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요일들 / 로버트 헤이든]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
인생의 어느 때를 돌아보며 회한에 잠긴다. 지금 깨달은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왜 모든 아버지는 자식의 참회가 시작될 즈음에는 세상에 안 계시거나 너무 늙어 있을까? 혹한의 겨울, 모두가 일어나기 싫은 아침, 한 주 동안 힘들게 일한 후의 일요일인데도 아버지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 석탄을 날라 온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갈라진 손'이 난로에 불을 지핀다. 집 안에 온기가 번지고, 늦게 일어난 아들의 귀에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하는 '추위 녹는' 소리가 들린다.
짧지만 좋은 시의 요소가 다 담겼다. 눈에 보이는 듯한 시각적 이미지(검푸른 추위, 타오르는 불, 윤나게 닦인 구두), 생생한 촉각적 이미지 (쑤시고 갈라진 손), 청각적 이미지 (추위가 쪼개지고 녹는 소리), 거기에 '잠복한 분노', '경계', '냉담한 말' 같은 단어들이 주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까지. 이 모든 이미지들이 겨울 아침의 시공간 안에 어우러져 가슴 뭉클한 여운을 안긴다.
로버트 헤이든 (1913~1980)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나 갓난아기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이웃 가정에 맡겨졌다. 양아버지는 엄격한 침례교인으로 막노동자였으나 양아들을 잘 키웠다. 지독한 근시 때문에 헤이든은 아이들과 놀지 못하는 대신 독서에 파묻혔고, 이때부터 문학적 재능이 싹텄다.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닌 후 모교에서 시를 강의했으며, 다양한 시적 기교와 보편적인 호소력을 인정받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계관시인에 선정되었다.
시의 중심에, 그리고 시인의 기억 속 중심에 아버지가 지핀 따뜻한 불이 타닥거리고 있다. 모든 좋은 아버지는 그렇게 따뜻함으로 기억되지 않는가. 추운 삶을 녹여 준 불로, 헤이든이 어렸을 때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의 집들은 모두가 석탄 난방이었다. 그래서 매일 새벽 새 석탄으로 갈아 줘야만 집 안이 따뜻하게 유지되었다.
사랑은 의무로 견고해지고 거룩해진다. 세상의 남자들은 '아버지'가 되면서 가끔은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는 엄격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혹한에도 혼자 일어나 집을 따뜻하게 하는 엄숙하고 고독한 직무와 친구가 된다. 수도승처럼 새벽을 깨우며 그 의무를 완수해 나간다. 누구도 감사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이 시의 화자처럼 아주 뒤늦게야 그 노고를 이해한다 해도. 그토록 윤나게 구두를 닦아 주던 이가 세상에 없게 된 후에야 비로소.
시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미시간주에 사는 헤이든의 딸 엠마 헤이든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수취인 불명으로 한 달 뒤 반송되었다. 주소를 재확인하고 재차 보냈으나 연락이 없다. 어찌된 일인가, 이런저런 염려를 하게 된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