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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대륙을 향하여 - 중국역사문화의 도시를 향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인천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계를 보기 위해 나서는 중국기행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되었다. 그간 여러 가지 다산했던 일들을 접고 이제는 자유의 시간과 배움의 시간을 갖고자 나서는 길이다. 함께하는 일행들은 청주동부경찰서 교경협의회원들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김동호 목사님을 비롯한 회원 11명이 함께하는 동거의 생활은 청주에서 인천행 리무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중국말은 할 줄도 모르고 “리하오마”, “세세” 단 두 마디를 가지고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포동공항을 향하여 동방항공의 힘찬 비행이 시작이 되었고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한 곳은 상해포동공항, 그곳에서 예쁜 가이드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영화입니다.” 말에 깜짝 놀라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조석족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이드 아가씨는제 고향이며 연변이라며 이제부터 중국여행을 함께 하게 됨을 반갑게 인사한다. 한국여행객이 제일먼저 들리는 필수코스라며 소개한 그곳은 우리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상해 임시정부건물이란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 사건 후 여러 곳으로 이사하였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이 처음 독립운동의 요람 이였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어느 허름한 골목에 버스가 멈추고 그 곳이 임시 정부라고 하는 말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왔다.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이 머물렀던 역사의 현장이 지금은 너무 초란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서있다.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되였다고 한다. 좁은 1층 방에서 짧게 비디오 시청을 하고 나서 김구 선생님의 동상에서 잠시 역사 속에 사라져 간 우리 조상들을 위하여 묵념을 하고 2층과 3층의 전시관을 관람하게 되었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 또한 좋은 공부가 되였다. 건물 내에 작은 상점을 운영하여 청사 유지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우표, 악세서리, 장식품 등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으나 너무 조잡한 물건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쉽게 눈길이 머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역사속의 긴 여행에 그들의 조국을 향한 마음 열정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체 한 평도 안 되는 부엌에다 두 평 정도의 집무실 ,그리고 독립투사의 휴식공간까지 들러보면서 옛 선조들의 조국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타국에서의 고생했던 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숙여해 졌다.
자주독립의 함성
아 하 어찌 그날을 잊으리오.
그 날의 함성을
골목마다 가득 찬 독립만세 함성
거리마다 나부끼는 태극기의 물결
님 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되었으니
그 무엇으로 당신을 향한 보답이 되니까마는
님 향한 마음
자주독립을 향한 마음
그 마음만 안고 가니라
너무 초라한 청사를 뒤로 하고 옆에 있는 건물 벽마다에 걸린 빨래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누구의 속옷인지 몰라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에 아무렇게 걸려 있는 것이 퍽이나 인상이 깊다.
-중국의 살아있는 경제 일 번지
중국 최고의 변화가 이자 중국현대화의 상징 남경로를 거닐다. 남경로는 상해제일, 아니 중국 최대의 변화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총길이만 5킬로미터가 넘고 각양각색의 상점과 레스토랑, 백화점, 호텔 등이 위치하여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이다. 한국의 명동과 비교 될 수 있는 이곳은 거리 폭이 명동의 두 배정도는 되어서 걸어 다니기가 훨씬 편하고 또한 차가 다닐 수 없는 대신 코끼리열차가 수시로 관광객과 쇼핑객을 태우고 다닌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님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무척 깨끗하다는 사실인데 그곳은 자동차와 함께 노점상들이 엄격하게 금지 되어있고 수시로 자동 청소차가 다니며 남경로 여기저기를 닦으며 다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싸다 외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인데 한국 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를 잘 구별하여 그들의 언어로 물건을 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은 평균 4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
차안에서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상해는 넓은 땅 높은 건물들 항시 안개 낀 도시 그곳에는 일 년에 서너 번 해와 달을 볼 수 있을 뿐 항상 안개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상해에는 피부 미인들이 많다는 것 수분이 항상 촉촉이 내려 있어 피부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단다. 그러나 창가에 지나는 여인들을 보면 그 말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거리를 거리는 모습을 보면 어려가지 의문이 생긴다. 빈부의 격차 심한 것을 금방 알 수 가 있었다. 또한 거리마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 있었다. 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은 집 등 재산의 소유권은 정부에게 있고 점유 할 수 있는 권리는 일반사람들에게 있으며 50년 또는 70년 후 다시 정부의 소유로 받치어 진다. 매년 일정액의 세금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끝에 현지 식으로 저녁을 먹고 지상 낙원으로 부리는 항주로 이동하기 전 황포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찾아오는 어둠과 함께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기다림이 시작이 된다.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현지인 관광객이 뒤섞어 서로 앞서 배에 오르기 위해 길게 줄기여 기다린다. 의자 하나 없이 움직이는 다리위에서 바람과 싸우길 30여분 강 건너 편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이 호기심을 발휘하게 하며 반짝이는 배위에 몸을 싣는다. 상해유람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저녁에 유람선을 타고 외탄의 전경을 보는 황포강 유람선은 상해의 변화를 더 한층 실감 있게 느끼게 한다. 상해 야경을 세 곳에서 보는 게 진정으로 상해의 야경을 보았다고 한다. 포동과 포서의 야경을 보면서 100년의 도시.10년의 도시의 격차를 볼 수 있었다.
건물 벽마다 비치는 아름다운 불빛들,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는데 건물마다 특색 있는 불빛들이 장엄하게 한 폭의 움직이는 동영상을 만들어낸다. 황포강은 항상 물이 뿌옇다고 한다. 수심이 7-9미터인데 항상 배들이 지나다니다보니 밑에 진흙벌이 올라 나와서 항시 뿌였고 물고기들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죽은 강 인것 같으나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있어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는 곳으로 겉과 속이 다른 중국인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낮에는 많은 배들이 강바닥에 진흙을 퍼 올려서 그것을 여러 가지 자원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또한 건물들의 크기, 벽면에 있는 조명들을 보면서 큰 나라, 자원이 많은 나라 인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불빛이 되기를
황혼이 질 때 더 아름다움을 바라고
이리 저리 비틀 거려도
곧 자리 잡고
아름다운 자태를 그려놓는
밤의 불빛
건물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출렁이는 배 안에서는 이야기꽃이 만발하고
아름다운에 함성
장엄한 스케일에 함성
만들어진 불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하나님이 만드신 불빛에 대한 감사가 저절로
중국은 3모작을 한다. 그래서 농산물이 풍부하고 중국에는 지하자원들이 풍부한데 아직도 다 개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차안에서 우리에게 질문하기를 제주는 삼다 도시인데 중국 삼다 국으로 불리 운다고 한다. 그것은 자전거, 사람, 짝퉁이 많다.
상해를 떠나 3시간의 긴 버스이동을 통해 밤12시는 돼서야 지상 낙원으로 부리는 항주에 도착하였다.
항주는 녹색의 도시로 지상 낙원으로 불린다는 정영화 가이드의 말과 같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임을 도시의 입구부터 알 수가 있었다.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무성하게 자리 잡은 이름 모를 잡초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아름다움을 발하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향긋한 풀내음을 가져다준다. 숲과 호수의 조화로움에 길 가던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묻는다.
중국10대 명승지인 서호로 이동하였다. 서호는 중국 역사상 4대 미녀 중 하나인 서시의 아름다움과 같다하여 이름이 붙여진 인공호수로 중국의 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여기서 많은 영감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신선이 된 듯 호수를 둘러보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서씨의 찬가
묵묵히 자리잡은 커다란 인공호수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아름답게 자리잡은
5개의 섬들
호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호수
곳곳에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
사랑도 애환도 슬픔도 호수에 씻겠네.
커다란 호수의 묵묵한 자태에
아름다운 초목들이 반하여 춤을 추네.
중국의 긴 역사만큼
묵묵히 흘러가는 호수위에
우리들의 애환 사랑도 씻어 보내고
오늘 우리가 중국역사의 한 줄을 써 내려간다.
대한민국에서 이한흥,김동호,송재헌,김백진,박병탁,정의섭,임준선,신태용,문영길,김영식
중국 땅에 발자국을 남기다.
서호 유람선 관광을 위하여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메우고 있어 발걸음이 쉬지 않았다. 그곳에도 역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싸다 싸다를 외치며 졸졸 뒤를 쫓는다. 붙잡히면 안 될 것 같아 부지런히 가이드의 뒷머리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곳에서 반가운 사람들과 만났다. 같은 동포를 한 배에서 만날 수 있다니 그리고 같은 믿음의 식구들을 만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반가움에 우리들만의 말에 대화가 오고가고 중국인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전주, 인천, 그리고 울산에서 왔다고 한다. 교회에서 선교회별로 여행을 온 것이다.
서호는 자연호수와 인공호수로 만들어 졌다. 33일 만큼 물을 교환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50킬로나 되는 물고기가 잡혀진다고 하여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항주는 섬유와 용정 녹차의 도시 항주에서는 서호에 가서 송대의 대시인 소동파가 군수였던 시절 준설하여 만들었다는 소동파 방죽을 보면서 천년 전 시인이며 관리이자 사회개혁가였던 소동파를 그려볼 수 있었다. 천년이 넘게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서호는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름달빛 아래 잔잔한 물 위를 흘러가는 배들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를 떠가는 신선들의 배처럼 어디론가 가볍게 흘러가고 있어, 잠시 선경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
항주에서의 백미는 모간산 운서죽경(雲栖竹經)이었다. 구름이 산중턱에 걸려 있는 듯한 모간산 중턱에 큰 대나무 숲길이 길고 깊게 뻗어 있었다. 높다란 장대 줄기 사이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어, 산림욕 중간 중간 숲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의 신선함과 신비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나무 숲 속 곳곳에는 수 백년이 넘은 거목들도 있었는데, 대개 풍향이라는 수종이었고, 참나무와 침엽수와 장목류도 있었다.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업화의 역동성과 함께 찬란한 역사와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일으켜 놓은 파문은 흔들리는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처럼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용정 차 한잔
깨끗한 물이 흐르고
두 손을 담그며
흔들리던 마음을
달래며 씻어낼 수 있었다.
서호호수 입구에는 커다란 소동파 시인의 동상이 서있다. 그 곳에서 우리 일행을 서둘러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동파 시인은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동파는 고요하고 평온한 삶의 태도를 묘사한 구양수 등의 시에서 한발 더 나아가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시대의 풍류객이기도 했던 소동파가 즐겨 먹었던 음식은 무엇일까? 예술가에, 고위 공직자로 부유한 생활을 한 그였기에 귀한 산해진미를 찾지 않았을까 하겠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뜻밖에도 돼지고기였다. 그는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들은 속물이 되고, 돼지고기가 없으면 몸이 마른다. 속물이 되지 않고 마르지도 않으려면 끼니마다 돼지볶음이 있어야 한다. 는 말까지 남긴다.
당시 사람들은 고기라고 하면 거의 양고기밖에 먹지 않았고 돼지고기는 조리법도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소동파는 황주 지역의 특별한 돼지고기 맛을 알아보고 자신이 직접 요리법도 생각해 냈다. 그 유명한 ‘동파육(東坡肉)’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동파육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에는 백성을 지극히 아꼈던 소동파의 인간적 면모가 담겨 있다. 그가 절강성 항주(杭州)에 태수로 부임했을 때였다. 당시 잡초가 우거진 채 버려져 있던 서호(西湖)를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다. 백성들은 감사의 표시로 그가 좋아한다는 돼지고기를 올렸는데 소동파는 이 고기에 술과 양념을 넣고 요리하여 공사에 동원되었던 인부들에게 나눠주었다. 중국어에서 ‘肉’이라는 단어는 돼지고기를 가리킨다. 중국인들은 그만큼 돼지고기를 다른 어떤 고기보다도 좋아한다. 잘 알려진 돼지고기 요리법만 해도 1,500 여 종류에 이를 정도. 그러고 보면 오늘날 중국인들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게 된 데에는 소동파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쫄깃하면서도 입에 넣으면 녹을 듯 부드러운 ‘동파육’은 돼지고기 특유의 맛을 최고로 살린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기름이 줄줄 흐르는 고기를 먹기라 그리 쉽지 않았다. 이때 아니면 언제 동파육을 먹어봐 눈을 질끈 감고 한 입에 물어본다. 기름기가 가득해 그만 다시 그릇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동파육과 함께 거지 닭 요리가 같이 상에 올랐다. 거지닭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너무나도 웃음을 짓게 한다. 옛날 먹을 것이 없던 거지가 한 집에서 닭을 구걸을 해서 먹을 방법을 찾다가 길거리에 흘린 고추를 닭 속에 넣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곳에서 구워 먹으려고 하다가 멀리서 왕이 지나갔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모닥불을 끄고 닭을 그 위에 놓고 흙을 덮고는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저만치 지나던 왕이 맛있는 냄새에 가던 길을 멈추고 맛있는 냄새를 찾다가 흙속에 묻혀 있는 닭을 발견 그 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주인을 찾아 나섰는데 거지가 주인이라 그때 왕이 이 요리의 이름을 거지 닭이라 명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훈제와도 같은 닭요리로서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 제법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항주에서 해야만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서호유람과 용정차 음미 그리고 송성가무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송성 가무쇼 -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이었다고 한다. 항주의 유명 테마파크인 송성관광지에서 5000만위안(약 61억원)거액을 투자하여 제작한 대형 가무 공연이라는 명성에 맞게 최첨단 시설을 갖추어져 있다.
중국여행 중 고객만족도가 제일 높다는 항주의 대표적인 가무쇼인 송성 가무쇼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뭐 그냥 무슨 쇼인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큰 기대 없이 주차장에 들어서자 그만 입이 딱 벌어진다. 수많은 차들이 그 넓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때부터 송성가무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옛거리들과 여러 가지 음식들의 시연을 보면서 우리나라 흡사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살펴보면서 이것저것 호기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간단히 상가를 구경하고 송성가무쇼가 열리는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장 안에서 제일 앞줄에 앉게 되었다. 그곳에는 의자가 옆으로 움직이는 다들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는 자리라고 한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무희들과의 교감을 느끼며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작 전 극장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무렵 어두워지면서 무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무대가 오르면서 중국어로 설명하고 자막으로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설명이 나온다. 가무쇼는 4막으로 나뉘는데, 1막 - 항주의 빛 이 황제의 생일 연회가 벌여지는 황궁의 화려한 잔치모습 2막 - 흉노족과 용감히 싸운 송나라의 전설적인 대장군 악비장군의 활약상 3막 - 아름다운 서호 4막 - 이슬람, 일본, 한국 각국의 고유한 민속춤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아리랑이 연주되자 박수가 가장 많이 나온다.
송성 가무쇼는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꾸며졌으며 말 그대로 대형쇼로 공연 내내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공연 도중에 앞 객석의 무대가 좌우로 움직여서 깜짝 놀랐는데 귀빈석인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오른쪽 왼쪽 벽이 갑자기 무대로 바뀌어 배우들이 춤을 추는가 하면, 천정에서도 불이 켜진 부처들이 환하게 웃다가 사라진다. 꼭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또 객석 뒤에서부터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등장하여 환호를 받는가 하면 앞 무대에서는 갑자기 기마병들이 나타나 전쟁을 하기도 한다.
무대가 오르락내리락 하는가 하면 무대와 객석이 하나의 무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무대 앞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는 분수는 실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또 시냇물에 세찬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기마전이 시작되면서 성벽이 무너지고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실외에서나 가능한 상황을 실내 무대에서 펼쳐 보이니 놀랄 수밖에 없다. 장엄한 스케일과 튼튼한 연기력, 다양한 장르의 내용전개, 실전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공연 내내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을 만큼 긴장과 환호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내가 볼 수 없었던 감동의 무대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환상적인 조명과 경이로운 기예, 화려한 춤과 노래, 입체적인 음악과 무대는 물론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식과 화려한 의상 등의 볼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송성가무쇼.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우리나라 전통 무용인 장고춤이다. 아리랑 노래와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무대는 장고와 풍물패의 환상적인 공연에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인 장고춤이 아리랑 음악과 어울려 화려한 무대를 펼치는 내내 객석에서 박수 장단과 환호성이 함께 했다. 내가 앉아 있는 귀빈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장구를 치며 리드하는 무희는 알고 보니 한국에서 참여하게 된 무용수였다는 것에 더욱 감명 깊게 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 보는 아리랑과 장고춤이라서 그런지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본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전통무용이 공연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긴장과 스릴, 감동이 넘치는 화려한 무대 송성가무쇼, 중국 여행을 마친 지금까지도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환상적인 공연 끝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섬섬옥수 나풀거리며
긴 치마단 오르락내리락
빙글빙글 돌고 돌고
앉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남정내 가슴이 두근두근
님 향한 마음인가
나라사랑하는 마음인가
내 나라 떠나
이국땅에서 듣는 아리랑
보이지 않는 눈물 흐르고
긴 여운 주체 할 수 없어 뒤돌아보고 서있네
빈 무대만을 .....,
어둠이 짙게 내린 밤 황산으로 이동하는 차안이 노래방이 되었다. 구수한 창법으로 김동호 목사님의 멋진 한가락 가운데 돌아가면서 목사님들의 숨겨진 끼들이 발산을 하기 시작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열성을 다한 노래들로 긴 여정 가운데의 피로를 조금이라며 풀 수 있었다. 최고령자인 이한흥 목사님의 하모니카의 연주는 전문가 못지않게 연주 하시고 노익장을 관시 하셨다. 하모니카의 특유의 애절함에 다들 시름을 잊고, 피곤도 잊는 순간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산에 오르면 친구가 된다, 황산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은 어디일까? 바로 황산이다. 심지어 오악으로 꼽히는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보다 아름답다고 예찬한다. 중국 10대 명승지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에서도 황산을 문화와 자연 부분을 모두 갖춘 복합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황산관광의 키포인트는 날씨인 것 같다. 일 년 중 약 20일을 빼고는 구름이 끼거나 비오거나 날씨의 변덕이 심하여 운이 좋아야 제대로 된 황산을 볼 수 있다 하니 어제 밤부터 열심히 기도를 올린 결과 오늘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다. 믿음의 식구들이 오르는 산이라서 일까 가능 곳마다 운해가 거치고 아름다움을 바라 볼 수가 있었다. 조용기 목사님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집회하려 가시는 중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요동일 때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긴장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여러분 걱정 하지 마세요 이 비행기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 앞에 세계적인 종 조 목사님이 계시니 말입니다. 기내는 삽시간에 조용해 졌고 비행기는 제 궤도를 찾아 잘 착륙했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운곡사 케이블카타는 곳 황산입구
황산시내에서 황산등산 입구까지 약 1시간 30분정도 이동한다. 황산산행을 위해 첫 번째코스 운곡케이블카(운곡사-백아령)를 타고 아름다운 황산의 절경을 잠시 감상을 해본다(약10분소요) .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중국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감히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케이블카를 만들어 운행을 한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스위스제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황산의 절경은 등반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구름이 함께 어울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황산, 구름이 마치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기괴한 돌들의 형상도 참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이런 걸 웅장하다고 하는 거란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케이블카로 황산에 올라보니 구름과 내가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케이블카 안에서 앞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서 내 눈으로 보는 관경을 의심 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관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산행을 준비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구름에 덮인 황산을 향해 조심스럽게 옮기였다. 황산이 우리를 반기듯 작은 비로 우리가 가는 길에 살포시 뿌려 놓았다. 그 길을 가는 우리들 앞에 구름바다가 점점 사라지고 장엄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을 했다. 일행 중 운동을 좋아 하시는 목사님이 순간 사라져 버렸다. 안절부절 못하는 가이드는 몸이 달아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역시 어른은 어른인가보다. 이국 타향에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이드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시는 것 역시 연로 하신 이한흥 목사님 이였다. 걱정 하지 말라. 곧 연락이 될 터이니 하시며 산에서는 너나없이 겸손해야 한다 하시며 천천히 자연풍관을 그리며 걷기를 원하시며 넘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신다. 시야에서 사라진 일행을 위해 어린 가이드는 동분서주 하지만 산에서 많은 인파 가운데 일행을 찾기란 힘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마다 떨어진 일행을 찾기 위해 애쓰는 가이드의 몸짓에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우리 일행이 발길이 닿기만 하며 구름바다가 밀려나고 태고의 비밀이 벗겨지듯 산하가 천천히 그 옷을 벗기고 있었다. 드디어 한 점 한 점 웅장한 황산의 자태가 들어난다. 봉우리마다 운해가 덮여 그림에서 본 듯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다가온다. 시간 관계상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기념사진 한 장으로 만족하고 약속 장소인 산위의 호텔로 점심 식사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산행이 힘드신 목사님들은 지름길로 호텔로 가기로 했고 젊은 목사들은 가이드와 함께 황산의 구석구석 살펴 보기위해 다른 길을 선택을 했다. 임준선목사, 문영길목사, 김백진목사, 나 그리고 가이드 이렇게 5명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계획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하늘로 나르는 듯 한 비래석
광명정을 떠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비래봉에 위치한 10m높이의 비래석 바위가 보인다. 비래석을 앞에 놓고 긴 줄을 서야만 했다. 좁은 통로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서가 되어 비래석에 손을 닿는 순간 찬 바람에 옷을 여미며 다시 한 번 밑을 바라보면서 온 몸이 움추려드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괴석을 행렬에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장엄한 산하를 향해 호령을 하고 싶었다. 내가 여기 왔노라고. 비래석은 높이가 12m로 바위의 모양이 마치 하늘로 나르는 듯 하다 하여 비래석(飛來石)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북해에서 서해로 가는 길에 보면 복숭아 모양같다하여 선도봉(仙桃峰)이라 불리기도 한다. 저 바위를 한번만 만지면 관운이요, 두번 만지면 재운이요, 세 번 만지면 가운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돌면서 바위를 만져주는 모습이 보인다. 광명정(光明頂)에서 서쪽으로 높이 12미터, 600톤 무게의 거석으로 돌 밑바닥과 산 봉우리가 확 트여 서로 갈라져 있어 마치 거석이 하늘을 나는 듯한 형태라 비래석이라 이름 붙여졌다 한다.
-황산의 감상 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 배운정
이곳에서는 시야가 확 틔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거쳐져, 물리칠 배(排)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등반을 하다보면 현지 일꾼들이 하나같이 벽돌이나 공사자재 등을 지게로 운반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정상부에 있는 호텔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품을 인력으로 운반한다고 한다. 우리가 자는 호텔에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렇게 운반되어 진 물품으로 먹고 자고 한다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것 같다(?)그 많은 인구들이 이러한 일자리도 없어서 줄을 서고 있다하니 마음 한편으로 아파오는게 무슨 일일까? 황산을 등반하다보면 생각보단 깨끗함을 느낄 것이다. 담배꽁초하나 안 보이는 등산로는 여기저기 보이지 않게 공안처럼 제복입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면 바로 그 자리에서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5시간에 걸쳐 교육을 받아야 하고 산에 휴지까지 청소를 해야 하니 우리가 동행한 가이드가 그걸 통역해야하니 손님들에게 절대 주의하란 멘트를 날린다.
-아찔한 허공에 메달인 서해대협곡
황산에서 서해대협곡을 보지 않으면 황산을 봤다고 하지 마라. 2001년에야 완성되었다는 이곳은 케이블카도 없을 때인 79년 76세의 나이로 배운정에 올랐던 등소평이 서해대협곡을 굽어보고는 감탄하여 개발을 지시하여 12년 동안 등산로를 설계한 뒤 9년간에 걸쳐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허공에 매달려 정으로 쪼아서 구멍을 뚫고 돌을 나르고 하나하나 연결하여 만든 것이라 하니 중국인들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절벽을 가로지른 이 서해대협곡은 계단 옆 난간 밑으로는 아찔한 허공이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장가계는 위로 올려다보는 산이라면 황산은 아래로 내려다보는 산리이라고 하니 그 이유가 알만 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전해볼만한 코스인 것 같다. 깎아지른 듯 뾰족하게 서있는 기암괴석, 그 옆으로 가느다랗게 나 있는 계단길, 허공의 메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리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우리 일행은 초입에서 시간 관계상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으로 기념을 하고 뒤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황산의 4절을 보는 행운을 안은 우리 일행 들
황산여행의 포인트는 황산의 절경은 기송(기이하게 생긴 소나무),기암(기이한 모양의 바위),운해(망망한 구름바다),건강에 좋은 온천이 네 가지가 산수화처럼 펼쳐져서 황산4절(黃山四絶)이라 불리는데 한 번 산행에서 이 모두를 볼 수 있다면 보통 행운아는 아니니 '복권'이라도 사 보라고 중국인들은 권할 정도다. 사람들은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라고 말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일반적으로 해발 800m 이상의 곳에서 자란다. 가장 유명한 황산의 소나무는 황산에는 "10대 명송"이 있다. 그중 대표되는 명송으로는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영객송, 가지가 총 56개로 중국 56개 소수민족수와 일치한다는 소나마,1000년이 되었다는 푸른용이 바다를 탐하는 형상의 소나무 탐해송, 도를 닦던 스님이 나무위에서 검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것을 봤다는 소나무 흑오송, 한 줄기로 태어나 중간에 말린 줄기가 갈라진 소나무인 연리송, 바위위의 한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붓을 닮은 소나무인 몽필생화 등이 단단한 바위틈에서 수명들이 700년에서 1500년까지 있다 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뿌리는 나무줄기보다 몇 배 수십 배 더 길다. 3미터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나무도 몇 백 년, 심지어 수 백년 자란 것들이다
황산 곳곳에는 괴상하게 생긴 돌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날아온 돌(飛來石), 바다를 바라보는 원숭이, 수박 먹는 저팔계 등등으로 이름이 지어진 돌만 12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그 생김새로 인해 많은 이름들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황산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이다. 운곡케이블카를 탑승하고 황산을 하산 후 한식당에서 정성껏 준비된 한식으로 배불리 먹고 항주로 이동하였다.
항주로 이동하는 차장 밖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인다. 안휘성 (황산) 의 특징인 가옥 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붕이 붉은 색 기와이며 여자 경제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며, 청색의 기와는 경제적 부담이 반반 검은색기와는 양가 어른들이 경제적 도움으로 집을 구입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지붕 맨 위에는 조그만 납골당이 있어 조상들을 집에다 모셔놓고 아침저녁 문안을 드린다고 한다. 밖에서 집을 볼 때 보이며 안치가 안 되었고 보이지 않으면 안치된 상태를 이야기 하다고 한다. 특히나 이 지역은 여자의 경제적 활동이 왕성하며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생활을 맡아서 한다고 한다. 안휘성은 3모작으로 3월에 유채 농사를 마치고 4월부터 벼농사로 2모작을 한다고 한다.
-자연 경관이 좋은 땅 항주 그리고 소주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 습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천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소주는 중국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로서, 기원 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칭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 더욱더 번성하여, 비단의 생산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이때에 소주에 세워진 탑들이 많아서 지금도 송대의 탑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도 이때부터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성이 덜하지 않았고,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을 활성화시켜 부유한 상업 도시로서 그 명목을 계속 유지해 왔다. 소주의 정원은 정교함이 특징으로 중국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이 가장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졸정원 이곳은 비단장사 왕서방이 만든 개인 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잇다. 1512년 왕헌신이 조성한 갱인 정원으로 베이징 이화원, 청더,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함께 중국4대 정원으로 꼽힌다.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15년 동안 건축한곳 건축 후, 2년도 채 못살아보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만 오천여 평에 인공호수 그리고 창살에 문종이를 바르는 게 일반적인 예인데 얼마나 돈이 많았는지 그때 당시에 프랑스에서 유리를 수입해서 문종이 대신에 유리로 도배 했다고 한다 정원 중간으로 멀리 보이는 호구탑이 인상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비단장사 왕서방은 왕헌신의 외동아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왕서방은 친구들과의 노름판 내기에서 졸정원을 날렸다. 친구들은 왕서방이 명월이만 생각하는 것을 알고 노름판에 명월이를 세워 두었다. 왕서방은 명월이에게 정신을 뺏겨 노름판 마다 계속 졌다. 결국 졸정원을 손에 쥔 친구들이 양심이 있었던지 명월이를 왕서방에게 소개해 주었고 비록 졸정원을 날렸지만 꿈에서도 그리던 명월이를 얻었으나 얼마 지나 그 여인도 그들 떠나 버렸다고 한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가장 머리에 이상하게 남는 것이 있다. 집집마다. 아파트까지 빨래를 속옷까지 늘어 놓았다. 속옷을 햇볕에 소독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란다. 중국 어이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 이였다.
-마지막 일정을 정리하기 위한 상해
시작을 상해에서 시작 했으니 마무리도 상해에서 갖게 되었다. 특별히 문영길 목사님의 도움으로 일생에 있어서 가장 융숭한 접대를 받게 되었다. 이름 모를 최고급 식당으로 안내를 받고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삼성 에니콜 그룹 상무이사님의 정중한 환대를 통해서 처음으로 최고급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타국에서 아주 반가운 얼굴들 국위선양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의 접대라서 더욱 새로웠다. 따듯한 환대에 감사 처음 먹어보는 상어지느러미. 랍스타, 새우등 바다 요리등 해물로 준비된 요리와 시중을 드는 아름다운 손길들이 식사를 더욱 즐겁게 했다.
밤늦게 중국의 서커스를 관람을 했다. 처음 시작 부분은 못보고 2부부터 보게 되었는데 옛날 보던 서커스 보다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것이 부족해서 일까? 그렇게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지하게 되었다.
-3백년 역사의 동인당
동인당은 북경 동인당제약창(北京,同仁堂製藥廠),(즉 제약회사)이 중국에서는 명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상해에서도 동인당을 볼 수가 있었다. 동인당은 3백여 년의 유구한 역사로 이어진 유명한 중국약국이며, 제약회사이다. 국가소유의 대 제약 기업그룹인 셈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의약의 백과전서가 펼쳐진 듯하다. 우리 동포의사가 동인당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 한 후 다른 의사들에 의하여 우리 일행들의 진맥을 하며 이곳저곳이 안 좋으니 약을 사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건강에 관심이 있었지만 의사들은 우리들의 건강 상태를 알아맞히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동인당에서 가장 유명한 약은 '우황청심환'이다. 요즘에는 안궁우황환(安宮牛黃丸) 이라는 제품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우황청심환을 쓰지만, 안궁우황환은 5배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특히 교통사고나 타박상의 후유증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무희들의 춤과 마지막 식사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태족의 전통 민속쇼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수 있는 식당으로 태가촌에 가면 소수민족의 복장을 입은 아가씨들이 나와서 영접하며 태가촌 마을에 온 듯 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태가촌 복장을 하고 나와 공연을 하고, 행복을 상징하는 붉은 끈을 손님들에게 맺어주는 등 이벤트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부러울게 없는 시간
정다운 사람이 있어 좋고
맛있는 음식이여 입이 즐겁고
음악이 있어 귀가 즐겁고
볼거리가 풍성하여 눈이 즐거우니
천국이 여기가 아니더냐
홍교공항에서 버스에서 내리고 이제는 가이드와의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할 시간이 왔다. 다른 어떤 팀보다 더 마음을 써 주어 던 터라 부모님의 배웅하듯이 끝까지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정양을 보면서 짧은 시간 많은 정을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행이 다 떠나 모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헤어짐에 정을 아쉬워하는 정양을 보면서 마음이 쓸쓸해짐을 갖는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약속도 없이 그냥 뒤 돌아서는 우리가 야속도 하겠지만 묵묵히 자신에 일에 최선을 다한 정양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항상 하시길 기원해 본다. 상해홍교공항에서 동방항공으로 김포공항 귀향길에 올라 이렇게 정다운 이들과의 특별한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던 여행인 것 같다. 선교를 통해 맺은 인연이 훗날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로 만나게 되고, 가는 곳마다 기상이 좋았고, 특히 황산에 올랐을 때는 구름바다도 거치고 황산의 장엄함을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이국 만리에서 애쓰는 귀한 집사님의 손길로 귀한 접대를 받게 되었으니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심을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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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이 안들어가네요. 곧 수정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