은 중국 전체의 60% 정도..
중국 정부는 5개구, 30개 개주, 120개현에서 이들의 자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중국이 1948년 독립을 하면서 유사이래 최대의 영토를 지닙니다..
청에 의하여 만주지역 지배..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신강지역 매우 많은 영토 실효 지배..
몽골의 쇠퇴를 틈탄 내몽고 지역 실효 지배..
민족주의의 의한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티벳 침공 무력 지배 시작으로 "달라이라마" 망명..
실효 지배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가 없고 많은 소수 민족이 분리 독립을 시도할 경우
중국은 구소련보다 더 처참하게 산산조각으로 분리될 소지가 있는 국가이기에
중국 정부는 강경과 유화 정책으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시도를 저지하고 있으며 건국이후 일관되게
한족중심의 중화사상속에 소수민족의 일방적인 동화를 요구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동북공정도 "만주족"과 "조선족"등을 동화를 요구하는 정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세계가 민족주의에 의한 "한민족 한국가"를 지향하는 것과는 이질적인 정책..
중국 정부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분리독립에 의한 중국의 괴멸을 막는 것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보시면
됩니다!!
넓은 땅에 이제는 지구상에 거의 유례가 없는 공산당 일당 체제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 도입을 하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와 현안이 산적하여 있으나 일당 독재라는 반 강압적인 수단에 의하여
미봉책에 가까운 정책으로 외줄타기를 하는 중국 정부..
이런 나라와 인접한 우리도 어떻게 보면 참 골치아픈 이웃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ㅠㅠ
건물마다 이름이 있고 용도가 있습니다만 뭐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그림만 옮깁니다..
중국 심양의 "청고궁" 구경이었습니다..
이제 백두산 북파로 향하기 위하여 고속도록 그리고 국도를 약 9시간 정도 이동하여 이도백하로 향하여야 합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방법..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심양" 그리고 "장춘" 경유.. 둘다 8시간 이상을 이동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연길" 경유.. 4-5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항공 시간이 심양이 가장 합리적인 시간대라 조금 멀기는 하였지만 심양 공항을 택했습니다..
청나라의 유물 구경으로 심양 관광을 마감합니다..
다른 볼 거리도 많을 것이나 도시 구경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두번의 심양 방문 모두 이곳만 둘러 보았네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고궁과 정비되기 시작한 고궁 차이외에는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